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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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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슬픔과 고통이 있어도 주님의 마음을 받아들이면요한복음 11장 17절 ~ 44절 - 2018. 5. 20. 주일 오전예배 설교 - 713호

생명공학의 발달로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얼마 전에 생명공학 박사를 만나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요즘 생명공학이 발달해서 복제 인간을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과학자들은 사람이 늙고 병드니까 자신과 똑같은 복제 인간을 만들어서 냉동 창고에 보관했다가 그 사람에게 질병이 생기면 복제 인간의 장기를 자신의 손상된 장기와 바꾸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자동차 회사에서 고장난 자동차의 부속품을 갈아 끼워서 정비해 주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박사님으로부터 복제 인간을 만드는 과정에 대해 설명을 들었습니다. 인간의 탄생은 난자와 정자가 만나서 수정란이 자궁에 착상한 단세포 상태에서 분열을 하면서 시작합니다. 하나의 세포가 분열해서 2개가 되고 4, 8, 16, 32, 64, 128개로 나뉘면서 점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단세포 상태에서 세포 분열을 시작할 때 DNA가 “코를 만들어라. 눈을 만들어라. 귀를 만들어라” 하며 각 세포에게 명령하여 인간의 신체 기관이 만들어집니다. 이렇게 형성된 아기는 어머니 뱃속에서 10개월을 지내다가 태어나 성인으로 성장하는 겁니다. 

복제 인간을 만드는 과정

수정란이 단세포 상태일 때 그 세포를 흔들어서 뒤집으면 DNA가 빠져 나온다고 합니다. DNA가 없는 수정란에다 어떤 사람의 DNA를 추출하여 집어넣으면 수정란은 새롭게 들어온 DNA의 명령을 받아 세포 분열을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새롭게 DNA를 제공한 사람과 똑같은 체질과 모양을 가진 제2의 사람이 탄생하는데 그것이 ‘복제 인간’입니다. 그 복제 인간을 냉동 창고에 보관했다가 사람의 눈이나 신장, 심장, 간 등이 손상되었을 때 이식술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현재 과학 기술로는 충분히 복제 인간을 만들 수 있지만 윤리적인 문제 때문에 법적으로 허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수정란이 단세포 상태일 때 흔들어서 뒤집어 DNA를 빼내고 다른 누군가의 DNA를 넣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과 똑같은 체질의 복제 인간이 만들어진다는 겁니다. 
저는 생명공학의 발달로 가능해진 복제 인간은 마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일과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서 우리 자신의 DNA를 뽑아내고 예수님 마음의 DNA를 넣으면, 우리도 예수님같이 생각하고 기뻐하며 예수님과 같은 능력을 갖게 되고 예수님의 사랑이 넘치며 믿음을 갖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간을 만났을 때 늘 이런 일을 하십니다. 

38년 된 병자 이야기

요한복음 5장에는 38년 된 병자가 나옵니다. 그는 베데스다 연못가에 누워 있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병자에게 물었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베데스다 연못은 천사가 물을 동한 후에 누구든지 먼저 들어가면 어떤 병도 다 낫는다는 곳입니다. 그래서 38년 된 병자도 천사가 물을 막 동할 때 가장 먼저 들어가고 싶지만 자기 혼자 몸을 움직일 수 없으니까 들어가지 못해서 예수님께 “물이 동할 때 당신이 나를 못에 넣어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는 의미로 답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병자와 전혀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병자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네가 움직이지 못하는 병자로 있는 것은 나와 생각이 달라서 그래. 만일 네가 내 마음을 받아들이면 너도 걸을 수 있어.” 그래서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에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한번 따라해 주시겠습니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누가 말씀하셨습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다시 걸을 수 있어’

복제 인간을 만들 때 DNA를 바꾸듯이 사람의 마음도 바꿀 수 있습니다. 38년 된 병자는 그동안 자기 힘으로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갈 수 없는 사람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병자에게 ‘나는 자리를 들고 걸어갈 수 없어’라는 생각을 버리고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는 당신의 말을 받아들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일은 병자가 가진 생각을 뽑아내고 ‘내가 다시 걸을 수 있어’라는 새로운 생각을 그 병자의 마음에 넣어주는 일을 하시는 겁니다. 그 병자가 다른 무슨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을 뽑아내고 예수님의 마음을 받아들이면, 예수님의 마음과 같은 마음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음란하고, 추하고, 더럽고, 악한 상태에서 ‘내가 도박하지 말아야지. 간음하지 말아야지. 마약하지 말아야지’라고 결심하는 걸 바라지 않습니다. 근본적으로 우리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으로 바뀌면 우리가 예수님처럼 사랑하게 되고, 예수님의 지혜를 갖게 되고, 예수님의 평화를 얻고, 예수님의 은혜를 입는 역사가 우리에게 일어납니다. 

