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쁜소식선교회를 말한다! (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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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쁜소식선교회를 말한다! (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7.1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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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인도(引導)로 시작된 선교학교

“30여 년 전 대구 파동에서 사역할 때 주님은 내 마음에 선교학교에 대한 마음을 자꾸 일으키셨다. 선교학교 운영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내게 그것은 너무나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더욱이 당시 우리 교회는 성도들도 많지 않았고 초라했다.
심지어 우리 가족은 양식이 없어 식사를 제대로 못했던 어려운 때였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기도할 때면 계속 선교학교에 대한 마음을 일으키셨다. 그것은 분명 내 뜻이 아니었다. 물론, 성도들의 뜻은 더욱 아니었다. 그것은 오직 주님의 뜻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사실을 깊이 발견하면서 결국 나 자신과 형편을 부인한 채 선교학교를 시작하게 되었다.”(박옥수 목사, 월간 ‘기쁜소식’ 2005년 12월호)
지난 번에도 언급했듯이, 기쁜소식선교회는 박옥수 목사의 신앙관을 토대로 1976년 7월 12일, 거듭난 전도자들의 양성 기관인 선교학교(한국복음선교학교)가 시작되면서 본격적으로 태동했다. 특이할 만한 사실은, 선교학교의 시작은 박 목사를 비롯한 어느 누구의 뜻에 의해 되어진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았다는 것이다.

불가능한 형편을 뛰어넘고

여러 정황을 살펴볼 때 인간의 기준과 판단으로는 결코 선교학교를 시작할 수 없었다. 그래서 박 목사 자신부터 엄두를 내지 못한 채 많은 갈등을 해야 했다. 당시 박 목사가 시무했던 대구중앙교회는 화신반점이란 중국집 2층의 작은 홀을 빌려 사택과 예배당을 꾸민 초라한 교회였고, 성도도 40여 명밖에 되지 않는 개척교회였다. 하지만 선교학교를 향한 하나님의 뜻 앞에 박 목사는 결국 마음을 정했고, 예배 시간에 선교학교에 대해 광고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 성도들 모두가 선교학교를 반대했다.
“그때 온 교회 형제 자매들이 박 목사님을 이해하지 못하고 반대했습니다. ‘목사님도 끼니를 제대로 때우지 못하는 가난한 형편에 선교학교를 시작하면 누가 학생들을 먹여 살리냐?’고 말입니다. 하지만 목사님은 형편이나 사람에게 기대를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형편은 불가능했지만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의지하여 선교학교를 시작하셨습니다. 그것은 정말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된 일이었습니다.”(김동성 목사, 제1기 선교학교 졸업, 現기쁜소식대구교회 시무)

임영빈 박사 (前 대한성서공회 총무)의 후원

주님은 박 목사의 마음에 선교학교에 대한 당신의 뜻을 여러 부분으로 보이시면서 그의 마음을 이끌어 가셨다. 그 중 하나가 박 목사의 처 외숙부인 임영빈 박사의 후원이었다.
“복음적인 선교학교 시작은 한국 교회에 꼭 필요한 일이다. 자네, 이 일을 꼭 해야 하네.”(임영빈 박사, 전 대한성서공회 총무 및 세계성서공회 실행위원회 위원)
임영빈 박사는 1949년 3월부터 1966년 5월까지 17년 동안이나 대한성서공회를 대표하는 총무로, 영국 왕실의 후원을 받아 한국에 성경을 보급하는 일에 큰 기여를 한 한국 기독교사의 중심 인물이다. 그는 박 목사에게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신앙 서적들을 아낌없이 주면서 믿음으로 선교학교를 시작할 것을 격려했고, 마음을 다해 후원할 것을 약속했다. 당시 한국 복음화의 중심 인물이었던 임영빈 박사의 후원은 성도들의 반대에 직면하고 있던 박 목사의 마음에 큰 힘을 주었고, 선교학교가 하나님의 뜻인 것을 더욱 깊이 깨우쳐 주었다.

영원한 속죄제사 - 선교학교의 토대

또한, 하나님은 당시 박 목사를 통해 대구에서 일어난 복음의 역사와 그 역사의 바탕이 되었던 ‘영원한 속죄제사’(히 10:12)에 대한 말씀을 통해 선교학교에 대한 당신의 뜻을 더욱 분명히 보이셨다.
1973년 1월 26일부터 대구에서 사역을 하게 된 박 목사를 통해 주님은 대구 효성여고, 경산조폐공사 등에서 계속 구원의 역사를 일으키셨는데, 특히 장로교회 목사나 신학생들도 박 목사를 통해서 구원을 받는 역사가 끊임없이 일어났다. 그로 인해 박 목사가 얻은 별명이 ‘속죄 목사’였고, 그 복음의 역사의 바탕이 되었던 말씀이 영원한 속죄제사에 대한 말씀이었다. 대구에서의 복음의 역사와 그 역사의 토대를 이룬 영원한 속죄제사에 대한 말씀은 하나님께서 선교학교를 앞두고 박 목사에게 허락하신 선물과도 같았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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