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이의 보리떡이 예수님에게 옮겨졌을 때
상태바
작은 아이의 보리떡이 예수님에게 옮겨졌을 때
요한복음 6장 1절 ~ 15절 -2017. 9. 10. 주일 오전예배 설교- 679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17.09.15 13: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설교하는 사람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목사로서 설교를 하는 사람입니다. 설교하는 사람은 설교하기 전에 먼저 그 말씀이 자신의 마음에 믿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서 일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목사도 사람이기 때문에 어느 때는 ‘정말 이 말씀대로 가능할까?’ 하며 말씀이 이해가 안가고 잘 믿어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차분히 성경을 더듬어 읽어 보면, 성경 속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말씀들이 있어서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얼마 전 저는 한 암환자를 만났습니다. 제가 몇 번이나 찾아가 간절히 말씀을 전했는데 그는 듣긴 들어도 믿음을 갖지 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전하는 말씀을 듣고 그냥 건성으로 “예, 알겠습니다. 목사님”라고 대답하면서 말씀을 좋은 이야기로만 듣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아 참 안타까웠습니다. 

믿는가? 믿지 않는가?

이 세상을 악한 영이 권세 잡아서 우리를 죄악과 거짓으로, 육신의 쾌락과 방탕으로 강하게 몰아 가기 때문에 우리가 겉으로는 밝게 사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예수님을 믿기란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믿지 못하면 아무리 성경을 들고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거나 새벽기도를 다니며 믿음이 좋아 보이는 사람도 여전히 죄와 육신의 정욕에 이끌리는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술 마시지 말아야지. 도박하지 말아야지. 방탕하지 말아야지’ 하며 각오하고 결심해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가 말씀을 믿을 때 하나님의 힘으로 죄의 유혹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죄와의 싸움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가? 믿지 않는가?’로 결정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밝게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마음과 우리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도금한 반지처럼 

수천 년 전 천지를 창조하신 힘은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솔로몬을 통해 예루살렘 성전을 짓게 하신 일,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위해 피 흘리시도록 하신 일, 이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마음 안에서 이루어진 계획을 그대로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서 일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어떤 문제가 생겨도 하나님이 그 모든 일을 해결해 주시는 놀라운 삶을 살게 됩니다. 믿음이란 우리가 성실하고 착하게 살려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인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선해지거나 깨끗해 질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기준에서 어느 정도 선하고, 깨끗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하나님의 기준에서는 ‘인간에게 선이 없다’라고 하십니다. 저는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은 후 ‘이건 내 마음이 아니야. 나는 이렇게 복음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본 적이 없어. 나는 이렇게 주님을 믿지 않았어. 이것은 예수님의 마음이야’라고 느낄 때가 자주 있었습니다. 여러분, 신앙이라는 것은 성경 속에 담겨져 있는 예수님의 마음을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마음과 우리 자신의 마음을 비교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도금한 반지처럼 겉은 선한 것처럼 보이지만 속은 오만가지 악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을 버리고 예수님의 마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아들이 결혼할 무렵 

예전에 아들이 결혼할 무렵 저는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사람들은 다 허물이 있는데 내가 며느리의 허물을 보면 어떻게 하지? 처음엔 못 본 척할 수 있어도 한 번 보고 두 번 보면 마음에 쌓이게 될 텐데. 아들과 며느리가 불편하면 어떻게 하지?’라고 생각하다가, ‘만일 하나님이 주신 며느리라면 아무 것도 문제가 안되겠다’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날 저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제가 며느리를 얻을 때 제 생각을 조금도 섞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정해주시는 사람을 며느리로 삼겠습니다’라고 마음을 정했습니다. 그리고 아내를 불러 “여보, 이제 아들이 결혼할 때가 되었는데 하나님이 주시는 며느리를 얻고 싶어요. 당신도 당신 생각을 조금도 넣지 마세요”라고 말했는데 아내도 알았다고 답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아들을 불러 “아들아, 아버지가 원하는 것이 있다. 아버지는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을 모두 무시하고 하나님이 보내주시는 사람을 며느리로 얻고 싶은데 너도 그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습니다.

