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을 위해 산화한 꽃다운 학도병들을 기억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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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을 위해 산화한 꽃다운 학도병들을 기억하는가
기획 [기획특집] 6·25전쟁 66주년 맞아 ‘인천학생 6·25참전관’을 찾아가다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16.06.24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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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이 발발한 지 66주년을 맞았다. 우리가 지금의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것은 많은 이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중에는 연필 대신 손에 총을 들고 전쟁터에 뛰어든 학도의용군(학도병)이 있었다.

조국을 위해 청춘을 바친 학생들
 
“어머니!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10여 명은 될 것입니다. 적은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팔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중략) 어머니, 어쩌면 제가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죽음이 무서운 게 아니라, 어머님도 형제들도 못 만난다고 생각하니 무서워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살아 돌아 가겠습니다.”
6·25전쟁 당시 학도의용군으로 포항여중전투에 참전한 서울 동성중학교 3학년 고(故) 이우근 군이 어머니 앞으로 썼다가 부치지 못한 편지의 일부다. 이 편지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그의 옷 속 수첩에서 발견됐다. 
한반도의 가장 가슴 아픈 역사인 6·25전쟁. 이로 인해 나라가 위태로울 때 목숨을 아끼지 않고 자발적으로 전쟁터에 참전한 어린 학생들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15세에서 17세에 불과한 중·고등학생으로 ‘학도의용군’이라 불렸다. 학도의용군은 서울 시내 각 학교의 학도호국단 간부 학생들이 전쟁이 발발한 뒤 전국 각지에서 학생들을 불러 모으면서 시작이 되었다. 그들은 한반도 전역에서 전투는 물론 공비소탕 및 치안 유지, 구호, 간호활동  등을 담당했다. 또한 영화「포화 속으로」의 소재가 된 포항여중전투처럼 학도의용군의 활약으로 적군의 진격을 지연시키고 아군의 반격에 크게 기여한 역할을 해내기도 했다. 
 
학도병 출신 아버지와 함께 ‘6·25 참전관’을 만들다
 
인천에는 학도의용군의 희생을 추모하고 넋을 위로하는 기념관이 있다. 바로 중구 인현동에 위치한 ‘인천학생 6.25 참전관’이다. 지난 주, 기자는 같은 건물에서 치과를 운영하며 자신의 사비로 참전관을 세운 이규원(55) 관장을 만났다. 이 관장의 부친인 이경종(83) 씨는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업학교 3학년 재학 중 학도병으로 참전했다. 제대 후, 40여 년이 지나 비로소 정부로부터 참전용사증을 받으며 참전 군인임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그는 인천지역에서 전쟁에 같이 참전했던 학도병들의 생사를 알 수 없었고 그들에 대한 기록도 찾지 못했다. 이 관장은 “아버지의 한을 풀어 드리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몸 바쳐 싸웠지만 세월 속에 잊혀진 인천 학도병들을 기억하기 위해 찾아나섰다”고 전했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지난 20년 간 인천 출신 학도병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사진과 육성 등 기록을 수집해 자료를 모았다. 참전관엔 인천 학도병들의 사진과 유품, 전사 후의 묘비 사진, 전사통지서, 훈장 등 다양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이곳은 국방대학교 및 인근 중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현장 수업도 이루어진다. 이 관장은 “이 참전관이 누구나 쉽게 방문해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인천 학도병들에 대해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실제 기자가 방문한 날도 치과를 찾은 환자들이 진료를 기다리는 동안 학도병들의 빛바랜 사진을 보며 추모하기도 했고 방송에 소개된 이들 부자의 이야기를 듣고 찾아와 관람하기도 했다.
 
6·25 참전 학도병 제대로 알려져야 
 
대부분의 학도의용군은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땅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에서 제대로 된 정식 군사훈련도 받지 못하고 심지어 군번도 없이 전쟁을 치르기도 했다. 당시 전쟁에 참여한 학도의용군은 약 2만 5천 명에서 3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지만 실제 희생자나 유가족 현황 등 자료나 기록이 제대로 남아 있지 않다. 또한 당시를 증명할 근거 자료가 없어 학도병임에도 유공자 등록을 하지 못한 이들도 있다. 학도의용군은 전쟁에서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며 전의를 높이는 데 기여했지만 다른 참전 용사들에 비해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심지어 60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학도병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전문가들은 어린 나이에 총을 잡은 학생들의 희생을 잊어서는 안되며 이들을 위한 체계적인 자료 정리와 연구 및 국민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요즘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가 많아지는 만큼 6·25전쟁에 대한 기억도 점점 흐려지고 있다. 하지만 나라를 위한 그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없을 것이다. 학도의용군들이 어린 나이에 겪은 전쟁의 고통과 참상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살고 있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상처이다. 이제 그들의 용기와 애국심, 그리고 희생정신이 오늘날 대한민국 국민들의 가슴 속에 꺼지지 않는 불길로 승화되길 기대해 본다.
 
김인나 기자 innakim@igood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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