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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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마태복음 13장 44절 ~ 52절 - 2018. 2. 25. 주일 오전예배 설교 - 701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18.03.06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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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사람들
 
저는 1962년 예수님 안에서 죄 사함을 받고 그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죄악 속에 살다가 죄 사함을 받아 기뻐하며 즐거워했던 사람, 죄 사함의 복음을 깨닫지 못해 고통 하다가 복음을 듣고 감격스러워서 우는 사람, 그리고 복음을 위해 자기 자신을 다 드리려 했던 사람도 만났는데 그들이 온 마음으로 주를 섬기는 모습을 보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말로 다할 수가 없습니다. 
제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을 이야기하자면 영천 나환자촌에서 만난 김 장로님입니다. 그는 나환자이신데 전혀 나환자 표도 안 나고 인물도 좋고 키도 크고 머리카락은 저처럼 허옇습니다. 그분이 한 번씩 저희 교회까지 와서 웃으며 지었던 미소는 사람들이 ‘백만 불짜리’라고 하는 말이 떠오르듯이 티 없이 맑고 아름다웠습니다. 그 당시 일백여 명 되는 성도들이 모인 영천교회에서 첫 날 저녁 집회를 마치며 죄 사함 받고 싶으신 분은 손들라고 했더니 삼십여 명이 들었습니다. 그때가 12월인데 예배당이 무척 추워서 제 숙소로 그분들을 모이게 했습니다. 새벽 1시까지 복음을 전하고 그 방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구원받았습니다. 
여러분, 우리 가운데 죄 때문에 마음이 눌리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그렇지만 그 죄에서 벗어나 ‘내 죄가 씻어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우리 마음에 있던 수만 가지 근심과 두려움이 사라지고 행복해지는 겁니다. 

나환자촌에서 만난 장로님

그날 저녁 김 장로님은 아들과 같이 말씀을 듣다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 아들도 죄 사함을 받고 기뻐하면서 자기가 아버지 몰래 술 마시고 담배 피운 간증을 했습니다. 장로님이 “저놈이…. 목사님, 이런 기쁜 날 아니면 저놈을 그냥 안둘 건데” 하시며 기뻐하시고 새벽녘에 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김 장로님은 집에 도착하여 잠든 아내를 깨우면서 “나, 죄 사함 받았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내가 “그 죄 사함 어떻게 받았는데요?”라며 깜짝 놀라서 물었습니다. “안 가르쳐~줘. 당신도 죄 사함 받을라고?” 하시며 기뻐하고 이루말할 수 없이 행복해하셨습니다. 다음날 아침 식사를 하면서 아내에게 “여보, 이제 나는 이상 더 옛날의 김○○ 장로가 아니야. 그 김○○이는 죽었어. 나는 예수 안에서 새로운 ○○이야. 당신, 더이상 나에게 옛날의 김○○ 장로를 기대하지 마라. 그리고 이제부터 나는 예수님과 같이 사니까 내가 무슨 일을 해도 당신은 간섭하지 마라”라고 하셨습니다.

기르던 닭을 절반이나 팔아

나환자촌에 사시는 분들은 주로 양계를 하는데 김 장로님이 닭 장사에게 전화를 해서 기르던 닭을 절반이나 팔았습니다. 아내는 ‘저 양반이 어쩌려고 그러지?’ 하며 닭 판돈을 가방에 잔뜩 넣고 집을 나서는 장로님께 “어디 가세요? 뭐 하러 가는데요?”라고 물었습니다. 김 장로님은 아내에게 “이제 나를 옛날의 나로 생각하지 말고 가만히 좀 놔둬 봐라” 하고는 주변의 장로님들을 찾아갔습니다. “이 장로, 잘 지내는가? 그동안 내가 장로지만 죄에 얽매여 고통스러워서 새벽마다 울면서 회개해도 해결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모든 죄가 눈처럼 희게 씻어졌다.” 친구 장로님들이 “어떻게 씻었는데?” 하며 궁금해 하셨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집회를 했는데 박옥수 목사님이 강사였어. 자네도 그 목사님을 모셔다가 집회 한 번 해봐.” “그런데 우리 교회는 자네 교회와 달라. 재정이 어려워서 집회하기가 어렵네.” “내 그럴 줄 알았어. 집회 경비는 내가 다 댈 테니까 걱정하지 마. 밥 먹고 살 정도만 남기고 닭 팔아서 마련했어.” 김 장로님이 가방에서 돈을 한 뭉치를 꺼내 건네주셨습니다. 그해 그분을 통해 제가 7개 교회를 다니며 집회를 할 수 있었습니다. 

