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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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자
예레미야 31장 15절 ~ 34절 - 2017. 10. 22. 주일 오전예배 설교 -  684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17.10.27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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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5개국 순방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지난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 5일간 에티오피아, 짐바브웨, 잠비아, 스와질란드, 모잠비크 5개국에서 국가 정상 및 정부 관료들과 면담을 가졌습니다. 이번 아프리카 5개국 방문 기간 동안 가는 곳마다 말씀을 전했는데 그 말씀을 듣고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마음을 갖게 된 귀한 분들을 만날 수 있어서 너무나 기뻤습니다.
제가 국제청소년연합(IYF)을 운영하면서 참 감사한 일은 IYF를 통해 청소년들의 마음이 변한다는 것입니다. IYF를 설립하게 된 계기였던 ‘앤디’ 이야기는 여러 번 말씀 드려서 모두 잘 아실 겁니다. 앤디는 LA에 살면서 15살부터 마약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주머니에 권총도 넣고 다녀서 앤디 어머니는 아들을 잃을 것 같은 두려움이 컸습니다. 제가 LA교회를 방문했을 때 그 부인이 저를 찾아와 아들을 도와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저는 한국에 살기 때문에 LA에 사는 아이를 어떻게 도울 방법이 없어서 대답을 못했습니다. 그 부인이 세 번째로 저를 찾아와 울면서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그럼 “앤디를 한국으로 데려가도 될까요?”라고 물었습니다. 부인의 동의를 얻어 앤디가 한국에 와서 복음을 듣고 구원받았습니다. 구원을 받은 앤디는 몰라보게 변하여 이제 결혼까지 해서 어엿한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앤디야, 너는 나의 전부야!” 

앤디가 저를 만나기 전 LA에 살 때 어머니가 그의 주머니에서 권총을 발견하고 너무나 두려워 아들을 앉혀 놓고 이야기했습니다. “앤디야, 너는 나의 전부야. 나는 너밖에 아무 소망이 없어. 그런데 너, 왜 이러니? 꼭 이렇게 살아야 돼?” “엄마, 이러지 마. 내가 이렇게 살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알아. 나도 하루에 열두 번도 더 죽고 싶어. 그런데 왜 엄마까지 날 괴롭혀!” 세상에 마약이나 도박하는 사람, 알콜중독자, 방탕한 사람들 중에서 자기가 하고 싶어서 그 일을 계속하는 사람은 아마 단 한 명도 없을 겁니다. 본인도 그 일을 그만두고 새롭게 살고 싶은데 그것이 안되니까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목사님들이 성도들에게 “뭘 해라. 이것은 하지 마라” 하는 설교를 많이 합니다. 그런 설교를 더 해야 할 필요가 없는 것은 보통 사람은 자신이 해야 할 행동과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이미 다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약하는 사람, 음란한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 게임에 빠진 사람들이 그만 두려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안되는 것을 어떻게 합니까?

 ‘내가 이것을 몰랐구나’

앤디가 한국에 와서 변화되어 미국에 돌아간 후 매년 많은 학생들이 한국으로 저를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첫 해에는 28명, 다음해부터 58명, 123명 이렇게 늘어났습니다. 당시만 해도 학생들을 위한 편의 시설이나 운동기구 등이 없어서 학생들이 직접 말은 안했지만 투덜투덜거렸습니다. 어느 날 아침 식사 후에는 학생들이 다 사라져서 찾아가 보면 골목길 남의 집 대문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습니다. 그런 학생들이 예수님을 만나 죄 사함 받으니까 예수님의 사랑이 그들의 마음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예수님이 나 같은 인간을 위해서도 피를 흘리셨구나. 내가 그걸 알았다면 이렇게 막 살지 않았을 텐데. 내가 이것을 몰랐구나’ 하며 학생들의 마음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 있던 어두운 생각들이 물러가고 기쁨과 행복으로 가득차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금도 가끔씩 앤디와 전화 통화를 합니다. “목사님, 저는 지금도 어려울 때가 있고 힘들 때가 있지만 한국에서 지냈던 때를 생각하면 힘이 나요. 그때 너무나 행복했어요.”

