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기에 어떠하든지 말씀을 그대로 믿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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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기에 어떠하든지 말씀을 그대로 믿어야
요한복음 11장 17절 ~ 44절 - 2018. 1. 28. 주일 오전예배 설교 - 698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18.02.02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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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에서 복음을 전할 때

여러분, 요즘 날씨가 무척 추운데 몸 건강히 잘 계셨습니까? 지난주에는 1년간 해외봉사를 다녀와 귀국발표회를 준비하는 굿뉴스코(GoodNews Corps)학생들을 만났습니다. 학생들의 마음이 얼마나 맑고 깨끗한지 그런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참 감사했습니다. 
누구든지 성경을 읽다보면 처음에는 예수님께서 앉은뱅이를 일으키시고 눈먼 소경을 고치시는 말씀이 신기하기도 하면서 ‘이것이 정말일까? 이런 이야기를 믿어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오늘 읽은 요한복음 11장에서 죽은 나사로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다시 살아나는 이야기는 더욱 믿기 어려운 내용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우리가 할 수 없는 기적적인 일들을 이루시는 것을 수없이 보아왔습니다. 1968년 저는 군에서 제대한 후 경북 김천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곳에서 사역을 할 때 아무도 돕는 사람이 없어 하나님만 의지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너무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믿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셋집 주인이 도주하여

경북 김천에서 사역을 시작할 때 전셋집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집주인이 도박으로 빚을 많이 지고 밤중에 도망을 갔습니다. 며칠 뒤 시내 한 은행의 지점장님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혹시 이 집에 대해서 아십니까?” “저는 잘 모르는데요.” “이 집은 이제 은행 것입니다. 집을 비워주셔야 합니다.” ‘하나님, 왜 이런 일을 당하게 하십니까?’ 하며 정말 막막했습니다. 집을 당장 비워달라고 하는데 갈 곳이 전혀 없었습니다. 전세금 떼어먹고 도망간 집주인을 잡으려고 백방으로 노력도 해봤지만 허사였습니다. 
어느 날 제가 대구 집회를 가기위해 집을 나서는데 지점장님이 아침 일찍 오셨습니다. “아, 지점장님 안녕하십니까?” “잘 계셨습니까?” “죄송합니다. 지점장님. 제가 아직 준비된 것도 없고 드릴 말씀도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지금 대구를 좀 가야합니다.” 지점장님께서 “아, 괜찮습니다. 가십시오” 하시더니 저를 따라 대구 가는 버스를 함께 타셨습니다. 대구로 가면서 은행의 어려운 사정을 저에게 이야기하셨습니다.

“박 형, 주인이 계셨습니까?”

지점장님의 이야기를 듣는데 주님이 저에게 꼭 이렇게 이야기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이 문제 네가 해결할 수 있나?’ ‘주님, 해결할 수 없습니다.’ ‘네가 할 수 없다면 누가 해야 하느냐?’ ‘주님이 하셔야지요.’ ‘그럼, 너 내 이야기했느냐?’ 사실 제가 좀 불리해지면 억지라도 쓰려고 그때까지 지점장님께 예수님 믿는 표도 안냈습니다. 제 믿음이 잘못 됐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주님께 맡기려면 확실히 맡겨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마음을 정하고 그분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지점장님, 죄송합니다. 제가 집을 비워드리고 싶지만 준비가 아직 안됐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주인에게 샅샅이 보고 드렸습니다. 아직까지 주인에게 아무런 기별이 없는데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제 이야기를 듣고 그분이 깜짝 놀랐습니다. “박 형, 주인이 계셨습니까?” “예, 계십니다.” “지금 주인께서 어디 계십니까? 혹시 서울에 계십니까?” “아닙니다. 하늘나라에 계십니다.” “예? 그게 무슨 이야깁니까?” “저는 예수님을 믿는데 예수님이 제 주인이십니다. 예수님께 이 문제에 대해 제가 기도를 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집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겁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제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그분이 이야기하셨습니다. “박 형, 저는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그런데 박 형 이야기를 들으니 진지한 것 같습니다. 모쪼록 좀 더 열심히 기도해서 빨리 해결해주십시오. 그럼 전 여기서 내리겠습니다.” 왜관쯤에서 그분이 내렸습니다. 이 문제를 주님께 맡기고 지점장님께 주님의 이름으로 이야기하고 나니 참 평안했습니다.

