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 명장이란 소리가 아직은 이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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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 명장이란 소리가 아직은 이릅니다”
[인터뷰] 특별인터뷰 - 최대한 떡 명장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12.12.16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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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하고 쉬운 일만 하려는 젊은이들이 늘어가는 요즈음, 갈수록 육체적 노동과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직종들이 외면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사회 분위기 가운데 평생 외길을 걸어 온 부모님의 가업을 물려받아 이제 그 일을 천직으로 여기며 형제들과 함께 매일 매일 꿈을 만들며 살아가는 국내 최연소 떡 명장 최대한(26세, 경기떡집 연구실장) 씨를 만나 보았다.

언제부터 떡을 만들었는지.

중학교 2학년부터 떡을 만들었습니다. 어릴 때 운동선수가 꿈이었는데, 당시 갈피를 못 잡는 저에게 아버지께서 떡 만드는 일을 권하셔서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이 길로 들어섰습니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힘든 일을 기피하는 분위기인데 이 일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저의 부모님에게 떡은 가족의 생계수단이었지만 저에게는 ‘아버지의 오랜 기술’을 이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일은 힘들었지만 배우고 성취하는 과정은 굉장히 즐거웠습니다. 게다가 작년에 명장 대상을 수상(2011)하고 나서는 12년 가까이 아버지 밑에서 또래 친구들처럼 놀지 못한 것에 대한 보상을 받은 것 같아 더욱 즐겁고 보람 있게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떡을 만드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닐 텐데 가장 힘들 때는 언제인지.

무엇보다 매일 새벽 2~3시부터 떡 만드는 일을 하다 보면 제 시간이 없는 거예요. 친구들과 함께 놀러도 가고 어울리고도 싶은데, 그 부분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20대 초반에는 남들처럼 정장을 입고 회사 다니는 것이 부러워 외도도 해보았지만, 결국은 다시 돌아오게 됐습니다.

삼형제 모두가 떡 만드는 일을 한다던데.

부모님이 30년 넘게 운영해 오신 떡집을 명문대를 졸업하고 사법고시 준비하다가 뒤늦게 같이하게 된 큰 형님과 초등학교때부터 떡 만드는 일을 해온 막내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현재 큰 형님은 ‘소담’이라는 떡 브랜드를 만들어 홍보마케팅 분야을 맡아서 하시고 저는 순수하게 떡을 만들거나 신제품 연구에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형제들 외에도 둘째 형님의 친구와 막내의 친구가 함께 이 길을 걷고 있어 든든합니다.
서구 음식문화의 발달로 쌀이나 떡의 소비가 줄어들고 있는데 떡집 운영은 어떤가.

최근에는 서구 음식문화의 주재료인 밀과 버터, 설탕 등의 폐해로 몸에 좋은 음식을 찾기 시작하면서 ‘전통음식으로의 회귀’ 현상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습니다. 실례로 떡 케이크의 매출이 오르면서 떡과 전통음식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2011년 경기도 주최 “대한민국 떡 명장 선발대회”에서 최연소 명장이 되었는데.

기쁘기도 했지만 사실 모든 사람들이 명장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저에게 완벽함을 요구하니까 무척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런 저에게 늘 힘이 되어주시는 아버지께서 “너는 명장이 되기 위한 길을 걷고 있는 것이지 아직 명장이 아니다”라고 강하게 말씀을 하시며 항상 겸손하라고 하셨습니다.

명장님이 생각하는 가장 좋은 떡이란.

말 그대로 최고의 떡은 최상의 재료로 만든 떡입니다. 물론 단가가 맞지 않아 때때로 고심도 하지만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타이틀만 명장이 아닌 명품 떡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어 합성첨가물을 배제한 자연 그대로의 재료를 사용하려고 노력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먼저 맛으로 대한민국에서 인정을 받은 후 전통의 맛으로 서구의 디저트들과 어깨를 견줄 만한 떡 디저트를 개발해 전 세계에 소개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미경 기자 jademk@igood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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