‘나환자들의 기쁨’

정말 많은 나환자들이 구원받고 변화되는 것을 보면서 감격스러웠습니다. 나환자들 가운데 손가락이 끊어지고 몸이 일그러지고 흉측한 얼굴을 가진 분들이 많은데 제 마음의 사진기로 그들의 웃는 모습을 찍고 제목을 ‘나환자들의 기쁨’이라고 지었습니다. 김 장로님은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암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장례식에서 제가 말씀을 전했습니다. “장로님은 당신이 얼마 살지 못하실 것을 미리 알고 사신 것 같습니다. 아무도 그에게 그러라고 시킨 적이 없습니다. 또 아무도 김 장로님에게 전도하라고 했던 적이 없지만 그분으로 말미암아 여러 교회에서 집회를 했고 많은 분들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김 장로님, 조금만 기다리세요. 제가 천국에 올라가서 뵐 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습니다.”

영천 ‘잠실’에서 가진 집회

제 아들이 태어난 이듬해 1974년 경상북도 영천군 호당리라는 마을에서 한 형제가 ‘잠실(蠶室)’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그 형제가 마을에 아는 분들이 많이 있는데 대구까지 가기 어려우니 잠실에 와서 집회를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당시 잠실에는 전기도 없어서 고물상에서 발전기를 사다가 경운기에 설치했습니다. 그런데 불을 켜니까 발전기에 힘이 들어가서 경운기가 겔겔 하며 열이 나서 물이 펄펄 끓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거기서 닷새 동안 했던 집회를 지금도 저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잠실을 운영하던 형제가 어려서부터 알고 지내던 정 목사님을 집회에 초청했는데 그 당시 연세가 일흔 아홉이었습니다. 제가 집회 기간에 그분과 같은 방을 쓰는데 첫날 잠자리에서 “목사님, 거듭나셨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나, 거듭났구마.” “어떻게 나셨습니까?” “내 딸이 올해 환갑이고 경산 교회 권사인데, 어느 날 찾아와서 ‘아버지, 거듭났습니껴?’라고 물었어. ‘왜 묻노.’ ‘나 이제 거듭났심더.’ ‘어째 났노?’ ‘밤에 자는데 갑자기 몸이 뜨거워지면서 지난 죄가 활동사진 필름 보듯이 드러나서 울며 방구석을 헤매다 거듭났심더.’ 내 딸이지만 질투심이 났지. 그러고 얼마 안 있다가 나도 밤에 자는데 갑자기 막 눈물, 콧물이 나며 지난 죄가 기억나고 영화 필름 지나가듯이 지나갔어. 그래 나도 그렇게 거듭났어.” 보통 성경에서 말하는 거듭남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은 자신이 특별한 경험을 하면 거듭나는 줄로 알게 됩니다. 

거듭나지 못한 목사 때문에

이튿날 오전에 말씀을 전한 후, 저는 잠시 방에서 쉬고 있는데, 누군가 밖에서 “박 목사님!” 하며 불러서 나가 보니 정 목사님이 댁으로 돌아가시려 한다며 형제들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제가 정 목사님을 만나서 말씀드렸습니다. “목사님, 집회 끝까지 계시지 왜 벌써 가십니까?” “나, 가누마!” “목사님, 좀 더 계세요. 지금 별일 없으시잖아요.” 제가 그 말을 마치자 마자 정 목사님은 그동안 참았던 화를 터뜨리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박 목사, 내 마음이 힘들어서 위로 받으러 왔는데, 여기가 권투 도장이요? 태권도 도장이요? 도리깨로 보릿단 치듯이 사람을 이리 치고 저리 치고 그래요? 나, 가요” 하며 그 어르신이 분을 못 이기셨습니다. 
그 당시 저는 ‘내가 이 목사님을 오늘 그냥 보내드릴 수 없다. 올해 연세가 일흔아홉이신데, 앞으로 살면 얼마나 더 사시겠나? 목사님이 욕하시면 욕 얻어먹자’ 하며 리어카 하나 겨우 지나갈 수 있고 절벽이 있는 길을 걸어가시는 그 목사님을 쫓아가며 뒤에 대고 이야기했습니다. “목사님, 죄 사함 못 받았잖아요. 죄 있지 않습니까? 죄 있는데 죽으면 지옥 가지 않습니까? 목사라고 천국 가는 거 아니잖습니까? 목사님도 죄 사함 받고 거듭나셔야 합니다. 만일 목사가 거듭나지 못해 지옥에 간다면, 그는 세상에서 제일 비참한 사람입니다. 지옥에서도 교인들이 ‘목사님, 이쪽에 앉으세요’라고 말할 것 같습니까? ‘내가 이 가짜 목사 때문에 지옥에 왔다!’라고 항의할 텐데요?” 

