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황녀 덕혜옹주를 기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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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황녀 덕혜옹주를 기억하다
특집 2016 광복절 특집-③ 광복절 맞아 영화 덕혜옹주와 홍유릉 찾는 관람객 급증 추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16.08.19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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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은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의 억압과 수탈에서 벗어난 해방의 날이다. 광복 71주년을 보내며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1912∼1989)를 통해 광복절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보고자 한다.
 
소설과 영화로 덕혜옹주의 삶 재조명
 
최근 개봉한 영화 ‘덕혜옹주’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였던 그녀의 삶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사실 덕혜옹주는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하지만 2009년에 출간된 권비영 작가의 소설 <덕혜옹주>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대중적으로 알려졌고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까지 만들어졌다.                    
덕혜옹주는 환갑을 맞이한 고종이 1912년 후궁 양귀인에게서 얻은 늦둥이 딸로 황제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하지만 서녀(庶女)였다는 이유로 일본총독부에 의해 왕족으로 인정받지 못하다가 여섯 살 때 정식으로 황적에 입적하였다. 고종의 갑작스런 타계 이후, 그녀는 서울에서 일본인 고위층 자제들이 다니는 히노데 소학교에 다녔다. 이어 13살 때 일제의 요구에 의해 강제로 일본으로 가서 교육을 받았다. 17세에 생모인 양귀인마저 타계하면서 그 이후로 몽유병 증세를 보였고 조발성치매증을 진단받았다. 병이 호전되자 일본은 그녀를 대마도 섬 도주의 후예인 소 다케유키 백작과 정략결혼을 시킨다. 결혼 후 외동딸 정혜를 낳았으나 병세가 갈수록 악화되어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결국 다케유키와 결혼생활을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게 되자 이혼하게 되었다. 
 
덕혜옹주 묘, 역사 탐방 현장으로 주목
 
덕혜옹주는 37년 간 일본에서 고통스런 삶을 살다 1962년 귀국 후 창덕궁에서 생활하였다. 그녀는 실어증과 지병으로 고생하다 낙선재에서 세상을 떠난 후, 남양주시 금곡동 영원(英園) 동쪽 언덕에 안장되었다. 영화 개봉 후에 덕혜옹주 묘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역사 탐방의 현장으로도 주목 받고 있다. 
기자는 지난 주, 남양주시 홍유릉에 있는 덕혜옹주의 묘를 찾았다. 홍유릉은 고종황제와 명성황후, 순종황제와 순명황후 등이 묻혀 있는 곳이다. 홍유릉을 지나 뒤편의 문을 넘어 산책로를 따라 한참 가다 보니 덕혜옹주 묘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덕혜옹주 묘는 현재는 비공개 지역으로 사전 허가를 받아야 출입이 가능한 곳이다. 왕족의 묘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화려함이나 웅장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묘 앞에 서니 나라 잃은 슬픔과 해방 후에도 쉽게 고국을 밟지 못한 그녀의 설움과 외로움이 느껴지는 듯 했다. 
이곳을 찾은 류현미(잠원동, 46) 씨는 “덕혜옹주에 대해 자세히 몰랐는데 영화를 통해 일제강점기 시절에 얼마나 많은 억압을 받고 살아왔는지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영화를 관람하거나 소설을 읽은 많은 이들은 “국권을 빼앗긴 상태에서 왕족조차 이러한 비극적 인생을 살게 되었는데 일반 국민들은 얼마나 더 고통 받는 삶을 살았을지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말하고 있다.
 
일제 치하의 아픈 우리 역사를 기억해야
 
홍유릉의 이정숙 문화해설사는 “소설이나 영화는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허구를 섞어 재구성한 작품이지만 어린 나이에 일본에 볼모로 잡혀가 일본식 교육을 받고  정략결혼을 해야 했던 것은 애써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인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덕혜옹주를 통해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며 나라를 잃은 아픔이 얼마나 처절하고 비참한지 깨닫게 해준다. 
“나는 낙선재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전하 비전하(임금이나 황태자의 아내를 의미) 보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우리나라.” 덕혜옹주가 그나마 정신이 맑았을 때 쓴 낙서 한 장에는 조국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표현되어 있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삶은 나라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며 나라 없는 백성은 무의미 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홍유릉을 나오는 동안 기자의 머리 속에 맴돌았다.
*후기: 71주년 광복절을 맞아 광복의 진정한 의미와 국가의 소중함을 생각하며 기획한 3회에 걸친 광복절 특집 시리즈를 마감한다.
 
김인나 기자 innakim@igood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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