주님과 함께하는 동안 모든 고난·두려움이 사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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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과 함께하는 동안 모든 고난·두려움이 사라져
사도행전 9장 19절 ~ 31절 - 2018. 6. 24. 주일 오전예배 설교 - 718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18.06.29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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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밧 과부 이야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 강대상에 올라오는 것이 참 행복합니다. 강대상에 올라와 여러분께 말씀을 전하는 것도 감사하지만 말씀을 전하기 전에 전할 말씀을 묵상하고 마음과 연결시키다 보면 주님께서 저에게 하신 일들이 생각나 그렇게 감격스럽고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열왕기상 17장에는 사르밧 과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심한 기근이 들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사르밧 과부에게 가서 떡 한 조각을 가져오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사르밧 과부는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어서 아들과 마지막 음식을 만들어 먹고 죽으려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엘리야가 뭐라고 합니까?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왕상 17:14) 사르밧 과부가 엘리야의 말을 믿고 그에게 떡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막 달려가 가루통을 보았습니다. 분명 비어있어야 할 가루통이 가득차 있었습니다. 통에 가루를 퍼내도 또 생기고 또 생기고…. 사르밧 과부가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기쁨

이 말씀 외에도 문둥병자가 병에서 나은 이야기, 죽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 이야기, 모든 것을 잃고 시모를 따라 베들레헴에 온 룻이 보아스를 만나 복을 받는 이야기, 성경은 이런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런 일들은 오래전 성경에 나와 있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삶속에도 그대로 일어나서 우리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기쁨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평안을, 한 번도 맛보지 못한 큰 사랑을 맛보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의 기쁨은 좋은 음식과 값비싼 승용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것을 예비하신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저는 단에서 말씀을 전할 때 제 마음 속의 많은 이야기들이 서로 나오고 싶어서 싸우는 것만 같습니다. 하나님이 저에게 은혜를 베푸신 이 이야기도 하고 싶고 저 이야기도 하고 싶고 생각할수록 너무나 감사합니다.

내가 출소하면 어떻게 될까

우리 선교회 김 목사님은 구원받기 전에 살인을 저질러 교도소에서 17년을 복역했습니다. 교도소에서도 교도관을 세 번이나 납치할 정도로 문제가 많았습니다. 사람을 죽이고 양심의 가책과 죄의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벗어날 방법이 없었습니다. 늘 “나 하나 죽으면 그만이야. 사람이 한 번 죽지 두 번 죽어? 어디 해볼 테면 해봐!” 하는 마음으로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분이 제가 쓴 「나는 이렇게 죄에서 벗어났다」라는 책을 읽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구원을 받고 감격해하면서 이분의 인생이 너무나 달라졌습니다.
그 후 모범수가 되어 출소를 앞둔 어느 날 김 목사님이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출소해 반가운 마음에 친구들을 만나 술 한잔하다 보면 또 죄를 저질러 다시 교도소에 오겠구나.’ 중범자들이 교도소에서는 죄를 지을 수 없으니까 교도소에서 10년, 20년 살다 보면 자기가 이제는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사람으로 변한 줄로 착각합니다. 하지만 출소를 하면 6개월 만에도 다시 들어오고 성미 급한 사람은 나가자마자 다시 들어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교도소에서 가장 모범수들이 종교지도자들인데 김 목사님이 볼 때 그 사람들은 정말 천사처럼 선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도 나갈 때는 이제 죄 다시 안 지을 거라고 각오와 결심을 하고 나가지만 거의 다시 교도소로 들어왔습니다.

