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생에 폭풍과 같은 문제가 닥쳐 올지라도
상태바
우리 인생에 폭풍과 같은 문제가 닥쳐 올지라도
[마가복음 4장 35절~ 41절] 2017. 2. 5. 주일 오전예배 설교 - 648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17.02.10 14: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에티오피아 방송을 준비하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지난 한 주간 에티오피아의 ‘엘 사다이’ 방송에서 방영될 ‘마가복음’ 강해 녹화를 했습니다. 에티오피아는 ‘암하라어(Amharic language)’라는 언어를 쓰는데 주변에 암하라어를 하는 사람이 없어 수단에 있는 선교사님 아들을 불러 통역을 했습니다. 이번에 녹화하고 있는 마가복음 강해는 앞으로 1년 동안 에티오피아 전역에 방영될 예정입니다. 에티오피아에도 많은 복음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형제자매님들 중에 아브라함을 모르시는 분은 아마 없을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여종 하갈을 통해 얻은 이스마엘과 같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하나님이 약속대로 아내 사라를 통해 이삭을 주셨습니다. 이삭이 자라면서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는 것을 본 사라가 “여종 하갈과 그 아들 이스마엘을 내어 쫓아요!”라고 아브라함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비록 이스마엘이 여종을 통해 얻은 아들이지만 그래도 자신의 아들이라 내쫓기가 싫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말할 수 없는 근심과 염려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사라의 말대로 이스마엘을 내쫓으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을 내쫓았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

하나님은 오래전부터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날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이끌고 밖으로 나가 “저 하늘의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자식을 낳겠다는 소망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심었습니다. 동시에 사단도 아브라함에게 ‘난 아들을 못 낳을 거야. 너무 늙었어. 사라도 경수가 끊어졌는데 어떻게 아들을 낳아? 이건 불가능해!’ 하며 절망을 심는 일을 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아들을 주신다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넌 너무 늙어서 안 돼’ 하는 사단의 말이 더 설득력 있었습니다. 사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라에게 자식을 주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사라는 “하나님께서 나의 생산을 허락지 아니하셨으니 나의 여종을 통해서라도 후손을 얻어야 하지 않겠소?”라고 아브라함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식을 나을 수 없다는 형편이 훨씬 크게 보였다는 것입니다.

백혈병을 앓았던 목사님

여러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육체 가운데 살다 보니까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경험이나 지식, 형편이 항상 더 설득력 있게 작용하는 것입니다. 우리 선교회에서 목회하시는 허인수 목사님은 구원받기 전 백혈병으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친구로부터 복음을 듣고 구원받은 후「죄 사함 거듭남의 비밀」이라는 제 설교집을 읽었습니다. 허 목사님은 그 책에서 제가 위궤양에서 낫게 된 간증을 읽으며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라는 말씀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으니 내 기도를 들어주시겠구나. 그럼 내 병도 나았다고 믿으면 되겠네’ 하며 허 목사님은 누웠던 자리에서 일어나 막대기를 짚고 비틀비틀하며 부모님이 일하시고 계신 들로 갔습니다. “아버지, 제가 농사일 도우러 왔어요.” 부모님은 깜짝 놀라시며 “얘야, 괜찮다. 일할 것 없다” 하시고 아들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들이 죽을 때가 되어서 이런 소리를 한다는 생각에 두 분이 함께 통곡하셨다고 합니다. 

믿음으로 암을 극복하고

허 목사님은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는 말씀 한 마디로 고통과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날부터 허 목사님은 백혈병에서 빠르게 나아 결혼도 하고 복음전도자가 되었습니다. 한번은 허 목사님이 사역을 하시다가 심각한 얼굴로 저를 찾아와 다시 암에 걸렸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웃었습니다. “허 목사님, 지난번 백혈병에 걸렸을 때 어떻게 나았어요?” “말씀 그대로 나은 줄로 믿었어요. 그러니까 낫게 되었습니다.” “암도 똑같아요. 그러면 나아요!” 허 목사님이 깜짝 놀라며 “그렇네요!”라고 대답했습니다. 허 목사님은 다시 믿음으로 암에서도 깨끗이 나았습니다. 그 뒤로 또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허 목사님은 웃으면서 ‘이건 좋은 일이야. 떡 해먹어야겠다’ 하면서 그 암에서도 나았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위대한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처럼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믿고 있지만 하나님을 한 번도 본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것처럼 믿는 사람들이고 그 믿음을 따라서 우리 삶 속에서 하나님이 살아 일하시는 것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여유가 없는 이 시대의 삶

