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이 나오미를 따랐을 때 축복을 입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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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이 나오미를 따랐을 때 축복을 입었던 것처럼
룻기 1장 6절 ~ 18절 - 2018. 4. 8. 주일 오전예배 말씀 - 707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18.04.14 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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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을 분류하면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우리의 신앙생활은 영적인 세계와 육신적인 세계로 나뉘어집니다. 똑같은 문제도 영적인 면으로 보면 너무나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이지만 반대로 육신적인 면으로 보면 너무나 비참해 보일 수가 있습니다. 제가 구원을 받고 목회를 한 지 56년이 됐습니다. 물론 지난 삶에서 어려움이나 문제가 없지는 않았지만 종종 ‘내가 복음을 전하는데 뭐 이런 어려움이 문제가 돼’ 하며 오히려 그 일이 무척 감사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어떤 어려움을 당해도 예수님이 늘 저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이 너무나 분명했고 예수님은 항상 제게 소망과 기쁨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가난했던 압곡동 시절

오래전 제가 사역했던 ‘압곡동’이란 동네는 너무나 가난했습니다. 그 당시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도 없었고 저는 집에 거울이 없어서 얼굴을 한 번도 안 보고 몇 달을 지냈습니다. 하루는 형제와 같이 시장에 전도를 갔다가 이발관에 들어갔습니다. 거울에 비친 바짝 말라 있는 제 얼굴을 본 순간 갑자기 몸에 있던 힘이 다 빠지면서 전도할 힘도 없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양식이 떨어져 주님 앞에 기도를 해야 했는데 어느 날 이른 새벽에 저와 함께 지내는 형제와 성경을 읽다가 갑자기 ‘오늘은 하나님이 음식을 많이 주시겠다’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옆에서 방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성경을 읽던 그 형제도 저에게 “박 형제,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음식을 많이 주실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동네에 어느 누구도 우리에게 양식을 줄 사람이 없었는데 그날 저와 형제는 똑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장례 예배 요청을 받고

그때 아직 해 뜨기 전인 시각에 갑자기 밖에서 어떤 사람이 “전도사님, 계십니까?” 하며 불러서 나가 보니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날씨가 추워서 방으로 들어오라 하고 그가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건넛마을에 사는데 우리 동네 끝분이네 오빠가 군에서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부대에서 그 시체를 싣고 왔는데 마을 어른들이 마을 입구에 서서 ‘우리 동네는 산 사람이 들어오지, 죽은 사람은 못 들어온다’ 하며 막았습니다. 그러자 군인들이 마을 입구 정자나무 아래에 관을 내려놓고 가 버리는 바람에 마을 청년들이 모여 그 시체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며칠씩 관을 놔둘 수도 없고, 마을어른들 가운데 외지에서 죽은 사람을 장례 치르는 법을 아무도 몰랐습니다. 마을 어른들이 모여서 하루종일 의논하다가 ‘건넛마을에 예수 믿는 전도사들이 왔는데 그분들이 하면 잘할 거다’라고 하셨습니다.”
저희가 그 청년을 따라 산모퉁이를 넘어 동네에 들어가 보니 온 동네가 울음소리로 가득했습니다. 우리가 초상집에 가서 앉아 있으니까 정말 잘 차린 밥상이 나왔습니다. 춘향전에 나오는 이 도령이 했던 말이 생각나면서 “밥아, 너 본지 오래다”라며 얼마나 잘 먹었는지 모릅니다. 그날 장례 예배를 다섯 번 드렸는데 그때마다 음식을 맘껏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 후 동네 사람들이 우리에게 방을 하나 주면서 자기 동네로 오라고 해서 그때부터 그 동네에서 예배당도 짓고 그랬습니다. 그 시절 어렵고 힘들었지만 분명한 사실은 예수님이 내 안에 살아 계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인 눈보다 세상적인 눈이 밝아서 돈이나 좋은 집이 우리 눈에 잘 띄지만 그런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와는 비교도 안됩니다. 

