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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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사람은
마태복음 11장 20절 ~ 30절 - 2018. 3. 4. 주일 오전예배 설교 - 702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18.03.09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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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청소년연합(IYF)의 태동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추위가 많이 누그러져 이젠 정말 봄이 온 것 같습니다. 때때로 제 인생을 돌아보면 하나님이 저 같은 인간에게도 은혜를 베푸셨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하고 신기합니다. 사마리아 여자도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 마음에 말할 수 없는 감사가 넘쳤을 것이고 간음 중에 잡힌 여자도 예수님을 만나 상상치 못한 귀한 은혜를 입게 되면서 아마 자다가도 기뻐하고 즐거워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수많은 기억들이 있지만 어느 날 하나님이 나를 위해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발견했을 때 우리는 너무나 행복하고 기뻐집니다. 저는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때때로 앤디 생각이 납니다. 
국제청소년연합(IYF)은 미국의 앤디라는 학생 덕분에 시작되었습니다. 약 20여 년 전 제가 미국 LA교회를 방문했을 때 앤디 어머니가 저를 찾아와 아들을 도와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앤디 어머니는 아들을 정성을 다해 키웠지만 앤디는 15살부터 마약을 시작했고 언제부터인가 주머니에 권총도 가지고 다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국에 살기 때문에 LA에 사는 아이를 어떻게 도울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 부인이 세 번째로 저를 찾아왔을 때 제가 “그럼 앤디를 한국으로 데려가도 될까요?”라고 물으니 “예, 데려가세요”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렇게 앤디는 저희 식구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앤디가 변화되어 깔끔하게 옷을 입고 환하게 웃는 모습이 그렇게 좋을 수 없습니다.

오랜 가뭄과 기근 속에

열왕기상 17장을 보면 사르밧에 사는 과부가 나옵니다. 당시 이스라엘에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곡식이 다 말라죽고 기근이 심했습니다. 그 과부에게는 이제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것마저 못 먹고 죽을 것 같아서 여자는 아들과 떡을 만들어 먹고 죽으려고 성 밖으로 나뭇가지를 주우러 나갔다가 엘리야를 만났습니다. 엘리야가 그 과부에게 물을 달라고 했습니다. 오랜 가뭄에 마실 물도 귀했지만 여자는 물을 뜨러 갔습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다시 부르더니 물만 말고 “네 손에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엘리야의 말을 들었을 때 여자는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무가지 두엇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라고 솔직한 간증을 합니다. 너무나 신기한 것은 하나님의 종 엘리야가 그 여자에게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했던 기가 막힌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과대망상증 환자처럼

엘리야가 그 여자에게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왕 17:14)라고 말합니다. 여자가 엘리야의 말을 믿었다면 ‘하나님이 큰 축복을 주시려고 하나님의 사람을 내게 보내셨구나. 예, 하나님의 말씀을 제가 믿겠습니다’라고 생각하고 친척, 이웃들 다 불러다가 함께 떡 만들어 먹는 상상을 하며 무척 행복했을 것입니다. 
제가 대구에서 사역을 할 때 형제자매 중 몇몇 분들은 저를 보고 과대망상증 환자라고 했습니다. 사르밧 과부도 그랬습니다. 사르밧 과부가 엘리야의 말을 믿고 이웃집 아주머니를 불렀다고 생각해 봅시다. 여자가 “배고프죠? 조금만 기다리세요. 이제 우리 가루 통에 가루가 계속 생길 거예요”라고 말했다면 이웃집 아주머니는 ‘쯧쯧, 오래 굶더니 드디어 돌았구나’라고 생각하며 “아무리 하나님의 사람 말이라 해도 가루 통에 가루가 다 비워졌는데 계속 생긴다는 게 말이 되는 이야기예요?” 했을 것입니다. 누가 봐도 그 과부는 과대망상증 환자처럼 보입니다. 

가루 통이 다 비워져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이야기를 잘 알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이런 사고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가루 통에 가루가 다 비워져도 다시 가루가 채워질 걸 믿는 사람’으로 만들고 계십니다. 은혜를 입은 사람의 마음은 자신의 마음을 넘고 넘어서 하나님의 마음까지 도달하게 됩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 줄 아십니까? 하나님이 하실 일이 믿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가루 통에 가루가 채워지는 것을 보기 전에 가루 통이 채워졌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가루 통에 가루가 가득찬 것을 본 후 직접 찍어서 맛까지 봐야 믿을 때가 많습니다. 그것은 믿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입니다.

말씀이 땅에 임하면서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행복한 사람, 은혜로운 사람, 복된 사람으로 만드십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에게 기근이나 가난 등 여러 가지 문제를 이길 수 있는 힘이 필요합니다. 창세기 1장 1, 2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땅이 얼마나 오랫동안 공허와 흑암 속에 있었는지 잘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기 전까지 땅은 공허와 흑암 속에 있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땅에 임하면서 땅은 놀랍게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니 빛이 와서 공허와 흑암을 내쫓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지는 모습을 정확하게 우리에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르밧 과부도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기 전까지는 기근 속에서 고통하고 절망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말씀이 귀로 들어와 고막을 울리고 여자의 마음에 믿어졌을 때 마음에서부터 배고픔이 끝나고 말할 수 없는 감사가 일어났습니다.

