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비한 마음으로 주를 섬기며 살아가는 행복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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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비한 마음으로 주를 섬기며 살아가는 행복한 삶
[열왕기상 13장 11절 ~ 28절] 2022. 2. 13. 주일 오전예배 설교 - 900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22.02.18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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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년 전 설립한 선교학교

안녕하십니까? 우리가 말씀을 깨닫고 하나님과 우리 마음이 연결되어서 삶에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는 아름다운 일을 신앙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1976년에 선교학교를 시작했는데 그 당시 여학생 두 명과 남학생 세 명 총 다섯 명의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런 선교학교가 46년이 되도록 이어져 오면서 선교학교를 졸업한 목회자들을 통해 수많은 복음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최근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복음의 역사도 그 전도자들이 있지 않았다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들입니다.
우리 전도자들이 복음을 전하는 것도 중요하고 성경 말씀을 깨달아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는 것도 아주 중요합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생각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실제 전도자가 복음을 전해서 성도가 늘어나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인데도 그런 일이 있으면 ‘내가 선교학교 동기들보다 전도를 좀 잘하네. 우리 교회 성도들이 늘었네’ 하며 다른 전도자들과 자신을 마음속으로 비교하게 됩니다. 그 생각을 버리지 않으면 ‘난 괜찮은 사람이야. 난 전도를 잘해. 그런데 저 형제는 왜 저래? 저러면 안 돼’ 하며 점점 남을 판단하기 시작합니다.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서

1962년도에 죄 사함을 받을 당시 저는 인생 가운데서 가장 밑바닥에 있었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라도 잘했다고 말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지금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저를 높일 수 없도록 형편없는 제 모습을 보게 하셨고 세상 어디에도 기대와 소망을 가질 만한 게 아무것도 없게 하셨습니다. 
제 고향에는 전충남이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저는 목사가 된 후에도 자주 ‘우리 교회 목사가 전충남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충남이는 마음이 참 넓었지만 저는 성격이 까다롭고 마음도 좁았습니다. 한번은 제가 아끼는 물건을 한 친구가 망가뜨려서 무척 화가 났습니다. 그 친구가 제게 먼저 말했습니다. “옥수야, 미안하다.” 저는 “야, 미안하면 다야?” 하며 그 친구와 싸우고 있는데 충남이가 다가와서 “옥수야, 친구 사이에 뭐 그런 걸 갖고 그래. 내 것 줄게. 내 것이 네 것보다 훨씬 좋아”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충남이를 보며 저는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전도해서 한 사람이 구원을 받으면 ‘이 사람 정말 구원받기 어려웠는데 참 감사하다’라고 말은 하지만 한편으로 ‘내가 잘했다’라고 생각할 때가 있었습니다. 

열왕(列王)의 타락

여러분, 성경의 잠언을 기록한 솔로몬이 얼마나 좋은 말을 많이 했습니까. 그런 솔로몬이 죄악에 빠져서 천여 명 되는 아내를 두었습니다. 그가 아내의 이름을 제대로 알았겠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결국 솔로몬이 나이 들어 늙었을 때 젊은 왕비들이 솔로몬의 마음을 돌이켜 우상을 숭배하게 하는 등 타락의 길을 걷게 했습니다.
솔로몬 시대에 선지자 아히야가 입은 옷을 열두 조각으로 찢어 여로보암에게 열 조각을 취하게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여로보암을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에게는 한 지파를 주어 예루살렘을 다스리게 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왕이 된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면 됩니다. 그런데 열왕기상 12장 25절을 보면, “여로보암이 에브라임 산지에 세겜을 건축하고 거기서 살며 또 거기서 나가서 부느엘을 건축하고”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여로보암은 ‘이제 르호보암이 쳐들어오면 어떡하지?’ 하며 세겜 성을 건축하였는데 그것도 부족해서 ‘부느엘’ 성을 중건했습니다.