늘 행복했던 이유

여러분, ‘우리 안에 예수님이 계시다’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모릅니다. 저는 예수님 안에 사는 동안 정말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늘 행복했던 것은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창 1:1~2) 이런 캄캄한 땅 위로 하나님이 빛을 보내시고,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니까 갑자기 땅에서 싹이 나더니 자라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겁니다. 하나님이 계신 걸 생각하면 할수록 감격스럽습니다. 그러나 우리 눈에 하나님이 안 보이고 육신적인 세계만 보이니까 육으로 끌려가는 겁니다. 그럼 어떻게 하나님이 우리 속에 계신 것을 볼 수 있습니까? 우리는 모두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눈이 없지만 성경을 통해 그 안에 있는 약속의 말씀을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베들레헴의 뜻은

오늘 아침에 읽은 룻기서는 “사사들의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하며 시작합니다. 룻의 남편은 보아스이고 보아스의 아버지는 살몬인데 그가 여리고 성을 정탐하러 갔다가 기생 라합과 만나서 결혼하여 보아스를 낳았습니다. 보아스가 장성할 때쯤이라면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여리고 성이 무너지고 요단 강물이 마르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이 살았던 베들레헴은 ‘떡집’이란 뜻입니다. 떡이란 우리 생명의 말씀을 가리키는데 오늘날로 이야기하면 교회를 말합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두 가지 세계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적인 세계와 하나님을 떠난 세계인데, 베들레헴은 떡집이란 뜻이고 하나님이 함께 계신 곳입니다. 그러나 나오미가 베들레헴을 떠나서 모압으로 가서 사는 동안 남편과 두 아들이 죽었습니다. 이제 나오미는 하나님을 떠난 사실을 깨닫고 다시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는 과정에 있었습니다. 나오미와 두 며느리가 베들레헴으로 돌아올 때 실제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그들이 베들레헴에 오면 굶어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신기하게 성경을 읽어보면 그들이 베들레헴에 오자마자 보리 추수 시작할 때라 이삭을 주울 수 있었습니다. 

흉년이 들어 모압으로

룻이 보아스 집에 가서 이삭을 주우면서 보아스의 사랑을 받게 됩니다. 보아스는 곡식 베는 사람들에게 “다 베지 말고 일부러 좀 흘려놓아라”라고 말했습니다. 룻은 베들레헴 떡집에 가니까 농사지어서 추수하지 않고 그냥 주워담았는데도 이삭을 한 에바나 주웠습니다. 이렇게 나오미와 룻은 베들레헴으로 돌아오자마자 양식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룻이 보아스와 결혼하면서 보아스가 농사한 모든 타작마당이 룻의 것이 되었습니다. 
십 년 전 나오미는 남편 엘리멜렉과 두 아들인 말론과 기룐을 데리고 베들레헴에 살면서 흉년이 들자 모압으로 떠났습니다. 모압에서 두 아들이 결혼을 하고 지내던 어느 날 남편 엘리멜렉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큰 아들 말론이 죽고 마지막으로 기룐마저 죽었습니다. 십 년 사이에 나오미, 룻, 오르바 이렇게 과부 셋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때 나오미는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들을 위해서 은혜를 베푸시고 베들레헴에 양식을 주셨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내가 그때 베들레헴을 떠났구나. 하나님의 약속을 떠났구나.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권고하시는데 내가 모압으로 와서 이렇게 저주를 받는 구나’ 하며 다 망해서 베들레헴으로 돌아갑니다. 만일 남편이 죽었을 때 그 사실을 깨달았다면 두 아들이 죽지 않았을 텐데 세 남자가 모두 죽고 그제야 나오미는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안식일의 주인

여러분, 우리는 베들레헴 떡집의 머슴 정도 되는 사람입니다. 떡집에서 떡을 많이 만들어야 사람들이 떡을 사러 오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아무 것도 아닌 우리가 복음 전하는 것을 도와주십니다. 저는 1976년부터 선교학교를 시작했는데 당시 성도가 20~30명 쯤 되니까 시간이 참 많아서 새벽부터 일어나 성경을 읽고, 아침식사 후 오전 내내 또다시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죄를 어떻게 사함 받는지 참 놀라운 사실을 성경을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만일 선교학교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이 복음을 어떻게 전 세계로 전파할 수 있었을지 몰랐을 텐데 하나님이 그 일을 하게 하셨던 것이 너무너무 놀랍고 신기합니다.
구약성경에는 “안식일에 아무 짐도 지지 마라”라고 하셨고 신약성경에는 예수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안식일의 주인이 예수님이고 예수님 안에 들어오면 모든 짐을 내려놓습니다. 금요일 저녁 해질 때부터 안식일이 시작되는데 죄로 고통 하던 사람이 “안식일이다!” 하며 모든 짐을 벗어놓는 겁니다. 이처럼 예수님 앞으로 오면 천 가지 만 가지 짐이 다 벗어지는 겁니다.