마음의 인도자를 찾아서

김 목사님이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저렇게 선해 보였던 종교지도자들도 다 다시 들어오는데 그러면 나는 교도소에서 한 평생 살다가 생을 마치겠구나. 여기서 벗어날 방법이 정말 없는 것인가?’ 김 목사님 안에는 성령이 계셔서 보통 사람과는 다른 마음의 세계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김 목사님은 자신의 각오와 결심으로 안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기에 대해 손을 놓아버렸습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를 이끌어 줄 인도자가 있으면 되겠다’는 마음이 들어 이분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김 목사님이 저희 교회 작은 방에서 지내면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교회 쓰레기를 치우고 화장실 청소도 다 했습니다. 김 목사님은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벌써 몇 달 째야, 석 달, 넉 달…. 그런데 내가 아직 교도소에 안 갔어. 하하하. 내가 아직 교도소에 안 갔어.’ 그렇게 일 년이 지난 후 선교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선교학교를 졸업하는 날 귀한 자매님과 결혼도 하고 그 후에 목사님이 되었습니다.

전 세계 교도소를 다니며

김 목사님이 사역을 하시다가 어느 날 교도소에 한번 가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전국 30여 개 교도소의 재소자들에게 강연을 하고 싶다고 편지를 썼습니다. 한 교도소에서 연락이 와 김 목사님이 강연을 하러 가셨습니다. 강연 전에 교도관이 “아시겠지만 재소자들은 다 잡니다. 이해하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김 목사님이 강연을 하시면서 자신의 마음 그대로를 이야기했습니다. “여러분, 내가 출소하면 교도소 다시는 안 들어오겠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자신의 의지와 각오로 되지 않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죄 짓지 말고 착하게 살라고 이야기하는데 실질적인 마음의 세계를 이야기하자 재소자들이 눈도 한번 깜빡이지 않고 다섯 시간을 들었습니다. 
이 강연이 소문이 나 전국 교도소에서 서로 오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김 목사님이 교도소에 가면 재소자들의 마음이 환하게 바뀝니다. 요즘은 미국, 아프리카, 남미 등 해외에 나가 강연을 하며 그 나라 교도소 최고 책임자인 교정청장들을 만나고 얼마 전에는 케냐 교도소에 신학교도 설립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어제 돌아왔다고 하던데 요즘 집에 있는 날이 거의 없을 정도로 바쁘게 활동하면서 너무나 행복해합니다. 김 목사님의 마음 속에는 그 누구도 갖지 못한 예수님께 받은 기쁨과 소망,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참된 기쁨을 찾은 부부

어느 날 우리 교회 박 형제님 부부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저는 젊을 때부터 포클레인 기사를 했습니다. 그것으로 돈을 벌어 좋은 집도 사고 좋은 거 다 해봤지만 재미가 하나도 없습니다. 저희 부부가 더 나이 들기 전에 복음을 위해 살게 해주십시오.” 박 형제님 부부가 너무나 귀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부부가 스와질란드(에스와티니로 국명 변경) 선교센터 건축을 돕기 위해 그곳으로 갔습니다. 얼마 전 스와질란드에서 박 형제님 부부를 만났는데 너무나 행복하게 살고 계셨습니다. 
돈은 있다가 없어지고 사람도 늙고 세상은 참 허무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에 빠져 살다가 예수님을 위해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바꾸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얼굴에 빛이 나고 너무나 감사하며 기뻐하는 삶을 삽니다. 예전에는 우리가 내 것 쌓아야 하고, 내가 잘 돼야 하고, 내 아이가 일등 해야 하고…, 이런 육신적인 삶을 살다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삶을 살아보니 허무한 이 세상에 빠져 사는 삶을 보면 너무나 안타깝다는 마음이 듭니다.

사도 바울의 새로운 삶

사도 바울이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기 위해 다메섹으로 올라가던 중 예수님을 만납니다.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사울을 둘러 비춰 앞이 안보이고 소리가 들렸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주여, 누구십니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다.” 사울이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말이 맞네! 나는 지금까지 예수님이 살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선량한 시민을 현혹하는 자들이라 생각하고 핍박했는데 왜 자세히 알아보지 않고 불신했을까?’
이제 바울의 마음 속에 죽었던 예수님이 살아난 것입니다. 그날부터 그리스도인을 핍박했던 헛된 생각들을 버리고 다시 사신 예수님을 증거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읽어보면 사도 바울을 죽이려는 사람들이 다메섹 성문까지 지키면서 못 나가게 하려고 했는데 밤에 광주리를 타고 성벽을 내려와서 피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에게는 많은 핍박이 있었지만 하나님이 지키시는 것을 경험하며 다 이겼습니다. 그러면서 바울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죄 사함을 받고 거듭났습니다.