풀밭에 앉아 복음을 전하다

그분은 더 이상 가지 못하시고 멈추시더니 가방에서 성경을 꺼내시고 풀밭 위에 가방을 놓은 후 “여기 좀 앉으시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차마 그 가방 위에 앉을 수 없어서 풀밭에 앉아 성경책을 꺼내어 로마서 1장을 펴고 한 절씩 읽으며 로마서 강해를 시작했습니다. 로마서 4장까지 조용히 말씀을 들으시던 정 목사님의 얼굴이 점점 환해지셨습니다. 6장으로 접어들어 1절,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2절,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라는 말씀을 읽는데, 정 목사님께서 갑자기 “박 목사, 잠깐! 됐어” 하시더니 그분의 얼굴이 더욱 밝아지셨습니다. 정 목사님께서는 그 자리에서 일어서시더니 다시 집회 장소로 향하셨습니다. 
오후 성경공부 시간에는 목사님이 지난 일을 간증하셨습니다. “16년 전, 저는 목사로서 지어서는 안 될 죄를 지었습니다. 성도들이 죄를 지으면 목사를 찾는데, 목사가 죄를 지으면 누구 앞에 서겠습니까? 그동안 혼자 늘 부르던 찬송이 있습니다. ‘길도 없이 거친 넓은 들에서 갈길 못 찾아 애쓰며 이리저리로 헤매는 내 모양 저 원수 조롱 하도다♪’ 저는 평양신학교 제3회 졸업생입니다. 이제 친구들도 한 명씩 세상을 떠나고 저도 세상을 떠날 때가 가까워졌는데, 죽음 앞에 서보면 늘 막막했습니다.” 

로마서를 읽을 때마다

계속해서 정 목사님은 “오늘 오후에 풀밭에서 로마서 6장의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서 더 살리요’라는 말씀을 듣는데 ‘그래! 내가 죄에 대해 죽었지! 죄에 대해 죽은 내가 어떻게 죄를 지을 수 있어? 내가 죄에 대해 죽었으면 죄에서 벗어난 것이고, 죽은 사람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잖아?’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며 간증을 마치셨습니다. 정 목사님이 집으로 돌아가 아들에게 “얘야, 며칠 전에 나간 네 애비는 죽었다. 지금 나는 며칠 전에 나간 네 애비가 아니다. 다른 사람이다”라고 말하자 그 아들은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으니까 ‘아버지가 도깨비에 홀렸나?’로 생각했습니다. 
그 후, 정 목사님은 당시 사시던 금호라는 곳에서 대구 파동 우리 교회 옆으로 이사를 오셨습니다. 하루는 목사님이 안경을 고치러 안경가게에 가셔서 저도 따라갔습니다. 제게 “박 목사, 내 죄가 눈처럼 씻어졌어. 내가 부르던 ‘♪머리털보다도 더 많던 내 죄가 눈보다 더 희어졌네~♫’라는 그 꿈같은 찬송이 내 찬송이 됐어” 하시며 그렇게 기뻐하셨습니다. 지금은 주님 품으로 가셨지만 제가 로마서를 읽을 때마다 그 목사님이 생각나곤 합니다. 

코카콜라 광고의 경우

여러분, 코카콜라 회사는 광고에 많은 투자를 한다고 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코카콜라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코카콜라 회사에서는 세 부류의 소비자로 구분합니다. 첫 번째, “나는 콜라만 좋아해” 하는 사람들은 으레 음료수를 고르라면 ‘콜라!’라고 말할 겁니다. 두 번째, 음료수를 고를 때 ‘콜라! 사이다! 환타!’ 하며 갈등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콜라!’ 하다가도 ‘사이다!’ 하며 선택을 합니다. 세 번째는 콜라를 싫어하는 사람이거나 아예 탄산 음료수를 마시지 않는 사람입니다. 광고 대상은 두 번째 부류의 소비자인데 광고가 그들의 기억 속에서 ‘코카콜라’를 제일 위로 끌어올리는 일을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소비자가 “음료수는 뭘 드릴까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제일 먼저 ‘콜라!’라고 말하도록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광고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에게 어려움이 있을 때 가장 먼저 ‘예수님!’ 하며 예수님의 마음이 떠오르면 우리에게 기쁨과 감사가 생기고 ‘내 죄가 씻어졌지. 감사하다’ 하며 죄 사함을 받지 못한 사람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슬픔이나 두려움이 와도

여러분, 우리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내 죄를 사했다’라는 생각은 우리 마음에 있는 여러 가지 생각들을 잡아먹을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예수님이 모든 죄를 사했어’라는 생각이 있으면 그 어떤 슬픔이나 두려움이 와도 내쫓기에 충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같이 더러운 죄인이 하늘나라 가기에 부족함이 전혀 없도록 완벽하게 죄를 씻었다고 성경에 수없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간음 중에 잡힌 여자에게 날아오려던 수많은 돌들을 예수님이 다 땅으로 떨어뜨려 주셨듯이 우리에게도 예수님이 우리 마음속에 거하시면서 죄의 고통과 두려움을 잊고 밝고 복되게 살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이 엄청난 구원!