복음을 섬기는 며느리

어느 날 함께 사역하던 김 목사님이 저를 찾아와 이야기하셨습니다. “목사님, 이제 영국이도 결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 해야지요.” “한 자매가 있는데 어떻겠습니까?” 그 자매는 브라질에서 자랐는데 한국에서 신앙훈련을 받기 위해 대전교회에 와 있었습니다. 교회 문제를 의논할 때는 제가 목회자로서 어떤 제안을 하지만 제 문제는 다른 목사님들의 말씀을 그대로 듣습니다. 아들의 결혼 문제도 하나님의 종이 하시는 이야기이므로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나중에 들었지만 아들은 그 자매가 학교 다닐 때 수영 선수여서 어깨가 떡 벌어진 것이 싫었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신 아내로 믿고 받아들였다는 간증을 해서 참 고마웠습니다. 지금도 아들과 함께 복음을 섬기는 며느리를 볼 때마다 참 귀하고 감사합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이 많습니다. ‘이건 이렇게 하고 싶고, 저건 저렇게 하고 싶고….’ 사람들이 신앙을 하면서 주님의 뜻대로만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뜻대로 주님을 섬기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신앙도 우리의 원하는 대로 합니다. 

물고기와 보리떡

오늘 아침에는 요한복음 6장 말씀을 읽었습니다. 어제 저녁부터 밤늦도록 6장 말씀을 묵상하며 글을 쓰다가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 다시 글을 썼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성경에 이 말씀을 기록해 놓으셨는데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으신 것일까?’를 생각했습니다. 6장에 한 작은아이가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도시락으로 가져왔습니다. 그 보리떡은 아이를 위해 엄마가 준비해 준 것입니다. 
그 아이가 어른들 뒤를 따라다니다가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먹을 것이 없다. 이 많은 무리를 위해 어디서 떡을 사서 먹게 하겠느냐?” 그때 그 아이가 “저 한 끼 굶어도 괜찮아요. 이것을 예수님께 드리고 싶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아이의 손에 있던 보리떡이 예수님의 제자 안드레의 손으로 넘어가고 다시 예수님의 손으로 옮겨졌습니다. 안드레가 예수님께 “여기 한 아이가 있어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져왔나이다. 이것이 이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되겠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그 많은 사람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지만 예수님의 손에 드려졌습니다. 

복음 전하는 귀한 일에

저는 그 장면을 떠올리며 ‘한 아이는 보리떡을 예수님께 드렸는데 나는 이 큰 구원을 받고 예수님께 무엇을 드렸는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자주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 몸과 마음을 예수님의 손에 드리고 예수님의 뜻에 이끌림을 받았는가?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물질을 예수님의 손에 드리고 예수님의 뜻대로 쓰여 졌는가?’
오래전에 어떤 형제님이 저를 찾아 왔습니다. 그 형제님은 “목사님, 제가 서울 시청에서 20년 동안 근무를 했습니다. 선교학교를 들어가려고 직장을 그만 두면서 퇴직금 이천만 원을 받았습니다. 제가 선교학교를 가려면 필요한 것들이 있어서 그 돈에서 백만 원만 빼서 물건들을 구입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이천만 원을 깨기가 싫어서 ‘그냥 주님 앞에 다 드려보자’ 하고 가져왔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세월이 많이 지났지만 지금도 그 형제님의 밝은 얼굴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제가 그 돈을 재정 맡은 형제님에게 주면서 “이것은 일반 재정으로 쓰지 말고 따로 보관해 주세요. 귀히 쓸 데가 있을 겁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저희가 대덕수양관 부지를 매입할 때 그 돈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그래서 수양관이 지어지고 해마다 그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죄 사함을 받고 거듭나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형제님의 20년 근무한 퇴직금을 복음 전하는 귀한 일에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이지만