오늘날 이 시대는 참 무서운 시대입니다. 사단이 아주 지능적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다 빼앗아가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우리가 사는 삶을 아주 복잡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사셨던 삶, 아내가 사는 삶 그리고 며느리의 삶을 비교해 보면서 시대가 참 많이 변한 것을 봅니다. 
저희 어머니는 새벽에 일어나시면 우물가에 가셔서 물을 길어다가 부엌에 있는 큰 물동이에 가득 채우고 아궁이에 불을 때서 밥을 하고 시냇가에 가서 빨래를 했습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여유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희 집은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바로 나오고, 불 때지 않아도 밥솥이 밥하고 빨래도 세탁기가 대신해 줍니다. 이렇게 아내가 해야 할 일들을 대신해 주는 것들이 많은데도 아내는 항상 여유 없이 바쁘게 지냅니다.

스마트폰의 명(明)과 암(暗)

여러분, 요즘은 누구나 스마트폰을 사용합니다. 스마트폰을 쓰면 언제 어디서나 연락이 가능하고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 우리 삶을 참 편리하게 해줍니다. 그러나 학생들이나 젊은이들이 스마트폰에 빠져 사고하는 시간이 줄어들어 점점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삽니다. 그래서 저는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다니지 않고 가방 안에 넣어 둡니다. 사실 너무 바빠서 전화를 받지 못할 때가 더 많아 나중에 확인 후 다시 전화를 합니다. 그런 용도 외에는 스마트폰을 자주 사용하지 않습니다. 
부부사이도 마찬가지로 스마트폰 사용으로 마음을 나눌 시간이 없기 때문에 남편은 아내를 생각하면서 아내가 무엇 때문에 불편하고 부족한지 그리고 무엇 때문에 어렵고 근심하는지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남편이 아내의 마음을 생각하지 못하고 또 아내가 남편의 마음을 생각하지 못하고 서로 자기 입장만 얘기하다 보면 문제가 생깁니다. 이것은 서로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는 사고의 시간이 적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입니다.
 

요즘 부모와 자녀 사이에는

여러분, 요즘 부모와 자녀 사이에는 대화가 단절된 상태인데 정말 가슴 아픈 현실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아버지들이 표현을 잘 못해서 그렇지 얼마나 자녀를 사랑합니까? 그런데 이 시대 많은 아버지들이 자녀와 대화를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와 아들이 생각하는 세계가 서로 달라서 아들이 볼 때는 ‘우리 아버지는 늘 스마트폰 하지 말라고 해. 게임하지 말라고 해. 뭐든 하지 말라고만 해’라며 잔소리하는 사람으로만 여깁니다. ‘아버지가 왜 게임을 못하게 하시지?’ 하며 아버지의 마음을 더듬어 볼 수 있다면 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스마트폰을 사용하다 보면 아버지를 잔소리만 하는 귀찮은 존재로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도 스마트폰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 가는 줄 모릅니다. 매일 학생들이 스마트폰만 붙잡고 있어서 생각할 틈이 없습니다. 어떤 학생들은 스마트폰 하느라 밤을 새는 경우가 많습니다. 스마트폰을 해서 나쁜 게 아니라 스마트폰만 하다 보면 부모의 따뜻한 사랑을 느끼고 서로 마음을 주고받는 인성이 형성되어야 할 시기에 그런 마음의 세계를 배우지 못합니다. 
이처럼 사단은 마음의 세계가 형성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일을 끊임없이 하고 있습니다. 신앙은 마음의 세계에서 형성되는 것인데 세상이 아주 복잡해지면서 사람들이 사고하는 기능을 잃어버렸습니다. 이렇게 사단은 신앙에 마음을 두지 못하도록 만들어 버렸습니다. 