새로운 DNA를 넣으면
 
여러분, 인간 복제 과정처럼 단세포 수정란에서 최초 DNA를 뽑아버리고 새로운 DNA를 넣으면 그 DNA가 지시한대로 인간이 복제 되듯이 우리의 더러운 마음을 아무리 고치려 해도 안되니까 우리 마음을 버리고 예수님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신앙입니다.
저는 1962년 10월에 예수님을 믿고 죄 사함을 받고 마음이 바뀌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구원받기 전에는 제가 잘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거짓말 안하려고 애썼고 도둑질 안하려고 애썼고 주일을 지키려고 애썼지만 근본 제 마음이 추하고 더럽기 때문에 아무리 각오하고 애써도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해에 ‘나’라는 사람은 안된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발견하면서 ‘내가 지금까지 생각했던 모든 일이 실패인데 이제부터 내 생각을 따라가면 망하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내 마음의 DNA를 뽑아내고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나환자촌 교회 초청을 받고

1979년 어느 날 나환자촌 교회 목사님 한 분이 저를 찾아와 집회를 부탁하셨습니다. 얼마 전 어떤 군목님이 집회에 오신다고 약속해서 교회 성도들이 기뻐하며 열심히 준비했는데 집회를 불과 일주일 앞두고 그 군목님이 바빠서 못 온다고 연락하셨습니다. 교회 성도들이 흥분해서 “목사가 집회보다 바쁜 게 뭐가 있는데! 우리가 문둥이라 더러워서 안 오는 거지! 문둥이들은 하나님 말씀 들을 자격도 없나?”라며 소리 지르고 난리가 났다며 제게 “만일 박옥수 목사님까지 안 오시면 우리 교회는 큰 시험에 들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목사님, 약속 할게요. 하늘이 두 쪽 나도 꼭 갈게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목사님이 미심쩍은지 저녁 식사 대접을 하시겠다며 식당으로 저를 데려갔습니다. 널따란 팬에 갈비를 잔뜩 올려놓고 구웠습니다. 그 시절엔 가난해서 갈비를 구경도 못해 봤는데 너무나 맛있는 갈비가 나왔습니다. 갈비를 한참 먹는데 제가 안 봐야 할 걸 보았습니다. 나환자인 그 목사님의 입술이 약간 들려서 발음이 새는데 “박 목타님, 우리 교회로 말할 거 가트면…”라고 말씀하시면서 침이 툭툭 튀니까 갑자기 갈비 맛이 싹 떨어졌습니다. 그분이 자꾸 더 먹으라고 권하시는데 제 가까이 있는 침이 덜 떨어진 갈비 몇 점을 집어서 뒤집고 한 번 더 구워 먹은 후 그 많은 갈비를 남긴 채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나왔습니다. 

나같은 인간이 뭐라고 

제가 교회로 돌아와서 목사님들과 모임을 갖는데 한 목사님이 제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나환자촌에 가신다고요?” “예, 갑니다.”“목사님, 조심해야 돼요.” “왜요?” “나환자촌에 가면 나병 걸려서 고름이 흐르는 손으로 삶은 달걀을 까서 주며 진짜 먹는지 시험해 본대요. 목사님, 잡수실 거예요?” “뭐, 쓸데없는 소리하고 있어요! 그런 일이 있을라고요.” 제가 그렇게 말문을 막았습니다. 그리고 집회 3일 앞두고 갑자기 새벽에 일어나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진짜 고름 있는 손으로 달걀을 까서 줄까? 그럼 먹어야 돼? 말아야 돼?’ 먹을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잠은 어떻게 자라고 할까? 밥은 같이 먹자고 할까? 따로 먹으라고 할까?’ 하며 별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컴컴한 예배당에 앉아 기도하기 시작했는데 성경 구절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 식사하러 가셨을 때에”라는 말씀에서 ‘존귀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문둥이 집에 주저 없이 가셨는데 나같이 천한 인간이 뭐라고 문둥이 집에 가기를 주저하는가? 나환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니야. 나도 문둥병 걸리면 나환자이지’라고 생각하니까 제가 나환자와 전혀 다르지 않고 나환자와 입을 맞춰도 아무렇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자동차의 엔진을 교체하듯

