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들의 정착을 지원하는게 제 역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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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혜경 약사(50) - 강인한 정신력으로 한국 사회에 안착 많은 탈북 청소년들에게 귀감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17.04.28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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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서울시 약사회 한독문학상 수필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한 이혜경 약사. 그는 탈북 약사로서 대한민국에서 정착해 나가는 자신의 스토리를 [따뜻한 남쪽나라에서의 고진감래]라는 수필에 담았다. 이혜경 약사를 직접 만나 그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북한의 고통스러운 삶에서 탈북을 결심하다

봄기운이 만연하고 화창했던 지난 주말, 경기도 이천의 한 약국에서 한창 근무 중인 이혜경 약사를 만났다. ‘일요일인데 왜 근무하시지? 당번 약국인가?’ 하는 마음으로 찾아간 곳은 ‘365 의원’ 옆에 있는 약국이었다. 365일 근무한다는 한 마디 말 속에 바쁘게 살아가는 모습이 선하게 그려졌고, 자가용도 없이 버스로 서울에서 매일 출퇴근 한다는 그에게서 벌써 남다른 정신력이 느껴졌다. 잠시 자리를 옮겨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탈북한 지 15년쯤 됐다며 먼저 탈북할 당시의 상황을 상세히 들려주었다.
“한국전쟁 당시 납북선전대가 내려와 많은 학생들에게 북으로 가면 대학에 다니게 해준다는 말로 속여 당시 친정어머니가 북한으로 가게 됐어요. 하지만 그곳에서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노예같은 생활을 했죠. 그러다 중국에서 온 사람들이 어머니의 말투를 듣고 서울이 고향이면 가족들을 찾아보라고 권유해서 외할머니와 가족들이 살아있다는 것을 한 달 만에 확인하고 탈북을 결심했어요.” 그는 그곳에서의 삶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지만 한 순간도 잊지 않았던 가족들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 오히려 마음이 설렜다고 말했다. 
 

꿈을 이루기 위해 한국의 경쟁사회에 적응

어머니와 아이들을 데리고 나오기 위해 감옥살이를 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탈북에 성공하여 정착한 한국이었지만 여성 가장으로서의 삶이 쉽지만은 않았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꿈같은 삶이긴 했어요. 그런데 현실적으로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에 처음 2년 동안은 안 해본 일이 없었어요. 마트 점원, 모텔 청소, 드라마 엑스트라까지... 그런데 밤 11시가 넘어서 들어오면 아이들이 하루 종일 TV만 보고 있는 거예요. 전기도 없는 곳에서 살다가 TV를 보니 얼마나 재미있었겠어요. 그래서 열 마디 말보다 몸소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줘야겠다 싶어 북한학 석사, 박사과정까지 공부하게 됐고, 객관적이면서도 체계적으로 북한에 대해 공부하게 됐어요.”
그러나 북한에서 약사 생활을 했던 그는 마음 한 곳에 늘 아쉬움이 있었다. 북한의 약대 교육 수준이 낮을 것이라는 한국 사회의 편견 때문에 약사가 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다시 공부해야한다는 사실이 현실적으로 극복하기에 너무나 큰 장벽이었다. 북한에서 취득한 약사 자격을 인정해 주지 않음은 물론 약사고시를 볼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 후 기적적으로 한 대학에서 그가 약학 공부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렸고, 4차례의 응시 끝에 합격하기에 이르렀다. 
“나이 때문에 학비 지원 자격도 안 되어 새벽에는 신문배달, 낮에는 여교수님들 방청소에, 밤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전단지를 붙이는 일도 했어요. 아이들에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렵더라도 노력하면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한국사회는 살만해… 탈북자들 희망가져야 

몇 년 전 그는 탈북자로서 대통령과 함께하는 토론회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그는 “저는 탈북 여성 가장으로서 가족을 먹여 살리려고 안간힘을 쓰며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 나라는 적어도 열심히 일하면 굶어 죽을 일은 없는 나라였습니다”라고 말해 박수를 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약대를 졸업한 성취감, 한국에서의 약사 생활을 이룬 것, 탈북자로서 대통령을 만난 것만으로도 ‘대한민국, 참 살맛 나는구나!’ 하고 생각한다는 그녀는 죽음을 각오하고 두만강을 건넜던 그 정신력이 면역이 되어서인지 그보다 어렵지 않은 일은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두 딸 외에도 많은 아이들이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제 자신만을 위해 고군분투하며 살아왔는데 그날 대통령 앞에서 결의문을 읽으면서 탈북청소년들을 위해 뭘 할 수 있을지 고민을 했어요. 고민 끝에 그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 트라우마라는 걸 느꼈고, 그들이 탈북하는 과정에서나 그리고 한국 사회에 적응하면서 겪는 트라우마를 힐링할 수 있도록 ‘새삶’이라는 단체를 만들었어요. 3년 동안 부모없는 아이들에게 나는 한국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한 너희들의 엄마다, 한국 사회 살만하다, 탈북자이지만 대통령 표창도 받았다, 희망을 가지면 뭐든 할 수 있다는 등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어요.”
2016년 말 기준으로 탈북자 3만여 명 시대가 되었다. 이에 대해 이혜경 씨는 우리는 한민족이기 때문에 이질적인 요소보다는 동질적인 것을 찾아내서 긍정적인 요소들을 접점으로 더불어 사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고정연 기자 jyko@igood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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