우리 선교회가 시작되고 참 어렵고 힘든 문제도 많았는데 이 모든 문제들이 하나님이 해결해 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에 저는 한 번도 어렵다거나 힘들다고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대덕수양관 별관을 건축할 때도 많은 비용이 들었지만 형제자매들에게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비용을 다 준비해 주시는 것을 보면서 제 가슴이 너무나 뜨거웠습니다. 아프리카 베냉에서 IYF 청소년 교육관과 메디컬 센터를 건축할 때도 많은 비용이 필요했지만 이 역시 하나님이 다 준비해주셨습니다. 작은아이가 보리떡을 많든 적든 자기가 먹을 수도 있는데 예수님께 드리는 귀한 일을 했습니다. 이런 작은아이의 보리떡처럼 형제자매들이 드린 연보가 오늘날 전 세계에서 선교할 수 있는 뒷받침이 되었습니다. 보리떡 하나는 작고 보잘 것 없는데 놀랍게도 그 보리떡이 작은아이의 손에 쥐어졌느냐, 예수님의 손에 쥐어졌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집니다. 
우리 교회 재정에서 연보의 약70% 정도가 해외 선교비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그 선교비가 드려져서 아프리카에서 복음을 듣지 못해 죽어가던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남태평양의 섬들에서 태어난 수많은 사람들이 죄 사함을 받고, 인도에서 많은 목사님들이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는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님의 손에 잡혔을 때 

사랑하는 여러분, 요한복음 6장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려는 것은 보리떡이 많고 적음이 아니라, 우리 손에 있는 것이 정확하게 예수님의 손으로 옮겨져 우리 뜻과 상관없이 예수님의 뜻대로 쓰여질 수 있는 것이 귀하다는 것입니다. 그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예수님의 손에 잡혔을 때 보리떡 다섯 개는 더 이상 보리떡 다섯 개가 아니라 하나님의 큰 능력과 영광을 나타내는 도구입니다. 
보통 많은 젊은이들이 대학에 들어가면 ‘어느 대학에 들어가서 어떤 직장을 가지고 내가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야지’라는 꿈을 꿉니다. 저도 제 나름대로의 계획을 세울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세운 계획은 인간의 욕망과 수단이 들어있고, 남을 헐뜯으며 내가 잘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저를 위해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지 성경에서 찾아봤습니다. 그런 후 사랑하는 주님 앞에서 ‘주님, 이 몸을 주님께 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이 쓰신다면 무슨 일을 해도 행복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이 하나님의 손에 잡힌다면 하나님이 책임지고 이끄십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인생을 붙잡고 있어서 하나님이 일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를 믿는 마음을 버리고

어제 저녁 연합 장년회에서 임 목사님이 잠비아에 다녀온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예전에 임 목사님이 미국에서 선교하다가 문제가 많아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자기가 미국에서 어떻게 사역을 했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당시는 자기가 잘한다는 생각으로 자기 방법으로 했던 일들이 전부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역을 중지하고 전기 기술자로 취직을 했습니다. 
어느 날 직장에서 선풍기를 조립했는데 모두 거꾸로 돌아가게 조립한 것을 관리자가 보고 “어떻게 이렇게 거꾸로 조립했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임 목사님이 그 일을 통해 자신의 마음이 하나님과 반대라는 것을 정확히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선풍기 하나도 제대로 조립하지 못하는데 전기 기술자라고… 이런 내가 목회를 하려고 했구나’라며 임 목사님은 자기를 믿는 마음을 버리고 자신을 하나님 손에 맡기게 되면서 다시 사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임 목사님이 저보다 젊지만 참 존경스러운 후배입니다. 그를 보면서 ‘임 목사가 부산에 가면 부산에 있는 성도들이 행복하겠구나. 부산 지역장이 되면 부산 지역 사역자들이 변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기쁜소식선교회 안에는 자신을 전부 하나님의 손에 맡긴 사역자들이 많습니다. 그분들이 우리 교회의 소망이고 기쁨입니다. 

