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대로 실로암 못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돌아와
상태바
말씀대로 실로암 못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돌아와
요한복음 9장 1절 ~ 12절 - 2017. 11. 5. 주일 예배 오전 설교 - 686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17.11.10 14: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안녕하십니까? 지난 한 주 동안 서울 올림픽공원 SK핸드볼경기장에서 성경세미나를 했습니다. 동시에 CLF(세계기독교지도자연합)도 진행했고 The‐K호텔에서는 ‘종교개혁 500주년 세계 기독교 지도자 공동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이번 기자회견은 CLF 참가 목회자들과 LA타임즈 한국지사를 비롯한 국내 언론사 기자들이 취재하는 특별한 시간이었습니다.
목사는 성도들을 영적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성도들도 사람이고 육신적인 부분이 많기 때문에 영적으로만 인도하려고 하면 잘 이해하지 못하여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도들이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진리를 이야기해야 합니다. 사실 진리 자체는 단순하지만 아무리 이론적으로 쉬워도 마음의 세계를 모르면 성경의 줄거리를 알아도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저는 이번에 CLF를 하면서 목회자들에게 자주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한 지 500년이 지났습니다. 종교개혁 덕분에 면죄부를 파는 형식적이고 어두운 교회에서 벗어났다는 것이 정말 감사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육을 사랑하고 욕망을 따라 흘러가는 데다 사단이 역사해서 오늘 이 자리에 앉은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를 불문하고 육신적으로 흘러가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내가 남편을 존경하면

여러분, 아내들은 남편을 사랑하고 위하면서도 종종 남편이 싫어하는 일인 줄 알면서도 꼭 해보고 싶어할 때가 있습니다. 남편도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부부가 화목하게 되는 것이 아내 입장에서 ‘내가 남편을 사랑해야지. 내가 남편을 잘 섬겨야지’라고 결심하고 각오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문제는 아내가 남편을 얼마나 존경하고 귀하게 보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아내가 남편을 존경하면 할수록 특별히 남편에게 잘하려고 안 해도 자연스럽게 남편이 기뻐하는 것을 하게 되고, 남편이 싫어하는 것을 안 하게 됩니다. 이것은 아내 뿐만 아니라 남편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결혼하고 살면서 아내가 귀하다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나이들수록 몸이 약해지는 것을 보고 ‘저 사람이 나하고 결혼할 때는 건강하고 튼튼했는데 내가 고생을 많이 시켜서 그런가’ 하는 마음이 들어 안쓰러울 때가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아내의 건강이 나쁠 때가 있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아내가 죽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때서야 아내가 귀한 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제가 아내에게 잘하려고 많이 노력합니다. 이렇게 아내와 남편 관계처럼 주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질과 마음을 드려서

이번 서울 성경세미나를 개최하기 위해서 많은 형제자매들이 하나님께 헌금을 드렸습니다. 천하보다 귀한 사람을 얻는 일에 함께한 형제자매들을 보면서 제 마음이 뜨거웠습니다. 이번 집회를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듣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물론 교회와 다 연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한 사람의 생명을 위해서 형제자매들이 물질과 마음을 드린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을 하면 할수록 우리 자신이 쓰고 남는 것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을 드리면 드릴수록 넘치게 채우시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오래 전 이야기입니다. 어떤 형제님이 서울 시청에서 20년 근무하고 퇴직금으로 이천만 원을 받았습니다. 그 형제님이 선교학교에 입학하려면 준비할 것들이 많았지만 그 퇴직금을 모두 헌금했습니다. 나중에 그 귀한 돈이 대덕 수양관 부지를 매입할 때 디딤돌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도 그 수양관에서 해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받는 것을 보면서 그 형제님이 헌금하신 퇴직금이 가장 귀하게 쓰여져서 정말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 마음속에서 예수님의 존재가 귀하면 귀할수록 우리가 복음을 위해 드리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 삶이 육신의 눈으로 볼 때는 부담스럽고 어려울 것 같지만 예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되면 기쁨과 감사가 넘치게 됩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하나님이 크게 자리잡은 사람과 작게 자리잡은 사람은 똑같이 암에 걸려도, 어려움이 와도 천지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주님의 넘치는 사랑을 경험합니다. 그렇게 주님이 인도하시는 삶을 살면 살수록 복음을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드리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프리카 정글에도 들어갈 수 있고 말라리아와 뎅기열에 걸려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은 뜨거운 마음이 일어납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이 우리 마음에서 귀하면 귀할수록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커지면 커질수록 어떤 어려움이 와도 그 어려움을 믿음으로 이기는 삶을 살게 됩니다.

