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콘 ‘애정남’을 통해 반추해 본 한국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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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콘 ‘애정남’을 통해 반추해 본 한국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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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11.10.23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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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개그콘서트의 ‘애정남’ 코너가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다. 기자는 몇 주 전, 설날 세뱃돈을 어떻게 줄지를 정해주는 내용을 보며 “맞다 맞아” 하면서 웃고 박수치며 공감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한편 애정남이 정리해 주는 문제들이 너무도 다양하고 많아서 ‘내가 사는 사회가 이렇게 애매모호한 사회였나?’를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사실, 한국 사회는 원래부터가 어떤 상황에서 기준을 정확히 정하지 않고, 그러한 애매한 상황들을 ‘알아서’ ‘눈치껏’ 잘 넘어가는 것을 미덕으로 여겨온 사회였다. 이러한 미덕이 한국말에도 영향을 미쳐, 분명하게 정의되지 않는 말들도 많다.
예를 들면,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도 알고 있는 우리말의 정(情)은 감정(feeling), 정서(sentiment), 심정(heart) 등과는 다르게 한 단어로 표현되는 단어가 없다. 즉 한마디로 애매하다는 것이다. 결국 한국 사회는 말과 행동에서 모호한 상황을 만들 수밖에 없는 유전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한국 문화의 문제점은 우리 사회가 급성장하면서 서구의 개인주의가 팽배해지고, 예전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양한 사회가 되면서, 대충 넘어가던 상황들이 이제는 그냥 넘길 수 없는 상황까지 와 버린 것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우리’보다는 ‘나’가 ‘대충’보다는 ‘정확한 몇 개’ 가 더 중요한 사회로 변화되는 과도기를 겪고 있다. 이에 따라 다변화되고 복잡해지는 현실 속에서 어려운 상황 해결에 대해 모두가 이해할 만한 기준을 명쾌하게 말해준다는 점에서 대중들이 ‘애정남’에 대해 공감하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
그러나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하지 않던가?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잠자리에 들기까지 우리는 수많은 선택과 결정의 순간을 맞는다. 하지만 이때마다 우리는 “애정남, 도와줘요”라고 큰소리로 부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여태까지 그랬던 것처럼 ‘대충’ 넘어가는 것도 곤란하게 되었다.
따라서 어떤 기준이 마련되어야 하지만, 그것을 법으로 다 규율할 수 없으니, 바로 법과 제도 이전에 인간사회의 기본 원칙인 ‘신의와 성실의 원칙’이 기준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변정아 기자 jeongahb@good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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