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전하며 사는 삶이 가장 귀하고 영광스런 삶
상태바
복음을 전하며 사는 삶이 가장 귀하고 영광스런 삶
[창세기 6장 1절 ~ 22절] 2022. 2. 20. 주일 오전예배 설교 - 901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22.02.25 16: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성경 안에 담겨져 있는 것

우리가 읽는 이 성경은 약 1800 페이지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해서 그것을 우리 마음에 받아들인다면 하나님과 한마음이 되어 그분의 뜻이 우리를 통해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은 모두 자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그대로 마음에 받아들이려면 하나님의 마음과 다른 자기 생각을 버려야 하는데 그 과정이 쉽지 않습니다. 성경을 읽긴 읽어도 사람들의 생각이 말씀과 달라서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그래서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려면 자기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찬송가의 내용과 달라

성경에는 예수님의 피로 우리 죄가 씻어졌다는 말씀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리고 모든 교회가 이렇게 찬송을 부릅니다. “그 피로 속죄함 얻었네~♬”(189장, 새찬송 257장) “기쁜 날 기쁜 날 주 나의 죄 다 씻은 날~♪”(209장, 새찬송 285장) 그런데 찬송이 끝나고 기도할 때는 “오~ 주님, 이 더러운 죄인을 용서해 주시옵소서”라고 합니다. 방금 죄 사함을 받았다고 찬송했는데 더러운 죄인이라고 말을 합니다. 
여러분,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말씀을 정확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생각을 보탰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 생각이 어떠하든지 그것을 비우고 ‘하나님이 의롭다고 하시면 의로운 게 맞고, 하나님이 거룩하다고 하시면 우리가 거룩한 게 맞아’라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한글 킹제임스성경을 보면

우리 교회는 성경 개역한글판을 사용하고 있는데 한 분이 저를 찾아와 이야기했습니다. “목사님, 왜 사단의 책을 가지고 설교를 하십니까?” 제가 깜짝 놀랐습니다. “이게 사단의 책이라고요? 아닙니다. 이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자 그는 “성경 중에 킹제임스버전만 온전한 성경입니다. 그건 사단의 책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전에 제가 한글 킹제임스성경이 나왔을 때 300권을 사서 우리 선교회 목사님들께 나눠주면서 “이 성경을 한번 보십시오. 이것이 좋으면 앞으로 이 성경을 사용합시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성경책을 읽다가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번역 자체가 잘못된 것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 한 가지 예로 개역한글판 예레미야 17장 11절을 보면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필경은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뻐꾸기는 자신의 알을 다른 새의 둥지에 낳는데 그 알이 부화하여 먹이를 받아먹은 후 어느 정도 자라면 둥지를 떠난다고 합니다. 다른 새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낳지 않은 알을 품었는데 결국 떠나가 버린 것입니다. 이처럼 불의로 재물을 모은 사람은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이 결국 떠나간다(재물을 잃게 된다)는 것을 이야기한 성경 구절입니다.
그런데 한글 킹제임스성경을 보면 “자고새가 알들을 품어도 부화되지 않는 것처럼 바르게 재산을 모으지 아니한 자도 그의 생애 중간에 그것들을 떠나 보내리니 그의 종국은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부화되지 못한 알’이 어떻게 떠나갑니까? 문장 자체만 놓고 보더라도 논리적으로 앞뒤가 안 맞는 번역입니다. 이렇게 오류가 많아 결국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동양언어와 서양언어

또 다른 문제는 성경을 번역하려면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문을 한글로 번역해야지 영어 번역본을 한글로 중역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영어 성경은 한국어 성경에 비해 단어 수가 훨씬 많습니다. 동양언어는 서양언어에 비해 정신세계를 표현하는 단어가 많습니다. 그래서 한국어에서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도 영어에서는 동일한 뜻을 전달하기 위해서 다수의 단어를 사용해야 할 때가 많기 때문에 그만큼 단어 수가 많아지게 됩니다.
그리고 동양언어는 정신세계의 표현이 매우 섬세합니다. 영어에서는 ‘죽다’라는 단어의 표현이 Die나 Pass away 정도입니다. 하지만 한국어에서는 ‘죽다’, ‘뒈지다’, ‘돌아가시다’, ‘숨을 거두다’, ‘사망하다’, ‘운명하다’, ‘소천하다’, ‘별세하다’, ‘서거하다’ 등 그 대상과 상황 그리고 말하는 이의 감정에 따라 죽음을 표현하는 단어가 무척 많습니다. 또 외국에서 설교할 때 제가 “한국 사람은 정이 많습니다”라고 하면 ‘정’이란 단어를 대부분 ‘Love’라고 통역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정’이란 단어는 ‘사랑’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영어를 잘 못하지만 종종 성경이 이해하기 어려울 때 영어 성경을 펴볼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한국어가 영어보다 성경 내용을 더 잘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개역한글판 성경

