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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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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나귀 새끼가 등에 예수님을 태운 것처럼마태복음 21장 1절 ~ 11절 - 2018. 5. 6. 주일 오전예배 설교 - 711호

선교학생 시절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2018년도 들어서 우리 선교회는 여러 가지 행사와 함께 복음 전할 일이 많았는데 매번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제가 선교학교에서 훈련받을 당시만 해도 ‘나는 아무래도 주의 종으로서 여러 가지 부족한 면이 많아’라고 늘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인도하고 일하셨지만 대구 선교학교 시절 선교학생들이 날마다 오후에 복음을 전하고 돌아와서는 “오늘 복음을 전해서 구원받은 사람이 있었다”라고 하면 저는 힘이 푹 빠졌습니다. 그 당시 제가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구원받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내가 앞으로 복음 전도자가 돼야 하는데 나는 복음 전도자가 될 자격이 없어’라고 생각했습니다.
선교학교를 마치고 난 다음 다른 선교학생들은 지역에서 오라는 데가 있었는데, 제게는 오라는 데가 없어서 깊은 산속 경남 합천군 압곡동으로 갔습니다. 지금은 벌써 여러 해가 지났습니다만 압곡동에서 10개월 못되게 사는 동안 하나님이 제게 참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가난한 동네 압곡동에서 

제가 그곳에 갈 때는 이틀이나 사흘 정도 먹을 양식밖에 가져가질 못했는데 그 뒤에 굶어 죽지 않고 어떻게 살았는지 지금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굶을 때도 있었지만 확실한 것은 하나님이 순간순간 저를 인도하고 계셨다는 겁니다. 하루는 새벽에 저와 같이 지내던 형제와 성경을 읽다가 갑자기 ‘오늘은 하나님이 음식을 많이 주시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옆에서 방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성경을 읽던 그 형제도 저에게 “박 형제,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음식을 많이 주실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형제도 그런 생각했습니까? 나도 그 생각을 했는데요.” 그렇게 이야기하는 동안 갑자기 밖에서 “전도사님, 계십니까?” 하며 불러서 나가 보니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 청년이 말했습니다. “저는 건넛마을에 사는데 우리 동네 끝분이네 오빠가 군에서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부대에서 그 시체를 싣고 왔는데 마을 어른들이 마을 입구에 서서 ‘우리 동네는 산 사람이 들어오지, 죽은 사람은 못 들어온다’며 막았습니다. 그러자 군인들이 마을 입구 정자나무 아래에 관을 내려놓고 가버리는 바람에 마을 청년들이 모여 그 시체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며칠씩 관을 놔둘 수도 없고, 마을 어른들 가운데 외지에서 죽은 사람을 장례 치르는 법을 아무도 몰라 하루 종일 의논하다가 ‘건넛마을에 예수 믿는 전도사들이 왔는데 그분들이 하면 잘할 거다’라고 얘기하셨습니다.” 우리가 그 청년을 따라 산모퉁이를 넘어 그 동네의 초상집에 갔는데 정말 잘 차린 밥상이 나와서 아침을 먹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날 장례 예배를 주관하면서  예배를 드릴 때마다 맘껏 음식을 먹으면서 행복했습니다. 

처음으로 구원을 받다 

제가 압곡동에서 손을순 자매님에게 복음을 전한 얘기는 여러분도 다 외우실 것 같은데, 당시 제가 세 살던 주인집 아줌마는 담배를 아주 많이 피웠습니다. “아줌마, 무슨 담배를 그렇게 많이 피워요? 담배는 해롭고 특히 신문지에 말아 피우면 신문지에 납이 묻어서 연독(鉛毒) 올라요.” “총각이 몰라서 그래. 난 머리가 아파서 안 피우면 안 돼.” 저는 오전에 주로 방에서 성경을 읽었는데 아줌마는 마루에 앉아서 담배 피우는 게 일과였습니다. 어느 날 그 아줌마 친구가 왔는지 말소리가 들렸습니다. “잘 있었나?” “잘 있다. 장사 잘되나?” 그가 문 앞에 솥이 걸린 걸 보고  “옆방 세놨나?” “교회 전도사 왔다.” “전도사님? 어디서 왔는데?” “대구서 왔다.” “교인들 많나?” 문짝 하나 사이로 다 들렸습니다. 그분이 제게 관심갖는 것을 보고 ‘저분은 교회 다니시는구나’ 하며 성경책을 들고 나갔습니다. “아주머니,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드리니까 깜짝 놀라셨습니다. 그날 그 아주머니에게 2시간 동안 복음을 전했는데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피가 모든 죄를 씻은 것을 믿고 구원받았습니다. 