금송아지를 만들고

곧이어 여로보암은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전에 제사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로다”(왕상 12:27) 하며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것이 너희 신이라 하며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않아도 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여로보암이 어떻게 왕이 되었습니까? 하나님이 그를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하나님을 믿지 못하니까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사람이 교만하면 어떤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이 그 어려움을 해결해 주실 것을 바라기보다 자신의 인간적인 방법을 택합니다. 여로보암은 자신을 왕으로 세운 하나님을 믿지 않고 죄악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나를 지키시고 도우실 거야’라는 믿음보다 자기가 자기를 지키려는 생각이 앞섰던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그는 하나님을 떠나 금송아지를 만들어 단을 쌓아 두고 백성들에게 그곳에서 숭배하게 했던 것입니다.

유혹에 넘어간 솔로몬 왕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어떤 일을 좀 잘한다고 생각하게 되면 자기 방법을 의지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어떤 문제 앞에서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게 됩니다. 만일 그때 ‘하나님이 내게 이 일을 허락하셨다. 그럼 하나님을 의지해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겠다’ 하며 분명하게 마음의 선을 긋고 하나님을 바라본다면 하나님이 분명히 돕고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성경의 잠언에서 여자를 조심하라고 기록했던 솔로몬 자신이 수많은 여자를 취했는데, 예루살렘에 좀 괜찮은 여자는 솔로몬이 다 데려갔던 것 같습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이방 여인을 취했는데 그들은 솔로몬이 우상을 섬기도록 만들었습니다. 솔로몬도 이런 유혹에 넘어갔는데 우리 중에 ‘난 절대 저렇게 되지 않아’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마 이 자리엔 아무도 안 계실 것입니다. 

인간의 모습을 그린 이야기

오늘 읽은 열왕기상 13장을 보면 두 선지자가 만나 대화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이르시기를 네가 거기서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며 또 네가 오던 길로 돌아가지도 말라 하셨음이로라. 저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라 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내게 이르기를 그를 네 집으로 데리고 돌아가서 그에게 떡을 먹이고 물을 마시우라 하였느니라 하니 이는 그 사람을 속임이라. 이에 그 사람이 저와 함께 돌아가서 그 집에서 떡을 먹으며 물을 마시니라”(왕상 13:17~19)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을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가를 다시 생각해 보도록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벧엘에 늙은 선지자가 있었는데도 그가 아닌 유다의 선지자에게 “네가 가서 여로보암을 책망해라” 하셨습니다. 그가 여로보암을 책망하고 유다로 돌아가는 길에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었습니다. 벧엘에 있던 나이 많은 선지자가 아들로부터 유다에서 젊은 선지자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나귀를 타고 쫓아가 그를 만났습니다. 그에게 “나와 함께 집으로 가서 떡을 먹자”라고 하였습니다. 유다에서 온 선지자는 “나는 물도 먹을 수 없고, 떡도 먹을 수 없다. 하나님이 거기서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며 또 네가 오던 길로 돌아가지도 말라고 하셨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벧엘의 늙은 선지자가 유다의 선지자에게 거짓말을 했습니다.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라 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내게 이르기를 그를 네 집으로 데리고 돌아가서 그에게 떡을 먹이고 물을 마시우라 하였느니라.” 이에 유다의 선지자는 그 늙은 선지자를 만나서 반갑기도 했고 배도 고프니까 그와 함께 그의 집으로 가서 떡을 먹으며 물도 마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분명히 떡을 먹으러 가지 말라 하신 말씀을 버리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큰 예배당을 지은 후에

