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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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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내 죄를 사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히브리서 10장 1절 ~ 18절 - 2018. 3. 11. 주일 오전예배 설교 - 703호

軍에서 제대를 한 이후 

저는 1968년 6월 軍 제대 후 복음을 전하고 싶어서 어린이 전도팀을 만들고 경상북도에 있는 복성동교회, 사후동교회, 남사교회, 외임교회, 바란교회 총 5개 교회에서 어린이 여름성경학교를 했습니다. 그중에 세 번째로 성경학교를 했던 ‘남사교회’에서 ‘외임교회’로 가야 하는데, 제가 경험이 없다 보니 여유없이 바로 다음 날로 일정을 잡았습니다. 그래서 이튿날 아침부터 외임리에서 여름성경학교를 하려면 남사교회 성경학교를 마치고 바로 출발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남사교회에서 가진 시상식과 다과 모임이 밤 12시에 끝나 늦게 외임리로 출발했습니다.
우리 팀은 형제 둘과 자매 셋, 이렇게 다섯 명인데 장마철이라 비는 내리고 차가 없어서 옷 보따리와 가방을 무겁게 들고 길 안내하는 그 동네 청년과 함께 떠났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이 4년 전에 외임리교회에 한 번밖에 가 보지 않아 몇 번이나 길을 잘못 들었습니다. 저는 길에 선 채 “하나님, 우리의 길을 인도하셔서 외임리까지 잘 가게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던 중 문득 “우리가 지금 외임리로 가면 새벽 두세 시쯤 도착하는데, 그 밤중에 교회를 어떻게 찾아가지?” 하며 걱정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저는 곧 ‘하나님이라면 능치 못하심이 없는데, 누군가 우리를 마중 나오게 해 달라고 기도하자. 하나님이 분명 우리를 마중하게 하실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린이 여름 성경학교

우리는 하나님 앞에 다시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외임교회에 갈 때 누군가 우리를 마중하게 해 주십시오.” 새벽 세 시가 다 되어서 우리는 외임교회에 도착했습니다. 우리 일행이 우르르 들어가니까 한 청년이 목을 내밀고 쳐다보았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예, 안녕하십니까.” 안내하던 청년이 “어린이 성경학교 강사님들을 모시고 왔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 그러십니까?” 
그 밤중에 동네 입구 큰 정자나무 옆에 있던 사람들은 외임교회의 청년들이었습니다. 교회의 노인 한 분이 어제 저녁 예배를 마치자, 곧 세상을 떠나실 것 같아서 교회 형제들이 모두 모여 할아버지 임종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잠깐 바람을 쐬러 나왔다가 우리를 만난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이 이렇게 우리 기도를 들으시는구나!’ 하며 무척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성경학교 진행하는 기간에 장례를 치를까 봐 ‘하나님, 우리 집회 중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지 않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했는데, 다행히 우리가 집회를 마칠 때까지 할아버지는 돌아가시지 않았습니다.

조폐공사 여직원들에게

제가 대구 파동에서 사역을 할 때 어떤 분이 대전 조폐공사에서 경산 조폐공사로 전출을 간 사람에게 복음도 전하고 교회로 인도했으면 좋겠다는 연락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매주 목요일마다 제가 경산 조폐공사에 근무하는 여직원들과 성경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조폐공사 근처 영남대학교에 있는 구계서원이란 곳에서 성경공부를 했는데, 교회에서 승용차로는 30분도 걸리지 않지만 그 당시 승용차가 없어서 버스를 타고 가야 했습니다. 파동에서 점심을 먹고 반월당까지 가서 시외버스를 타고 종점인 영남대학교에 내리면, 거의 저녁 때가 다 되었습니다. 제가 구계서원에서 퇴근 시간을 기다리고 있으면 일을 마친 자매들이 하나둘 모였습니다. 그분들과 막차시간이 다 될 때까지 성경 말씀을 나누고 상담했습니다.

