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가 아닌‘은혜’로 받는 구원
상태바
‘행위’가 아닌‘은혜’로 받는 구원
2005. 2. 20 주일설교 요약 - 38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05.04.1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망상에 사로 잡혀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려고 이끄시는 반면, 사단은 우리가 구원받을 수 없도록 방해하기 때문에 신·구약 66권이 만들어졌습니다. 그 속에는 우리 마음의 세계를 정확하게 표현해내는 글들이 담겨 있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아! 이래서 우리가 믿음에 서지 않는구나! 이래서 믿음이 오는구나!’ 하고 깨달을 수 있어요.
도박하는 사람들이 계속 도박을 하는 이유는 돈을 잃지만 이번에는 꼭 딸 것 같은 이상한 망상에 사로잡히기 때문입니다. 근거나 통계가 있는 게 아닌데도 그냥  그런 마음이 생긴대요.
음주운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음주 운전을 한다고 다 잡히는 건 아니에요. 음주운전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아도 단속하면 잡히는 건 몇 %에 불과합니다. 처음에는 안 잡혀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다가 두서너 번쯤 음주운전을 했지만 잡히지 않으면 ‘나는 안 잡힌다’는 마음이 듭니다.

불뱀을 보내신 하나님

여러분, 이런 마음이 도박이나 음주운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세계에도 있습니다. 내가 마음을 쏟아서 착실하게 하면 율법을 지킬 수 있을 것 같고 잘하면 될 것 같은 그런 망상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버리지를 못해요.
“백성이 호르산에서 진행하여 홍해 길로 좇아 에돔 땅을 둘러 행하려 하였다가 길로 인하여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 하매”(민 21:4~5)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광야 길을 가는 마지막 부분인데 길로 인해 마음이 많이 상했습니다. 마음이 상하고 지치고 피곤하면 원망이나 불평을 좀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민 21:6) 이런 성경을 읽으면 ‘원망 좀 할 수 있지, 그렇다고 꼭 불뱀으로 죽여야 합니까? 그냥 좀 넘어가면 안 됩니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 죄 짓고 난 뒤에 ‘하나님이 한방 때리면 어떡하나?’ 하다가 그냥 넘어가기를 바라는 마음도 생깁니다.

민수기에 나타난 죽음의 역사

세상에 죄 짓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사람이 살다보면 거짓말도 할 수 있고, 도둑질도 할 수 있고, 원망이나 불평도 할 수 있습니다. 또 간음도 하고, 사기도 치고, 살인도 하는 등 인간 세상에는 항상 그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사람이 죄를 지을 때마다 하나님이 불뱀을 보내 죽여 버린다면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우리가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은 도둑질이나 살인, 간음한다고 다 죽이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민수기를 읽어 보면 간음하다가 2만 3천명이 죽고, 안식일에 나무하다가 죽고, 하나님 원망한다고 땅이 입을 벌려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또 불이 내려와서 죽고, 불뱀이 내려와서 죽는 등 민수기에는 죽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처음 애굽에 들어갈 때의 수는 60~70명 정도였지만 4대만에 60만여 명으로 번성했습니다. 얼마나 빨리 늘어나는지 애굽 왕이 숨이 막힐 지경이었어요. 그러나 그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는 60만 3,550명이었지만 광야 생활 40년이 지난 뒤 가나안에 들어갈 때는 60만 1,730명이었어요. 4대만에 70명이 60만여 명으로 번성했다면40년이 지나는 동안 정상적으로 번성하면 200만 명이 넘어야 하겠지만 오히려 60만 1,730명으로 줄어든 것입니다. 광야에 살면서 죄를 지어서 너무 많이 죽은 것입니다.  

죄 짓는다고 다 멸망받나

여러분, 원망한다고 다 불뱀을 보내는 것은 아닙니다. 간음한다고 다 죽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죄를 범한 사람이 어떤 경우에는 죽고 어떤 경우에는 사는 것일까요?
예수님의 제자 중 가룟 유다와 베드로가 있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판 후 자살을 했고 베드로는 세 번이나 주를 모른다고 부인하고 저주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둘 다 죄를 지었지만 베드로는 은혜를 입어서 예수님의 제자로 그 후에 복음을 전하는 데 힘있게 쓰임을 받았고 가룟 유다는 멸망을 당했습니다.
구약성경을 읽어 보면 사울왕과 다윗왕이 있는데 그들도 둘 다 죄를 지었습니다. 사울은 큰 죄를 짓고 다윗은 작은 죄를 지었습니까? 사울이 지은 죄도 크지만 다윗이 지은 죄도 컸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저주나 멸망을 받았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우리야의 아내와 동침한 그 죄를 사함받았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짓는다고 해서 다 저주받고 멸망받는 건 아닙니다. 다윗이 사울과 똑같이 죄를 지었는데 왜 하나님은 사울은 버려서 죽게 하고 반대로 다윗에게는 은혜를 베풀어 죄를 용서하고 하나님의 종으로 일하게 하셨습니까?

