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 속에서 가장 이상적인 어머니로 회자되고 있는 인물이 바로 신사임당이다.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예술가이자, 지금도 대한민국 어머니의 표상으로 남아있는 그녀의 발자취를 따라 강원도 강릉 ‘오죽헌(보물 165호)’을 찾아가 보았다.
현모양처이자 당대 최고의 여류화가로 회자
조선시대 어느 잔칫집에서 있었던 일이다. 국을 나르던 하인이 실수로 어떤 부인의 치마에 국을 쏟았다. 부인이 갑자기 벌어진 일에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을 때 한 여인이 다가와 치마를 벗어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치마 위로 조용히 붓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한 폭의 아름다운 수묵화가 완성됐다. 그림을 그려준 여인이 입을 열었다. “부인, 이 치마를 시장에 팔면 새 치마를 살 수 있는 돈을 마련할 수 있을 겁니다” 남다른 지혜와 배려심을 엿볼 수 있는 이 일화의 주인공은 바로 신사임당(1504-1551)이다.
신사임당. 그녀는 현모양처로 알려져 있지만, 한편으로는 당대 최고의 여류화가로 이름을 날린 소위 ‘알파걸’이었다. 그녀는 슬하에 7명의 자녀를 두었다. 그중 한 명이 바로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학자인 ‘율곡 이이(1536-1584)’다.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는 세계 최초로 모자(母子)가 국가 화폐 인물(신사임당 5만 원권, 율곡 이이 5천 원권)로 선정된 독특한 이력을 남기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맏딸인 ‘이매창(1529-1592)’ 도 화가로 이름을 날렸고, 넷째 아들 ‘옥산 이우(1542-1609)’ 역시 시‧서예‧그림‧거문고에 모두 능해 ‘사절(四絶)’이라는 호칭으로 불렸다.
신사임당의 온기 남아 있는 강릉 ‘오죽헌’
신사임당의 남다른 지혜와 예술적 감각이 싹을 틔운 곳이 바로 ‘오죽헌(강원도 강릉시 율곡로 3139번길 24)’이다. 오죽헌은 우리나라 주택건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 중 하나로, 온돌방과 대청마루 그리고 툇마루로 구성된 기와집이다. 집 주변으로 검은 대나무가 무성하다고 하여 오죽헌이란 이름이 지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이곳에서 신사임당이 그리고 율곡 이이가 태어났다.
신사임당은 지극한 효심을 가진 인물로도 유명하다. 오죽헌 내에는 그녀가 어머니를 그리며 쓴 시조가 남아 있다. ‘한송정 언덕 위에 외로이 뜬 달, 경포대 앞에는 한줄기 바람, 언제쯤 강릉 길 다시 밟아가 어머니 곁에 앉아 바느질 할꼬’ 시의 구절마다 어머니를 향한 애틋한 마음이 느껴지는 건 비단 기자만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곧 있으면 신사임당의 생애를 그린 드라마(이영애 주연)가 방영 예정이라 한다. 아직 방영 전이지만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가이자, 대한민국 어머니의 표상인 신사임당의 삶을 어떻게 묘사할지 벌써부터 기대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일곱 명의 자녀를 키워낸 어머니이자 그림을 통해 세상과 소통했던 예술가 신사임당. 가장 소중한 것들을 위해 헌신했던 그녀의 고고한 정신과 섬세한 작품들은 지금도 살아있다. 그리고 마치 어머니의 품처럼 혼탁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마음을 잔잔히 위로해 주고 있다.
강민수 기자 mskang@igoodnews.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