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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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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 굽는 관원장 vs 술 맡은 관원장창세기 40장 9절 ~ 23절
- 자기 생각을 따라간 자와 자기 생각을 버린 자의 차이는 - 699호

성경 속 세 사람의 공통점

여러분,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마다 자기 생각이 옳다고 주장합니다. 성경에 신앙이 한참 좋았다가 자기의 옳은 생각을 따라가서 저주를 받은 세 사람이 있는데, ‘아나니아와 삽비라’, ‘가룟 유다’, 그리고 ‘아간’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땅을 판 돈 중 얼마를 감추고 나머지를 사도들 앞에 내놓았습니다. 베드로가 아나니아에게 “땅 판 값이 이게 전부냐?”라고 물었을 때 “좀 남았습니다”라고 대답해야 하는데, “예, 이게 전부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마도 아나니아는 당시 사도들처럼 자기 소유를 교회에 드리면 사람들 앞에 세워질 것 같아 땅을 팔았는데 막상 아까워서 다 드리지 못하고 남겼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땅을 팔지 않은 사람도 있는데, 나는 땅을 팔아서 하나님께 드리고 좀 남겼는데 뭐 그리 죽을 만한 죄야?’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아나니아에게 “그것은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다”라고 말하자, 아나니아가 그 자리에서 죽고 그의 아내 삽비라도 죽었습니다. 

가룟 유다의 죽음

성경을 보면, 이렇게 우리가 가진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전혀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7장에는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가로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저희가 가로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마 27:3~5) 하며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판 이야기가 나옵니다. 유다는 예수님이 정죄 됨을 보고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이 지혜롭고 능력이 많으시니까 자기가 예수님을 팔아도 정죄 되거나 사형을 당하지 않고 빠져 나올 줄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유다는 예수님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외투를 취한 아간의 최후

세 번째 사람은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성으로 들어갈 때 나오는 ‘아간’입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아놓고 “여리고 성은 이스라엘이 처음 점령하는 성이니까 그곳에서 얻은 물건은 금은, 의복이라도 하나님께 바쳐야 하는데 만일 그것을 취하면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 자체가 하나님께 바침이 되어 저주를 받을까 두렵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아간의 생각은 그런 여호수아의 생각까지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제 여리고 성을 점령해서 전쟁을 하는데 많은 전리품이 보였습니다. 시날산에 아름다운 외투 한 벌이 있는데 아간이 광야에 살면서 듣도 보도 못한 너무나 멋지고 아름다운 외투라서 갖고 싶었습니다. 분명히 여호수아가 어떤 물건이든지 취하면 바침이 되기 때문에 멸망을 당할까 두렵다고 했는데 아간은 ‘외투 한 벌 갖는 것이 뭐 그리 큰 잘못이야. 이 시날산 외투, 너무나 멋있다. 이것 하나쯤 내가 입는다고 문제가 되겠어?’라고 생각하며 거기다가 금은 덩어리를 하나씩 감추었습니다. 아간은 그것이 저주가 되어 결국 모든 가족이 돌에 맞아 죽게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시야와 인간의 시야는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신앙은

몇 년 전, 그라시아스 합창단이 세계 최고의 독일 마르크트 오버도르프 합창제에서 대상을 받았습니다. 제가 단장에게 우리 합창단이 대상을 받은 이유를 물어보았습니다. 단장은 “우리 지휘자가 다른 지휘자보다도 작곡가의 마음을 훨씬 더 깊이 이해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합창 지휘자는 먼저 음악사를 연구하고, 작곡가가 작곡할 당시 상황을 파악하고, 악보를 펴고 묵상하면, ‘여기는 왜 반음을 쓰고, 여기는 왜 높은음 낮은음을 썼는지, 이 음표는 무엇을 표현하려 했는지’ 작곡가의 마음을 더듬어 본다고 합니다. 그라시아스 합창단 지휘자인 ‘보리스 아발랸’은 작곡가의 마음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부문에서 세계 최고랍니다.” 
신앙의 세계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신앙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내가 열심히 기도하고 성경 읽고 찬송하면 되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몰라도 자기 나름대로 착한 일 하거나 기도하고, 교회 다니며 신앙생활 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착한 일 해라. 도둑질하지 마라. 간음하지 마라’는 행위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신앙은 하나님의 마음과 다른 우리 마음을 발견하고 우리 마음을 바꾸는 겁니다. 