은혜의 길을 여시고

하나님이 만드신 아담과 하와가 범죄해서 사단에게 속한 후, 우리가 하나님의 법을 지킬 수 없는 악하고 더러운 인간임을 하나님은 아셨습니다. 우리 인간 가운데 율법을 지켜서 하나님 앞에 완벽하게 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은혜를 베푸시길 원하셨어요. 인간이 잘못한 그 죄를 하나님이 다 씻어주시고 긍휼과 자비를 베푸시길 원하신 겁니다.
여러분, 노아도 죄를 짓고 악을 행했지만 은혜를 입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도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저는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을 낱낱이 연구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축복하시면서 “네가 살인하지 않으면, 거짓말하지 않으면, 간음하지 않으면 그 복을 줄게”라고 조건을 달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연약하기 때문에 어떤 조건을 단다면 결코 복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생명을 얻도록 은혜의 길을 열어 놓았습니다.

율법을 다 지킬 수 있다?

“하나님, 나는 부족합니다. 나는 율법을 지킬 수 없습니다. 주의 뜻대로 살 수 없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잘 섬기지 못합니다. 하나님 앞에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기 때문에 내가 온전할 때 복을 주신다면 나는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 모습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완벽하게 해서 하나님께 복을 받을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다 죄를 범했기 때문에 모두 저주를 받아야 하고 멸망을 받아야 할 인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부터 착실하게 잘해서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야 영생을 얻고 복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민수기에는 왜 죽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까? 하나님이 출애굽기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보니까 그들의 마음이 너무 교만한 거예요. 율법을 다 지키지 못하면서도 다 지킬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하는 거예요. 오늘 우리도 다 그렇습니다. 올바른 신앙을 하려면 제일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마음에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열심히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은혜를 입으려면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찌니라 모세가 와서 백성의 장로들을 불러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그 모든 말씀을 그 앞에 진술하니 백성이 일제히 응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출 19:5~8)
자, 여기를 보세요.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실 때 그들이 여호와의 명하신 것을 지키겠다고 했어요.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에겐 절대로 은혜를 베풀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법을 지킬 수 없는 죄에 빠진 인간이라는 것을 고백해야 합니다. 내가 못하기 때문에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해야 은혜를 입지, 내가 잘할 수 있다고 하면서 은혜 베풀어 달라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겁니다.

다 행하려 했기 때문에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물었어요. 그때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에게 “하나님, 우리는 당신의 법을 지키지 못합니다. 우리는 범죄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하면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줍니다.
그런데 “백성이 일제히 응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출 19:8)라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대로 행하면 복을 내리고 행치 않을 땐 저주를 내릴 수밖에 없는데도 그들이 여호와의 명한대로 다 행하려고 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계속 죽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은혜’는 ‘구걸’

우리는 어떻게 신앙생활 해야 합니까? 먼저 우리 자신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만일 율법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말로만 하지 말고 정확하게 율법을 지켜보세요. 열흘만 해보면 분명하게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는 정말 하나님의 법을 지킬 수 없습니다. 우리는 정말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정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잘해서 상을 주시고 복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불쌍히 여겨서 내 죄를 사해주시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 달라는 겁니다. 여러분, 그래서 ‘은혜’는 ‘구걸’입니다.
내가 잘한 대가로 떳떳하게 “이렇게 했으니까 상을 주세요.” 그것은 구걸이 아니고 대가를 받는 것입니다. 은혜는 값없이 받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나는 잘한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나는 아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인간이니까 하나님 당신이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하시면 내가 구원을 받겠습니다.” “나는 원래 나쁜 인간인데 당신이 나를 깨끗하게 하시면 깨끗해지겠습니다.”라고 고백하십시오.

쳐다본즉 살더라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하므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민 21:7~9)
이스라엘 백성들이 뉘우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돌아와서 불뱀을 떠나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불뱀을 떠나게 하신 것이 아니라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불뱀은 자기가 잘하겠다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물어요. 하나님의 은혜를 입기 원하는 자는 그냥 놋뱀만 쳐다보면 사는 거예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의 차이는 아주 분명합니다. 열심히 잘하려다가 원망한 사람은 불뱀에 물려 죽었지만, 저주를 받아 불뱀에 물려 죽을 수밖에 없으니까 놋뱀을 쳐다본 사람은 살았어요. 다시 말하면, 불뱀은 자기가 잘하려고 했던 사람들에게 나타나 물어 죽이지만 놋뱀은 저주를 받고 멸망을 받아야 할 사람이 그냥 쳐다보기만 하면 은혜로 낫게 해 주는 것입니다.

은혜로 구원받는 길

우리들은 은혜로 구원을 받아야 하는데 사단에게 속아 교만해졌습니다. 내가 잘할 수 있다고 착각하면서 늘 잘해서 복을 받으려고 하기 때문에 주님과 거리가 먼 삶을 사는 것입니다. 저는 남들보다 잘하고 똑똑하고 충성했기 때문에 복을 받는 게 아니라 누구보다도 연약하고 부족하기 때문에 복을 받습니다. 저는 하나님 말씀대로 잘 살아서 복을 받는 게 아니라 죄를 지어 추하고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기 때문에 은혜를 입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잘해서 복을 받는 그 길이 아니라 은혜로 구원을 받는 그 길 위에 있다면 여러분이 어떤 삶을 살아도 복을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거룩해지고 밝아지고 깨끗해지는 것은 여러분의 노력에 달린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 2005. 2. 20 주일설교 요약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