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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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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이끄셨던 것처럼창세기 17장 15절 ~ 22절 - 2017. 10. 29. 오전 주일예배 설교 - 695호

 삶에 어려움이 닥쳤을 때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하나님의 마음과 연결된 사람들이 변화되어 밝은 삶을 사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평소 하나님과 별로 좋은 관계가 아닌 사람이라도 그의 삶에 어려움과 문제가 닥쳤을 때 정확히 하나님과 관계를 형성하면 그때부터 그의 삶에 하나님이 일하시기 때문에 어떤 문제든지 해결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현대 의학으로 불치병을 앓던 사람이 낫는 경우, 아주 강퍅하게 맞서 싸우던 부부가 서로 화목해 지는 경우, 매우 교만했던 사람이 구원받고 교회에 와서 겸손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아름다운 모습도 보았습니다. 
지난 한국 부활절 예배에 미국에 사는 김윤옥 자매님이 암에서 나은 간증을 하러 왔는데 그 간증이 제게는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그 전에 김 자매님의 여동생이 제게 전화해서 “목사님, 미국에 사는 언니가 암에 걸려 위중합니다. 가족회의를 해서 모은 돈으로 언니의 암을 치료하는데 제가 집안일도 도와주고 맛있는 음식도 만들어 주면 좋겠다고 해서 미국으로 갑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행위와 상관없이

제가 목회하면서 암에 걸린 사람들을 많이 만나 상담하다 보니, 평소 하나님을 잘 믿고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이라면 병에 걸렸을 때 “하나님, 제가 병에 걸렸습니다. 하나님이 이 병을 고쳐주세요”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 행위가 온전한 사람은 없기 때문에 자신의 행위에 매이면 믿음을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종종 암에 걸린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을 잘 섬기지도 못했고 육신의 쾌락을 즐기며 세상에서 방탕하게 살았는데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 주시겠나? 하나님이 나를 저주해서 암에 걸리게 한 것 같아’ 하며 그의 마음이 죽음과 더 가까워지는 것을 봅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기 때문에 사실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대로 갚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을 들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선하냐 악하냐를 전혀 상관하지 않으시는데 ‘나는 죄를 많이 지었어. 나는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내 욕심만 챙겼어. 그래서 하나님은 나를 살리시지 않을 거야’ 하며 우리 스스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역사하신다는 희망을 포기해 버리고 죽음으로 향합니다.

생각의 사슬에서 풀려나 

저는 김 자매님의 동생과 통화를 마친 후, ‘그 여동생이 언니한테 나만큼 말씀을 자세히 전해주지 못할 텐데. 내가 전화번호를 물어서 그 언니한테 자세히 이야기해 줄 걸 그랬네’ 하며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이튿날 제 휴대폰을 보니 부재 중 통화 목록에 한국 전화번호가 아닌 번호가 있어서 통화 버튼을 눌렀습니다. 마침 김윤옥 자매였습니다. “자매님, 그렇지 않아도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라고 말하며 김 자매님에게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마음과 연결되어 하나가 되는 신앙에 관한 부분을 설명했습니다. “자매님, 우리의 행위를 보지 말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흘리신 그 피로 우리 죄가 사해진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담대하게 하나님을 바라보세요”라고 소망을 얘기했습니다. 
그날부터 김 자매님은 그동안 자기 행위를 보며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도록 자신을 꽁꽁 묶어두었던 생각의 사슬에서 풀렸습니다. 그렇게 김 자매님과 하나님의 마음이 연결되면서 불과 며칠 사이에 몸이 좋아져 수술하지 않게 되었고 곧이어 암에서 깨끗이 나았습니다. 