요셉의 꿈 해석을 보면

오늘 읽은 창세기 40장에서 요셉이 애굽 감옥에 있을 때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의 꿈을 해석하는 것을 봤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은 “내가 꿈에 보니 내 앞에 포도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에 세 가지가 있고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었고. 내가 포도를 따서 그 즙을 바로의 잔에 짜서 그 잔을 바로의 손에 드렸노라”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 성경을 보며 ‘어떻게 이 꿈을 사흘 안에 전직을 회복한다고 해석하나?’ 싶었습니다. 저는 아무리 읽어도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떡 굽는 관원장이 흰떡 세 광주리를 이고 가는데 그 위에 바로를 위하여 만든 각종 구운 식물들을 올려놓았다는 꿈을 말했을 때 어떻게 사흘 뒤에 목이 나무에 매달려 죽는다고 해석하는지 신기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성경을 깊이 묵상하다 보니 하나님의 마음이 서서히 비치면서 ‘아, 그렇구나!’ 하며 두 관원장의 마음이 보였습니다. 

케냐 ‘도로시’ 자매 이야기

예전에 독일 권 선교사님이 아파트에 살면서 청국장을 끓였답니다. 그 냄새 때문에 동네가 난리가 났답니다. 제 아내는 미국여행을 하면서 어느 모텔에서 쉬다가 김치찌개를 끓였더니 그 냄새가 온 복도로 퍼지면서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청국장이나 김치같은 한국 음식들은 특유의 맛으로 처음에 우리 입에 맞지 않는데 한번 맛 들이면 누구나 좋아하게 됩니다. 
한번은 케냐에서 ‘도로시’라는 부인을 만난 적 있습니다. 그가 식사준비를 하는데 ‘푸푸’라고, 세숫대야 같은 데 담긴 물에 손을 담가 가며 절구에 넣고 찧습니다. 그걸 보지 말아야 했는데, 보니까 물이 시커먼 거예요. 제 비위가 안 좋아서 도저히 못 먹었습니다. 도로시가 제게 오더니 “패스터 박, 뭘 좋아해요”라고 물었습니다. 된장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된장, 뭘로 만들어요.” “콩으로 만들어요.” “좋아요. 콩 사다가 된장 만들어요.” “그거 못 만들어요.” “잘 만들지 못해도 대강은 안 되겠어요?” “된장 만드는데 1년 걸려요.” “무슨 요리를 1년씩이나 하나요?” “콩을 삶아서 메주를 만들어 발효될 때까지 매달아 놨다가, 발효되면 소금을 넣고 다시 옮겨놔서 1년쯤 지난 뒤에 먹어요.” “그 1년 동안은 뭘 먹어요?” “작년에 만들어 놓은 거 먹어요.” “그 전에는 뭘 먹어요?” “재작년에 만들어 놓은 거 먹어요.” 그 자매가 할 말을 잃었습니다. 

애굽 왕에게 범죄한 이유

이처럼 마음의 세계에서도 우리가 성경을 통해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마음의 세계에 대한 맛을 보듯이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씩 알게 되면, 그에 비해 우리 마음은 아주 얕고 추하며 악한 걸 발견하게 됩니다. 술 맡은 관원장은 술에 대해 전문가였을 겁니다. 그가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까지 되었다면 출세한 사람입니다. 떡 굽는 관원장도 떡에 대해서는 전문가였을 테니 바로의 떡 굽는 관원장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두 관원장은 모두 왕께 범죄했습니다. 왜 범죄했습니까? “내가 술 맡은 관원장 인데 너 이놈들 까불지 마” 하며 아주 잘난 사람이 되니까 자기 마음을 꺾기 어려워졌습니다. 왕의 신하라면 왕의 말에 귀 기울이고 ‘왕의 마음이 뭔가?’ 하며 살펴야 하는데 자기 생각대로 한 겁니다.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이 둘 다 애굽 왕에게 범죄한 이유는, 왕을 섬기는 사람이 되니까 잘나서 거만해졌기 때문입니다. 왕의 마음과 다른 자기 마음을 발견하고 마음을 모아 나가면 괜찮은데 왕과 다른 자기 마음으로 그냥 일하다 보니 범죄해서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 둘 다 감옥에 갇힌 겁니다. 