소설 『천로역정』을 보면
 
존 번연이 쓴 책『천로역정』에서 죄의 짐을 지고 괴로워하던 그리스도 교도(크리스쳔)가 십자가를 바라보는 순간에 죄의 짐이 저절로 떨어져 버리는 내용이 나옵니다. 십자가를 바라볼 때 하나님의 성령이 마음에 들어와 죄에 얽매였던 우리 마음을 풀어주시는 겁니다. 즉 구원받고 그 죄의 짐이 나에게서 완전히 떨어지는 건데 예수님 안으로 들어오면 어떤 짐이든지 우리가 지지 않고 내려놓을 때 예수님이 책임져 주신다는 게 얼마나 놀랍습니까? 어떤 어려움이 와도 예수님으로 해결되지 않는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 예수님을 버리고 세상과 짝하는 사람은 정말 불쌍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마음 안에 오셔서 주신 기쁨, 평안, 그리고 행복 등은 말로 다할 수가 없습니다. 

중학생 딸과 대화하면서

예전에 제 딸이 개포중학교 다닐 때 화학 실험실에서 알코올램프 위에 놓인 염산이 폭발해 딸의 머리 위로 튀어 염산을 뒤집어썼습니다. 학교에서 양호 교사가 응급처치를 했지만 한 달쯤 지나서 아내가 딸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니 염증이 심해졌습니다. 부랴부랴 한양대학병원에 가서 수술을 했습니다.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이 와서 학교에 찾아갔더니 교장선생님께서는 “학교 측 잘못으로 발생한 사고이므로 학교에서 치료비를 부담하겠다”고 하셨지만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는 목사입니다. 왜 그 많은 학생 중에 하필 제 딸의 머리 위로 염산이 튀었겠습니까? 학교 실수라고 할 수 있지만 저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병원비 문제가 아니라 왜 하나님이 딸에게 이런 일을 허락하셨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렇게 교장실을 나온 저는 학교에서 병원비를 받지 않았습니다. 당시 병원에 근무하는 처형의 도움으로 치료를 잘 받았습니다. 딸이 수술한 후 모자를 하나 사서 붕대 감은 딸의 머리에 씌워주었습니다. 딸이 등교할 때는 버스 안이 복잡하여 상처 난 머리를 다칠까 봐 제 승용차에 태워 등교시켰습니다. 한 달 동안 딸을 등교시키면서 신앙 이야기를 하던 어느 날 딸이 복음을 여러 번 들었지만 구원의 확신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날부터 딸에게 복음을 전해서 딸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 후 딸은 어린 중학생이지만 학교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학생들의 삶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제게 일어나는 일들 중에서 그 당시엔 어려움처럼 보이지만 주님은 항상 선으로 이끄셨습니다. 

요셉이 애굽에 팔린 이유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모든 계획이 하나님의 뜻 안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 어느 날 아버지가 그에게 채색옷을 입혀주셨습니다. 그러자 형들의 미움을 받아 애굽으로 팔렸습니다. 처음에 요셉은 자기가 애굽에 팔린 이유를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왜 저를 애굽으로 팔리게 했습니까? 왜 저를 종으로 가게 했습니까?’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받고 그가 모함하여 감옥에 갔지만 성경에는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술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하고 바로의 꿈을 해석하면서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서 애굽 전체를 기근에서 건지고 그의 가족도 모두 기근에서 건져 줄 계획 아래 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귀한 뜻을 위해 일하시는데 우리가 복음 전할 때 처음엔 어렵고 힘들어 보여도 반드시 하나님이 돕고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아들의 유학을 도와주시고

