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믿고 살았던 ‘압살롬’ 그의 죽음이 주는 의미
상태바
자신을 믿고 살았던 ‘압살롬’ 그의 죽음이 주는 의미
[사무엘하 18장 1절 ~ 18절] 2022. 7. 24. 주일 오전예배 설교 - 923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22.07.29 16: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6.25전쟁이 끝난 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 생각과 다를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우리 자신의 생각을 따라가면 모든 것이 더 잘 될 것처럼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눈으로 볼 때 잘되고 못되는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하나님이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마음에 죄가 많아 지옥에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는 6.25전쟁이 끝난 후였는데 학교에 가면 학급의 삼분의 일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없는 고아였습니다. 저는 고아는 아니었지만 집이 가난해 굶을 때가 무척 많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열다섯, 열여섯 살 정도 되었을 때 친구들과 남의 밭에 들어가 도둑질을 시작했습니다. 

배고프던 어린 시절

친구들과 밀밭에 기어들어가 칼로 밀을 베어낸 후 가슴에 싸서 산꼭대기로 올라갑니다. 산에서 나무를 모아 불을 피우고 거기에 밀을 구운 후 손으로 막 비비면 껍질이 까지는데 껍질을 호호 불어내고 밀 알갱이를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지 모릅니다. 밀만 아니라 남의 밭의 사과나 감자 등도 훔쳐 먹을 때가 있었습니다. 도둑질을 할 때는 아무 생각이 안 드는데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면 그런 일들이 얼마나 마음의 가책이 되는지 말로 다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지옥에 갈 것이라는 것에 조금도 의심이 없었습니다.
한번은 교회 종각 꼭대기에 올라가 페인트칠을 하는 일이 있었는데 ‘내가 이 일을 하다 떨어져 죽으면 하나님이 나를 좀 봐주셔서 하늘나라 가게 하시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성경을 모르니까 늘 애매한 생각 속에서 신앙생활을 해왔습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죄인이라는 가르침을 받으며 늘 마음이 혼돈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죄를 씻고 싶어 성경을 읽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레위기 4장의 속죄제사에 관한 말씀을 읽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에 죄를 씻는 방법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성경을 자세히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죄를 씻는 방법을 찾아

레위기 4장을 보면 속죄제사에는 네 가지 제사법이 있습니다. 첫째, 제사장이 죄를 지었을 때 둘째, 온 이스라엘 회중이 죄를 지었을 때 셋째, 족장이 죄를 지었을 때 넷째, 평민이 죄를 지었을 때입니다. 저는 평민이라고 생각해서 평민의 속죄제사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만일 평민의 하나가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다가 그 범한 죄에 깨우침을 받거든 그는 흠 없는 암염소를 끌고 와서 그 범한 죄를 인하여 그것을 예물로 삼아”(레 4:27~28) 우리가 죄를 지으면 그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에 우리 대신에 누군가 죽어야 합니다. 말씀을 읽으며 죄를 사하는 방법이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긴장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다음 29절 “그 속죄제 희생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 희생을 번제소에서 잡을 것이요”라는 말씀을 읽고 속죄제 희생인 암염소의 머리에 안수하라는 말씀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염소가 목사가 되거나 장로가 되는 것도 아닌데 왜 안수를 받아야 하지?’ 그 안수의 의미를 잘 몰라 오랫동안 고민하면서 성경을 참 많이 찾았습니다. 이사야 34장 16절을 보면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한쪽만 읽어서는 정확한 의미를 알 수가 없습니다. 성경은 짝이 있기 때문에 말씀을 전체적으로 봐야 그 정확한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안수(按手)의 의미

어느 날 레위기 16장 21절을 읽으면서 제가 궁금해 하던 안수의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있었습니다. “아론은 두 손으로 산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여기 속죄제사에서 염소에게 안수하는 것은 나에게 있던 죄가 염소에게 넘어가는 것을 뜻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에 죄 사함을 받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죽어야 하는데 죄지은 사람을 대신해 죄를 넘겨받은 그 암염소가 죽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입니다.
마태복음 3장을 보면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사하시기 위해 먼저 온 인류의 죄를 넘겨받으셔야 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대제사장의 아들로서 구약의 속죄제사에서 제사장이 양의 머리에 안수하여 죄를 넘겼듯 예수님에게 온 인류의 죄를 넘기는 세례를 베푼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을 보면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며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넘겨받은 사실을 정확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의 죄는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예수님에게 넘어간 것입니다. 목회자가 하는 모든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설교라도 말씀과 다르다면 그것은 거짓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지고 우리를 대신해 죄의 값을 지불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셨을 때 우리의 모든 죄가 끝이 난 것입니다. 이 말씀 앞에 그 어떤 생각과 이론도 모두 잠잠해야 합니다. 