포도나무와 포도주의 의미

술 맡은 관원장은 어느 날 왕 앞에 범죄하고 감옥에 와서 생각했습니다. ‘내가 어쩌다 왕의 은혜를 입어 술 맡은 관원장이 됐는데 너무 교만했어. 그래서 왕의 마음을 살피지 않고 내 나름대로 일하다보니 죄를 지었구나. 이제 여기서 한 번만 더 죄를 지으면 죽을 수 있겠구나. 두렵다. 왕의 마음도 모르면서 왜 내가 내 생각대로 했지? 왕의 마음이 아닌 내 마음이 나가서 이렇게 된 거야. 앞으로 한 번 더 왕의 마음과 다른 내 생각이 나간다면 내가 사형을 당할 수도 있고 저주를 받을 수도 있어.’
술 맡은 관원장은 지금까지 자기 마음속에 일어났던 생각들에 대해 선을 그었습니다. “내가 꿈에 보니 내 앞에 포도나무가 있는데….” 포도나무는 예수 그리스도를, 포도주는 예수님의 피를 가리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은 다른 얘기 하지 않고, 포도나무만 봤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좋고 아름다워 보이는 것 다 놔두고, 포도나무에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은 포도주 외에 자기 생각을 전혀 섞지 않았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

여러분,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면서 사단이 우리 마음속에 역사하여 하나님과 다른 길로 끌어갔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죄를 안 짓고 착하게 살고 기도 많이 해서 신앙이 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에다 우리 마음을 비추어 보고, 자기 생각을 따라 간 결과가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다는 걸 발견해야 합니다. 그래서 술 맡은 관원장은 포도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아무것도 섞지 않았던 것입니다. 요셉은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듣고 ‘이건 자기 옳은 생각이나 자기 잘난 생각을 다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만 의지하는 신앙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반면 떡 굽는 관원장은 죄를 짓고 감옥에 와 있으면서도 자기 생각을 따라간 것이 죄악이란 걸 몰랐기 때문에 흰떡 세 광주리에 자기 생각대로 각종 구운 것을 갖다 얹고 저주를 받는 겁니다. 성경 구절마다 인간의 생각, 육신의 소욕, 육신에서 나온 모든 것은 사망이라고 하셨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 가운데 사망도 있고 사망 아닌 것도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우리 육신에서 나온 생각조차 전부 하나님이 보실 때는 사망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자기 생각을 조금이라도 보태면 저주이고, 멸망이고, 사망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합니까? 술 맡은 관원장은 자기가 하는 것마다 범죄였습니다. 하는 것마다 악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게 너무너무 두려웠습니다. 자기 생각대로 하면 잘해도 문제가 된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술 맡은 관원장은 자기 것을 다 비우고 포도나무를 바라봤습니다. 포도나무에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익은 결과인 그 포도주를 가지고 왕 앞에 나가는 것은, 자기가 일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나는 죄를 짓고 악을 행했습니다만, 예수님이 이 피로 내 죄의 벌을 대신 받았으니까 그 피를 보시고 나를 받아주옵소서’ 하며 예수님이 날 위해 피 흘려 죽은 십자가를 들고 나가는 겁니다. 그러나 떡 굽는 관원장은 흰떡 세 광주리 지고 그 위에 각종 구운 식물 등 자기가 잘한 것을 가지고 나아갔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신앙을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겁니다.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저는 종종 목사님들을 만나면 이렇게 물어봅니다. “목사님, 선을 행하라고 설교하십니까?” “예.” “성경에는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라며 인간이 선을 행할 수 없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사단에게 속아서 우리에게 나오는 모든 것이 죄악이고 추하며 더럽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대충 보면 우리가 좀 선하고 아름답고 잘한 것이 있지만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은 악뿐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떡 굽는 관원장처럼 “나는 착한 일을 했어. 십일조를 많이 했어. 40일 금식기도를 했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교회 다니면서 착하게 살고, 주일을 지키고, 성경 읽고, 십일조를 내야 한다고 말합니다. 성경에는 그런 사람들이 다 멸망을 받습니다. 우리는 이미 죄를 범한 인간이기 때문에 착한 일을 한다고 해도 죄가 씻어진다는 법은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렇게 믿는 사람에게는 저주밖에 없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처럼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은 단 하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주님이 우리 죄를 씻기 위해 못 박혀 흘리신 피를 보십시오. 그 피는 우리가 지은 모든 죄 값을 이미 지불했다는 증거입니다. 그 피를 힘입어 담대히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선을 의지하며 ‘나는 그래도 남을 도왔어. 선을 행했어. 조금만 더 잘하면 하나님이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복 주시며 천국 보내주실 거야’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 속에 선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술 맡은 관원장처럼 ‘하나님, 이런 죄를 지었습니다. 그 죄값으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피를 흘렸습니다. 그 피가 내 죄의 벌을 받은 증거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죄가 씻어졌습니다. 나는 의롭습니다’ 하며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자기 선한 행위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간 사람들은 모두 저주와 멸망을 받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생각을 버리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신앙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행한 모든 것은 죄악