눈먼 소경을 보시고

오늘 요한복음 9장 눈먼 소경에 관한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이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신지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수많은 사람을 만나셨지만 이제 눈먼 소경을 보신 것입니다. 저는 이 장면이 너무나 좋습니다. 소경은 앞을 볼 수 없는 사람이니까 예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소경이 예수님을 바라본 게 아니라 예수님이 소경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보셨다. 그리고 내가 앞을 못 보는 걸 아셨구나. 예수님은 내 불편함을 아셨구나. 예수님은 내 눈이 떠 지기를 원하셨구나.’ 이렇게 성경을 읽으며 묵상하다 보면 예수님의 마음이 보입니다.                                         
저는 1962년에 구원을 받았는데 어느 날 예수님이 저를 보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쌍한 소경 같이 헤매고 있는 저를 보시고 예수님은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습니다. ‘추하고 더러운 제게 손을 내미시고 말씀을 하셨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상이 안되는 기도를 하며

제가 자주 이야기했습니다만, 예전에 사역하던 초창기에는 연탄이 떨어지고 쌀이 떨어져서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하나님, 연탄이 떨어졌습니다. 연탄을 주십시오. 하나님, 양식을 주십시오. 제 딸 은숙이가 배고파하는데 먹을 게 없습니다.’ 그렇게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기도를 하다 보니 제가 시작한 기도의 내용이 다른 방향으로 이끌려 갔습니다. ‘하나님, 아프리카 정글에 사는 사람들은 뭘 먹고 삽니까? 그들에게 누가 복음을 전합니까? 하나님, 남태평양에 많은 섬들이 있는데 그 섬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옷을 입고 무엇을 먹고 삽니까? 그 섬에 사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사람들이 누굽니까?’ 그런 기도를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게 됐습니다. ‘주님, 그곳에 선교사를 보내게 해 주십시오. 책을 출판하게 해 주십시오. 방송을 하게 해 주십시오.’ 
여러분, 연탄 한 장이 없어 춥고 쌀 한 되가 없어서 굶주리고 있는데 방송국을 시작한다. 책을 출판한다. 선교사를 보낸다는 것은 상상이 안되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한 번 두 번 그런 기도를 하게 되면서 하나님이 제 기도를 인도하고 계시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나님, 왜 나로 하여금 남태평양을 위해서 아프리카를 위해서 기도하게 하셨을까? 거기에 복음 전하기를 기뻐하시는구나. 그러면 이것이 이루어지겠구나!’ 세월이 지나서 보니 하나님께서 그 기도대로 다 이루신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부르키나파소 대통령의 친서

지금도 하나님은 제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일을 생각하게 하십니다. 마인드 교육을 통해서 전 세계 많은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는데 이 마인드 교재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면서 깜짝 깜짝 놀랍니다. 부르키나파소의 청소년 문제가 심각한 가운데 있어서 최근 대통령께서 직접 저에게 친서를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지역장 목사님들과 함께 의논하여 16일부터 18일까지 부르키나파소에 제가 가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저는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인데 하나님께서 일하신 것이 놀라웠습니다. 예수님이 당신의 뜻을 따라서 마치 자동차를 운전하듯 제 인생을 이끌어 가십니다. 제 인생이 예수님의 손에 맡겨져 있고, 예수님의 사랑 안에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사용하고 계시고 당신의 복음에 우리가 마음을 쏟는 동안 세상의 욕망이나 쾌락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십니다. 당신께로부터 오는 기쁨과 평안, 당신께로부터 오는 은혜는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답고 귀한 것임을 깨닫게 될 때 여러분이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거짓말 한 죄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마약 중독자가 되거나 살인자가 되어서 교도소에 가는 일이 백지장 한 장 차이 일 때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누구라도 방탕한 생각에 이끌리고 그 생각에 마음을 내어 주면 1년이 채 못 되어 무서울 정도로 방탕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저는 19살에 구원받았는데 그전에는 아주 거짓말을 잘했습니다.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 사실대로 말하는 것보다 거짓말을 조금 보태면 듣기도 좋고 말하기도 좋아서 남에게 피해 안 주는 거짓말은 좀 해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몇 달 지나지 않아 저는 친구들 사이에서 거짓말쟁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 더 무서운 일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안된다는 사실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8절을 보면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선한 거짓말도 결국은 거짓말인데 ‘내가 이것 때문에 지옥 가겠구나. 이제 거짓말하지 말아야지’ 하며 결심을 하지만 제가 입만 열면 거짓말이 술술 나왔습니다. 그러던 제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날 거짓말이 끝났습니다. 예수님이 제 마음에 새 마음을 만들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소경이 된 이유

여러분, 요한복음 9장에서 예수님이 길을 가시다가 눈먼 소경을 만났습니다. 이 내용은 예수님이 우리 삶 속에서 어떻게 역사하시는가를 정확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요한 9:2~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의 생각은 “저 소경이 자기 죄로 소경이 되었습니까? 부모 죄로 소경이 되었습니까?”라는 두 가지 생각밖에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과 다른 마음의 세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소경을 보는 눈과 예수님이 소경을 보는 눈은 전혀 달랐습니다. 그래서 그의 부모나 그가 죄를 범한 게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눈먼 소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그나 그의 부모가 죄를 지어서 벌을 받은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죄를 지으면 벌을 받을 것이라고 두려워하는데 예수님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원망과 시비가 끝나