다윗을 대적한 압살롬

다윗에게는 압살롬이라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온 이스라엘 가운데 압살롬 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 받는 자가 없었으니 저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 그 머리털이 무거우므로 년말마다 깎았으며 그 머리털을 깎을 때에 달아 본즉 왕의 저울로 이백 세겔이었더라”(삼하 14:25)라고 성경에 기록될 정도로 외모가 뛰어났고 특히 자신의 머리털을 무척 자랑스러워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압살롬이 아버지를 대적해 군대를 거느리고 성으로 쳐들어왔습니다. 다윗은 이 소식을 듣고 자신의 군대와 압살롬의 군대가 성안에서 싸우면 백성들이 위험해지기 때문에 그 자리를 피해 도망갔습니다. 압살롬은 칼 한번 안 휘두르고, 활 한번 안 쏘고 다윗의 왕궁을 차지했습니다. 사무엘하 18장을 보면 다윗의 군대와 압살롬의 군대가 광야에서 싸우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윗은 그동안 전쟁을 많이 해봤기 때문에 뛰어난 지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반면 압살롬은 너무나 손쉽게 다윗성을 빼앗았기 때문에 전쟁에 대해 잘 모르면서도 그의 군대와 자기의 잘남을 믿는 마음으로 전쟁에 나갔습니다. 

아름다운 머리카락 때문에

드디어 다윗의 군대와 압살롬의 군대가 에브라임 수풀에서 싸우게 되었는데 압살롬의 군대가 패했습니다. 압살롬은 다급히 도망쳤습니다. 그런데 압살롬은 전쟁 중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멋진 머리카락을 뽐내기 위해 투구도 쓰지 않고 전투에 나갔습니다. 그는 노새를 타고 도망을 치다가 머리카락이 큰 상수리나무 가지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압살롬이 타고 있던 노새가 앞으로 빠져나가 버리자 그는 꼼짝없이 나뭇가지에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옆구리에 차고 있던 칼을 꺼내 머리카락을 자르면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었을 텐데 압살롬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전쟁에서 투구도 쓰지 않을 정도로 자랑스럽게 여기는 머리카락을 차마 자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 모습을 다윗의 부하가 보고 요압 장군에게 보고했습니다. 그러자 요압이 창을 가지고 가서 압살롬의 심장을 찔렀습니다. 압살롬의 인생은 이렇게 비참하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자만(自慢)의 결과

압살롬이 여기서 잘못한 것이 무엇인가요. 첫째는 전투에 임하면서 투구를 쓰지 않았다는 것이고, 둘째는 이제 자신이 왕이 되어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지키는 호위병을 거느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머리가 나뭇가지에 걸렸을 때 머리카락을 자르면 살 수 있는데 압살롬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왜 압살롬은 이렇게 행동하게 되었을까요? 앞에서 말한 대로 압살롬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너무나 자랑스럽게 여기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투구를 쓰지 않았고 자신의 생명이 위험함에도 불구하고 나뭇가지에 걸린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았습니다. 또한 반역을 할 때 그는 칼 한번 휘두르지 않고 너무나 쉽게 왕궁을 차지했기에 다윗을 죽이는 것도 쉬울 것이라고 자만했기 때문입니다. 압살롬이 만약 지금까지 자신의 아버지와 함께한 하나님을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반역을 일으키지도 않았겠지만 설령 반역을 일으켰더라도 절대로 이렇게 자기 생각이 가는 대로 행동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공하는 삶이란

사무엘하 18장의 압살롬처럼 오늘날 신앙을 한다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생각을 더 신뢰하고 따르는 것을 많이 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분명히 나타난 사실은 하나님은 당신을 섬기는 다윗에게는 이길 방법과 길을 여셨고 반대로 자기 자신을 섬기는 압살롬은 망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굉장히 지혜롭고 똑똑하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그 생각은 굉장히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는 것 같지만 결국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되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 말씀과 내 생각이 맞는지, 틀린지 정확히 확인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뛰어난 지혜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성경과 맞지 않으면 그 길의 결국은 패망입니다. 반대로 아무리 우리가 부족하고 미련할지라도 성경 말씀에 자신의 마음을 맞추고 그대로 발을 내디디면 우리 삶은 성공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나 ‘존 아타 밀스’ 前 대통령