두려움을 이기는 힘

요한복음 11장을 보면 예수님이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더니 “나사로야 나오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있기 전까지 나사로는 사망에 사로잡혀 죽어 썩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사로야 나오라”라고 하시는 분은 바로 만왕의 왕이요, 만유의 주이신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사망이 더 이상 나사로를 잡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예수님이 우리 속에 역사하시는 데 어두움, 음란, 두려움이 우리를 사로잡고 있을 수 있겠습니까?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곳에 사단이 역사하고, 어둠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누구든지를 불문하고 ‘저 목사님이 하시는 설교는 목사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야’라고 받아들인다면 그 말씀은 여러분의 마음에서 어떤 두려움과 절망도 내쫓을 수 있는 힘이 됩니다. 성경은 항상 이런 법칙을 설명합니다. 우리가 곤고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을 때 말씀이 우리 마음에 들어오면 모든 절망을 내쫓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형성시킵니다. 그러면 그 믿음이 우리의 모든 것을 기쁨과 행복, 즐거움으로 변하게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을 만드실 때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을 만드실 때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하나님과 우리가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거룩함과 지혜, 평안과 사랑이 우리에게 머물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에 일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머리로는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씻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은 것을 알지라도 마음에 믿어지지 않는 사람은 죄 사함을 받지 못하고 여전히 죄 속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저주받고 멸망을 당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인데 말씀을 들어도 사단에게 속아 그 말씀을 거부하고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가버나움에서 한 중풍병자에게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시자 어떤 서기관들은 ‘참람하다’라고 생각하며 예수님을 비판했습니다. 그리고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는 말씀 앞에 ‘병자인데 어떻게 걸어가? 말도 안 돼!’라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것을 받아들인 사람에게는 능력이 되고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에게는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였는가? 받아들이지 않았는가?’ 입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생각을 벗어버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근본적인 죄

마태복음 11장에서 “화가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가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벳새다, 고라신, 가버나움 이런 도시들에서 참 많은 일을 행하셨습니다. 성경 검색에서 “가버나움”이라는 단어를 쳐보면 수많은 구절들이 검색되는데 가버나움처럼 많은 역사가 일어난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역사를 보고 또 보면서도 마음이 높아 예수님을 믿는 것보다 자신들의 생각을 믿었습니다. 
여기서 “회개”는 뉘우쳤다, 돌이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회개하고 예수님께 돌아오지 않고 자기 생각 속에 머물렀습니다. 우리는 도둑질, 간음 등을 죄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죄의 기준은 우리와 다릅니다. 여러분은 도둑질, 거짓말, 간음이 죄라고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그것도 죄를 지은 게 맞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죄는 하나님보다도 나를 더 믿는 것입니다.

‘노아의 말이 맞았구나’

노아 홍수 때 많은 사람들이 “날이 이렇게 쨍쨍한데 비가 오긴 뭘 와!” 하며 하나님이 비를 내린다는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방주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닷새가 지나도 비가 안 옵니다. “야! 노아야, 나와! 방주 안에서 뭐 해? 비 안 와! 빨리 나와!” 엿새가 지나도 비가 안 왔습니다. 사람들이 비웃었습니다. “흥~ 저 이단들! 비가 온다고? 웃기고 있네.”
7일째가 됐을 때, 하늘이 검은 구름으로 뒤덮이고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두려워 했습니다. ‘어? 조금 전까지 비가 안 온다고 노아를 조롱했는데 비가 오네? 아니야, 저러다 그칠 거야’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리면서 비가 계속 쏟아집니다. ‘어? 진짜 노아에게 하신 하나님 말씀이 맞나? 우리 목사님이 노아는 이단이라고 그랬는데?’ 물이 막 불어 오르기 시작합니다. 방주가 물에 떴습니다. 저 높은 산까지 물이 꽉 차 올라 수많은 사람들이 산꼭대기로 올라가다가 죽습니다. 그때서야 그들은 “노아의 말이 맞았구나. 우리가 왜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우리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슬렀지?” “우리 교회 목사 가짜였구나. 비가 안 온다고 그랬잖아. 노아는 이단이라고 그랬잖아. 흑흑 우리가 속았네. 우리가 죽게 됐네” 하며 울부짖으며 뉘우쳐도 이미 그땐 늦은 겁니다. 