밤하늘의 별을 보며

성경공부를 마치고 자매들이 회사 내 숙소로 돌아가면, 저는 버스를 타기 위해 혼자 구계서원에서 영남대학교 입구까지 걸어갔습니다. 캄캄한 길을 걷다 보면 주변에 아카시아 나무도 있고 하늘에 별이 반짝반짝 빛나는데 정말 행복했습니다. ‘야, 오늘은 옥희가 구원을 받았다. 다음 주에는 소영이가 구원을 받을 것 같다’ 하며 다시 버스를 타고 파동에 도착하면 밤 12시 경이 되었습니다. 
매주 목요일마다 성경공부를 하면서 구원받은 사람들이 한 사람씩 늘어나더니 나중에는 40명이 되었는데 그들이 파동에 있는 우리 교회까지 와서 오전부터 저녁 까지 예배를 드리고 회사 기숙사로 돌아갔습니다. 그 자매들의 주를 섬기는 사랑은 아주 크고 깨끗하여 감격스러웠습니다. 
한번은 아내가 집에서 자매들과 앉아 이야기를 하는데, 지나가다 얼핏 들으니까 옛날에 고생했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려웠다, 고생했다는 기억은 거의 없고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철필로 새겨놓은 것처럼 주님이 하신 귀한 일들이 하나씩 하나씩 떠올랐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

하나님이 모세에게 율법을 주시기(B.C. 1491년) 430년 전에 아브라함을 들로 이끌어서 “하늘에 별을 봐라. 저 별들을 네가 헤아릴 수 있느냐?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그 말씀을 믿는 것을 보시고 의로 정하셨습니다. 즉 아브라함에겐 아무 율법이 없을 때인데 그가 “하늘의 별처럼 네 자손이 많으리라”는 말씀을 받아들이니까 “아브라함아, 너 의롭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의로워지고 거룩해지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의롭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우리 마음에 받아들이면 우리가 의로워지고 거룩해집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왔을 때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십계명이 새겨진 두 개의 돌판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왔을 때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든 후, ‘이것이 우리를 애굽에서 건져낸 신이다’ 하며 금송아지에게 제사를 지내고 있었습니다. 돌판에 새겨진 제1계명은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이며, 제2계명은 ‘너를 위해 우상을 만들지 말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두 계명을 어긴 것입니다. 율법이 내려온 날, 그 자리에서 삼천 명이 죽고 그 후에도 계속 저주와 죽음이 왔습니다. 율법을 온전하게 지킨 백성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새로운 법

이제 하나님은 율법으로 그들을 다스릴 수 없어서 새로운 법을 만드셨습니다. 예레미야 31장을 보면,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것이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렘 31:33~34)라는 새로운 법을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기록해 주고 싶으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옛날에 돌비석에 율법을 기록했지만 이제 하나님의 새로운 법을 우리 마음에 기록하시는 겁니다. 주님께서 제 마음판에 새겨 놓으신 그 아름다운 사랑, 구원의 크신 은혜,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를 영원히 온전케 했다”(히 10:14)라는 말씀을 보면 너무나 감격스럽습니다. 또한 제 마음판에는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는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히 10:18)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제가 한 평생 죽을힘을 다해도 씻을 수 없는 죄가 주의 은혜로 복음을 받아들이면서 거듭난 뒤에 신기하게 흰 눈보다 더 희게 씻겨졌습니다. 