2012년, 저는 ‘존 아타 밀스’ 가나 前 대통령을 임종 5시간 전에 만났습니다. 당시 가나 IYF월드캠프 개막식에 가나 영부인이 오셔서 축사를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영부인께서 축사를 마치시고 바로 가시지 않고 행사가 끝날 때까지 저를 기다리셨습니다. 행사가 마치자 저에게 “목사님, 지금 대통령께서 많이 위중하십니다”라며 기도를 부탁하셔서 다음 날 대통령궁을 방문했습니다.
대통령께서 저를 보시더니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 오늘 아침에 눈을 떴는데 ‘내가 앞으로 며칠을 더 살 수 있을까. 잘못하면 오늘이라도 죽을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대통령은 이미 일 년 전부터 병과 싸우고 계셨습니다. “저는 가나에서 제일 믿음이 좋은 대통령으로 인정을 받아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죽음 앞에 서니 두려운 것이 있습니다. 제가 대통령이지만 저도 죄를 지었고 아직 죄 사함을 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오늘날 한국의 많은 기독교인들도 이 문제 앞에 서면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열심히 다녀서 집사가 되고, 장로가 되어도 우리 죄가 씻어진 사실을 정확하게 가르쳐주는 교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시고 일을 하십니다.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직장, 사회적 위치, 돈을 버는 것 등이 하나님의 뜻에 의해 되어진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냥 자신의 능력으로 잘 해 나가면 될 것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압살롬처럼 자신을 똑똑하고 잘난 사람으로 여기며 자기 결정을 따라 삽니다. 이것은 성경적으로 봤을 때 굉장히 어리석은 것입니다. 
압살롬이 다윗성을 점령했을 때 자신이 왕이 다 된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선택한 왕은 다윗이었기 때문에 압살롬은 결국 패망하게 됩니다. 이 말씀을 볼 때면 저도 압살롬과 같을 때가 참 많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 일은 내가 참 잘했어. 아무도 이런 생각은 못했을 거야’ 그런데 분명한 것은 ‘나는 예전에 도둑질하고 거짓말하는 죄인이었어. 그런 삶을 살면서 고통스러웠어. 나는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악한 인간이었어’라는 것입니다.

유명한 목회자의 간증

성경은 우리 죄가 예수님에게 넘어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에 “이 뜻을 좆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 10:10)라며 우리가 하나님 앞에 거룩한 존재라고 말씀하십니다. 대부분의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이 죄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이야기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집사님도, 장로님도 심지어는 목사님까지도 자신은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여전히 죄인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모독하는 말입니다.
얼마 전에 유명한 목사님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간증을 했습니다. “어느 날 내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죽어서 지옥에 갔습니다. 그래서 회개 기도를 했더니 하늘나라로 올라갔습니다.” 이것은 아주 위험한 이야기입니다. ‘회개했더니 천국을 갔다’는 말은 회개가 죄를 사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인데 그것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절대로 회개가 죄를 씻을 수 없습니다. 회개가 죄를 씻을 수 있다면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이실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죄를 씻을 수 있는 것은 회개가 아니고 오직 예수님의 피입니다.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 하며 많은 사람이 찬송을 부르면서도 그게 무슨 뜻인지 정확히 모릅니다. 

자기 생각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신은 여전히 죄인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우리 죄를 사한 것이 맞지만 자신의 모습을 보면 여전히 죄를 짓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성경을 믿지 않고 자기 생각을 믿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로마서 3장 23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며 우리 모두가 죄인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24절을 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라고 되어있습니다. 이미 우리는 예수의 피로 의롭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의롭게 하시고

로마서에만 아니라 고린도전서 6장 10절에도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 기록하고 바로 다음 11절에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말씀은 분명히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우리가 의롭고 거룩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죄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실패했다는 말밖에 안 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실패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완벽하게 씻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의롭다, 거룩하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복음의 일꾼이 되어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 말씀 앞에 우리의 생각을 버립시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죄가 씻어졌다고 하면 씻어진 것이고 우리 죄를 기억지 않는다면 설령 우리 생각 속에서 기억이 나더라도 하나님은 기억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지만 예수님은 그 죄의 값을 정확히 치루셨습니다. 그 피로 우리가 거룩해졌고, 의로워졌습니다. 이런 말씀이 성경에 너무나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죄인이라는 말은 겸손한 말이 아니라 십자가를 모독하는 말입니다. 그건 정말 악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말입니다. 이제 더 이상 압살롬처럼 자기 자신을 믿지 말고, 우리 죄가 씻어졌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읍시다. 
여전히 죄인이라고 하는 사람은 성경을 몰라서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선교회는 성경에 정확히 기록된 죄 사함에 관한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전하는 말씀을 듣고 전 세계 수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이 깜짝 놀라며 다시 성경 말씀으로 돌아가 구원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선교학교를 세우고 선교사를 보내는 이유는 이 귀한 복음을 전 세계에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들도 예수님이 우리 죄를 사하신 이 귀한 복음을 전하는 ‘복음의 일꾼’이 되시길 바랍니다. 
- 2022. 7. 24. 주일 오전예배 설교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