예수님의 손에 이끌려

십자가의 피가 우리를 사망에서 건져주셨고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예수님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주님의 마음과 우리가 성령으로 하나가 돼서 어떤 어려움에서도 우리를 지키시는 것을 생각하면 너무나 행복합니다.
여러분, 제가 힘이 있습니까? 잘한 게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제 안에 예수님이 계셔서 당신이 하시고 싶은 말씀을 저를 통해 전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여러분 마음에 자리잡으면 여러분의 마음이 예수님을 만나게 되고 그분을 향한 믿음이 형성됩니다. 그때부터 여러분들이 김 목사님처럼, 사도 바울처럼 예수님 손에 이끌림을 받는 삶이 시작됩니다. 전에는 우리 마음에서 근심을 쫓을 수 없고 슬픔을 쫓을 수 없고 두려움을 쫓을 수가 없었는데 밝은 빛을 비추면 어둠이 물러가듯 예수님이 우리 마음에서 근심과 두려움, 슬픔을 물러가게 합니다. 외형적으로 볼 때 사도 바울은 전에는 그리스도를 핍박하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핍박을 받는 사람이 되었지만 그 마음 안에는 한없는 기쁨과 감사가 있는 것입니다.

빌립보 감옥에 갇혔을 때

바울이 빌립보 감옥에 갇혔을 때 그들이 다른 때 같으면 실망하고 절망했을 텐데 그들은 슬퍼하거나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함께 계신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입니다.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는 것을 죄수들이 들었습니다. 그때 홀연히 지진이 일어나 옥터가 움직이면서 옥문들이 다 열렸습니다. 간수가 자다가 깜짝 놀라 문이 열린 걸 보고 죄수들이 다 도망간 줄 알고 자살 하려고 했습니다. 바울이 그것을 보고 “잠깐!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간수가 와서 무릎을 꿇고 “우리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으리이까”라고 하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니”라고 말했습니다. 간수는  바울의 매맞은 상처를 치료해 주었으며 이어 간수와 그 가족들이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로마서 3장 24절을 보면

저는 지난달 피지(Fiji) 집회를 통해 너무나 놀라운 은혜를 입었습니다. 피지 감리교본부에서 열린 기독교지도자포럼(CLF)에 6백여 명의 현지 감리교 목회자들이 모였는데 제가 그분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어서 너무나 기뻤습니다. 집회 후에 우리 선교회 목사님들이 피지 교회를 다니며 복음을 전해 한 분 한 분 구원을 받는 모습을 보며 예수님이 얼마나 기뻐하셨겠습니까? 
한번은 에티오피아에서 한 대학 총장님을 만나 로마서 3장 23절을 이야기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이분이 “아, 저 이 말씀 잘 압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24절을 읽어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제가 그분께 물었습니다. “24절에서 뭐라고 합니까?” “열심히 기도하면 구원받는다고 하네요.” “아니 어디에 그런 말씀이 있어요? 다시 보세요.” “회개하면 구원받는다고…” 성경에 죄 사함이라는 이야기가 수백 곳에 기록되어 있는데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지 않으면 성경을 아무리 봐도 그 말씀이 보이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죄를 지으니까 죄인이 아니냐?”라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의 피가 우리 죄를 사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여전히 죄인이라고 한다면 예수님의 십자가가 실패했다는 말이 됩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목사님들이 성도들에게 예수님이 우리 죄를 사했지만 또 죄를 지으니까 죄인이라고 가르치는지 모릅니다.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예수님의 피는 구약의 제사장이 뿌린 피와 다릅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제사를 드릴 때 그 제물의 피를 가지고 이 땅에 있는 성전 제단에다 뿌렸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히 9:11) 예수님의 피는 이 땅에 있는 제단에 뿌려진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 제단에 뿌려졌다고 히브리서 9장에서 정확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늘나라에 뿌린 피와 이 땅에 뿌린 피는 다릅니다. 이 땅은 시간계이기 때문에 일정한 시간에 대한 죄만 사해지고 하늘나라는 영원한 세계이기 때문에 영원히 죄가 사해지는 것이 다릅니다. 
다니엘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예언을 했습니다.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단 9:24) 그 말씀대로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면서 우리의 허물이 끝나고, 죄가 마치고, 죄가 영원히 사해지고, 영원한 의가 드러나고, 이상과 예언이 다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어떤 문제를 만나든지