여러분, 이 엄청난 구원!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 죄를 눈처럼 희게 씻은 이 아름다운 복음이 참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세상 것으로 덮여가고 있지 않습니까? 모세오경을 읽어 보면, “너희가 애굽에서 나오던 그 날을 기억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네가 어떻게 바로의 손길에서 벗어나 홍해를 건넜고, 어떻게 광야에서 40년을 지냈는지, 그걸 잊지 마라”라고 하십니다. 세상 사람 가운데 아무도 듣지 못한 이 복음을 들은 그 날, 어떻게 복음을 듣게 됐는지 기억하라. 누가 죄 사함을 전해줬는지, 죄 사함을 깨달을 수 있도록 전해준 그날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족보에 ‘라합’이

여호수아 성경을 보면, 기생 라합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기생 라합이 살몬을 구해 주고 살몬에게 약속을 받았습니다. 여리고성이 무너지는 날, 성벽 창문에 붉은 줄을 매달면 그 집에 있는 사람들을 살려주고 자신과 결혼하기로 했습니다. 여러분, 사랑해서 결혼하기로 약속한 사람이 다시 기생노릇을 하겠습니까? 하루는 옆집 사는 기생 삼월이가 “라합아, 너 영업 안 해?”라고 물었을 것 같습니다. “이제 나는 영업 안 해.” “기생은 환갑이 26세야. 늙어 봐라. 누가 널 좋아하겠어. 그 전에 빨리 재산을 모으든지, 기둥서방을 만나야지.” 옆에 있던 다른 기생들도 “미친 짓 하지 말고 지금 돈 벌어. 환갑 지나면 아무도 안 찾아줘”라고 말할 겁니다. 그러나 살몬을 사랑하는 마음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삼월이나 다른 기생의 말을 믿으면 라합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난 수많은 남자들을 만났지만 그분의 눈빛은 진지했어. 그분은 날 사랑했어. 분명히 날 데리러 올 거야’ 하며 기생 라합의 마음은 달랐습니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이 나신 계보를 보면,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로 기록했다가 ‘살몬은 보아스를 낳고’로 기록하지 않고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하며 라합의 이름이 예수님의 족보에 올랐습니다. 

우리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

여러분, 보통 사람들은 행복을 얻기 위해서 돈을 들여가며 노력하는데, 실제 우리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고 하늘의 소망입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은데 보통 사람들의 눈에 그 보화를 사려는 사람은 미친 짓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여호수아 성경에 나오는 기생 라합도 다른 기생들이 볼 때 “저 라합, 지금 미쳤다. 이스라엘 남자가 뭘 자기를 좋아한다고 그래!”라고 생각될 것입니다. 그러나 라합은 살몬에게서 그가 자기를 사랑한다는 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 믿음으로 누가 뭐라 해도 살몬을 사랑했습니다. 
아무리 사실이라도 우리 마음에 믿음이 없으면 그것은 사실이 아닌 겁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모두 사하셨지만, 죄 사함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여전히 죄인인 겁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사하셨다는 사실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모든 죄를 사했다는 걸 깨닫고, 죄 사함 받았다는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돈이 좀 없고 좋은 아파트에서 살지 못할지라도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그 피로 내 죄를 사하시고 나와 함께하신다’는 믿음을 가지면 그런 믿음이 없는 사람과 비교할 때 서로 천지차이입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처럼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습니다. 그래서 그 밭을 쳐다만 봐도 행복하고, ‘저 밭 빨리 내가 사야 되는데’ 하며 밭을 사기 위해 빚을 져도 문제가 안 되는 겁니다. 그러나 사단은 우리 마음을 다른 걸로 가득 채워서 죄 사함 받은 이 보화를 다 덮어버립니다. 우리 마음에서 그 보화를 잊어버리면 그 보화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여러분, 세상에 어떤 금은보석과도 비교할 수 없이 영광스런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 받는 이 큰 보화가 우리 마음에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완벽하게, 흰눈보다 더 희게, 깨끗하게 씻으신 이 구원이 바로 우리 마음의 보화입니다. 이것만으로 행복할 수 있고, 이것만으로 기뻐할 수 있고, 이것만으로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이제 슬퍼하지 마세요. 근심하지 마세요. 불평하지 마세요. 우리를 구원해 주신 주님이 너무나 감사합니다. 자주자주 우리를 구원한 주님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감사하세요. 그럴 때 하나님이 우리 삶을 영광스럽고 복되게, 축복이 넘치도록 이끌어 주실 줄 확실히 믿습니다. 
- 2018. 2. 25. 주일 오전예배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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