한글 킹제임스성경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개역한글판의 성경에 ‘없음’이라고 표기한 것을 문제 삼으면서 사단의 책이라고 말합니다. 구약성경은 양피지(양가죽)에 기록되어 있고 신약성경은 대부분 파피루스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양피지는 보존력이 좋아 구약성경은 잘 보존되었는데 파피루스는 식물줄기로 만들었기 때문에 훼손이 심해 신약 고대 사본에는 누락된 구절이 다수가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읽고 있는 성경에 ‘없음’이라고 기록된 것은 이 고대 사본에 내용이 누락되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난외주를 보면 ‘어떤 사본에’라고 하면서 그 내용을 다 기록해 놓았습니다. 신약은 사본이 여러 개이기 때문에 후대에 발견된 사본에 의해 첨가된 내용은 난외에 기록한 것입니다. 이것은 오히려 성경을 더 정확히 알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한글 킹제임스성경만 온전한 성경이고 나머지는 다 사단의 책이라고 하는 사람은 정말 영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고 이러한 성경 기록 원칙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단순히 자신이 알게 된 몇 가지 지식이 전부인 줄 아는 사람입니다. 현재 다양한 버전의 한국어 성경이 나와 있지만 아직까지 우리가 사용하는 개역한글판만큼 하나님의 마음이 잘 표현된 성경이 없습니다. 이 말씀을 마음에 받아들였을 때 하나님이 분명히 역사하시는 것을 보면 너무나 감사하고 감격스럽습니다. 

평민의 속죄제사

저는 구원을 받은 후 성경을 읽으면서 성경에 죄 사함에 대한 말씀이 참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레위기서에는 속죄제사에 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속죄제사에는 네 가지 제사법이 있는데 저는 평민이라 평민의 속죄제사를 자세히 보았습니다. “만일 평민의 하나가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다가 그 범한 죄에 깨우침을 받거든 그는 흠 없는 암염소를 끌고 와서 그 범한 죄를 인하여 그것을 예물로 삼아 그 속죄제 희생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 희생을 번제소에서 잡을 것이요”(레 4:27~29) 이 말씀에 속죄제 희생의 머리에 안수하라는 내용이 있는데 그 의미를 잘 몰라 오랫동안 고민하면서 성경을 참 많이 찾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레위기 16장 21절을 보니 제가 궁금해하던 안수의 의미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아론은 두 손으로 산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속죄제사에서 양이나 염소에게 안수를 하는 것은 죄가 넘어가는 것을 뜻하며 죄를 넘겨받은 그 양이 대신 죽는 것입니다. 

안수(按手)의 의미

속죄제사에서 안수의 의미를 알게 되니 마태복음 3장에서 예수님이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이유도 알게 되었습니다. 세례요한이 자신에게 세례를 받으러 나오시는 예수님을 말리자 예수님께서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마 3:15)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에게 의를 주시기 위해 우리를 의롭게 하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속죄제사에서 염소가 죄를 넘겨받듯 세례요한을 통해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넘겨받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 29절을 보면 요한이 자신에게 나아오는 예수님을 보며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미국 기독교의 변화

우리가 복음을 전하면서 예수님의 피가 우리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의롭게 하셨다고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생각을 따라 “우리가 지금도 죄를 짓고 있는데 어떻게 의롭다고 말할 수 있어?”라고 말합니다. 우리를 의롭다고 하신 성경 말씀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미국에 복음이 전파되면서 미국의 큰 교단들도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우리 죄가 다 씻어져 우리가 의롭다는 이 말씀이 진리다”라고 말하며 성경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미국이 우리 선교회를 통해 점차 성경 말씀으로 돌아가니 전 세계적으로 우리가 전하는 말씀에 더욱 관심을 가졌습니다. 최근 제가 케냐를 방문했을 때 3천 명이 넘는 목회자들이 모였습니다. 그곳에서 성경이 말하는 죄 사함에 대해 말씀을 전했습니다. 율법에 매여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너무나 기뻐서 모두 일어나 춤을 췄습니다. 성경 말씀을 그대로 정확하게 읽기 시작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하신 것을 분명히 알게 됩니다.

노아의 방주

노아는 구약시대의 사람인데 당시 많은 사람들이 죄를 범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하나님이 노아에게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창 6:5~13) 하나님께서 세상에 악이 가득한 것을 보시고 인간을 멸하시기로 하시고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와 당신의 말씀을 믿는 사람들이 홍수에서 구원받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방주를 지었고 마침내 홍수를 피해 생명을 구원받았습니다. 
여기서 방주는 예수님의 그림자입니다. 장차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를 죄에서 건지신다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홍수가 온 땅을 다 덮어도 방주는 그 물 위에 떠 있기 때문에 방주 안에 있으면 밖에서 일어나는 그 어떤 저주와 환난이 미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노아가 왜 방주를 만드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노아가 “하나님이 이 땅을 물로 멸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함께 방주를 만듭시다”라고 말해도 그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거부하는 사람들