영원한 멸망을 받고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가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이 귀한 복음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힘 있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두려울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그때마다 하나님이 당신의 손길로 지키시고 도우셔서 복음을 위해 살게 하셨습니다. 바울이 로마에 가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 박해 금지령을 내릴 때 로마 시민의 3분의 1이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그렇게 놀라운 일을 행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 죄를 사하셨습니다. 그리고 죄 사함을 받은 우리 속에 예수님이 살아계십니다. 사도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라고 말했습니다. 이제는 제가 살지 않고 그리스도가 제 안에 사시니까 무슨 일을 만나든지 항상 주님이 저를 돕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한 명의 복음 전도자에 불과하지만 사단이 제 앞에 어떤 어려움과 문제, 고통을 주든지 하나님께서 살아 일하시는 것을 봅니다. 

심장병에서 낫게 하시고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자가 돌에 맞아 죽을 위치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 순간 여자를 때려야 할 수많은 돌들이 전부 땅으로 떨어졌습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이처럼 우리를 향해 날아오는 저주, 고난, 고통, 두려움, 불행 그 모든 것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동안 예수님께서 다 땅으로 떨어뜨려 하나도 우리에게 날아오지 못하도록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1999년도에 저는 심장이 너무 안 좋았습니다. 미국 뉴욕의 세계적인 심장병 박사님도 “이 병은 현대 의학으로 치료할 수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한 달을 더 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해 8월 영동 송호솔밭에서 캠프를 하는데 저녁에 텐트에 누워 생각해보니 본부에서 주일학교까지 400~500m가 되는데 그날 네 번을 왕복한 것이 생각났습니다. 4㎞를 걸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아 하나님이 심장을 다 낫게 해주셨구나.’ 그렇게 믿었습니다. 이튿날부터 조깅을 시작했습니다. 가벼운 운동화 하나 사서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아프리카에 가서도 달리고 러시아에 가서도 달렸습니다. 그때 저는 꼭 죽을 줄 알았는데 심장을 깨끗이 낫게 해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것

여러분, 저는 이렇게 제 삶 전부를 예수님이 주관하시고 계신 것이 너무나 감사합니다. 제가 저를 지키는 것보다 백 배, 천 배, 만 배 완벽한 하나님의 손길로 저를 지키고 계시기 때문에 제가 저를 지키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하나님이 지키시도록 제 노후를 준비하는 것도 포기했습니다. 제가 저를 위해 돈 십 원 하나 모으지 않았습니다. 왜요? 하나님이 저를 위해 준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위해 사십시오. 여러분이 여러분을 지키는 것보다 예수님이 여러분을 지키신다면 훨씬 더 복되고 영광스럽습니다. 주님은 우리 교회 안에 살아 일하고 계시고, 이 교회의 머리이시며, 이 교회의 주인이십니다. 그래서 이 교회에 속한 모든 사람들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그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섬기시길 바랍니다.
- 2018. 6. 24. 주일 오전예배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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