혼돈 속에 사는 이유

여러분, 어느 때까지는 우리 생각이 옳은 것 같습니다. 어느 때까지는 하나님이 틀린 것 같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틀렸고, 내 생각이 옳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모든 일의 결론은 하나님의 말씀처럼 됩니다. 그 결론이 오기 전까지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과 자기 생각 앞에서 우왕좌왕합니다.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세계에 속해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히 알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혼돈 속에 삽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은 지금 비가 안 올지라도 방주 밖에 있는 모든 것이 다 물에 떠내려갈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방주 안에 들어갈 준비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좋은 집을 사고, 좋은 농장을 만들며 자랑하면서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제까지요? 때가 이를 때까지. 
우리는 성경을 관심 있게 읽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만해서 쉽게 하나님의 말씀을 비판하고, 교회를 비판하고 자기가 옳다고 합니다. 노아의 홍수 때 멸망한 사람들은 홍수가 내린다는 하나님 말씀보다 자기 생각과 자기 경험, 판단이 옳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멸망을 당한 것입니다.

내가 볼 때 아무리 옳아도

우리는 다시 한 번의 심판을 앞두고 있는데,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시냐면 ‘내가 볼 때 아무리 옳아도 하나님 말씀에 아니면 아닌 것입니다. 내가 볼 때 아무리 악한 죄인이라도 하나님이 의롭다면 의로운 것이고 거룩하다면 거룩한 겁니다’라고 믿는 사람을 하나님은 지금 찾고 계시고 만들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매일 술만 마시고 방탕하게 죄를 짓고 살았다면 으레 자기 자신을 못 믿을지 몰라도, 반대로 반듯하게 사는 사람일수록 자기를 믿는 믿음이 강해 자기를 옳게 여기고 나아가서는 하나님보다 자기 생각이 옳다고 여깁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도 자기 마음에 맞는 부분만 받아들이지, 맞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는 신앙을 하게 됩니다. 그건 외형적인 신앙이지, 하나님하고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사람이 진정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우리 마음을 낮추시고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참 사랑하시지만 질병도 주시고 실패도 하게 하시면서 높아진 우리 마음을 낮추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1962년 10월 7일, 제가 죄 사함을 받기 전에 하나님이 저를 죄에 빠지도록 내버려두셨습니다. 저는 십계명을 잘 지킬 수 있다고 믿었고 다른 사람보다 믿음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죄 속에 깊이 빠져 있는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제게 놀라운 은혜를 베푸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전부 다 망했다. 내 생각을 따라가면 난 망한다.’ 더 이상 제 자신을 믿을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드셨습니다. 
여러분, 다른 사람들보다 좀 성공하고 잘난 사람들은 자기를 믿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나는 정말 똑똑해.’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어.’ ‘하나님이 나를 축복했어.’ 이것이 바로 고라신, 벳새다, 가버나움인 것입니다. ‘내가 누군지 알아? 나는 벳새다야. 예수님이 우리 광야에서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인 역사를 이루셨어.’ 벳새다는 그것을 자랑스러워했습니다. 가버나움은 ‘예수님이 가버나움에서 중풍병자를 고치셨고 많은 일을 하셨어.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어’ 하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베푸신 은혜를 자기 것으로 삼고 자신을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성경은 뭐라고 합니까?”

한번은 어떤 분하고 상담을 하면서 성경을 읽었습니다. “로마서 3장 23절 읽어 보세요.” “아, 이 말씀 내가 잘 아는 말씀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절도 읽어보세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자 되었느니라” “24절에 뭐라고 되어있지요?” “열심히 충성하면 의롭게 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분은 지금 성경을 읽었는데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다시 읽어 보세요.” “내가 열심히 기도하고 말씀을 지키면 의롭게 된다고…” “아니 좀 자세히 읽어 보세요. 성경에서는 의롭게 되는 조건이 뭐라고 합니까?” 
여러분,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는 조건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심 외에 다른 조건이 없습니다. 우리가 뭘 했느냐 못했느냐 거기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무 한 것이 없이, 예수님이 하신 그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자기 선과 자기 의로 의로워지려고 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만들어 놓은 그 아름다운 구속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그 구속을 보고 우리를 의롭다고 하시는 것이지 다른 걸 보고 의롭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단은 우리가 선한 일을 했고, 율법을 지켰기 때문에 의로워지는 것으로 우리를 속이고 있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보면

여러분, 마음을 가다듬어 성경을 자세히 보면 내 생각이 틀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맞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됩니다. 그러면 그 말씀이 마음에 믿어집니다. 그때부터 가루 통에 가루가 채워지고, 절망이 기쁨으로 변합니다. 우리가 어떤 문제를 만나든지 하나님이 복되고 영광스러운 삶으로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여러분들 마음에 가버나움처럼 높아져 있는 마음이 있습니까? 혹시 여러분 마음 가운데 벳새다처럼 자랑스러운 게 있습니까? 그것은 여러분을 파멸로 이끌어갑니다. 우리의 선, 우리의 의, 우리의 거룩함으로는 하늘나라에 못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이 잘한 것, 예수님의 구속을 가지고 예수님의 은혜로 되어진 그 세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느 누구든지 예수님의 힘을 입어서 거룩해질 수 있고, 능력을 경험하게 되고, 어떤 문제라도 해결되는 참된 삶을 살게 될 줄 믿습니다. 
- 2018. 3. 4. 주일 오전예배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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