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을 증거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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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을 증거할 때
사도행전 5장 12절 ~ 42절 -2017. 10. 8. 주일 오전예배 설교- 682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17.10.14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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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를 보낸 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추석 명절 잘 지내셨습니까? 저는 이번 추석 연휴기간 내내 에티오피아 ‘엘샤다이’ 기독교 방송으로 나갈 설교를 50강 가까이 녹화하였습니다. 그리고 어제는 충주에서 진행된 전국 교회 장로 모임에서 장로님들과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이번 모임을 통해 장로님들이 복음을 위해 살려는 뜨거운 마음을 보았는데 그 모습이 참 아름답고 귀했습니다.
오늘 읽은 사도행전 5장에서는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땅 값을 감춘 일로 죽임을 당한 후 교회에 큰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사도들을 통해 수많은 병자가 나음을 받고 백성들에게 칭송을 받게 됩니다. 사람들이 구원받고 난 후에 ‘난 천국 가니까’ 하는 마음으로 태만하게 살다가 육신을 쫓아 죄 속에 빠져 자신도 모르게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가로막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에게 돌이킬 기회를 주시는데, 그래도 그들이 마음을 돌이키지 못하면 그들의 죄나 어두움이 성령의 역사를 거스르기 때문에 결국 그들을 제하시는 것을 이 성경을 통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도 어두움이 있으면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지 못하다가 그것들이 제하여 진 뒤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일어나는 것을 교회의 역사에서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사람들이 세상을 살다 보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어려움과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그러면 사람들의 마음이 고통과 염려 그리고 두려움으로 가득 차게 되고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을 사용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교회에 와서 말씀을 듣고 교제하다 보면 ‘아,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시지’ 하는 생각이 우리 마음에 가득 차게 되면서 두려움이 물러가고 예수님이 우리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있는 욕망, 분노, 절망, 음란, 거짓, 물욕 등은 다 어둠에 속한 것들입니다. 우리 스스로 이런 어둠을 내쫓기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빛이시기 때문에 우리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으로 가득 차게 될 때 어둠은 저절로 물러가게 됩니다. 

경제성장을 지켜 보면서

제가 어린 시절이던 6‧25 전쟁 직후 우리나라의 1인당 GDP는 65불이였다고 합니다. 저는 GDP 65불에서 현재 GDP 3만 불까지 상상할 수 없는 경제성장을 보면서 살아왔습니다. 1970년 초 박정희 대통령께서 ‘100억 불 수출, 국민소득 1000불’의 목표를 제시했을 때 온 국민이 깜짝 놀랐습니다. ‘대통령이 너무 허황된 목표를 세운 것 아니야? 어떻게 우리가 국민소득 천 불이 될 수가 있어’라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거뜬히 천 불을 넘었고 2천 불, 3천 불 5천 불, 만 불 시대를 달성했으며 지금은 3만 불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너무나 잘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 국민들은 행복하지 않다고 합니다. 서로 헐뜯고 불평하고 많은 사람들이 곤고해하며, 이혼율도 세계 1위라고 합니다. 돈으로 자동차, 아파트, 세탁기 등 갖고 싶은 것은 다 살 수 있지만 만족은 없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인디언마을

얼마 전 미국 국제청소년연합(IYF)에서 한 인디언 마을에 봉사를 갔습니다. 그 마을에 약 2천여 명 정도 되는 인디언들이 살고 있는데 작년 9월에는 갑자기 한 달 동안 100여 명이 자살했다고 합니다. 인디언들은 미국 정부의 인디언보호정책에 의해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을 만큼 생활비를 지원받는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힘들게 일할 필요가 없어 많은 인디언들이 시간을 허비하면서 삶의 의미를 느끼지 못하고 마약과 도박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런 곳에 50여 명의 IYF단원들이 찾아가 그들과 함께 놀이도 하고 소망의 메시지도 전하면서 무표정이었던 인디언 청소년들의 얼굴이 변화되었습니다. IYF단원들이 그들의 얼굴에 웃음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영적으로 무지한 사람들은 물질적 풍요를 위해 돈을 벌려는 욕망을 쫓아가지만 만족은 없습니다. 참된 행복과 기쁨은 우리 마음에 예수님이 계실 때 생깁니다.

