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백사마을에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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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백사마을에 가보니…
현장르포 최근 재개발 앞둔 노원구 중계본동 백사마을의 모습은?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22.01.07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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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노원구 중계본동 백사마을 전경 사진/ 오병욱 기자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로 불리는 노원구 중계본동 백사마을 재개발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연말연시를 맞아 곧 역사 속으로 사라질 백사마을 주민들의 바람은 무엇인지 들어보았다.

아파트촌으로 탈바꿈 준비 중인 달동네

매서운 한파에 곧 눈이라도 내릴 듯이 흐린 날인 지난주, 기자는 2022년 새해를 앞두고 노원구 중계본동 소재 백사마을을 찾았다. 불암산 자락에 위치한 백사마을은 1967년 정부가 도심 개발을 위해 청계천‧영등포 등에서 살던 철거민을 강제로 이주시키며 형성된 마을이다. 마을 이름만 보면 뱀의 일종인 백사(白蛇)와 연관성이 있을 것 같지만 과거 주소지였던 ‘중계동 104번지’에서 유래했다. 
1980년대 이후 산업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백사마을 인근 다른 정착지들은 아파트 단지로 변모했지만 백사마을은 1971년부터 군사시설보호구역이자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사실상 난민촌 상태로 남아있었다. 산기슭을 따라 들어선 집들은 50여년의 세월동안 금이 가고 노후화되면서 안전사고 위험이 높아졌다. 다행히 백사마을은 2008년 개발제한구역에서 해제되어 재개발이 가능해졌고, 낡은 집을 철거하고 아파트를 신축할 수 있게 되었다. 백사마을 재개발은 104번지 일대 부지를 2025년까지 총 2437세대의 상생형 주거단지로 만드는 사업이다. 재개발이 되면 새로운 사람들이 유입되고 주거지가 획기적으로 바뀌겠지만 동시에 오랫동안 터를 잡고 살아온 주민들은 짐을 싸고 떠나야 하는 상황이다.

출처/ 연합뉴스TV 캡쳐 | 백사마을에서 연탄을 나르는 자원봉사자들 출처/ 밥상공동체 연탄은행

상당수 주민 마을 떠나 황량한 분위기

백사마을에 들어서자 재개발 시공사가 선정됐다는 홍보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마을 안에는 아주 오래된 미용실이나 철물점, 음식점 등이 영업 중이었고 60~70년대의 주거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이미 대부분 주민들이 마을을 떠났는지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 문이나 담벼락에는 빈집을 의미하는 붉은색 동그라미가 표시되어 있었다. 또한 위험을 알리는 경고문이나 출입금지 안내문이 마을의 황량함을 더했다. 마을 위쪽으로 올라가자 물건을 배달하고 나오는 택배기사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많은 주민이 마을을 떠나서 현재는 70여가구 정도 남은 것 같다. 다수의 고령자분들은 대부분 집안에 머무르고 있는 반면 일하시는 분들은 낮에 다 나가있기 때문에 마을이 적막하다”고 말했다.
한편 백사마을 재개발을 추진하면서 사업성이 낮아 사업시행자가 바뀌는 등 그 과정이 쉽지 않았다. 낡은 주거지의 재개발이 필요한 상황이라 다수는 열악한 주거환경이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하지만 과거 한번 쫓겨나 이곳으로 온 주민들은 또 내몰림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함께 재개발이 완료되어도 분담금 부담 때문에 다시 백사마을로 돌아올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 등으로 주민 간 반응이 엇갈리기도 했다. 백사마을 주민 김명호(가명, 75) 씨는 “세입자로 여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임대주택에 들어가니까 긍정적 반응이지만 소유주로 있는 주민의 경우에는 아파트로 들어오려면 분담금 부담이 크다. 그리고 이곳은 산이 있고 공기가 좋아 25년 전에 이주했는데 시끄럽게 개발하는 것보다 조용히 계속 여기에 살고 싶다”고 전했다.

추운 겨울나기에 아직도 연탄이 필요해 

기자는 마을을 다니면서 골목마다 마련된 공중화장실과 집 밖에 다 쓴 연탄을 쌓아놓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백사마을은 집집마다 화장실이 없어서 공동으로 이용하는 곳이 많았고, 전기나 도시가스 보일러를 사용하는 요즘의 가정과는 달리 연탄에 의지해 겨울을 보낼 정도로 추위에 취약하다. 그래서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연탄 후원이 많아 겨울이 되면 지게와 리어카에 연탄을 가득 실은 자원봉사자들이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연탄을 배달하는 나눔 행사가 진행된다. 20년간 이 마을에서 살고 있는 한 주민은 “백사마을의 어려운 취약계층에게 연탄을 후원하는 연탄은행이나 매년 봉사를 해주는 젊은 사람들을 보면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경기가 어려워지고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화되다 보니 자원봉사자들이 크게 줄어 아쉽다. 기름보일러는 너무 비싸서 쓸 엄두가 안 나기 때문에 연탄이 없으면 추워서 겨울을 나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작은 상점을 운영하고 있는 이영순(가명) 할머니는 “코로나 여파로 쌀과 라면 등의 지원이 끊겨 어려운데다장사도 잘 안 된다. 그래도 이곳에 살았던 주민들이 마음만은 따뜻하고 정이 많아서 이사 나간 후에도 가끔 한 번씩 찾아와 예전에 함께 살던 때를 추억한다. 이제 때가 되면 나도 가게를 정리하고 나가야하겠지만 조금이라도 더 이 마을에 있고 싶다”고 여운을 남겼다.
김인나 기자 innakim@igood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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