예전에 우리 선교회 이 목사님이 마산에 4층짜리 예배당을 크게 지을 때의 일입니다. 목사님 외가 어른들이 “우리 이 목사가 교회를 짓는다고 하는데 한번 가봅시다” 하시며 찾아오셨습니다. 이분들은 목사님이 작게 예배당을 짓고 있을 줄로 생각했는데 와서 보시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 목사님의 외삼촌은 “네가 이렇게 큰일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 하시며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교회가 다 지어진 후 제가 이 목사님에게 “목사님, 예배당을 잘 지으셨는데 흐뭇하지 않으셨나요?”라고 물어보았습니다. 이 목사님이 “예, 그렇습니다. 그런 마음이 들었습니다”라고 하며 외가 어른들이 방문했던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이 목사님께 “목사님, 그 마음을 버리지 않으면 하나님의 은혜에서 멀어지고 망하게 됩니다”라고 얘기했습니다.
전도자들이 복음을 전하다 보면 어느 날 사단이 그들의 마음에 이런 생각을 넣어줍니다. ‘너 진짜 복음 잘 전하네. 동료 목사들 중에 너 같은 사람이 없어.’ 아마 이런 생각을 싫어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생각을 품고 있으면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 생각을 더 믿게 되고 결국 복음 전하는 일에서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제게도 사단이 자주 그런 생각을 넣어 주었습니다. ‘너 이번에 큰 은혜를 입었네. 하나님이 네게 역사하셨네.’ 이것은 사단이 우리 신앙을 죽이기 위한 공략입니다.

과거 어려웠던 시절

저는 구원받기 전에 참 비참한 삶을 살았습니다. 제가 여덟 살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는데 6.25전쟁으로 인해 아버지는 군 보급대로 가시고 형님마저 군에 입대를 했습니다. 저희 집에는 열다섯 살 큰 누님과 열세 살 작은 누님, 저와 네 살짜리 동생 이렇게 네 식구만 남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게 한밤중인데 우는 소리가 들려 깨보니 큰 누님이 동생들을 재워놓고 집에 양식이 없어 혼자 흐느껴 울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다 깨서 서로 붙잡고 울었습니다. 음식도 없고, 옷도 없는데 날씨는 너무나 추웠습니다. 그때 비해 지금 제 삶은 너무나 좋아졌습니다. 가끔씩 식사 초대를 받는데 차려놓은 음식을 보면서 ‘진짜 내가 이런 음식을 먹을 자격이 있나’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제게 한없는 은혜를 입히셨는데 저도 마음이 높아질 때가 있었습니다. 감사하게도 그때마다 하나님이 저를 붙들어 주셨습니다. 

우리 마음의 주인은?

제가 선교학교에서 학생들을 교육하다 보면 ‘저 사람은 내가 본받을 점이 있는 참 좋은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할 정도로 훌륭한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런 사람들이 귀한 복음을 떠나 방황하고 타락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왜 그렇게 되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에다 자기 생각을 보태서 그런 것입니다. 자기를 믿는 사람들은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아닌가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자기 생각을 따라갑니다. 신앙을 할 때 자기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세우지 않으면 말씀을 뻔히 알면서도 잘못된 길로 가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는 세상을 좋아하고 육신을 위해 살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사단이 유혹하면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며 육신적인 삶으로 흘러가기 쉽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의 마음에는 성령이 거하십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귀한 복음을 전해준 교회를 떠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단이 구원받은 우리를 솔로몬이나 여로보암처럼 타락시키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우리 마음의 주인이 오직 예수님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자기 생각을 조금이라도 포함시키면 사단에 이끌려 갈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 생각에 이끌리면

오늘 읽은 열왕기상 13장의 유다에서 온 젊은 선지자도 자기 생각에 이끌려 하나님의 말씀과는 다른 길로 갔습니다. 하나님은 그 젊은 선지자에게 “네가 거기서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며 또 네가 오던 길로 돌아가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가 늙은 선지자를 만나서 함께 떡을 먹고 물을 마시며 이야기하고 싶으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힘을 잃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그 선지자는 하나님의 명령을 잘 이행하는 사람이었는데 자신의 생각에 이끌리면서 하나님에게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사단은 우리를 간교하게 유혹하여서 우리가 말씀과 다른 길로 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모르게 되고, 결국 그런 자신이 어떤 길을 걷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 두 세계