스와질란드 국왕

저는 이번 아프리카 5개국 순방 기간 중에 스와질란드 국왕을 만났습니다. 국왕과의 만남은 세 번째인데 목요일 오후 5시에 면담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면담시간을 두 차례나 조정했습니다. 결국 다음날 새벽 5시 30분에 국왕과 면담 시간을 정했습니다. 국왕의 어머님께서 해외여행을 갔다가 목요일에 돌아오셨는데 국왕께서는 자기를 낳아주신 어머님도 제가 전하는 말씀을 들으실 수 있도록 면담시간을 계속 조정하셨던 것입니다. 스와질란드 국왕과 제가 처음 만났을 때는 면담 시간이 40분이었습니다. 간단히 인사를 드린 후 제가 복음을 전했는데 시간이 다 되어 제가 말씀을 그쳤습니다. 그러자 국왕께서 계속 말씀을 전해 달라고 해서 30분을 더 전했는데 또 계속 말씀을 더 전하라고 하셔서 1시간 30분 동안 말씀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면담에서도 제가 말씀을 전하는 동안 참 감격해하시며 “목사님은 우리 가족입니다. 여기 자주 오십시오”라고 하셨습니다. 이 복음을 듣고 구원받으면 한 나라의 통치자도 변합니다. 하나님이 국왕의 마음에 하나님의 법을 기록하신 것입니다. 그 기록이 마음에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를 불문하고 예수님을 위해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서 우리를 이끄시기 때문에 세상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참 평안과 쉼을 얻게 됩니다. 

유월절을 지키라는 이유

사람마다 개성도 다르고 얼굴 모양도 다른 것처럼 우리 마음의 세계도 다릅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에는 예수님이 기록한 사랑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 한 어르신이 “그 오랜 세월 동안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그의 마음을 괴롭히고 두려움과 양심의 가책을 준 더러운 죄가 예수님의 피로 깨끗하게 씻어져 이제 죄 사함을 받았다”라고 간증을 하셨습니다. 
구약 출애굽기를 보면 “너희들이 애굽에서 나온 그날을 기억해라. 유월절 양을 잡아서 유월절을 기념해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월 10일 양을 미리 준비해 놓았다가 흠이 있는지 없는지 살펴보고 흠이 없으면 정월 14일 저녁 해질 때에 그 양을 잡습니다. 그리고 그 양의 피로 양을 먹을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날로나 물에 삶아 먹지 말고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월절 행사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린양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애굽에 내리는 저주에서 벗어나 애굽에서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해마다 유월절 절기를 기리고 지키라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가 죄에서 벗어났던 날이 우리 마음에서 희미해지지 않도록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에서 벗어났던 그날의 큰 기쁨과 감사를 우리 마음에 새기라는 것입니다. 

돌판에 기록된 계명
 
저도 죄에서 벗어났던 날 예수님의 사랑이 제 마음에 있던 추하고 더러운 죄를 씻겨 주신 것을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단은 세상의 고통이나 근심, 두려움으로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왔던 기쁨과 사랑, 은혜에서 멀어지게 만듭니다. 그때 우리 마음을 이끌어 줄 인도자가 없으면 정욕과 욕망에 빠지게 되고 어둠과 죄악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돌판에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등의 계명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돌판에 기록된 말씀과 상관없이 죄악 속에서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성경 예레미야 31장에서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 마음에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실 때 내 죄로 인한 형벌이 끝났어. 나는 죄에서 자유로워졌어” 하며 주님이 세밀하게 기록해 주셨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우리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이라면 그 마음에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렘31:34)라는 말씀이 선명하게 기록되어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있지만