제 아들은 고등학교 2학년 때 미국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아들은 교회에서 봉사하며 학교를 다녔는데 교회를 헌팅턴으로 옮기면서 그 지역에는 사립학교가 없어서 공립학교에 다녀야만 했습니다. 미국의 공립학교는 학비가 무료입니다. 문제는 이전에 다니던 학교의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데, 그 학교에서 서류를 주지 않았습니다. 헌팅턴의 고등학교에 서류를 제출하지 못하니까 선생님이 학교 변호사를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변호사가 아들에게 서류를 제출하지 못한 이유를 물었습니다. “이전 학교에서 서류를 안 줍니다.” “영국아, 걱정 하지 마. 난 이런 일을 위해서 학교 변호사로 일하는 거야” 하며 그 문제를 처리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방학 때 아들이 한국에 왔는데 미국 유학생이 공립학교에 다니면 지금까지 무료로 공부한 학비를 내야만 비자를 받을 수 있다는 신문 기사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한국에서 비자를 못 받고 미국에 들어갔습니다. 그 후 제가 자메이카에서 집회를 할 때 아들이 자메이카 미국대사관에 연락하여 “나는 한국 학생인데 미국 비자를 줄 수 있습니까? 아버지가 목사님인데 자메이카 교회에서 집회를 하셔서 같이 참석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미국 비자가 만기 되어서 미국으로 돌아가려면 비자를 받아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대사관 직원이 사정을 듣고 미국 대사관으로 오라고 해서 성적증명서를 들고 갔더니 공립학교에 다닌 것을 알고 비자를 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들이 지금까지 미국 공립학교에 다닌 과정을 이야기하니까 “이번에만 비자 준다. 다음엔 한국에서 받아라” 하며 비자를 발급해주었습니다. 아들이 유학하는 동안 어려움이 여러 번 있었지만 항상 하나님이 함께하시며 도와주셨습니다.

우리 마음에 말씀이 있으면

그 이유는 우리가 떡집인 베들레헴에 있기 때문입니다. 즉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에 말씀이 있어서 하나님이 일할 수 있는 마음을 만들어 주는 겁니다. 말씀은 우리 마음을 하나님의 마음과 같은 마음으로 만들어 주니까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도우시고 은혜를 베푸시고 역사하는 걸 보게 됩니다. 
그러나 참 많은 사람들이 안타깝게도 이런 저런 이유로 귀한 떡집인 베들레헴에서 모압으로 떠나가고 있는 겁니다. 그들이 베들레헴을 떠나면 금방 세상에 물들어 죄에 빠져 버리고 신앙생활을 못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 자녀들은 어떡하고 그 손자들은 어떡합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 그들이 너무나 어리석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윗을 낳는 복을 주시려고

룻기 1장을 보면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 두 아들이 남았으며,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룻 1:3,5) 하며 저주를 받아 죽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지만 4장에서는 1장과는 반대로 생명을 낳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러분, 엘리멜렉이 왜 저주를 받고 죽었습니까? 왜 말론과 기룐이 죽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우리 보기에 좋은 대로 육신의 생각을 따랐을 때, 즉 모압으로 갔을 때 저주와 멸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약속의 땅 가나안, 하나님의 교회에 왔을 때는 생명이 태어나게 됩니다.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았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룻 4:21~22)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윗을 낳는 복을 주시려고 우리를 베들레헴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베들레헴을 떠나 자기 방법으로 간 사람은 저주를 받아야 하는데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니까 다 복구해 주시고 은혜를 넘치게 하십니다. 베들레헴은 떡집이라 교회에서 말씀을 듣게 되면 우리의 강퍅했던 마음이나 주님을 떠났던 마음이 주님의 마음과 하나가 되면서 ‘내가 자장면 먹고 싶은데 주님이 우동 좋아하시네. 그러면 내가 우동 먹어야지’ 하며 하나도 어렵지 않게 바꿀 수 있는 겁니다. 주님 안에 있으면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우리도 기뻐하게 됩니다.

나오미를 따라간 룻처럼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룻은 아무 소망 없는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르며 그의 신앙을 보았습니다. ‘시어머니가 저래서 슬퍼했구나. 베들레헴을 떠나서 망했구나. 시어머니가 하나님 믿는 사람이구나. 베들레헴에서 복을 받는 구나’ 하며 룻은 그대로 나오미를 따랐습니다. 룻은 나오미가 믿는 하나님을 믿었고 그 하나님과 마음이 하나가 되었을 때 귀한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저희들에게도 그런 축복을 베푸시는데 그냥 말씀 한 시간 듣지만 말고 말씀 속에 있는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가 되면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주님이 함께하며 축복하시고 우리 삶에 귀한 열매를 맺고 하나님의 귀한 영광을 받으실 줄 믿습니다. 
- 2018. 4. 8. 주일 오전예배 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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