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혹했던 전쟁, 두 번 다시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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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혹했던 전쟁, 두 번 다시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특집 [6․25 특집] 대한민국 6·25 참전 유공자회 고융희(83) 인천지부장
6·25 바로 알리기 교육과 참전 유공자 위한 봉사활동에 전념하고파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17.06.23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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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한국 전쟁이 발발한 지 올해로 67주년, 대한민국은 그 어디에도 전쟁의 폐허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발전했다. 그러나 참전 용사들에게 6·25 한국 전쟁은 어떤 의미로 남아 있을까. 6·25를 앞두고 참전유공자회 고융희 인천지부장을 만나보았다.

당시 美 8군 켈로 부대 첩보원으로 활동 

6월 15일 기자는 6·25 참전유공자회 인천지부에서 고융희 지부장을 만났다. 취재진을 반갑게 맞이해 준 고융희 지부장은 먼저 나이를 묻자 참전 용사들의 평균 나이가 87세이며 자신이 83세로 가장 막내라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6·25 한국 전쟁 당시 파주 1사단 5811부대 첩보대원으로 활약했다고 했다. “<인천상륙작전>이란 영화 보셨죠? 딱 그 영화를 생각하면 될 거예요”라고 전쟁 당시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때가 17세였어요. 1950년 전쟁이 시작되면서 입대하여 1년 8개월 정도 있다가 우리 부대가 미 8군 소속의 켈로(KLO) 부대에 편입되어 휴전될 때까지 북한에서 북한 정보를 수집하는 임무를 수행했어요.”
작년 이 맘 때에 상영했던 영화 ‘인천상륙작전’에서 북한군으로 위장한 장학수와 인천 방어사령관 림계진의 대치 상황에서 심장이 오그라들 정도로 긴장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고 지부장은 “주로 북한 정보를 수집하는 일을 했는데, 어디에 가면 무슨 훈련을 하고 있다며 다 알려줘요. 포위 당했다가 도망도 치고, 그게 일상이었죠”라고 말했다. 어떻게 그런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그때는 무서워할 정신도 없었어요. 오로지 이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생각 하나밖에 없었죠”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절로 숙연해졌다.

현재 12만여 명 유공자 70% 생활고 겪어

대한민국 6·25 참전 유공자회(회장 박희모)는 전국 16개 도시에 지부가 있으며 현재 6·25 한국 전쟁 유공자는 12만 명 정도 생존해 있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이 연로하여 1년에 500명 이상이 사망하고 있다. 고융희 지부장은 “국가의 처우가 너무 빈약해서 살기 어려운 사람들이 많아요. 잘 사는 사람들도 있지만 70%가 어렵게 삽니다. 정부에서 나오는 전투 수당이 30만 원 정도 되는데 선진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은 금액이죠. 내년부터 병장 월급도 40만 원 정도로 인상한다는데 말이죠. 호주의 경우는 120만 원씩 받거든요. 모두들 전쟁 중에 제대로 배울 기회도 없었기에 스스로 벌어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보니 호국 영웅이라는 명예는 있지만 실제 굉장히 어렵게 살아가는 분들이 많아요”라며 “저희는 이들에게 쌀이나 연탄 등을 나눠주고, 집을 짓거나 수리하는 일을 해요”라고 덧붙였다. 
나라를 위해 희생을 아끼지 않았던 전우들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며 그 공로를 인정받은 인천지부는 2014년과 2017년 2회 우수지부상을 받기도 했다. 또 6·25참전유공자회는 ‘6·25를 바로 알아야 전쟁을 막을 수 있다’라는 교재를 만들어 전국 각 초·중·고, 대학교에까지 6·25 한국 전쟁 바로 알리기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6·25 전쟁은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죠”

참전 용사들의 희생과 정신이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알지 못하는, 전쟁을 겪지 않은 요즘 세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전쟁은 절대 일어나면 안됩니다!”를 거듭 강조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이 38선을 넘어 남침했을 때 우리는 총이 없었어요. 기껏해야 일본 사람들이 반납하고 간 옛날 총이거나, 총은 있는데 실탄이 5개 정도밖에 없는 그런 총으로 전쟁을 하니 그야말로 비무장상태로 전쟁을 한 것이죠. 그때 정말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요.” 그는 “총에 맞아 죽어가는 전우들을 그냥 두고 가야하는 끔찍한 상황, 암호를 잘못 불러 북한군으로 오해받아 죽은 전우들, 전쟁으로 인한 정신적인 피해는 떠올리기도 싫은 기억이예요”라고 말했다. 또 이어 “우리나라는 아직도 여러 가지 면에서 빈약해요. 요즘 시국을 보면 걱정도 많이 되구요. 그렇지만 대한민국이 뛰어난 기술로 지금보다 잘살게 되어 강대국에 의해 좌지우지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 정치인들이 싸우지 말고 좋은 일 있으면 서로 도와서 나라를 잘 이끌어주길 바랄뿐이에요.”
고 지부장은 휴전 이후 북한군이 우리를 침공한 횟수가 1천 번이 넘는다면서 조금이라도 젊으면 뭐라도 하겠는데 다들 지팡이 짚고 다니는 현실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우리가 6·25 참전 용사들을 위해 그 무엇도 대신해 줄 수는 없지만, 그들이 나라를 위해 희생한 숭고한 정신만은 후대에 길이 전해져야 함은 분명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고정연 기자 jyko@igood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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