오늘날 한국에 많은 교회가 있지만 사람들에게 어떻게 죄 사함을 받고 죄에서 해방 받는지 명확하게 가르치지 못한 건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오랫동안 교회를 다녀도 늘 죄에서 벗어나지 못해 갈등합니다. 죄를 해결하지 못한 성도들이 목사님에게 질문을 합니다. “목사님, 저는 구원을 안 받았어요. 어떻게 해야죠?” “아니야, 자네는 구원받았어. 교회 나오면 구원이야. 예수 믿으면 구원이야”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목사님은 구원이라는데 나는 구원받은 아무 증거가 없어요. 나는 마음에 평안도 없어요. 난 마음에 죄가 있어요. 그래서 괴로워요”라고 말합니다. 목사님이 “처음엔 그러다 점점 믿음이 생기는 거야. 그게 구원이야”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신앙을 하던 많은 분들이 죽음 앞에 설 때 너무나 두려워하는 걸 봤습니다. 어떤 장로님은 한평생 교회를 충성스럽게 섬겼지만 마지막까지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내가 평생 교회를 섬겼는데 죄 사함의 확신이 없어!”라며 절망하고 돌아가신 분도 있다고 합니다.

간음한 여자에게 새로운 마음을

간음 중에 잡힌 여자가 돌에 맞아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그 여자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 여자가 처음에는 음란한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고 그 생각이 간음하게 했습니다. 그로 인해 돌에 맞아 죽어야 할 위치에 놓이게 되어서 여자의 마음은 온통 두려움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그 여자에게 새로운 마음을 주셨습니다. 음란한 생각을 이길 수 있는 힘,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여자는 지금까지 한 번도 가져 보지 못한 감사와 기쁨으로 가득찼습니다. 예수님이 손가락으로 땅에 글을 쓰셨는데 그 여자의 마음에 ‘예수님은 나를 살리셨어. 나를 죄에서 구원해 주시고 정죄하지 않는다고 하셨어’라고 한 평생 지울 수 없는 글을 기록해 주신 겁니다. 주님께서 우리 마음에도 그런 새로운 글을 기록하셨습니다. 

살인수로 복역하면서 

우리 선교회의 김 목사님은 살인수로 복역하면서「죄 사함 거듭남의 비밀」을 읽고 구원받았습니다. 그는 구원받고 처음으로 ‘내가 너무나 바보처럼 살았구나. 정말 어리석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교도소에서 17년을 복역하고 출소할 날이 가까워졌습니다. 그가 볼 때 교도소에서 기독교 지도자, 불교 지도자, 가톨릭 지도자들이 가장 신실한 사람인데 그들도 출소하여 얼마 안 되어 죄를 짓고 다시 교도소로 들어왔습니다. ‘교도소에서 신실하다는 저 사람들이 다시 죄를 짓고 들어 오는데 그보다 못한 나도 출소하면 다시 교도소에 오겠구나. 그러다 한평생 교도소에서 살겠구나.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 하며 깊이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내가 아무리 힘을 써도 나의 힘으론 안되겠구나. 나를 구원으로 이끌어 주신 책을 쓰신 저자에게 부탁해야 겠다’라고 생각하고 제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목사님, 제가 교도소에서 살인수로 복역하다가 목사님의 저서를 읽고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제가 세상에 나가면 또 죄를 지을 것 같은데 목사님이 저를 이끌어 주십시오.” 그래서 제가 그에게 교회로 오라고 했습니다. 