집을 주시겠다는 믿음이

어느 날 제가 집을 위해 기도를 드리는데 주님이 ‘너, 기도만 하지 말고 집을 한번 알아봐라’ 하시는 것 같아 밖으로 나왔습니다. 집 근처에 좋은 2층 건물이 있어 가격을 알아보니 전세금이 20만 원이었습니다. 당시 저에게는 너무나 큰돈이어서 엄두도 내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기도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틈이 날 때마다 기도했습니다. 어느 새벽에 기도를 드리는데 하나님께서 이런 마음을 주셨습니다. ‘너, 전에 본 그 집이 어떠냐?’ ‘좋지요. 정말 좋은 집인데 가격도 싸고 위치도 좋아서 벌써 나갔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침을 먹고 그 집에 가보니 여전히 세를 놓는다고 붙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저희에게 이 집을 주시려고 하는 것인가?’ 싶어 들어가 봤습니다. 어른은 아무도 없고 아이들만 있어 “어른 오시면 저녁에 내가 2층 세 얻으러 온다고 미리 얘기해라” 하고 저녁에 다시 찾아갔습니다. 제가 특별한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닌데 하나님이 저를 믿음으로 이끌고 가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 없는 저에게 이런 방법으로 문제를 주시고 하나님만 의지하게 만드셨습니다. 제게 하나님이 이 건물을 주시겠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새 집을 얻게 되다

저녁에 집 주인을 만나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이 도시에 복음을 전하러 온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런데 이곳 시민 한 사람이 제게 손해를 끼쳤습니다. 제가 전세로 집을 얻었는데 그가 집을 은행에 넘기고 도망을 가고 말았습니다. 제가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이 건물을 주시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는 돈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 집을 저에게 주시고 싶으면 주십시오. 그러나 동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 이야기를 들은 후 그분이 눈을 감고 생각하시더니 입을 여셨습니다. 
“저는 시내 지좌동에 있는 지좌교회 장로올시다. 하나님께서 국도변에 이렇게 좋은 집을 저에게 주셨는데 하나님의 종이 쓰신다고 하는데 제가 어떻게 막겠습니까. 쓰십시오.” 저는 꿈을 꾸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옳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밤이 새도 다 못할 것 같습니다. 구원받고 난 후 55년을 예수님과 더불어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미련해서 늘 예수님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저는 그래도 남들보다 좀 괜찮다고 생각했고 제 생각이 옳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꾸 저에게 ‘너는 틀렸다’고 하셨습니다. 뒤돌아보면 아무것도 모르면서 옳은 사람으로 속고 산 적이 참 많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우리들에게 여러 문제를 주셔서 ‘내가 옳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게 하시는 일이 참 많습니다. 
우리는 지금 예수님의 몸을 만지거나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마음은 성경을 통해 만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 마음과 우리 마음이 만났을 때 열이면 열, 백이면 백, 예수님의 마음과 우리 마음이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 말씀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사 55:8) 그래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예수님보다 더 믿으면 ‘내 생각’을 따라가고 예수님을 더 믿으면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의인인가, 죄인인가?