우리는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모두 육신의 욕망 쪽으로 강하게 이끌립니다. 그래서 저는 무슨 일을 할 때 ‘이것이 내 원함인가? 주님의 뜻인가?’ 하며 늘 마음속에서 싸움을 많이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귀한 뜻을 발견하고 복음을 위해 달려가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릅니다. 
아쉽게도 복음을 위해 살다가 현재 교회를 떠난 전도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주님이 아닌 자기 생각을 믿는 마음만 제해버린다면 다시 복음을 위해 함께하지 못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피로 거듭난 형제자매이고 복음을 가진 자들인데 교회를 떠나서 가슴이 너무 아픕니다. 예전에 아프리카 선교사였던 이 선교사님이 교회를 잠시 떠났다가 돌아왔습니다. 최근에 그분이 다시 선교지로 돌아가 복음을 전하게 되었는데 기뻐하며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떡을 먹은 선지자의 최후

성경 잠언을 보면 정말 귀한 글이 많은데 그런 말을 했던 솔로몬 왕이 타락해서 여자에게 빠지고 나중에는 이방 여자들까지 취하는 것을 봅니다. 그가 죽은 후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유다의 왕으로 있으면서 산당을 짓고 우상을 섬겼습니다. 여로보암은 하나님이 그를 이스라엘 왕으로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지키기 위하여 금송아지를 만들어 벧엘에 단을 쌓고 분향했습니다. 어느 날 유다에서 벧엘로 온 하나님의 선지자가 단 곁에 서서 분향하고 있는 여로보암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대로 책망했습니다. 그리고 여로보암은 그 선지자에게 은혜를 입은 게 있어서 예물을 주겠다고 했지만 그가 받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그곳에서 떡도 먹지 말며 물도 마시지 말고 왔던 길로 도로 가지도 말라”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유다의 선지자가 벧엘에 있던 늙은 선지자를 만났습니다. 그 늙은 선지자는 아들들로부터 한 선지자가 유다에서 왔다는 얘기를 듣고 쫓아온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집에 가서 물을 마시고 떡을 먹고 쉬었다 가라” 하며 유다의 선지자에게 권했습니다. 유다의 선지자는 그와 함께 집으로 가서 떡을 먹으며 물을 마신 후 하나님이 보낸 사자(獅子)에게 비참히 죽임을 당했습니다. 

자랑할 것이 없는 자인데

우리들은 자주자주 사단에게 속아서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육신의 욕망을 따라 흘러갈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때론 자신의 믿음이 좋고 신앙을 잘한다며 자기 마음을 높일 때가 있습니다. 특히 사단은 전도자들에게 끊임없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오늘 설교 참 잘했다. 네가 복음을 전한 사람들이 다 구원받았네. 사람들이 다 인정하잖아. 너는 하나님에게 은혜를 입은 사람이야.’ 여기서 아주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사단이 우리 자신을 높이는 생각을 주더라도 그 생각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인데 마음이 높아져서 교만할 때가 있습니다. 사단이 우리에게 그런 생각을 하도록 만드는 것인데 어리석은 사람은 그런 생각에 빠져듭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한때 믿음으로 살던 좋은 형제자매들이 교회를 떠나서 타락하는 것을 봅니다. 여러분, 우리가 잘한 일이 있더라도 그것을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생각하고 마음을 높여서는 안됩니다. 

겸비한 마음으로 살아야

오늘 아침에 우리가 이야기했던 솔로몬 왕이나 그 아들 르호보암,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과 유다에서 온 선지자 그리고 벧엘에 있었던 늙은 선지자, 그들은 모두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들이었다가 나중에는 하나님 앞에 버림받는 길로 갔습니다. 사단은 우리가 믿음으로 살고 믿음으로 달려가는 걸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우리 마음속에 ‘네가 잘했어. 딴 사람은 그렇게 못해. 너처럼 잘하는 사람이 없어’라며 별별 생각을 다 넣어 줍니다. 우리 마음속에서 그런 생각이 올라올 때마다 겸비해야 합니다. 우리가 정말 잘해서 일이 잘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일뿐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에겐 예수 그리스도 외에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겸비하고 하나님을 높이면 믿음을 간직할 수 있습니다. 솔로몬이나 르호보암, 여로보암, 그리고 유다의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멸망케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마음으로 겸비하여 복된 삶을 살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길 바랍니다.
- 2022. 2. 13. 주일 오전예배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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