CCTV에 녹화된 영상

요즘은 CCTV라는 것이 있어서 사고가 발생하면 그 시간에 녹화된 영상을 돌려본다고 합니다. 만약 우리 마음을 촬영하는 CCTV가있어서 우리 마음을 하루종일 촬영해서 돌려본다면 두려움, 절망, 미움, 음란, 거짓 등 어두움이 가득한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 마음에 가득해서 우리 인생에 고통을 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면 근심이나 두려움이 없어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돈으로 좋은 차를 탈 수도 있고 좋은 음식을 먹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음속 가득한 어둠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돈 몇 푼 때문에 오히려 고통을 자초하는 사람들을 보면 얼마나 불쌍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마음의 세계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월이 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까? 저녁에 해가 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까?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고려 말 유학자 우탁의 고시조 가운데에 이런 시조가 있습니다. “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 가시 쥐고/ 늙는 길은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白髮)은 막대로 치려했더니/ 백발이 자기가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제 머리카락이 하얀데 꼭 제게 하는 말 같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인생의 괴로움을 막을 수 있습니까? 우리 마음에 찾아오는 어둠을 막을 수 있습니까?

악한 생각이 일어날 때 

어느 날 노인 한 분을 만나 상담을 했습니다. “목사님, 나는 늙었는데 아직도 음란한 생각이 일어납니다. 어떻게 해야 됩니까?” 목사는 이런 질문을 받을 때 답을 찾아서 얘기를 해 줘야 합니다. 성경은 마음의 세계를 이야기합니다. 사람이 두려움이나 절망 가운데 있거나 고통스러울 때가 있는데 성경은 그 어려움과 고통에서 어떻게 벗어 날 수 있는지를 정확하게 말해 줍니다.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음란이나 분함 그리고 악한 생각들, 부부가 서로 의심하는 생각은 우리에게 고통을 가져다 줍니다. 아주 작은 의심이 커져 범죄나 사고, 이혼 등의 문제들이 발생합니다. 우리가 도둑질이나 간음, 미움같은 죄를 짓지 않으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에 있는 음란한 생각을 처리하지 못하면 아무리 간음을 안 하려고 해도 간음하게 되고, 우리 마음에서 미움을 처리하지 못하면 아무리 미워하지 않으려고 해도 미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악한 생각이 우리 마음에서 처리되지 않고 자리를 잡으면 우리의 육체는 그 생각에 끌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이런 악한 생각이 일어날 때 어떻게 제하시겠습니까? 우리가 두려워하지 말아야지, 간음하지 말아야지, 탐하지 말아야지라는 우리 육에서 나오는 각오나 결심으로는 절대 그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

사도행전 5장을 보면 사도들이 표적과 기사를 행하여 많은 사람들이 믿으니까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이 시기가 가득하여 사도들을 잡아다가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사도들이 감옥에 들어갔는데 천사가 그들을 감옥 밖으로 이끌어서 다시 성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또 감옥에 잡혀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잡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는데 예수님이 다시 살아났다고 전파하니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기쁨과 소망이었지만 대제사장에게는 두려움을 주고 근심하게 하는 문제였습니다. 예수님은 죽고 없으니까 사도들과 그리스도인들이 조용했으면 좋겠는데 그들이 “예수님이 살아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 하며 떠들었습니다. 대제사장들은 민심이 동요될까 봐 “예수가 부활했다고 하지 말라” 하며 그리스도인들을 때리고 핍박했습니다. 
그러나 전에 대제사장과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잡히시던 밤에 베드로가 계집종 앞에서 두려워 예수님을 부인했는데 이제는 베드로가 성령으로 달라진 것입니다. 베드로가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 가운데 어느 것이 옳은지 판단해 보라.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신 것도 봤고 부활하신 것도 봤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라며 말씀을 전했습니다. 