여러분, 제가 예수님을 믿은 후 ‘예전에 나는 이러지 않았어. 이것은 예수님이 주신 마음이야. 내겐 이런 마음이 없어’ 하며 제 마음이 참으로 악하고 더럽다는 것을 종종 느꼈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자동차 엔진의 성능이 나빠서 엔진을 보링한다고 했습니다. 엔진 기관 안에 있는 낡은 실린더를 다시 깍는 보링을 했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승용차 엔진 성능이 아주 우수해 엔진이 고장나서 교체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제 차도 23만㎞를 달렸는데 아직 새 엔진 같습니다. 옛날에는 자동차의 엔진 보링을 많이 했지만 아예 새 엔진으로 바꾸면 더 좋습니다. 이렇게 고장난 엔진을 보링하지 않고 새 엔진으로 바꾸듯이 더럽고 추하고 음란하며 거짓되고 악한 우리 마음을 아예 예수님의 마음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나사로의 죽음 앞에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복음 11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가장 사랑하는 나사로, 마르다와 마리아, 삼 남매가 부모도 없이 살았습니다. 어느 날 오빠 나사로가 병들자 여동생들이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 “주여, 사랑하는 나사로가 병들었나이다” 하며 어서 빨리 와서 고쳐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오실 줄 알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시지 않고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병이다”라고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죽을병이 아니라고 하셨으니 ‘우리 오빠가 죽지 않겠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덜커덕 오빠가 죽어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슬프기도 했지만 가까이 계신 예수님께 오시라고 했을 때 얼른 오셔서 오빠를 고쳐주셨으면 되는데 오시지 않아서 오빠가 죽었다고 생각하여 섭섭했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지금 나사로가 죽었지만 예수님이 다시 살리면 살아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동네 사람들이 “예수님이 베다니 동네 입구에 오셨다”라고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말했을 때 마리아는 그냥 주저앉아 있었습니다. 그래도 마르다는 이성적인지 참고 예수님께 가서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은 예수님이 오시지 않아서 오빠가 죽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살려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우리도 죽음 가운데서 살리신다는 하나님의 뜻을 믿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나사로가 죽어서 무덤에 있는데 다시 살 사람으로 봅니까? 죽은 사람으로 봅니까? 예수님이 볼 때 나사로는 살았습니다. 그러나 마리아와 마르다의 마음에서는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그럼 이제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것은 문제가 안되고 다만 마리아와 마르다의 마음에서 죽어 있는 나사로가 다시 산다는 믿음이 그들의 마음속에 가득 채워지면 그때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신앙인의 길

예수님은 우리가 도둑질, 간음, 마약 중독, 게임 중독인 것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근본적으로 악하고 더럽고 추하기 때문에 그 마음을 예수님의 마음으로 바꾸는 것이 신앙인의 길이라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럼 어떻게 예수님의 마음으로 바꿉니까? 마리아와 마르다가 볼 때 나사로는 죽었지만 예수님이 ‘네 오빠가 다시 살리라’고 말씀하셨다면 ‘우리 오빠가 살아나는구나’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 믿음은 죽은 오빠를 살리는 힘이 되는 겁니다. 
성경 전체가 그런 믿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38년 된 병자가 ‘나는 못 걸어가!’라고 생각했지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는 말씀 때문에 ‘내가 일어나 걸어갈 수 있겠네’라는 믿음이 생기니까 걸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사람의 병을 고치시기 전에 먼저 그들의 마음에 ‘내가 낫겠네’라는 믿음을 주십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마리아와 마르다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 오빠는 죽어서 못 살아나!’라는 그들의 생각을 뽑아 버리고 ‘우리 오빠가 살아나겠네!’라는 예수님의 마음을 집어넣는 일을 하시는 겁니다. 

