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와 안보가 공존하는 섬 대만 금문도 [金門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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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안보가 공존하는 섬 대만 금문도 [金門島]
연재 호국보훈의 달 특집 - ③ 분단된 한국의 안보현실과 유사점 많아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17.06.16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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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문도는 대만 본토에서 190㎞ 떨어져 있는데 반해, 중국대륙과는 불과 2㎞ 정도로 가까운 작은 섬이지만 엄연히 대만영토로 대한민국의 NLL 인근의 서해5도와 같은 곳이다. 호국보훈의 달 6월을 맞아 과거 중국과의 전투에서 목숨으로 사수, 이제는 평화를 유지하고 있는 금문도를 취재하였다.

Contents
     1.  천안함 기념과 그 호국의 현장을 가자
      2.  北의 포격 이후 7년, 평화를 갈망하는 섬 연평도를 가다
 ▶  3.  평화와 안보가 공존하는 곳, 대만 금문도

과거 전쟁의 상흔이 곳곳에 산재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에서 1시간의 비행 후 다소 긴장된 마음으로 바라본 창밖의 금문도 바다는 안개가 다소 있었지만 평화로워 보였다. 과거 분쟁 지역에서 어떻게 평화를 이루었는지, 그 해답을 얻기 위해 주요 전쟁지 취재를 시작하였다. 금문도는 대만 국민당 정부가 중국의 대규모 군사도발에서 결사항전 의지로 지켜낸 아픈 전쟁의 역사를 갖고 있는 섬이다. 금문도 북쪽 해변에 있는 스샨 군사시설에는 과거 전쟁 때 쓰였던 방공포가 있고, 진지 입구는 국민당 시절 회의하던 사무실이 있다. 터널 끝으로 올라가자 바로 바다 너머 코앞에 중국 대륙땅이 보였다. 
이어 금문도 국가공원으로 지정된 쟈이샨 터널(갱도)에 찾아갔다. 쟈이샨(翟山) 터널은 1961년부터 1966년까지 약 5년에 걸쳐 완성된 터널로 식량과 전쟁 물자를 안전하게 하역하기 위해 항구와 부두를 터널로 연결시킨 운하가 있는 군사시설이다. 터널입구에는 우왕쟈이쥬(毋忘在莒, 어려웠던 과거를 잊지 말자)라는 글귀가 바위 곳곳에 새겨져있어 과거 전쟁을 잊지 않으려는 금문도 주민들의 정신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제는 평화의 섬이 되어 매년 10월이면 갱도음악회가 열려 전투지였던 갱도가 음악으로 가득한 평화의 장소로 탈바꿈되었다.

도심지하에 전쟁대비 민방위 갱도 터널 구축

섬 주요 중심부마다 지하에는 민방위 갱도가 있다. 기자가 찾은 대표적인 진청 민간방어 갱도에는 중국대륙 및 타이완 본토 등에서 온 많은 관광객들이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갱도는 지하 10m 정도에 설치되었고 폭 1m, 높이 2m, 길이 2.6km 정도로 좁고 긴 터널이다. 중국과의 전쟁 후 금문도 지역민들은 섬 전체를 전쟁에 대비해 도시 곳곳을 미로처럼 지하 갱도로 만들었다. 터널 곳곳은 주요 민간 대피시설과 연결되어 있어 전시에는 주민이 안전하게 대피하고 서로 이동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또한 관공서, 은행, 경찰서 등 도심의 주요 공공기관들과 연결되어 있으며, 전시에는 지하에서 군사작전을 실행할 수 있도록 탄약 및 식량창고, 무기고, 회의실 등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어두컴컴한 갱도를 지나가는 길에 전쟁 당시의 상황을 느낄 수 있도록 총소리, 포탄, 싸이렌 등 음향·조명효과를 만들어 당시 전쟁의 긴장감을 더해주었다. 
대만 본토에서 온 림자오링(여, 30) 씨는 “이런 갱도를 만드느라 당시 사람들이 정말 고생을 많이 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좁은 갱도 안에 있으니 공기가 답답해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제 평화의 섬으로 관광객들에 인기

금문도 면적은 131㎢로 백령도의 3배 정도 크기이며 약 6만여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동서길이는 20㎞이고 남북길이는 5~10㎞이다. 주광루(莒光樓)에는 안보전시관이 설치되어있다. 이곳은 국가에 큰 공헌을 한 후렌사령관을 기념하고 있는 금문도의 대표적인 관광지 중 한 곳이다. 또한 전쟁 중에 떨어진 포탄으로 만든 부엌칼은 지역을 대표하는 관광상품이 되었다. 이외에도 지역특산품으로 고량주, 공탕(땅콩사탕), 면실 등이 있다. 금문도 전통 가옥인 민난(閩南)식 주택마을이 보전된 민속촌도 가볼만한 곳이다. 공무원인 왕티엔(여, 51) 씨는 “금문도 주민들은 모두가 지금의 평화로운 시대가 계속 이어지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이곳에 군인들이 10만 명 이상 있었으나 대부분 철수했고, 주민들 일부는 농업에 종사하며 대부분은 관광업으로 살아가고 있다. 1949년 당시 공산당의 전면적인 공격을 막아낸 금문도 사람들의 정신력은 대한민국 같은 분단국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평화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귀한 자산이다. 금문도 주민들의 호국정신은 아직도 호전적인 북한의 위협에 직면하고 있는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분명한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 
박정현 기자 cool@igood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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