밭에 감추어진 보화

그 당시 저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전도자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저를 통해 손 자매님이 죄 사함 받고 변하는 모습을 보니 그렇게 아름다워보일 수 없었습니다. 우리 가운데 누구든지 이렇게 죄 사함을 받고 나면 예전처럼 살고 싶어도 살지 못합니다. 모든 죄가 사해진 이 엄청난 사실이 우리 마음에 역사해서 그 마음을 다 사로잡습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어진 보화를 발견한 사람과 같으니”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주 가난하게 살던 사람이 어느 날 밭에서 금은보석이 잔뜩 들어 있는 보물 상자를 발견했다면 그 기쁨을 어떻게 가라앉히겠습니까? 말로 표현하진 않을지 몰라도 어떻게 그 보물에 대해 잊을 수 있겠습니까? 하루 종일 농사일을 하면서 밭을 매고 수레를 몰고 다녀도, 밥을 먹어도 ‘보물이 있는 그 밭을 팔거나 다이아몬드 하나만 팔아도 땅 사고, 집 사고, 소 사고, 마차도 타고 다니고…’ 하며 그 마음이 보화로 가득찰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마음에 있는 예수님은 그 어떤 보화보다 귀합니다.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실 때 

오늘 아침 우리가 읽은 성경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감람산에서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는 길에 나귀 새끼를 타고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두 제자를 보내시며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너라”(마 21: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귀 새끼를 데려오라는 게 아니라 나귀를 데려오라고 하셨습니다. 매인 나귀가 오면 나귀 새끼는 저절로 따라온다는 겁니다. 아마도 나귀 새끼는 ‘우리 엄마를 데려가네. 뭐하려고 그러지?’ 하며 어미를 따라서 예수님 앞으로 왔는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어미나귀가 아니라 나귀 새끼 등에 그들의 옷을 벗어 깔았습니다. 그 나귀 새끼는 자기 등에 아직까지 한 번도 누군가 태워본 경험이 없는데 난생 처음으로 예수님을 등에 업고 예루살렘까지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나귀 새끼 등에 타시고

제가 손 자매님께 복음을 전하면서 그때는 잘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내가 예수님을 등에 업었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말 나귀 새끼가 우리처럼 예수님이 하나님의 귀한 아들인 걸 알았더라면, ‘엄마, 엄마가 예수님 같은 분을 모셔야지, 난 한 번도 사람을 태워본 적이 없어. 만일 내가 예수님을 태우고 가다가 넘어지거나 흔들리면 어떡해. 예수님이 불편하실 거야. 부담스러워. 엄마가 태워드려’라고 말했을는지 모릅니다.
저는 복음을 전하면서 ‘내가 마치 그 나귀 새끼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벌써 제가 구원받은 지 50여 년이 지났지만 저는 성격도 까다롭고 여러 가지 부족한 점이 많은데,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는 영광스러운 일을 제게도 누리도록 하셨습니다. 주님은 나귀 새끼 같이 천하고 부족한 제게 일하셨고, 부족한 손 자매님에게 한 사람 한 사람 생명을 구원하는 일을 맡기셨습니다. 우리에게 무슨 의나 선이 있는 것이 아닌데 그런 영광스런 일을 맡기시려고 지금도 은혜를 베풀고 계십니다. 