창세기에서 야곱의 아들인 요셉은 형들의 시기를 받아 애굽으로 팔려갔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애굽으로 팔리지 않게 할 수도 있었는데 그를 애굽으로 팔려가게 했습니다. 그것은 애굽과 요셉 가족을 기근에서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요셉이 하나님의 뜻을 몰랐을 때는 ‘형들이 나를 팔았어.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원수를 갚을 거야’라며 분하고 원통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이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면서 ‘형들이 나를 애굽에 팔았기 때문에 내가 총리가 되었구나. 그래서 애굽을 기근에서 구원하고 아버지의 자손들도 살리려고 하나님이 나를 앞서서 애굽에 보내신 거야’ 하며 형들에 대한 모든 원망과 시비가 끝났습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창 45:5)라고 이야기했지만 그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가 죽고 난 뒤에 형들이 “우리가 요셉을 팔았다고 원수를 갚으면 어떡하지” 하며 두려워했습니다. 이처럼 형들이 요셉의 말을 믿지 않고 자기 생각을 믿은 것처럼, 우리가 우리 생각을 믿으면 어려우면 어렵다고 불평하고 ‘누구 때문에 문제야’라고 원망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하나님이 이 일을 우리에게 허락하셨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값어치를 모르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날 때부터 소경 된 자에게 그가 소경이 된 것은 그나 그의 부모 죄로 인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사물을 보는 눈이 아닌 마음의 세계를 보는 눈을 뜨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똑같은 일을 보면서 전혀 다른 세계가 보입니다. 마음의 세계를 경험해 본 사람은 그런 눈을 수천만 원, 수천억 원을 주고 바꾸자고 해도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마음의 세계에 대해 눈을 뜨는 것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가치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가볍게 여깁니다.
아프리카 정글 깊숙이 있는 마을로 한 선교사가 들어갔는데 그 마을 추장이 성경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는 성경의 책장이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큰 돌덩어리로 눌러 놓았습니다. 선교사가 그 돌덩어리를 보고 “이것은 다이아몬드라고 하는데 엄청 비싼 거예요”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 추장이 그 선교사에게 다이아몬드를 주면서 다른 돌멩이 하나를 달라고 했습니다. 그 추장은 다이아몬드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에 흔한 돌멩이 취급을 한 것입니다.

마음의 세계를 알게 되면
 
보통 사람들은 마음의 세계를 잘 모르는데 구원받고 성경을 배우다 보면 마음의 세계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인지를 경험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바르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어라”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런 말씀들은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이 다른 생각들로 채워져 있으면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세상적인 생각들을 제하고 쓸데없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훈련을 자주 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우리 마음에 머물 수 있는 자리를 만들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빛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그 빛이 비치는 동안 어두운 생각, 두려운 생각이 물러가고 소망의 빛을 가지고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필요한지 아셨기에

예수님은 소경에게 “구걸을 얼마 동안 했느냐, 잠은 어디서 자느냐, 먹을 것은 있느냐”라고 묻지 않았습니다. 이미 예수님은 소경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소경에게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소경의 마음에 예수님의 말씀이 자기보다 높고 존경스러우면 실로암 못에 갈 것이고 쓸데없는 말이라고 생각하면 못으로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마음에서 주님을 높이고 귀히 여겨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 안에 어떤 일을 하셨는지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주님이 하신 귀한 일을 쓸데없는 생각이 와서 가리지 않도록 해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 마음에 주님이 밝게 빛나면서 “소경 된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구나. 하나님이 하신 것이구나”라고 깨닫게 되면서 행복해지고 영광스러운 삶을 살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

예수님께서 소경에게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라고 하신 말씀은 단지 눈먼 소경에게만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바로 주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소경은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듣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은 이 소경이 정말 귀하고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너무나 잘났기 때문에 목사의 말도 시들하게 여기고 성경도 시들하게 여깁니다. 
사단은 우리를 자기 생각만 믿고 사는 사람으로 만들어 가려고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소경이 예수님의 말씀을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받아서 실로암 못까지 넘어지고 엎어지면서 가서 밝은 눈을 갖게 됩니다. 그는 예수님의 사랑을 느끼며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희망과 소망을 갖고 살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모든 것을                                  갖추어도 두렵고 불평하며 괴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많은 지식을 배웠지만 이제는 주님의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 주님의 마음을 더 깊이 알아야 합니다. 이로 인해 여러분의 인생이 주님으로 말미암아 복된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 2017. 11. 5. 주일 예배 오전 설교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