예를 들면 성경은 창세기부터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이 오신다는 내용으로 가득합니다. 예수님은 그 말씀의 약속대로 오셨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죽음으로 우리 죄를 다 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전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시고 숨을 거두셨습니다. “다 이루었다”는 말씀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일을 다 이루셨다는 말씀이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죄의 값을 다 치르셔서 우리 죄가 다 사해졌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긴 하셨지만 내가 죄를 지었으니까 죄인이다’라며 우리에게 의롭다 하신 하나님의 마음과는 전혀 다른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어떤 죄는 유독 오래도록 가책으로 남아 우리 마음이 맥을 못 추도록 하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한번은 어떤 낯선 부인과 신앙상담을 하는데 그 부인이 저에게 “목사님, 저는 산파인데 임신된 지 한 달된 아기부터 아홉 달된 아기까지 수도 없이 많이 죽였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은 ‘제가 이렇게 많은 죄를 지었는데 그 죄도 씻어졌습니까?’ 하는 말입니다. 제가 그분께 “그렇게 많은 아기를 죽이고 죄 사함 받기를 바라십니까? 그 죄는 절대 안됩니다”라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분의 죄도 십자가에서 다 씻으셨기 때문입니다. 

전지전능의 뜻

우리는 하나님을 전지전능한 분이라고 말합니다. 전지전능이라는 것은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행하기에 능하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시다면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볼 때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주님은 해결하실 수 있다고 믿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각과 예수님의 시각은 전혀 다릅니다. 아브라함은 ‘난 아들을 낳는 것이 불가능해’라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만나고 하나님과 점점 가까이하면서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나도 아들을 얻겠구나’라는 마음으로 움직여 갔습니다. 그렇게 마음이 움직여가는 상태를 ‘믿음으로 들어가는 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속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만 아니라 불가능한 일도 하시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우리를 통해서도 나타내시길 간절히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믿음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믿음으로 이끌어 가시는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일하기 위해 먼저 아브라함의 마음을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가 되도록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믿음의 과정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아침 이 자리에 앉아있는 누구든지, 얼마나 선을 행했든지, 악을 행했든지, 얼마나 기도를 많이 하고 적게 했든지 불문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뜨겁게 사랑하십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 속에 역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우리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요”라며 나사로를 살리기 위해 베다니에 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마리아와 마르다는 오빠가 살 것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사로를 살리기 전에 예수님이 무슨 일부터 시작했냐면 슬픔으로 가득한 마르다와 마리아 마음 안에 ‘그래 형편은 안 돼. 그렇지만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나를 믿어. 그러면 네 오빠가 다시 살아’ 하는 예수님의 마음을 넣어주는 일을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무덤 안에 나사로가 죽어 썩어가는 것과 같은 이런저런 말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와 고난이 있는데 그런 문제들을 넘기 위해서는 이 믿음의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합니다.

복음 전도자로 만드시려고

하나님은 여러분이 결혼해서 아들딸 낳고, 검은머리 파뿌리 되어 죽는 그런 삶이 아니라 여러분의 마음 안에 하나님의 세계를 만들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능력과 은혜를 경험하면서 살도록 인도하고 계십니다. 저는 저같이 보잘것없는 인간이 복음전도자가 될 거라고 상상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저를 복음 전도자로 만드시려고 뜻을 정하시고 어느 날 저를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죄를 다 사해 놓으셨는데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움과 함께 복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을 제게 주셨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너무나 신기하게 다른 일반 책들은 아무리 재미있어도 두세 번 읽으면 지겨운데 성경은 읽을 때마다 늘 새롭고, 놀라웠습니다. 말씀 속에서 어제 몰랐던 사실이 보이고, 예수님의 마음이 보였습니다. 전에는 욕망으로, 정욕으로, 쾌락으로 가득 찼던 제 마음에 예수님의 마음이 조금씩 흘러 들어와서 구석구석 자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내 죄가 사해졌어. 눈처럼 희게 씻어졌어.’ 이 마음은 우리에게서 나온 마음이 아닙니다. 전에는 우리에게 이 마음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수님의 피가 우리 죄를 사했다는 믿음을 주신 후, 그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감사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위해 살도록 우리를 이끌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세상 것으로 가득 차 방황하던 우리 마음에 하나님이 심겨져 ‘그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신 것이 헛되지 않았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나를 거룩하게 하셨어’ 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은 하늘에서 영광을 받으시고, 기뻐하시는 겁니다.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어떤 욕망이나 자랑을 위해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 안에 들어와서 ‘저분에게 이 이야기를 좀 전해야겠다’ 하면서 외치게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 속에 하나님의 마음이 들어가 변하는 것을 보면 너무나 아름다운 것입니다.

