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의 포격 이후 7년, 평화를 갈망하는 섬 연평도를 가다
상태바
北의 포격 이후 7년, 평화를 갈망하는 섬 연평도를 가다
연재 호국보훈의 달 특집 - ②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17.06.09 16: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Contents
     1.  천안함 기념과 그 호국의 현장을 가자
 ▶  2.  北의 포격 이후 7년, 평화를 갈망하는 섬 연평도를 가다
     3.  평화와 안보가 공존하는 곳, 대만 금문도

인천 옹진군 연평도는 휴전 이후 지금까지 크고 작은 갈등이 계속되고 있는 섬이다. 특히 2010년 발생한 ‘연평도 포격’은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공격이었기에 어느 때보다 주민들의 충격이 컸다. 호국보훈의 달 6월을 맞아 포격 7년 이후 연평도를 찾아가 보았다. 

휴전 이후 처음 발생한 민간인 대상 공격

바람 한 점 없던 2010년 11월의 어느 오후. 겨울을 앞두고 마을 주민들의 김장준비가 한창이던 연평도에 느닷없이 수백 발의 포탄이 쏟아졌다. 조용했던 섬마을은 순식간에 전장으로 변했고 주민들은 황급히 대피소로 몸을 숨겼다. 이날 북한의 예고 없는 포격은 약 한 시간가량 지속됐다. 갑작스런 공격에 군부대 막사와 마을 내 가옥은 물론 연평도 유일의 보건소까지 붕괴되었다. 
2010년 11월 23일 오후 2시경 발생한 ‘연평도 포격’은 1953년 휴전 이후 처음으로 발생한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북한의 도발이다. 이날 북한군이 쏜 170여 발의 포탄에 해병대원 2명이 전사했고, 16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또 군 관사를 건축 중이던 인부 2명이 사망했고, 3명이 부상당하는 등 민간인 사상자도 발생했다. 
다행히 주민들의 인명 피해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의 기억은 연평도 주민들에게 깊은 마음의 상처를 남겼다. 세월이 약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7년이라는 시간도 이곳 주민들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진 못한 듯 하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화를 되찾은 연평도지만, 마을 주민에게 그날의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 트라우마다. 

포격의 아픔 간직한 ‘안보교육장’에 가보니

인천 여객터미널에서 출발한 배는 2시간 남짓한 항해 끝에 연평도에 도착했다. 기자가 찾아간 날 연평도는 바람 한 점 없이 화창했다.
숙소에 짐을 풀고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연평도 포격’의 아픔을 생생하게 전달해주는 ‘안보교육장’이었다. 교육장 내부에는 포격 당시 상황을 재연한 다양한 시청각 자료가 전시되어 있었다. 바삐 돌아가던 기자의 시선은 교육장 외부 한쪽 옆에 형체만 겨우 남아 있는 집 앞에 멈췄다. 동행하던 문화해설사의 말에 따르면 포격으로 파손된 집을 그대로 보전해 놓은 것이라고 했다. 무너져 내린 외벽과 검게 그을린 내부는 당시의 처참했던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했다. 
문화해설사 김영순(59) 씨는 포격 당시 상황을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그날도 오늘처럼 바람 한 점 없이 맑은 날이었다. 덕분에 포격으로 발생한 화재가 확산되지 않아서 피해가 적었다. 마을 주민 중 사망자가 1명도 없었는데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꼭 기적 같다. 포격 때문에 혼자 집에 오기가 무섭다는 딸의 전화를 받고 집을 나선 덕분에 목숨을 구한 어머니와 딸도 있었고 밭에 김장에 쓸 배추를 뽑으러 간 사이 집에 포탄이 떨어진 집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 이민성(가명) 씨 역시 “물때가 되어서 바다로 나간 주민들이 많았고 마침 여객선이 들어와 선착장에 나간 주민들도 있었다. 연평도 주민들을 하늘이 도운 것 같다”며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한편, 혹시 발생할지 모를 북의 도발에 대비해 경보 시스템과 주민대피시설을 보강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주민들도 있었다. 
교육장을 나와 해변을 따라 발길을 옮겼다. 길옆으로 포격의 상흔이 그대로 남아 있는 종합운동장 외벽이 보였다. 포격의 상흔 위로 평화를 갈망하는 희망의 새싹이 그려져 있었다. 꼭 연평도 주민들의 마음 같았다. 

연평도 포격 이후 7년…, 지금 우리는?

다음 목적지인 ‘연평도 평화공원’에 도착했다. 공원 내에는 1․2차 연평해전을 승리로 이끌고 산화한 호국영령들을 위한 추모비가 있었다. 추모비의 또 다른 이름은 용치(龍齒: 용의 치아 모양을 한 바다 방어시설)였다. 이곳에 있는 용의 이빨은 25개였다. 1․2차 연평해전에서 부상 또는 사망한 25명의 용사를 상징한다. 그들은 마치 죽어서도 서해바다를 지키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평화공원에서는 바다 너머로 북녘 땅이 보인다. 연평도는 거리상으로 우리보다 북한에 더 가깝다. 이런 지리적인 위치 때문에 연평도는 군사적 요충지일 수밖에 없다. 연평도를 포함한 서해 5도는 인천으로 향하는 바닷길 위에서 대한민국을 지켜주는 일종의 생명선이다. 
연평도 포격이 발생한지 어느새 7년이 지났다. 하지만 지금도 북한의 미사일과 포문은 우리를 향하고 있고, 남북 간의 갈등은 여전히 첨예하다. 연평도 주민들은 새정부 출범을 계기로 안보 불안이 해소되길 바라고 있었다. 이런 바람은 연평도 주민만이 아니라 온 국민의 간절한 바람일 것이다.               
강민수 기자 mskang@igoodnews.or.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