여러분, 1962년도에 저는 ‘내 생각에서 나오는 모든 것은 악 뿐이기 때문에, 내가 한 것을 가지고는 절대로 은혜를 입을 수 없구나. 예수님이 하신 십자가 그것만 바라보고 나가야 겠구나’ 하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우리가 어떤 악이나 죄를 지었든지 간에, 우리가 행한 모든 것은 죄악이므로 우리 생각을 버리고 부인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우리 마음속에 오셔서 우리가 상상치 못한 마음의 세계로 이끌어 가십니다. 
오늘 아침에 얘기한 아나니아나 가룟 유다는 겉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것 같았지만 자기 생각을 따라 사니까 어두움이 있고, 악이 있고, 거짓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것입니다. 이제 우리 자신의 생각을 다 버리고, 예수님의 마음을 받아들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우리의 모든 죄를 씻고 우리를 깨끗케 한 사실을 믿게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거룩함이 우리의 거룩함이 되고, 예수님의 의가 우리의 의가 됩니다. 참된 신앙은 우리가 잘해서 깨끗해지고 선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이루신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도금한 목걸이 같이

예전에 미국 시카고에서 집회를 마치고 가려는데 액세서리를 판매하는 한 자매님이 제게 도금한 목걸이를 한 움큼 주었습니다. 바쁜 일정 가운데 저는 그것을 두고 왔는데 누가 가방에 넣었는지 제가 인천공항에서 나오다가 세관에 걸렸습니다. 제가 세관원에게 “그것은 금목걸이가 아닙니다. 도금한 것입니다”라고 했더니 세관 직원이 “저는 순금인지 아닌지 구분 못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혹시 칼을 가지고 있습니까? 칼로 한번 긁어보세요.” “그럼, 제가 긁어 봐도 괜찮습니까?” 하더니 그가 가져온 칼로 목걸이를 긁었습니다. 표면은 금인데 속에서 다른 금속이 나왔습니다. 여러분, 구리반지를 금으로 도금한다고 해서 순금반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순금목걸이나 순금반지는 칼로 아무리 긁어도 끝까지 금이 나옵니다. 우리가 선하다고 말할 때는 언제나 악이 아니라 선을 행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행위는 항상 선할 수 없기 때문에 도금한 목걸이나 반지처럼 전부 가짜 선입니다. 

겉으로 선해 보일지라도

여러분, 우리 인간은 한두 가지 선한 행동이 나오면 그것을 선하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그것은 선이 아니라 악이고 거짓된 것입니다. 창세기 40장에서 자기 생각을 따라간 떡 굽는 관원장과 자기 생각을 버린 술 맡은 관원장, 그 두 사람의 결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여러분, 때때로 착한 일 한두 가지 행한 것으로 ‘내가 선을 행했다’ 하며 자신을 선한 사람인 것으로 속지 마십시오. 도금한 반지처럼 겉으로 선해 보일지라도 언젠가 악이 나오기 때문에 예수님의 마음과 선을 받아들일 때, 우리가 정말 거룩하고 의로우며 깨끗해집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마음속에는 악이나 거짓이 전혀 없기 때문에 그때서야 비로소 우리가 참된 선과 의를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것입니다. 
- 2018. 2. 4. 주일 오전예배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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