교도소 마인드 강사가 되다 

그 형제가 출소하여 저희 교회로 찾아왔습니다. 교회에 작은 방이 있어서 거기에서 지내도록 해주었습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화장실 변기 닦는 것부터 시작해서 쓰레기 정리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가 나중에 간증하면서 “내가 여기 와 있는지 열흘 됐는데 아직 교도소 안 갔다. 한 달 됐는데 교도소 안 갔어. 두 달 됐는데 안 갔어” 하며 일 년을 보내는 동안 너무나 행복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고 선교학교를 졸업하여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사역하다가 어느 날 전국 교도소에 자신이 변한 이야기를 강의할 수 있게 해달라고 편지를 보냈습니다. 한 교도소에서 강의를 하라는 연락을 받고 갔습니다. 담당 교도관이 “선생님, 아시겠지만 교도소에서 강의하면 죄수들이 다잠을 잡니다. 이해해 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단에 서서 “여러분, 교도소에서 나가면 죄 안 짓고 바르게 살려고 각오하고 노력하지요? 그 노력은 헛됩니다. 여러분이 교도소에서 나가면 다시 죄를 짓습니다. 제가 17년 동안 교도소에서 살았고, 삼청교육대까지 가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제 마음이 바뀌지 않았습니다. 제 마음을 바꾼 것은 예수님의 사랑이었습니다”라고 강의를 했습니다. 그날 죄수들이 한 명도 졸지 않고 다섯 시간 강의를 들었답니다. 교도관들도 같이 듣고 “바로 저 말씀이야. 우리는 죄 짓지 말라고만 했어. 저렇게 해야 되는데”라고 말했습니다. 이제는 인기 강사가 되어 많은 교도소에서 강의 요청이 들어온다고 합니다. 그의 간증과 말씀을 듣고 교도관들과 재소자들이 변하는 것입니다. 

내 죄가 씻어졌다는 믿음이 

성경에는 우리가 어떻게 죄를 씻고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에대해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1서 1장 9절에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자세히 보면 죄 사함을 받는 것은 자백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백으로 죄 사함을 받는다고 잘못 알고 있습니다. 십자가 보혈의 능력을 깨닫지 못하면 아무리 자백을 한다 할지라도 죄가 씻어지지 않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오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7~8) ‘그 은혜를 인하여’라는 것은 대가 없이 받은 것을 의미합니다.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롬 4:4) 내가 일을 해서 얻는 것은 은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값없이 구원을 주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흘리신 십자가의 피만 바라보고 내 죄가 씻어졌다는 믿음이 와야 그것이 구원인 것입니다.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오늘 읽은 예레미야 31장 말씀에 대해 더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이후에 놀랄만한 이야기를 하십니다. 제자들이 “주께서 이스라엘 회복하심이 이 때이니까?”라고 묻자 예수께서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사마리아를 넘어 땅 끝까지라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성령이 임해서 그들이 주의 복음을 전했지만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베드로가 이방인인 고넬료 집에 가서 복음을 전했을 때는 많은 유대인들로부터 비방을 받았습니다. 

“이방인의 때”를 주시고 

예수님이 살아 계실 때 누가복음에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후에 “이방인의 때”를 주시고 이방인들이 구원받을 수 있는 귀한 은혜를 허락하셨습니다. 그 은혜의 시간이 이방인에게 2000년 정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주후 78년에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에 와서 수많은 유대인들을 죽이고 도시를 황폐케해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 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하고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예루살렘 성전 터에는 현재 회교 신당이 건축되어 있어서 유대인들이 들어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방인의 때가 끝나면 그 성전 터 위에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질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해야
 
예루살렘 성전이 유일한 성전 건축물인데 우리가 성전에 대한 정확한 의미를 성경에서 찾아보면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 3:16) 하며 성령을 마음에 모신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몸이 성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읽은 예레미야서에는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것이라”(렘 31:33) 하며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깨달았을 때, 평안과 기쁨을 주시며 우리 삶을 거룩하게 지키는 능력을 주시는데 그것이 바로 성령입니다. 
여러분, 간음하다 잡힌 여자가 간음을 안 하려고 각오하고 결심해도 자신의 힘으로는 그 음란한 생각을 이겨내지 못합니다. 오늘날 참 많은 사람들이 자기 힘으로 술이나 도박, 음란한 생각과 마약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지만 벗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죄 사함을 받으면 그 마음에 성령이 들어오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해 자주 이야기할수록 기쁨이 커집니다. 이제 우리 자신을 의지하는 신앙을 내려놓고 우리 마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과 사랑을 기억해 봅시다. 그 사랑이 우리를 거룩하고 깨끗하게 만들며 죄악을 이기는 복된 길로 이끄실 것입니다.
- 2017. 10. 22. 주일 오전예배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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