농부가 농사를 짓듯이

하나님은 농부이십니다. 황무지 같은 거친 들에서 돌을 제하고, 콩을 심고, 무를 심어 그 싹들이 자라는 것을 보고 기뻐하는 농부입니다. 여러분의 마음 밭에다가 하나님의 마음을 심어서 그 마음이 자라도록 뒷받침해 주시는 농부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가 허망한 육신의 욕망이나 쾌락을 좇아가던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거룩하고 귀한 뜻을 심읍시다. 그러면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역사하신 것처럼, 여러분에게도 동일하게 일하셔서 지금까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새롭고 신비한 일들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누구관대 애굽으로 가며, 내가 무엇이관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내리이까?”라며 거절하는 모세의 그 마음을 뽑아버리고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 내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 낼 거야. 너는 그렇게 돼”라는 마음을 심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어느 날 모세가 뒤돌아보니 자신이 6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이끌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향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는 불가능하게 보였는데…. 하나님은 하시네.’ 하나님은 모세에게 당신의 마음을 심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해 가나안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돌을 옮겨 놓아라.”

예수님이 나사로의 무덤에 갔습니다. “돌을 옮겨 놓아라.” “주여, 죽은 지 나흘 되어 냄새가 나나이다.” “그래, 냄새가 나. 그러나 내가 살릴 거야.” “그건 불가능해요.” “아니야, 나는 살릴 수 있어.” 우리와 예수님의 대화가 이와 같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예수님 앞에 ‘주님, 이건 안돼요. 저는 못해요. 기도 못해요. 저는 육신적이예요. 저는 세상을 좋아해요’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런 우리 마음을 다 뽑아내고, 결국 당신의 마음을 심을 것입니다. 
여러분, 저 박옥수 목사를 보십시오. 저는 한 번도 제가 목사가 되거나 복음 전도자가 되리라 생각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나같은 인간이 무슨 목사가 돼?’ 그런데 하나님은 저를 향한 당신의 뜻을 세우시고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아침에도 우리 마음을 하나하나 뽑아내고 거기에 하나님의 계획을 심고, 하나님의 복을 심어서 당신의 뜻이 꽃을 피워 영광스러운 열매 맺는 것을 보시길 원하십니다.

마음을 바꾼 마르다처럼

요한복음에 나오는 마르다 눈에는 이미 오빠가 죽고 썩어 냄새가 났습니다. “주님이 여기 계셨으면 오빠가 죽지 않았을 텐데” 하며 오빠가 산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네 오빠가 살아, 살아, 살아”라고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돌을 옮겨 놔라.” “주여, 썩어 냄새가 나나이다.” 그런데 주님은 “그래? 썩은 냄새가 나느냐, 그럼 그냥 놔둬라.”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고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라고 하셨습니다. 
그제서야 마르다가 마음을 바꿉니다. “예. 주님, 지금까지 제 생각만 믿었습니다. 돌을 옮겨놓겠습니다.” 이제 마르다 마음이 예수님 마음과 하나가 되면서 돌이 옮겨지고, “나사로야, 나오너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나사로를 붙잡고 있던 사망이 도망을 갔습니다. 할렐루야. 우리 주님은 사망을 이기고, 사단을 이기신 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분이 원하시면 모든 일을 하실 수 있고, 그 일을 오늘 아침 우리에게 행하시길 원하십니다. 여러분이 변하고 싶든지, 변하고 싶지 않든지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서 변합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사람이 된 것처럼, 나는 안 된다고 했던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나오는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변화되어 가고 있고, 하나님의 영광에 참예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 이제는 우리의 작고, 좁고, 어리석은 생각으로 이러쿵저러쿵 하지 말고 우리가 보기에 어떠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아멘” 하고 받는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 2018. 1. 28. 주일 오전예배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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