거북이가 계속 알을 낳기에

예수님은 우리가 죄인이라서 마음속에서 저절로 미움이나 음란이 일어나는데 그 악은 이를 악물고 아무리 짓눌러도 소용없기 때문에 아예 우리 마음을 예수님의 마음으로 바꾸어야 예수님처럼 선하고 거룩하게 살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성경을 통해 이런 사실을 정확하게 배우고 제 삶에 그대로 적용해 봤습니다. 그러면서 예전에 제가 갖지 못했던 나환자들을 사랑하는 마음이나 복음을 위해 일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되고 또 세상에서 어느 누구도 갖지 못한 행복과 평안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수원 교도소 교화위원으로 지내면서 중범자들과 성경공부를 했습니다. 매주 월요일 오후 내내 그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며 인도해 주었는데 그들이 많은 변화를 입고 행복해하였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의 마음을 바꿔주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바다거북은 한 번에 알을 100개 정도 낳지만 그중에 1개 정도만 바다거북으로 성장한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거북이가 실망해서 알을 낳지 않으면 지구상에는 거북이란 존재가 사라질 테지만 여전히 알을 낳기 때문에 존재합니다. 민들레는 홀씨로 번식하는데 그 많은 홀씨들이 전부 민들레가 된다면 아마 지구는 민들레로 뒤덮일 텐데 단지 몇몇 홀씨만 민들레가 됩니다. 우리 마음에도 하루에 수많은 생각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데 그중에 우리 생각을 잡으면 타락하지만 반대로 예수님이 주신 생각을 잡으면 주님의 삶을 살게 됩니다. 

마음속 수많은 생각들

여러분, 백화점처럼 우리 마음에는 슬픔, 기쁨, 괴로움, 즐거움, 평안, 행복 등 수많은 감정과 생각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슬픔을 생각하면 슬픔을 부르고, 미움을 생각하면 미움을 부르고, 불행을 생각하면 불행을 부르게 됩니다. 또 우리가 ‘안된다’라는 생각을 하면, 이것도 저것도 안되는 상황을 만들게 됩니다. 제가 1962년도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아무런 소망이 없었습니다. 뭘 해도 안되니까 너무나 고통스럽고 ‘난 안된다’가 제 마음이었는데, 어느 날 ‘된다’라는 예수님의 마음이 들어와 저를 이끌면서 그때부터 달라졌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간곡히 말씀하십니다. “마리아야, 마르다야, 오빠가 죽었다고 믿지? 오빠가 산다는 믿음을 가지면 살아나.” “아이고. 예수님, 죽어 냄새나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요.” “죽어 냄새나지만 네가 믿음을 가지면 오빠가 살아! 돌을 옮겨 놓으라.” “주여, 죽은지가 나흘이 되어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이제 마르다와 마리아는 그들의 마음을 바꿔서 ‘아, 내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겠구나’ 하며 “예” 하고 무덤 문을 열었습니다. 예수님이 “나사로야, 나오라” 하시니까 그대로 나사로가 무덤에서 걸어 나왔습니다. 

사망을 이기신 예수님

여러분, 고린도전서에서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고전 15:54)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이김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이 사망을 삼켜 버리는 겁니다. 지금 사망이 나사로를 잡고 있는데 예수님이 “나사로야, 나오라~”라고 말씀하시니까 사망이 깜짝 놀라서 ‘저게 누구 소리야? 예수님 소리 아니야? 난 예수님 오면 죽는데’라며 도망가 버리니까 나사로가 살아났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세요. 어떤 슬픔이나 고통, 절망이 있을지라도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고 예수님의 마음을 받아들이면 그것들이 다 도망갑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평안이 우리에게 들어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믿지 않고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의 마음이 우리 마음이 됩니다. 지금 예수님은 무슨 일을 하십니까? 우리의 생각을 버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길 원하십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를 통해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우리의 모든 슬픔, 두려움, 절망, 고통을 물리쳐주시니까 밝고 복된 인생을 살게 될 줄 믿습니다. 
 - 2018. 5. 20. 주일 오전예배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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