홍수가 났을 때 방주에 탄 사람이 노아와 그의 식구들 뿐인 것을 보면 다른 사람들은 물로 세상을 멸하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 어떤 일이 있었을까를 상상해 보았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다 만들고 나서 며느리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얘들아, 너희 친정에 가서 다 같이 방주에 타자고 말씀드리거라.” 노아의 말을 듣고 며느리들이 친정 부모님들께 방주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친정 부모님이 아마도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네 시아버지는 나이가 들어서 정신이 없다고 해도 너나 네 신랑은 젊고 똑똑한데 그 영감의 말을 믿다니 참 안타깝구나. 내가 너를 키울 때 얼마나 곱게 키웠는데 네가 방주를 짓는다고 톱질하고 망치질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아니? 너 이제 시댁에 가지 말고 여기서 살아라…”
며느리들은 부담스럽지만 생명이 걸린 일이기에 사랑하는 자신의 부모님들이 구원을 얻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부모님을 설득하려고 했습니다. 제가 상상한 이야기지만 아마 노아와 그의 식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족, 친척,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전했을 것입니다.

“다 이루었다”는 뜻은

하나님이 노아와 그의 가족들을 위하여 방주를 준비했듯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예수님을 준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우리의 죄를 담당시키셨고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은 “다 이루었다”(요 19:30)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무엇을 다 이루신 것입니까? 우리 죄를 사하는 일을 다 이루신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는데도 여전히 우리가 죄인이라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이 실패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실패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죄를 눈과 같이 희게 사하셨습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오늘날 많은 기독교 목회자들이 우리가 죄인이라고 가르쳐 교인들이 대부분 예수님이 죄를 다 씻어놓으신 사실을 모른 채 죄 때문에 고통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따돌림을 당해

저는 어릴 때부터 장로교회를 다녔습니다. 당시는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너무나 가난해서 늘 배가 고프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때 저희는 도둑질을 많이 했습니다. 밀이 익어갈 때는 친구들과 남의 밀밭에서 밀을 베어다가 구워 먹고, 참외나 땅콩 서리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에 다니고 있었지만 죄가 있어서 지옥에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1962년 10월 7일, 이렇게 악한 제 죄도 예수님이 모두 사하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후 성경을 읽으면서 제 죄가 씻어진 것이 사실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토요일 저녁, 성가 연습을 마치고 제가 앞으로 나가 죄 사함을 받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성가대 청년들이 모두 깜짝 놀라며 우리도 죄가 있는데 어떻게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느냐며 저에게 물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당시 저는 죄 사함의 복음을 전하는 방법을 잘 몰라서 죄 사함을 받아야 한다고만 이야기하고 다녔습니다. 한 달쯤 지나자 제 소문이 교회에 퍼지게 되면서 목사님이 저를 교회에서 소외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이 설교를 마치고 광고 시간에 박옥수 선생은 주일날 자동차를 타는 죄를 지었다고 수찬정지 처분을 내린다고 했습니다. 점차 교회 성도들이 저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교회 청년들이 모이는 방에 들어가려는데 방안에서 말소리가 들렸습니다. “박옥수, 그 녀석 웃기는 녀석이야. 내가 저를 아는데 죄가 없다고?” 이 말을 들은 청년들이 다 같이 웃었습니다. 저는 쓸쓸히 교회를 돌아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교회에 다니기 어려워지던 때에 마침 외국인 선교사님이 운영하는 선교학교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선교학교에 입학하다

제가 선교학교에 들어갈 당시 한국에 약 520명의 외국인 선교사님들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거듭난 선교사님들이 계셨습니다. 그분들이 한국교회에 실제로 거듭난 사람들은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현지 목회자를 양성하는 선교학교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감사하게도 제가 그 학교에 가게 된 것입니다.
그곳에는 거듭난 성도의 교제가 있었고 말씀이 너무나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선교학교에서 말씀을 들으면서 제 마음이 살아나고 소망이 생겼습니다. 학교 기상시간이 아침 6시였지만 저는 새벽 4시에 일어나 2시간 동안 기도를 했는데 그 시간이 참 행복했습니다. 그렇게 선교학교를 마치고 저는 경남 합천군의 압곡동이라는 시골 마을에 갔습니다. 제가 그 마을에서 9개월 동안 복음을 전했는데 하나님이 저를 지키시고 이끌어 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복음 전하는 삶을 살아야

여러분, 오늘날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멸망으로 가고 있습니까? 노아 시대에도 노아의 간절한 외침을 아무도 믿지 않다가 멸망을 당했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사단이 넣어주는 생각에 이끌리고 있습니다. 더 이상 이런 생각에 이끌리지 않고 생각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마음을 같이 하고 복음을 위한 삶을 사는 것이 가장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주위에 고통과 멸망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못 본 척하지 맙시다. 홍수 속에서 노아와 그의 가족들만 구원을 받았는데 그들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저는 부족하지만 목사가 되어 주변 사람들에게 언제든지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자주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하나님, 저를 복음 전하는 목사로 만들어 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할 때가 많습니다. 이 시대에 죄로 인해 멸망 당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고 복음을 전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이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이 분명 도우시고 축복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 2022. 2. 20. 주일 오전예배 설교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