빛이 오면 어둠은 물러가

갈릴리 가나 혼인잔칫집에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하는 역사를 행합니다. 이것은 우리 마음의 변화를 이야기합니다. 포도주는 기쁨을 의미하는데 가나 혼인잔칫집에서 아무 맛이 없는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것은 물 같은 우리 마음에 기쁨되신 예수님께서 오신 것을 이야기합니다. 
요한복음 8장에서는 간음 중에 잡힌 여자가 돌에 맞아 죽을 두려움 속에 있다가 예수님을 만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음에서 건짐 받고 생명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이 성경에서 말씀하시길 “나는 세상의 빛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없는 곳에는 어둠이 가득합니다. 어두움이라는 것은 빛이 없는 곳에만 존재합니다. 아무리 어둠이 짙게 깔려도 빛이 오면 어두움은 다 물러갑니다. 우리 마음에 있는 미움이나 거짓, 악함이나 음란은 어둠에 속한 것인데 이것을 물리치려고 발버둥치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에 빛 되신 예수님이 오셔서 자리를 잡으면 그 모든 어둠이 물러갑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일날 예배를 드리고 설교를 듣는 것이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빛 되신 예수님의 말씀을믿으면 모든 어두움이 제거됩니다. 

말씀이 마음 안에 들어오면

사도행전에는 사도들이 부활한 예수님을 증거하면서 감옥에 들어가기도 하고 채찍질을 당해도 예수님이 계시니까 두렵지 않는 것입니다. 이처럼 간음 중에 잡힌 여자가 돌에 맞아 죽을 위치에 있다가 예수님을 만나고 두려움에서 벗어나 평안하게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 마음이 어두울 때는 모든 근심과 걱정이 몰려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교회에 와서 참된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이 마음에 자리를 잡으면 우리 스스로는 도저히 물리칠 수 없는 음란하고 거짓된 마음이 다 물러갑니다. 
우리가 외형적인 면만 보면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교회와 함께하는 것이 시간을 뺏기고 손해 보는 것처럼 느낄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명백한 것은 예수님의 말씀이 정확하게 우리 마음에 있으면 어떤 어두움도 우리 마음에 자리를 잡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설교를 듣는 시간이 귀한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 우리 마음속에서 예수님이 살아 일하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설교 한 번 듣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저희 선교회 홈페이지(http://www.goodnews.or.kr)에서 주일 설교를 다시 듣기 바랍니다.

마음이 교만한 사람은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 겸비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높아서 교만해지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 안에서 일하실 수 없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내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있어도 “나, 잘해”하며 교만하지 않고 “그것 좀 잘했지만 내가 못하는 것이 더 많아” 하며 마음을 낮춥니다. 교만한 사람은 잘하는 것이 하나라도 있으면 자신이 뭐든지 잘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자신을 믿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럼 그때부터 잘난 사람이 되어 남의 말을 듣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대해 모르면서도 성경을 안다는 생각 때문에 하나님이 세운 종들도 시들하게 보는 것입니다. 결국 교만한 사람에겐 설교가 들리지 않고 성경이 시들하게 여겨져 예수님의 마음과 멀어집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과 멀어질 때 음란한 생각이 일어나고, 예수님과 멀어질 때 탐욕이나 의심이 생깁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멀어질 때 거기서 만 가지 문제가 다 일어납니다. 