도금한 목걸이

예전에 미국 시카고에서 집회를 마치고 가려는데 액세서리를 판매하는 한 자매님이 제게 도금한 목걸이를 한 움큼 주었습니다. 바쁜 일정 가운데 저는 그것을 미국 교회 목사님께 드린 것 같은데 제가 인천공항에서 나오다가 세관에 걸렸습니다. 세관에 미리 물품 신고를 하지 않아서 갑자기 금괴 밀수범으로 몰렸습니다. 제가 세관원에게 “그것은 금목걸이가 아닙니다. 도금한 것입니다”라고 했더니 세관 직원이 “저는 순금인지 아닌지 구분 못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혹시 칼을 가지고 있습니까? 칼로 한번 긁어보세요.” “그럼, 제가 긁어 봐도 괜찮습니까?” 하더니 그가 가져온 칼로 목걸이를 긁었습니다. 표면은 금인데 속에서 다른 금속이 나오니까 세관원이 빙그레 웃으며 멋쩍게 말했습니다. “이것, 하나 제게 선물로 주실 수 있어요?” 제가 그 세관원에게 도금한 목걸이 한 개를 주고 공항을 나왔습니다. 
여러분, 구리반지를 금으로 도금한다고 해서 순금반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순금목걸이나 순금반지는 칼로 긁어도 끝까지 금이 나와야 합니다. 우리가 선하다고 말할 때는 악이 없이 선만 행해야 선한 사람인데 그러지 못하니까 우리가 행하는 선은 도금한 목걸이나 반지처럼 전부 가짜 선입니다. 

자신을 선하다고 생각하면

보통 사람들은 한 번쯤 남을 도왔던 것으로 자신이 선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6장에서 하나님은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라고 말씀하시며 인간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하다라고 하셨습니다. 
오래전에 저희 아버지께 예수님을 믿으시라고 하였더니 “나는 천국 갈 자신 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버지께 “어떻게 가실 수 있으신데요?”라고 질문하자, “내가 하나님 앞에 착한 일을 많이 했다. 죽은 사람 살리는 것보다 더 착한 일이 어디 있겠니?”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굉장히 지혜로우셔서 6․25 한국전쟁 때 죽을 사람을 여러 명 살리셨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는 당연히 ‘당신이 선하다’라고 생각하셨습니다. 이렇게 저희 아버지처럼 자신이 선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문제점은 반대로 자신의 악이 드러나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항암 치료를 받는 중에

한번은 김 자매님이 항암치료를 하면서 식욕이 떨어져 전혀 음식을 먹을 수 없을 때 제게 전화를 했습니다. “목사님, 이젠 안될 것 같아요. 죽을 것 같아요.” “자매님, 왜 그러세요?” “밥을 거의 못 먹었어요. 항암치료 받느라고 몸이 많이 약해졌고, 입맛이 없어서 밥을 먹을 수가 없어요.” 저는 암으로 죽어가는 사람이 살고 싶은데 입맛 없다고 밥을 안 먹는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환자가 병을 이기려고 약도 먹는데, 김 자매님은 입맛이 없어 밥을 못 먹는 걸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제가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자매님, 자동차는 입맛 없어도 가솔린 넣으면 움직입니다. 자동차에 가솔린 넣는다고 생각하고 입맛 없어도 그냥 드셔 보세요. 힘이 나요.” “아, 그렇네요.” 김 자매님은 그날부터 음식을 탁자 위에도 놓고, 책상 위에도 놓고, 방에도 놓은 후 보이는 대로 음식을 먹고 억지로 씹어 삼켰다고 합니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 지나니까 밥맛이 돌아오고 몸도 좋아졌습니다. 종종 아무리 죽어가는 환자라도 고집스러운 사람은 ‘난 죽어도 못 먹어’ 하며 음식을 먹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제 말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김 자매님이 참 고마웠습니다. 