성경이 놀라운 것은
 
 성경이 놀라운 것은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의 세계를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그리고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는지를 정확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 우리가 읽은 마가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다에서 제자들과 함께 건너편으로 건너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바다는 갈릴리 호수인데 옛날에는 큰 호수를 바다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은 대부분 어부 출신들이여서 노 젓는 일은 잘했습니다. 예수님은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셨습니다. 그런데 조금 가다가 큰 광풍이 일어나더니 배에 파도가 부딪혀 물이 배 안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점점 파도가 거세지자 ‘이러다가 배가 뒤집히는 것 아냐?’라며 근심했습니다. 대부분 어부였지만 이런 상황을 만나니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생각했지만 예수님이 배에 같이 타고 계시는데도 두려워하는 것처럼 오늘날에도 그리스도인들이 문제 앞에서 예수님이 함께 계시는데도 두려워하는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 하였더라”(막 4:41)라는 말씀에서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라고 말하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지만 바람과 바다를 잠잠케 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로 풍랑이 잔잔해진다는 것을 알았다면 두려워했겠습니까? 그렇지 않았겠지요? 여기서 바다를 건넌다는 표현은 우리가 인생의 바다를 항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사는 인생길에 먹구름이 일 때가 있고, 비바람이 휘몰아칠 때가 있고, 파도가 쳐서 배 안에 물이 들이닥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런 일을 당할 때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가졌다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지금 우리가 예수님과 같이 있어?” 그것을 확인해 봤을 것입니다. “그래,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셔.” “그러면 됐어. 걱정하지 마.” 그렇게 인생의 바다를 건넜을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사도행전을 보면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 갇혀 근심하며 두려워했습니다. 밤중쯤 돼서야 ‘우리 가운데 하나님이 계시는데 이것이 뭐가 문제야’ 하며 바울과 실라가 일어서서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지진이 일어나고 옥문이 열리면서 간수들이 구원받고 감옥에서 그들을 나가게 해주었습니다. 
우리 삶 속에도 어려움과 고통이 찾아옵니다. 저도 삶을 살면서 참 많은 문제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저를 비방하고 대적했던 사람도 많았고 별의별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늘 저를 한결같이 이끌어 주셔서 저는 주님을 금은보화보다 훨씬 귀하게 보고 주님을 제 생명보다 사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배 한 시간 한 시간을 놓치고 싶지 않고 귀한 말씀을 전하며 주님을 섬기고 싶습니다. 