많은 위협과 핍박 속에서도

예루살렘에서 사도들이 예수님을 증거할 때 제사장들의 많은 위협과 핍박이 있었지만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라고 기록된 것처럼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수님의 이야기를 하려면 먼저 우리 마음을 예수님의 마음으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 다른 생각들이 있으면 예수님을 이야기할 수가 없습니다. 사도들이 예수님을 이야기하는 동안에 그들의 마음에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기쁨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어떤 근심과 두려움, 절망, 고통이 있어도 예수님의 마음으로 채우면 예수님은 빛이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문제와 어두움이 저절로 물러갑니다. 먼저 어두움이 물러가면 실제 삶 속에서도 모든 문제들이 정리가 됩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 갇혔습니다. “우리가 감옥에 갇혔는데 어떻게 여기서 벗어나지?” 감옥에서 나갈 수도 없는 현실이 암담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근심하다가 밤중쯤 됐는데 그때 예수님이 생각났습니다. “아, 그렇지!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여기 계시는데, 무슨 문제가 되나?” 지금까지 형편만 볼 때는 두려웠는데 예수님을 생각하는 순간 모든 두려움이나 근심이 다 물러가게 됩니다.

옥문이 열리고 쇠사슬도 풀려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행 16:25) 하나님을 찬양하니까 지진이 나면서 옥문이 열리고 쇠사슬이 풀렸습니다. 간수가 자다 깨어 보니 문이 열려 있어 죄수들이 도망간 줄 알고 두려워 자결하려 했습니다. 그때 바울이 “잠깐! 우리가 다 여기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간수가 등을 가지고 와서 자세히 보니 옥문도 열려 있고 쇠사슬도 풀려 있었지만 도망가지 않은 바울과 실라를 보며 ‘이 사람들은 사람인가? 신인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간수가 바울과 실라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들아! 우리가 어찌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을 증거할 때, 우리 마음에 예수님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제가 예수님을 이야기하고 전도를 해보니 거기에서 오는 평안과 기쁨은 이 세상의 어떤 부귀영화와도 바꿀 수 없었습니다. 이것을 경험해 보면 세상의 권세나 재물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도 부럽지 않습니다. 그들이 많은 것을 가졌지만 결국 그 가진 것 때문에 근심하고 초조해하고 불안해하는 것을 볼 때 정말 불쌍한 마음이 듭니다. 

근심을 넣어 주면 근심을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사랑하는 여러분, 사단은 우리 마음 속에 오만가지 근심과 걱정, 염려, 두려움을 매일 넣어 줍니다. 그것이 사단의 주특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단이 근심을 넣어 주면 근심하고, 두려움을 넣어 주면 두려워하고, 음란을 넣어 주면 음행하고, 탐욕을 넣어 주면 도둑질하고, 절망을 넣어 주면 절망하는 연약한 인간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빛이기 때문에 우리 마음에 비치면 두려움과 근심이 물러가고 괴로워하던 문제에서 벗어나 밝고 복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기쁜소식선교회는 행사가 많습니다. 사람들은 “무슨 행사가 이렇게 많아”라고 말합니다. 저희는 일 년에 대전도 집회를 각 지역에서 봄, 가을로 두 번씩 합니다. 그리고 여름‧겨울 수양회, 청소년월드문화캠프 등 수많은 행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마음을 함께하지 않는 사람들은 세상에 살면서 행복할 것 같지만 오히려 고통과 근심 속에 빠지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진정 무엇이 자신을 위하는 삶인지 분별하지 못합니다. 

복음을 위해 자신을 드린 사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신을 드린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의 마음과 비교할 수 없는 평안과 기쁨을 얻는 것을 봅니다. 사도행전 5장 41절에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들이 매질을 당하고 나가면서도 ‘예수님도 날 위해 가시관을 쓰시고 십자가에 못 박혔는데 나도 예수님 때문에 매를 맞았구나. 감사하다.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아주 작은 고난에 참여했구나’라며 기뻐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에서 ‘지금까지 내가 원하는 욕망을 따라 살았는데 이제 나를 사랑하는 주님을 위하여 나를 드리고 싶다’라는 생각이 일어날 때 주님 앞에 자신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세상의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평안과 기쁨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오늘부터 여러분의 마음을 빈틈없이 예수님으로 채우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을 이야기하고 간증하며 찬양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에 있는 어두움이 물러가면서 어느 누구도 갖지 못한 큰 평안과 기쁨으로 밝고 복된 삶을 사시는 여러분들이 될 것입니다. 
-2017. 10. 8. 주일 오전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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