보잘것 없는 보리떡이

어느 날 한 형제와 여러 번 신앙상담을 했습니다. 그가 겉으로는 “예,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하는데 전혀 바뀌지 않아서 ‘왜 그럴까?’ 하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 형제는 예수님의 말씀보다 자기 생각을 옳게 여기니까 자신의 인생을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손에 우리 인생을 맡기면 그 삶이 복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을 아무리 이야기해줘도 모르니까 안타깝고 답답합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헌금을 많이 드리라고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봉사를 열심히 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생각을 해보세요. 아무렴 예수님의 능력이 여러분보다 못하겠습니까? 왜 여러분이 쥐고 벌벌 떠십니까? 여러분의 노후나 자녀, 장래까지 예수님의 손에 맡겨보십시오. 보잘 것 없는 보리떡이 오천 명을 먹인 것처럼 우리 자신이 예수님의 손으로 옮겨졌을 때 큰 능력과 역사를 맛보게 됩니다. 
만일 보리떡이 말을 할 수 있다면 무슨 말을 했겠습니까? “야, 우리를 쥐고 있던 작은아이가 우리를 먹을 줄 알았는데 먹지 않네. 이제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인 안드레의 손으로 옮겨졌잖아. 아니, 이젠 우리가 예수님의 손에 잡혔어.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 거지. 와우! 우리가 많은 사람들을 먹이고 있네” 하며 보리떡은 놀라운 역사를 경험한 것입니다.

“너희 인생을 내게 맡겨 봐”

오늘 아침, 주님은 요한복음 6장 말씀을 통해 “너희 인생을 내게 맡겨봐. 너, 나이 많아 늙었잖아. 내 손에 한번 맡겨보지 않을래. 내가 너를 붙잡고 내 마음대로 네 인생을 이끌어 볼게”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악한 영이 오랫동안 우리의 생각을 통해 우리 인생을 속여 왔습니다. 우리는 사단이 주는 생각 때문에 절망과 고통속에서 끌려다녔습니다. 그런 우리 인생을 주님이 사랑하셔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죄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이젠 내가 네 인생을 살아볼게. 그동안 너는 실패하고 좌절하면서 때때로 자살하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웠잖아. 네 인생을 나에게 맡겨. 내가 복되게 이끌어 줄게”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손에 자식들을

제가 결혼해서 가장 좋았던 일은 두 아이가 생긴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너무나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이 아이들을 어떻게 잘 키울까?’라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제가 육신의 아버지이기는 하지만 ‘내가 이 아이를 키우는 것이 나을까? 하나님이 이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나을까? 내가 이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 하나님이 이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 누가 더 행복하고 복되게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봤습니다. 결론은 ‘이 아이들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면 더 복되게 하시겠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오늘 하나님 앞에 아버지 자리를 사표 냅니다. 제가 육신의 아버지이지만 하나님 아버지가 제 아들딸을 키우시는 것이 제가 키우는 것보다 훨씬 복될 줄 믿습니다. 제 자식이 사랑스럽고 소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손에 맡깁니다. 하나님이 이끌어 주십시오.’ 이렇게 자식들을 하나님 손에 맡겼습니다. 
이런 과정에 제 인생에 대해서도 한번 정리를 했습니다. 제가 쉰 살 되던 해에, ‘제가 예순 살까지 산다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를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나를 위해 살았는데, 이제 제 삶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당신이 이끌어 주십시오’ 하며 제 노후를 하나님의 손에 넘겼습니다. 

영광스럽고 복된 삶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작은아이의 손에 있던 보리떡 다섯 개가 예수님의 손으로 옮겨졌듯이 여러분의 인생을 하나님의 손에 넘겨보십시오. 오늘 아침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나이가 많든 적든 가난하든 부유하든 전혀 상관없이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우리 인생이 하나님의 손으로 넘어가면 더 이상 우리는 못난 보리떡이 아니라 너무나 영광스럽고 복된 삶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읽은 요한복음 6장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야기하시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 인생을 하나님의 손에 드린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재물을 드리는 것보다 기뻐하실 겁니다. 우리가 얼마나 악하고 추하게 살았든지 상관없이 하나님의 손에 잡히면 복되고 말할 수 없는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삶이 될 줄을 믿습니다.
-2017. 9. 10. 주일 오전예배 설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