세 번 부인한 베드로는

여러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전에 시몬 베드로에게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난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부인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큰소리쳤는데 베드로는 말씀대로 주님을 세 번 부인했습니다. 베드로는 ‘내가 죽어도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세 번이나 부인하고 나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가 너무 부담스러웠습니다. 베드로는 주님께 ‘주님, 죄송합니다. 주님을 세 번 부인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라고 말하고 싶었을 텐데 요한복음 21장에서 베드로는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며 갈릴리 바다로 떠났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한 일에 가책을 받고, ‘송충이는 솔잎을 먹는다는데 나는 고기 잡던 어부야’ 하며 모든 걸 버리고 그날도 갈릴리 바다로 고기잡으러 갔습니다. 그는 밤이 맟도록 그물을 내렸지만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내 양을 먹이라”

베드로는 아마도 ‘3년 전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밤새도록 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았는데 예수님이 오셔서 깊은 데 그물을 내려라 하셔서 그대로 하니 고기를 잡았어. 그리고 예수님은 내게 사람 낚는 어부가 되리라 하셨지’ 하며 추억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날 밤 예수님은 다시 베드로에게 나타나셔서 “고기가 있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없습니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져라.” 예수님 말씀대로 그물을 던지니까 고기가 많이 잡혔습니다. 육지에 올라와 보니 예수님께서 이미 숯불을 피워 떡을 굽고 물을 갖다 놓고 베드로를 만날 준비를 하고 계셨습니다. 
베드로는 너무나 놀랐는데 예수님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모든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전 같으면 “예, 제가 예수님을 사랑하죠. 그럼 저 말고 누가 있습니까”라고 말했을 텐데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난 뒤에는 그렇게 대답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베드로가 “주여, 내가 주 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하며 세 번이나 말씀하셨습니다. 

눈 보다도 더 희게 내 죄가

저도 베드로와 마찬가지로 ‘나 같은 사람이 무슨 목사가 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 번도 훌륭한 목사가 되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내 죄를 사하신 사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의 죽음이 헛되지 않고 내 모든 죄를 씻기 위해 더 할 일이 없도록 눈 보다 더 희게 씻은 이 사실이 너무나 분명했습니다. ‘그런데 왜 이 사실을 사람들은 모르는 거야’ 하며 저는 죄 사함 받고 가장 먼저 큰 누님께 이야기했습니다. 
당시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큰 누님이 저를 어머니처럼 돌봐주셨습니다. 저는 큰 누님과 같이 교회를 열심히 다녔는데 어느 날 제가 죄 사함 받은 이야기를 큰 누님에게 했더니 큰 누님이 깜짝 놀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옥수야, 훌륭한 목사님들도 죄인이라고 그러는데 너 뭔가 잘못됐다. 곡식이 익으면 고개가 숙여지는 법이다. 교만하게 죄가 다 사해졌다는 것이 무슨 말이야. 아니야, 너 그러면 안돼. 설혹 죄 사함을 받았을지라도 겸손하게 죄인이라고 해야지. 교회 목사님도 죄인이라고 하는데 네가 뭘 안다고 죄가 사해졌다고 하고 의롭다고 하지? 말이 안돼.” 누님이 이상한 눈빛으로 저를 쳐다보면서 이야기하셨습니다. 당시 누님의 말이 맞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누님 말이 맞아. 내가 겸손해야지. 왜 죄가 사해졌다고 말하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신기한 것은 우리 인간의 생각으로 볼 때는 죄를 짓고 악을 행해서 죄인이 맞는데 성경에는 분명히 간음 중에 잡힌 여자가 돌에 맞아 죽어야 될 위치였을 때 예수님이 그 여자에게 “정죄하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계기독교지도자대회에서

여러분, 지난주 러시아 월드캠프 기간에 CLF(세계기독교지도자대회)에서 로마서 3장 말씀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신데 죄를 지은 우리를 보고 의롭다 하시면 의로운 재판장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26절에서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말씀하시며 우리를 의롭다 하기 위해서 그 아들 예수에게 우리의 모든 죄를 넘기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심으로써 우리 죄를 다 사해놓았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죄가 있는 것처럼 여길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의 눈에 우리 죄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의롭다 하실 수 없습니다. 로마서 3장 23절에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절에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하며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25절에서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라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것을 믿었을 때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 될 수 있는 제사를 지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라는 말씀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 죄를 다 끝내셨으므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죄가 있는데 의롭다고 하시면 하나님이 의롭지 않으신 분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다 사하셨기에 예수님도 의롭고 하나님도 의롭고 우리도 의롭다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추하고 더러워도