 왜 양의 피를 제단 뿔에 바를까

저는 어릴 때부터 죄 때문에 고통하면서 죄 사함 받으려고, 새벽기도를 하루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저를 새벽기도로 끌고 간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제게 “옥수야, 이 추운 겨울에 불도 안 땐 예배당 마룻장에서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려고 가냐?”라며 말리셨습니다. 저는 예배당에서 울면서 죄를 고백할 때 부끄럽고 할 말이 없었는데, 영광스러운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저의 모든 죄를 사하셨다는 사실을 안 뒤에는 놀랍게도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렘 31:34)는 말씀처럼 모든 죄의 기록이 없다는 말씀을 믿었습니다. 
구약시대에 죄를 범한 자가 죄 사함을 받기 위해 속죄 제사를 드릴 때, 양을 잡아서 드리면 제사장이 제일 먼저 양의 목을 찔러 동맥을 끊고 피를 받아 그 피를 제단에 있는 네 개의 뿔에다 바릅니다. 저는 왜 양의 피를 제단 뿔에 바르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예레미야 17장의 “유다의 죄는 금강석 끝 철필로 기록되되 그들의 마음 판과 그들의 단 뿔에 새겨졌거늘”(렘 17:1)이라는 말씀을 읽으면서 속죄 제사를 드릴 때 양의 피를 제단 뿔에 바르는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제단 뿔에 기록된 우리의 죄를 피로 칠해서 지운다는 뜻인데 제단 뿔에 기록된 죄만 지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에 기록된 죄의 기록도 영원히 모두 지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죄를 기억치 않는다고 말씀하신 겁니다.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저는 율법이 적힌 돌판을 보면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너를 위해서 우상을 섬기지 마라. 주 하나님 여호와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등 늘 죄가 떠올라, 죄 때문에 고통스럽고, 지옥 갈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에는 놀랍게도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주께서 가라사대 그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히 10:14~17)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다시 죄를 위해서 일한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으로도 우리 죄를 덜 씻었다는 말이 되므로 절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사하러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리고 죽으셨을 때 우리의 모든 죄를 영원히 완벽하게 사하셨다는 것입니다.

마음판에 있는 죄

구약에 “유다의 죄는 금강석 끝 철필로 기록되되 그들의 마음판과 단 뿔에 새겨졌거늘”(렘 17:1) 하며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죄가 있을 때는 하나님이 가지신 죄의 장부는 제단 뿔에 죄를 기록해놓은 것이고, 우리는 마음 판에다 죄를 기록해놨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러 예배당에 오면 제단 뿔에 기록된 죄가 보여서 죄를 더욱 기억나게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제단 뿔에다 피를 발랐기 때문에 하늘나라 어디에도 우리 죄의 기록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 판에 있는 죄는 어떻게 지웁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내 죄를 사했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내 마음 판에 있는 모든 죄의 기록도 지워집니다. 죄를 지은 기억이 나지만 그건 이미 예수님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었기 때문에 죄가 생각나면 날수록 감사한 일입니다.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예전에 제가 에티오피아를 방문했을 때 만난 분과 로마서 3장 23절의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절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는 말씀을 같이 읽었습니다. 
제가 로마서 3장 23절 말씀을 읽을 때 그분이 “이 말씀은 잘 압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24절을 읽고는 “여기에는 뭐라고 기록됐습니까?”라고 물으니까 “열심히 기도하면 죄가 사해집니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제가 황당해서 “다시 24절 말씀을 좀 자세히 보세요”라고 했더니 “정말 우리가 충성하면 죄가 사해집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justified(의롭게 됐다)”라고 말하니까 그분이 깜짝 놀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흘리신 피가 헛되지 않다는 믿음을 가질 때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단은 참 많은 사람들을 속여서 열심히 기도하고 노력하면 죄 사함 받는다는 고정관념을 갖게 해서 성경을 읽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눈처럼 희게 씻었다는 말씀을 믿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다시는 기억지 아니하리라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속에 철필로 “내가 그들의 죄를 사하고 다시는 그들의 죄를 기억치 아니하리라”는 말씀을 생생하게 새겨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나는 죄가 많은데’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 말씀을 떠올리고 ‘죄가 어디 많아?’ 하며 반격하면 그 생각이 물러가 버립니다. 예전에 우리는 우리 마음에 ‘저는 이런저런 죄를 지었습니다’ 하며 죄로 가득차서 고통스러웠는데, 이제는 “내가 그들의 죄를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치 아니하리라”는 새로운 법이 우리 마음에 명백하게 기록돼서 어떤 죄가 일어나서 우리를 끌고 가려고 할지라도 그 죄가 말씀 앞에서 힘없이 사라져 버리고, 주의 은혜가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말로 다할 수가 없습니다. 
구약시대에 성막에서 양이나 소를 잡아 속죄 제사를 드리면 죄가 사해졌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 드리는 속죄 제사는 시간이 흐르면 죄 사함 받은 그 양의 피가 과거로 됩니다. 그 과거로 가 있는 제사가 현재 내가 갖고 있는 내 죄를 사할 수가 없기 때문에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흘리신 그 피를 가지고 하늘나라 제단으로 올라가셨습니다. 
하늘나라는 시간계가 아닌 영원계이므로 항상 ‘현재’만 존재합니다. 예수님은 자기 피를 이 땅에 있는 제단에 뿌린 게 아니라, 하늘나라에 있는 제단 뿔에 바르고 속죄소에다 뿌렸습니다. 그 피는 영원히 살아있기 때문에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했다”라는 사실을 성경은 우리에게 정확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영원한 속죄