아담 때부터 사단에게 속아서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내 생각이 정말 옳아’라고 생각할 때는 끝까지 우기게 됩니다. 종종 논리에 맞지 않아도 자신의 생각이 옳다며 우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과는 대화를 나누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내 의견과 상대방의 의견이 서로 다를 때, ‘아, 내 생각이 틀렸구나!’ 하며 깨달으면 상대방의 의견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창세기를 보면, 수천 년 전 하나님이 아담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을 수 있지만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해주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단이 뱀에게 들어가서 하와를 찾아가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로 말했습니다. “네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네 눈이 밝아져 네가 하나님처럼 될까봐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거야.” 뱀의 말을 들은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으니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처럼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피하여 숨었습니다. 바로 사단에게 속았던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여러분, 오늘 읽은 창세기 17장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로 이끌어 내서 믿음의 조상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이 좋아서 믿음의 조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손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도록 하시고 그가 우리 죄를 위해 죽을 때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므로 믿음의 근본인 예수님의 조상이라는 것입니다. 
어느 날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99세 때 불러서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하라.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눈으로 볼 때는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자신은 아기를 낳기엔 너무나 늙었고 사라도 90세라 아기를 낳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단이 수천 년동안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면서 자연스럽게 말씀과 반대되는 생각을 심었습니다. 그래서 말씀이 우리 생각과 일치하면 믿고 일치하지 않으면 믿지 못하는 아브라함 같은 신앙을 하게 만든 것입니다. 

믿음으로 아기를 낳고

창세기 18장에 이르면 하나님이 동일하게 아브라함의 집에 나타나서 말씀하십니다.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예, 장막에 있습니다.” “기한이 이를 때에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번에는 마음이 바뀌었는데 사라는 자신이 늙었고 남편도 늙어서 아기를 낳을 수 없다는 자기 생각을 여전히 갖고 있었습니다.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이 많아 늙었고 사라의 경수는 끊어졌는지라.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창 18:11~12) 그러나 히브리서 11장을 보면,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라” 하며 사라가 믿음으로 아기를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들이 처음 신앙생활 할 때 우리 보기에 가능한 사실만 믿고 말씀을 믿지 못하였으나 점차 우리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내가 볼 때는 아들을 낳을 수 없을 것 같아도 전능하신 하나님이 낳게 하시면 낳을 수 있어’ 하며 하나님을 점점 믿게 되는 과정을 설명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의롭다 하시면 

제가 1962년에 구원받기 전까지 장로교회를 다니며 배운 것은 요한일서 1장에서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9)라며 우리가 자백할 때 죄가 씻어지는 부분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구원받은 후 1974년에는 대구 파동에서 사역하면서 성경을 많이 읽고 깨달음도 있었지만 인간적인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꼭 믿음의 길을 산 것은 아니지만 세월이 지나고 보니 그 당시 하나님이 구원의 비밀을 제게 보여주셨습니다. 히브리서 성경은 전체가 영원한 속죄에 대한 말씀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구약의 호세아 14장을 읽으며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이라야 그 도에 행하리라 그러나 죄인은 그 도에 거쳐 넘어지리라.”(호 14:9)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의롭게 된 것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원래 우리는 죄를 지었으니까 모두 죄인이라고 생각했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씻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의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죄인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의롭다고 말씀하시면 의인이 맞습니다.

영동고속도로를 가다가

수십 년 전, 우리 가족이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원주로 가다가 생긴 일입니다. 그 당시 2차선 도로라서 중앙 분리대가 없어 추월을 하려면 중앙선을 넘어가야 하는데, 관광버스 한 대가 우리 차를 바짝 따라오면서 비키든지 아니면 빨리 가라는 신호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라이트를 켜면서 제 차 아주 가까이 밀어붙였습니다. 제가 피할 만한 곳으로 갔었는데, 마침 커브길이어서 건너편 차가 우리 차선으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브레이크를 밟으면 뒤에서 오는 버스와 부딪힐 것 같고 그렇지 않으면 마주오는 차와 부딪힐 것 같아 그날 ‘난 죽었다’라는 심정으로 핸들을 돌려 가까스로 차를 피했는데 가슴이 너무 떨렸습니다. 그래서 뒤쫓아 오던 버스 운전사를 그냥 놔둬선 안되겠단 생각에 바짝 뒤쫓아 가니까 갓길에 버스가 정차하여 제 차도 세웠습니다.
모범운전이라는 완장을 찬 운전사가 버스에서 내리길래 “도대체, 운전을 왜 그렇게 합니까? 왜 안전거리 안 지켰어요? 당신 때문에 죽을 뻔했잖아요”라고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들이받지 않았으면 안전거리 지킨 거 아니요?”라고 답했습니다. “무슨 소리에요? 2차선 도로에서는 80m, 4차선 도로는 100m! 차간 거리, 교통법규에 나와 있는데 모범운전사가 그런 법규도 몰라요? 돈으로 모범운전사 땄지요?” 하며 다시 소리를 질렀습니다. 옆에서 아내와 상대편 버스 안내양까지 내려서 말렸는데, 그때 갑자기 ‘너는 하나님 믿는 목사잖아’라는 생각이 떠올랐지만, 지금까지 벌여 놓은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정말 난감했습니다. 