여러분, 예수님이 38년 된 병자에게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라고 말씀하시면 그는 걸어갈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모두 씻으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다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능력이 있고 생명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추하고 더러워도 그분이 우리를 의롭다, 거룩하다 하시면 우리는 의롭고 거룩합니다. 성경에는 우리가 더러운 죄인이었는데 예수님의 피로 우리 죄를 완벽하게 씻어서 거룩하고 의롭게 됐다는 말씀이 수없이 많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죄 사함에 대해 누님에게 말했을 때는 ‘우리 누님 말대로 내가 죄를 지었는데 죄인이 맞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 하셨고,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치 않는다”(히 10:1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의롭다 하시면 우리 생각에서 벗어나 의롭다라고 믿고,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신앙입니다.

말씀을 그대로 믿어야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보다 자기 생각을 믿습니다. 우리가 볼 때 ‘과연 저게 될까?’ 하는 것을 예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못하는 것을 예수님도 못하시면 무슨 예수님이겠습니까? 우리는 죄 씻으려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안되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단번에 영원히 우리 죄를 씻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자기 생각을 믿는 사람은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이라면 의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주를 믿습니까? 이 성경에 있는 말씀을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호산나 찬송을 받으며

오늘 아침에 읽은 마태복음에서 어느 날 나귀 목이 매여 있는 것을 예수님의 제자들이 오더니 풀어주었습니다. 나귀 스스로 매인 것을 풀 수 없는데 예수님이 하신 말씀대로 나귀가 매인 데에서 풀렸습니다. 그 나귀를 몰고 오니까 그냥 어미를 졸졸 따라다녔던 나귀 새끼는 “엄마, 나도 따라갈 거야” 하면서 따라왔습니다. 그 나귀 새끼는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는 영광스런 자리에 자기가 예수님을 태우고 갈 줄 상상도 못했을 겁니다. 제자들이 오더니 나귀도 아닌 키 작고 잘 걷지도 못하는 서툰 나귀 새끼 등에 옷을 얹는 겁니다. 그 나귀 새끼는 ‘왜 나에게 이러지? 설마 예수님이 나를 타려고? 예수님은 더 좋은 나귀를 타고 가시겠지’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나귀 새끼를 타시는 겁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태우고 가는 길에다 나뭇가지를 베어서 펴고, 겉옷을 벗어서 펴고, 호산나 찬송하며 영광을 돌렸습니다. 나귀 새끼가 볼 때 예수님이 나귀 등에 타고 계시는데 나귀인 자기 얼굴이 더 앞으로 나왔으니까 꼭 자기가 영광을 받는 것 같았습니다. 

복음을 전하며 주님을 섬길 때

저는 수십 년 동안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살았는데 서툰 나귀 새끼가 예수님을 모신 것처럼, 그냥 만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어떻게 우리 죄를 사했는지 그 사실을 증거 했는데 하나님께서 너무나 놀랍게 역사하시면서 은혜와 긍휼을 더하시는 걸 볼 때 감사했습니다. 그렇게 50년이란 세월이 흐르도록 제 등에 예수님 한 분만 태우고 다녔는데, 제가 예수님을 등에 업고 복음을 전하니까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나고 사람들이 변화를 입었습니다. 예수님과 동행할 때 예수님이 모든 것을 하시고 저는 다만 그 영광스러운 자리를 함께 걸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지만 제 마음에 계신 예수님이 죄에 얽매인 많은 사람들을 죄에서 건져내고 구원받도록 하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제가 저 자신을 보면 서툴고 부족한 인간인데, 예수님을 모시고 지금까지 많은 은혜와 복을 입었습니다. 우리 모두 이 나귀 새끼처럼 서툴고 부족하지만 예수님을 등에 업고 복음을 전하며 주님을 섬길 때 말로 다할 수 없이 큰 하나님의 영광을 입고 복을 받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
- 2018. 5. 6. 주일 오전예배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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