호수에 사는 피라니아 물고기

아주 오래 전에 제가 아르헨티나 레시스텐시아 도시에 위치한 교회에서 집회를 했습니다. 제가 묵었던 숙소가 그 교회를 다니던 부인의 집이었습니다. 그 남편이 무척 기뻐하며 직장에 휴가를 냈습니다. 오전에 예배를 마친 후 그분이 저에게 오후에는 호수에 배를 타러 가자고 했습니다. 그분과는 언어가 달라 대화를 할 수 없었지만 호수에 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는 수영을 좋아하는데 호수에 뛰어 들어 수영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결국 수영을 못하고 배에서 내렸습니다. 그때 물가의 아이들이 낚시로 잡은 고기를 잔디밭에 던져 버리고 있었습니다. “왜 이것을 버리냐?”라고 물었더니 “이것은 피라니아라서 먹지 못해요”라고 말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피라니아는 식인어인데 입에 톱날처럼 생긴 이빨이 있어서 물리면 살덩이가 뭉텅이로 떨어져 나갑니다. 그렇게 피가 나면 순식간에 피라니아 수천 마리가 모여들어 십여 분 만에 뼈만 남아 물속에 가라앉습니다. 해외에 가면 그런 위험한 일들이 많습니다. 어쩌면 그날 제가 수영을 좋아하기 때문에 수영을 했을 텐데 ‘왜 내가 수영을 안 했지?’ 하며 하나님께서 정확하게 제 생명을 지키신 것에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풍랑을 잠재우셨던 것처럼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제게 많은 어려움들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하나님의 손길이 저를 도우셨던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단도 역사해서 끊임없이 제 앞길을 가로막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문제는 ‘예수님이 크냐? 풍랑이 크냐? 예수님께서 풍랑을 잠재우느냐? 풍랑이 예수님을 빠뜨리느냐?’라는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풍랑을 잠재우실 수 있지 결코 풍랑이 예수님을 바다에 빠뜨릴 순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구원을 받았다면 예수님은 여러분을 떠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계시는데 왜 내게 이런 어려운 일이 생기지? 예수님이 계시는데 왜 내 아이가 아프지? 예수님이 계시는데 왜 암에 걸리지?” 하며 우리에게 문제가 생깁니다. 그러나 예수님도 주무실 때가 있습니다.(하하) 그럴 때 예수님을 깨우면 됩니다. 여러분이 기도하면 예수님은 못 주무십니다. 예수님이 눈을 뜨시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인간적인 방법으로 처리하려고 머리를 쓰는데, 예수님은 “너희는 왜 믿음 없이 근심하느냐? 내가 있잖아”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배에 있던 제자들이 얘기합니다. “예수님, 배에 물이 들어와서 배가 잠기게 되었어요. 우리가 빠져 죽을것 같아요.” 그때 예수님이 바람과 파도에게 “잠잠하라. 고요하라” 명하자 그대로 되었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폭풍과 같은 많은 문제가 닥쳐올지라도 예수님이 계시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형제자매들 중에 암에 걸렸다가 기적적으로 나은 간증을 많이 듣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살아 계셔서 우리의 모든 삶을 이끌어 주십니다. ‘예수님이 풍랑을 잔잔케 하셨던 것처럼 우리 가정에 일어나는 풍랑도 잔잔하게 해 주시겠구나. 죄에 빠지지 않게 하시겠구나. 병에 걸리지 않게 하시겠구나. 하나님이 나를 지키시겠구나’ 라고 믿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어려움이 올 때

저는 1962년 10월 7일,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제가 구원받고 지난 55년간 하나님이 어떻게 제게 일하셨는지 정확히 경험했기 때문에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여러분에게도 역사하길 원하십니다. 저는 이 세상에 살면서 사람들이 만든 차를 타고 다니고, 사람들이 농사지은 밥을 먹고, 사람들이 만든 아이패드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은 세상에 있지 않고 예수님 안에서 삽니다. 제자들이 타고 가는 배 안에 예수님이 계신 것처럼 제 인생이라는 배 안에 예수님이 타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내 안에 계신 동안 어떤 어려움에도 못 본 척 하지 않으시고 항상 도우시고 지켜주셨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았다면 여러분과 예수님을 누가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 인생을 지키시고 

제가 파라과이 페르난도 루고 대통령을 두 번째 만났을 때 그분이 저에게 했던 첫마디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암에서 건져주셨는데 당시 파라과이에는 암을 치료하는 병원이 없어 브라질까지 가서 치료를 했지만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 의사들이 다시 회의를 해서 처음부터 검사를 했는데 그때 가슴에 병이 발견되어 수술을 해서 나았다”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같은 병으로 입원한 상원의원이 있었는데 그분은 대통령보다 훨씬 젊은 분이었는데 병을 이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안에 있는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시고 지키시고 도우십니다.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은 능히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 죄에서도 구원하셨는데 이 문제에서도 구원하셔” 하며 이런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마음이 커지는 것만큼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일하는 역사의 폭도 커진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도우시고 역사 하는지 정확히 배워서 이제 우리가 일하지 않고,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이끌어 주시게 되길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 인생이 밝고 복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귀한 삶이 되리라 믿습니다.

- 2017. 2. 5. 주일 오전예배 설교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