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도 축구화도 첫 모습 잃지 않는 게 진짜 명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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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도 축구화도 첫 모습 잃지 않는 게 진짜 명품이죠”
[인터뷰] 축구화 장인 김봉학 대표 인터뷰 - 40년째 축구화 만든 장인, 北韓에 제작 기술 전수로 화제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15.01.09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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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9일 아시아 최대의 축구 축제 ‘아시안컵’이 호주 멜버른에서 개막했다. 온 국민의 시선이 그라운드 위 선수들에게 집중되고 있는 가운데, 여기 그들의 발에 신겨진 축구화를 유심히 바라보는 이가 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40년째 맞춤 수제 축구화를 만들어 오고 있는 신창스포츠 김봉학(53)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축구화를 만들기 시작한 계기

어릴 적 가정 형편이 너무 어려워 13살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아이스크림 공장, 철공소 등을 전전하다가 우연히 신발공장에 취직하게 되었는데, 그때 신발 만드는 기술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수년 후 공장을 나와 축구화 수선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저만의 축구화를 만들고 싶은 꿈이 생기더라구요. 그때부터 수선을 통해 번 돈을 밑천 삼아 축구화를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변에 유명 스포츠 브랜드가 얼마나 많은데 네가 만든 축구화를 누가 신겠냐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생각이 달랐어요. 축구화를 수선하러 오는 손님들을 보니 저마다 발 모양이 제각각이더라구요. 그걸 보면서 분명히 자기 발에 꼭 맞는 맞춤 축구화를 찾는 이들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해서 지금까지 맞춤 수제 축구화를 만들어 오고 있습니다.
 
 축구화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한다는 게 어렵지 않나
 
예전에는 많은 고객들이 유명 브랜드 축구화가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아 많이 힘들었죠. 그런데 몇 년 전부터 고객들의 인식이 조금씩 바뀌고 있는 것 같아요. 요즘은 어떤 브랜드냐 보다 자기에게 잘 맞는 제품을 선호하는 분들이 점점 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만든 축구화를 한 번 신어 본 고객들은 다시 찾아 오는 경우가 많아요. 지금도 고객의 소리에 귀 기울여 조금 더 편안하고 좋은 축구화를 만들기 위해서 끊임없이 새로운 소재를 찾고 디자인을 구상하곤 합니다.
 
가장 힘들었을 때는 언제인지
 
올해 스물 두살 된 아들이 있는데,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모야모야병’라는 희귀병과 심장판막증에 걸려 지금까지 오랜 투병을 해오고 있습니다. 아들 때문에 모든 걸 다 그만둘까 생각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항상 저를 찾아주는 손님들이 생각나 도저히 일을 그만둘 수 없었습니다. 
 
축구화를 만들면서 가장 보람있었던 때는
 
신발 제작 기술자는 자신이 만든 신발에 만족한 고객이 다시 찾아주었을 때 제일 행복하죠. 여담입니다만 신발이 워낙 튼튼해서 고객들이 다시 오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요.(실제로 취재 당일 수선 의뢰가 들어온 축구화 중 그가 10년 전에 만든 축구화가 있었다.)
혹자는 그렇게 신발을 튼튼하게 만들면 무슨 장사를 하겠냐는 농담도 해요. 그런데 저는 장사꾼이기보다 기술자로 남고 싶어요. 그래서 조금 이익이 덜 남더라도 항상 좋은 재료를 사용해 오래 신어도 모양이 변하지 않는 축구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북한에 축구화 만드는 기술을 전수했다는데
 
2008년 지인의 소개로 우연히 축구화 마흔아홉 켤레를 북한 여자축구선수들에게 보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선수들이 17세 이하 세계 여자축구대회에서 우승을 했습니다. 이후 북한 김정일이 선수들에게 지금까지 신어본 축구화 중 어떤 것이 제일 좋으냐고 물었다고 해요. 그때 선수들이 제가 만든 신발이 제일 좋다고 대답 했답니다. 
그 일이 계기가 되어 북한에 축구화 만드는 법을 가르쳐 줄 수 있냐는 제의가 들어 왔습니다. 그래서 2011년 1년 동안 중국에 머물면서 북한 기술자들에게 축구화 제작 기술을 전수했습니다.
 
새해 소망 한마디
 
새해에는 장인이나 기술자에 대한 사회적인 처우가 나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훌륭한 기술이나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왜 우스갯소리로 청계천에서는 탱크도 만들 수 있다는 얘기도 있잖아요.
진정 자기 기술을 개발하고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위해 도전하는 이들이 최소한의 생계 걱정 없이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나 정책이 강화되었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욕심을 말하자면 우리나라 프로선수들이 제가 만든 신발을 신고 뛰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하하하)
 
후기
인터뷰를 마친 후 기자는 밝게 웃는 김봉학 대표를 보면서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의 일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으로 외길을 걷는 이런 장인들이 있기에 우리나라의 미래가 결코 어둡지만은 않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강민수 기자 wonderwork91@igood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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