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잡는 해병”이 탄생한 통영상륙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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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잡는 해병”이 탄생한 통영상륙작전
특집 6.25특집 - ② 한국군 최초로 성공한 단독 기습상륙작전의 실상을 밝히다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18.06.23 0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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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발발 이후 해군의 지원을 받은 대한민국 해병대의 활약으로 승리를 거둔 통영상륙작전. 당시 통영상륙작전에 참전했던 해병대 1기와 2기생 대부분이 사망한 가운데 생존자 6명 중 한 명인 전(前) 해병대 창설 1기 회장 김재식(91) 옹을 만나 同 작전의 전모를 들어보았다.

Contents
     1. 인천상륙작전 참전용사를 만나다
   ▶2. 귀신 잡는 해병’이 탄생한 통영상륙작전 

북한군, 거제도 통해 마산, 진해, 부산 진출 계획

“그들은 악마라도 잡을 수 있겠다(They might even capture the devil)”.
1950년 8월 통영상륙작전을 취재한 미국의 종군기자 마가렛 히긴스(Marguerite Higgins, 1920-1966)는 대한민국 해병대를 이렇게 언급했다. 이를 계기로 우리 해병대는 ‘귀신 잡는 해병대’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다.
통영상륙작전은 인천상륙작전보다 한 달 앞선 8월 17일 통영과 거제도를 점령하려던 북한군을 무찔러 전쟁 발발 이후 패전과 후퇴를 거듭하던 국군에게 승리를 안겨준 잊을 수 없는 전투다. 
6월 25일 기습 남침한 북한군은 한 달 만에 국토의 90%를 점령하고 포항, 대구, 마산을 통과하여 최종 목표인 부산을 향해 총공격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하고 결사항전하는 국군과 UN군에 부딪혀 전선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거제도를 통해 마산, 진해, 부산방면으로 진출을 꾀하였다.
그리하여 8월 16일 북한군 7사단 예하 650명이 경남 고성을 점령하고 통영 입구인 원문(院門)고개를 넘었다. 다음날 새벽 통영시가지로 들어온 북한군은 곧이어 거제도를 점령할 계획이었다.

해병대와 통영 주민이 함께 이루어낸 승리

이에 대한민국 해병대는 김성은(1924-2007) 대령의 지휘하에 8월 17일 해군함 7척을 이끌고 통영 동북부 장평리에 상륙하였다. 통영항구에서 함포사격을 가하여 적의 시선을 해안으로 돌린 김성은 부대는 통영반도의 길목인 원문고개에 방어진을 구축하고 적과 치열한 백병전을 벌였다.  
북한군 주력부대가 오기 전 원문고개에서 수색대를 전멸시킨 김재식 옹은 “불과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하며 승승장구하던 북한군은 승리에 취해 있었다. 당시 부잣집에만 있던 라디오를 빼앗아 허리춤에 두어 개씩 매달고 있는가 하면 술에 취한 채 번쩍거리는 시계를 차고 으스대며 행군하고 있었다. 우리 해병대가 진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고 말했다. 
한편 통영시가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망일봉을 신속히 장악한 아군은 적군 100여명을 사살하고 공군과 해군의 지원하에 북한군의 역습을 격퇴시켜 8월 19일 통영을 완전히 탈환했다. 
이 작전의 승리에는 통영 주민들의 애국심도 빼놓을 수 없었다. 해병대는 거제도 인근에서 징발된 20여척의 목선으로 상륙한 후 장평리를 교두보로 삼고 주민들의 도움으로 장비, 탄약 등 보급품을 빠르게 운반할 수 있었다. 
김재식 옹은 “군인들은 동네에서 빌린 곡괭이와 삽으로 참호를 파고 운동화 차림에 철모도 없이 M1소총 하나 들고 싸웠다. 굶는 날이 허다했지만 아주머니들이 만들어 준 주먹밥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전장 깊숙이 들어와 도움을 주던 주민이 총탄에 맞은 나를 업고 남해도(島)로 건너가 일주일간 치료해 주었는데 제대로 보답하지를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공산화되지 않도록 지킬 수 있어서 자랑스러워”

통영상륙작전에서의 승리는 압도적이었다. 북한군이 469명이나 사살된 반면 아군 전사자는 19명에 불과했고 다수의 무기와 장비를 노획하는 큰 성과를 거둬 전쟁 초기에 전세를 역전시킨 귀중한 승리였다. 3일 만에 통영을 탈환한 김성은 부대는 이후 인천상륙작전에도 합류해 맹활약하였다. 
귀신도 때려잡을 기세로 용감하게 적을 물리친 6.25전쟁 참전용사들이 이제 한 명 두 명 세상을 떠나고 있다. 그와 함께 전쟁에 대한 기억도 사라지며 평화를 가져다 준 참전자들의 헌신과 희생의 의미가 희미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재식 옹은 “우리가 모든 전투에서 다 승리를 이룬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땅이 공산화되지 않도록 지킬 수 있어서 자랑스럽고, 60여 년이 지난 역사를 잊지않고 되새기며 곳곳에서 참전자들을 기리는 행사가 진행되어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2주에 걸쳐 만난 인천상륙작전 참전용사 부태삼 옹과 통영상륙작전의 김재식 옹. 이들은 한결같이 참전용사들과 수많은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으로 얻은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는 그 무엇보다도 고귀하며 앞으로도 영원히 지켜나가야 할 최고의 가치임을 국민들이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송미아 기자 miasong@igood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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