만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우리의 죄를 사했지만 구약에 양이나 소를 잡는 제사처럼 순간적으로만 죄를 사하고 말았다면 우리 가운데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 온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우리 죄를 영원히 사하기 위하여 하늘나라 제단에다 피를 뿌렸습니다. 그 제단은 영원히 존재하고, 그 피는 영원히 살아 있어서 앞으로 천 년, 아니 억만 년이 지나도 부족함 없이 수많은 사람의 죄를 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9장에서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 9:28) 하며 예수님이 자기 피로 한 번에 영원히 죄를 사했기 때문에 우리는 죄와 상관없는 사람들인데, 이제 우리를 하늘나라로 데려가시려고 두 번째 나타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속에 “내가 그들의 죄를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치 아니하리라”고 분명히 기록해서 사단이 아무리 죄를 가지고 그 말씀을 덮으려 해도 덮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 죄를 영원히 사했기 때문에, 우리는 영원히 온전하고 거룩합니다. 

뚜껑을 닫고 돌판을 넣으라?

출애굽기 25장 10절부터 22절 사이에 법궤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가 하늘나라에서 본 모양 그대로 법궤를 만들었습니다. 21절에 보면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하였습니다. 속죄소는 법궤를 덮는 뚜껑을 말하며 (킹제임스 영어 성경에는 머시 시트 ‘mercy seat’로 되어 있음) 그 뚜껑에는 두 천사가 양쪽 끝에서 서로 마주보며 날개로 속죄소를 덮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법궤를 만든 후 증거판 곧 십계명이 기록된 돌판을 궤 속에 넣고 난 뒤에 법궤 뚜껑인 속죄소를 덮어야 합니다. 그런데 출애굽기 25장 21절에서는 속죄소를 궤 위에 얹은 후에 증거판을 넣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깊이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율법을 보시길 정말 원치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법궤의 뚜껑을 열어놓고 돌판을 넣은 후 뚜껑을 닫으면 돌판을 볼 시간이 길어집니다. 그래서 돌판을 볼 시간이 없도록 뚜껑을 덮은 채 살짝 들어올려 돌판을 집어넣고 빨리 뚜껑을 닫게 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죄의 유혹에서 벗어나려면 ‘간음하지 말아야지. 도적질 하지 말아야지’라고 결심이나 각오로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베푼 주의 사랑과 은혜를 생각하면 우리 마음이 죄에 끌려갈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는 4월 1일은 부활절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사하시려고, 우리의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 다시 살아 나셨습니다. 여러분, 다시 살아난 증거가 뭔지 아십니까? 우리가 하늘나라 가서 심판을 받을 때 예수님이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셔서 사단이 우리를 송사할 때, 당신의 손에 있는 못 자국과 옆구리의 창 자국을 보이시면서 “그의 모든 죄가 사해졌어. 사단아, 물러가라”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죄를 사하신 주님에 대한 감사로 날마다 새로워지며, 주를 사랑하게 되고, 주를 위해 살게 되고, 우리의 생명을 바쳐도 아깝지 않은 그런 귀한 삶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 2018. 3. 11. 주일 오전예배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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