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를 꿈꾸는 대한민국의 청년 잡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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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를 꿈꾸는 대한민국의 청년 잡스
포커스 2011년 초 24세에 탈북한 후 ‘서강잡스’로 한국사회에 정착한 김학민 대표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21.09.03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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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기기를 수리하고 있는 ‘서강잡스’ 김학민 대표

대한민국은 세계 선두권의 IT 강국이다. 스마트기기를 비롯한 무수한 전자기기들이 빠르게 버려지고 또 새로운 제품이 출시된다. 하지만 수리문화의 중요성과 스마트기기의 재사용을 강조하면서 젊은층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서강잡스’를 소개한다. 

친구들의 스마트폰 수리하며 ‘서강잡스’ 별명 얻어

애플사의 아이폰, 소장하고 싶은 남다른 디자인과 카메라 성능 등을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제품이다. 그러나 기기가 고장났을 때 찾아가는 AS센터는 수리되는 시간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리고 수리 비용도 만만치 않다. 이런 아이폰 덕후들의 애로사항을 해결해주는 곳이 바로 ‘서강잡스’이다. 
지난주 기자가 찾은 서울 서강대학교 근처에 위치한 서강잡스는 스마트폰, 태블릿 PC, 노트북 등 애플사 기기들을 수리해주는 매장이었다. 서강잡스 김학민(34) 대표는 서강대 재학 시절 자신의 깨진 아이폰 액정의 부품을 직접 구입, 수리하여 사용했는데, 이 일이 주변 친구들 사이에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 그의 기숙사 앞은 전자기기를 고치기 위해 줄 선 학생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대략 그의 손을 거쳐간 아이폰만 약 1000대 가량이 될 정도였고 그때 ‘서강잡스’라는 별명을 얻었다. 작년 4월에는 SBS ‘생활의 달인’에도 출연한 바 있다. 
김 대표는 함경북도 온성 출신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엔지니어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많은 전자제품을 접할 수 있었다. 이후 13세부터 이웃에 사는 주민들의 시계나 라디오 등 전자제품을 고쳐주기 시작했고 ‘꼬마 수리공’이라는 애칭까지 얻게 됐다. 전자기기를 통해 한류 드라마 등 남한의 콘텐츠를 봤다는 이유로 고문을 받기도 했으며 24세가 되던 2011년 초 탈북을 결심한 후 목숨을 걸고 중국과 태국을 거쳐 같은 해 4월 한국에 도착했다. 

‘서강잡스’는 최근 매장을 옮겨 새출발을 시작했다

서강대 전자공학과 입학 후 중고 수리 회사 창업

낯선 한국사회에서의 적응은 쉽지만은 않았다. 대입 실패와 우울증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는데 그때 그는 스티브 잡스에 주목했다. 당시 스티브 잡스의 자서전을 여러 번 읽으며 꿈을 키웠고 2014년 서강대 전자공학과에 진학했다. 앞서 언급했듯 김 대표는 주변 친구들의 권유로 창업을 결심했다. “대학교 2학년 때 창업했다. 당시 교수님들이 한국 사회에서 대학졸업장은 중요하다고 만류하셨지만 후회는 없다. 그때 그런 결정을 하지 못했더라면 지금의 ‘서강잡스’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18년 법인으로 전환한 서강잡스는 현재 전국 각지의 고장난 애플사 제품의 수리 의뢰를 받고 있으며 기술교육 콘텐츠도 제공하고 있다. 
김 대표는 “한국은 잘 사니까 이런 수요가 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사용하다가 고장 나면 버리는 줄 알았다(웃음)”며 현재 개발·생산되고 있는 전자제품은 50%도 채 사용되지 못한 채 버려지고 있는 현실을 지적했다. 또 최근 유럽이나 동남아시아에서도 ‘제품을 오래 쓰자’는 절약과 친환경적인 소비문화가 확산되고 있는 분위기와 달리 한국은 2년마다 스마트폰을 바꾸는데 이는 화학물질 배출을 증가시키며 환경적인 문제로 연결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김 대표는 “수리문화 관련된 브랜드가 형성되면 그게 바로 친환경적인 소비로 연결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전하기 전 서강잡스 매장 내부 모습

탈북민의 한국사회 정착 위해 포용과 이해 필요

김 대표가 강조하는 수리문화에는 완벽에 가까운 집념과 철학이 있다. 그는 “기계는 너무 솔직해서 머리카락보다 얇은 핀 하나만 틀어져도 예외 없이 망가진다. 그렇기 때문에 회로 하나, 나사 조임 하나까지 세심함과 집중력으로 수리해 낸다”며 수리에 대한 철학을 언급했다. 어떤 사업체든 어려움은 있기 마련이지만 엔지니어 출신의 김 대표가 경영을 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잡음이 뒤따랐다. 그는 “사업이 확장되면서 ‘서비스’에 대한 개념이 명확하지 못해 고객들을 곤경에 빠뜨린 적이 있었다. 몸은 하나인데 지점은 세 개니까 문제가 펑펑 터졌다”며 그때가 사업의 가장 큰 위기였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도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는 것이 큰 축복이라는 생각에 지금도 이 일을 계속한다”고 전했다. 
한편 한국사회에서 어려워하는 탈북민들에 대해 그는 “어디든지 어려움은 항상 있다. 한국 사람이 북한에 가면 안 어렵겠나?”며 어려울 때마다 ‘비교적 사고’를 많이 했다고 답변했다. 즉 “북한에서 아무리 잘 살아도 이곳의 밑바닥 수준이므로 어렵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북한에서 어려웠던 시절을 생각하면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조언했다. 김학민 대표는 앞으로 자신과 같은 엔지니어를 많이 양성하여 관련 자격증을 발급하는 기관도 만드는 등 교육사업을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끝으로 그는 탈북민과 한국인 사회의 통합을 위한 가장 큰 해결책은 ‘공감’이라고 강조하며, 포용과 이해로 서로를 조금만 더 공감해준다면 보다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정연 차장대우 jyko@igood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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