자신이 옳은 사람은

 우리 자신이 옳은 사람이면 절대 자신의 주장을 버리지 못합니다. 창세기 17장에서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이 아기를 낳는다고 말씀하셨으면 그들의 생각에는 아기를 낳을 수 없을 것 같아도 ‘아기를 낳는 줄 믿습니다’라고 믿어야 했는데 ‘내가 늙었고 사라는 경수가 끊어졌는데 어떻게 아기를 낳아?’ 하며 하나님을 거스르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11장에 와서 보면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줄 앎이라” 하며 사라가 그의 마음을 돌이키고 말씀을 믿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도 이런저런 일을 통해서 우리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도록 하십니다. 아브라함이 백세나 되어 믿음을 가졌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 그 씨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는 귀한 은혜와 축복을 베푸시는 것을 봤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믿음의 조상, 즉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는 은혜와 복을 주셨는데, 구원받은 우리에게는 복음의 역사가 나타나도록 하시려는 것입니다. 

해외 선교를 시작하다 

1988년 대한민국 서울에서 올림픽이 있었을 당시만 해도 기쁜소식선교회 소속 교회가 국내에 30여 개 정도 있었고, 사역자도 30여 명밖에 없었습니다. 그 이후 1989년 독일에 선교사 파송을 시작으로 1990년에는 본격적으로 해외 선교를 시작했는데 5년이 지난 1994년에는 아프리카에서도 정식으로 선교를 시작했습니다. 지금 전 세계에 200여 명의 선교사가 나가 있고 현지 목회자는 500여 명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파송한 선교사와 그 가족까지 합하면 800여 명이 넘는데 그들을 통해서 그 주위의 많은 나라까지 복음을 전하면서 우리 기쁜소식선교회가 전 세계를 누비게 되었습니다. 

우리 생각을 버리고

여러분, 우주도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움직이는데 누가복음 24장에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눅 24:47)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재정의 약 75%를 해외 선교를 위해 사용하여 죄 사함을 얻게 하는 진리를 땅 끝까지 전 세계로 전파하는데 그 때마다 하나님이 돕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오랫동안 교회를 다녀도 죄인에서 못 벗어나던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전하는 죄 사함의 복음을 듣고 구원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일을 기뻐하셔서 전 세계의 여러 나라가 우리에게 문을 열고 계속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아직까지 여러분 자신의 생각 속에 빠져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을 향해 큰 계획을 가지고 계신데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계획을 모르고 있지 않습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만나면서 변했듯이 여러분도 자신의 생각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면 열국의 어미가 될 수 있고 믿음의 조상이 되는 영광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이 아무리 옳아 보여도 그릇될 수 있으니까, 우리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과 마음을 같이 한다면 우리의 일은 하나님의 일이 됩니다. 그러면 우리의 자식이나 노후도 너무나 축복된 삶으로 변할 것입니다. 그런 귀한 은혜가 넘치게 되길 바랍니다. 
- 2017. 10. 29. 오전 주일예배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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