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양 되신 예수님의 피는 우리 죄를 사했다는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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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양 되신 예수님의 피는 우리 죄를 사했다는 증거
[출애굽기 12장 1절 ~ 12절] 2021. 8. 29. 주일 오전예배 설교 - 878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21.09.03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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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의 놀라운 비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왜 성경에 이런 말씀들이 기록되어 있지?’ 하며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마음과 우리 인간의 마음이 서로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관념적으로 하늘나라 가기 위해서는 죄를 짓지 말고, 착하게 살고, 하나님을 열심히 믿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고정 관념으로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 때 우리 관념을 버리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려는 게 무엇인지 발견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놀라운 하나님의 비밀을 이야기합니다. 누가복음 10장에 나오는 강도 만난 자 이야기에서 어떤 율법사가 예수님께 나아와서 물었습니다.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구약 성경에는 율법을 지켜 행하면 복을 받는다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율법을 온전하게 지킨 사람이 없기 때문에 율법을 지켜서 복을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기 12장이나 누가복음 10장 등 성경 곳곳에서 율법을 열심히 지켜서 구원받으려는 우리의 관념을 깨뜨리려고 하셨습니다.

강도 만난 자 이야기

여러분, 누가복음 10장에 강도 만난 자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율법사가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예수님께 물었을 때 예수님은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너희가 어떻게 읽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율법사가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라고 대답하자 예수님이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셨습니다. 율법을 완벽하게 모두 지키면 멸망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미 율법을 어긴 사람은 앞으로 율법을 지킨다 해도 멸망을 당합니다. 이 율법사는 다른 사람보다 율법을 잘 지켰다할지라도 그는 이미 율법을 어긴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앞으로 율법을 지켜서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 살인한 사람이 앞으로 살인을 안 하면 벌 안 받습니까? 도둑질한 사람이 앞으로 도둑질 안 하면 벌 안 받습니까? 우리는 이미 율법을 어겨서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고 앞으로 율법을 잘 지켜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율법사에게 던진 질문

예수님은 그 율법사에게 강도 만난 자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습니다.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한 레위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갔는데,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습니다. 예수님이 율법사에게 이 이야기를 하시고 질문했습니다.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여러분, 이것은 우리의 구원에 관한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멸망할 수밖에 없는 사람은 강도 만난 자이고, 그를 구원하는 분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그럼 이 세 사람 중에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은 자비를 베푼 자인데 예수님은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정말 남을 위해 대신 피를 흘리고 죽어서 구원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그럴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구원자를 만나야 하는 강도 만난 자라는 사실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마리아인이 행한 일 

강도 만난 자는 강도를 만나서 거반 죽어가다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가 구원받기 위해서 무슨 일을 했습니까? 기도를 했나요? 금식을 했나요? 회개를 했나요? 잘못했다고 빌었나요? 말씀을 한 번 봅시다.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눅 10: 33~35) 여기서 구원자 사마리아인은 그를 발견하고 ▲불쌍히 여겼습니다. 그리고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주막 주인에게 주면서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보면 구원자인 사마리아인이 열 가지 일을 했습니다. 그럼 강도 만난 자가 한 일은 무엇입니까?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성경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 2:8~9)고 했듯이 구원은 100%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된 것입니다. 

유월절(逾越節, Passover)

오늘 읽은 출애굽기 12장에서도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 어린양의 피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 피로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출 12: 7~13) 이 말씀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거나 멸망시키기 위하여 다른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피를 본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 뭘 보이고 싶어 합니까? 내가 착한 일 한 것, 헌금 많이 한 것, 기도 많이 한 것, 충성한 것, 순종한 것을 보이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의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오는 전날 밤에 어린양의 피만 보셨습니다. 그 피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입니다. 유월절은 영어로 ‘Passover’라고 하는데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라는 말씀처럼 심판자가 피를 볼 때 저주를 내리지 않고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평민에 관한 속죄 제사

구약의 레위기 4장에는 속죄 제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속죄 제사는 인간이 죄 사함을 받는 과정을 정확하게 기록했습니다. 속죄 제사에는 4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제사장이 죄를 지었을 때 둘째, 온 이스라엘 회중이 죄를 지었을 때 셋째, 족장이 죄를 지었을 때 넷째, 평민이 죄를 지었을 때 이렇게 각각 그들이 죄 사함을 받는 제사법이 있습니다. 저는 제사장이나 족장, 온 회중도 아니고 평민이라고 생각해서 평민에 관한 속죄 제사를 살펴봤습니다. “만일 평민의 하나가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다가 그 범한 죄에 깨우침을 받거든”(레 4:27~28) 여기서 죄 사함을 받는 조건은 첫째, 죄를 지어야 하고 둘째, 그 죄를 깨우쳐야 합니다. 아무리 죄 사함을 받고 싶어도 죄를 짓지 않았다면 죄 사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또 죄를 지었지만 자기가 죄인인 줄 깨닫지 못하면 죄 사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는 바로 율법으로 죄를 깨닫도록 하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도둑질했을 때 ‘도둑질하지 말라’라는 율법이 있어서 도둑질한 사람에게 죄를 깨닫게 합니다. ‘간음하지 말라’라는 율법은 간음한 사람에게 죄를 깨닫게 합니다. ‘안식일을 범하지 말라’라는 율법은 안식일을 범한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합니다. 이렇게 율법은 우리가 죄인이란 사실을 깨닫도록 합니다. 하지만 율법이 우리를 깨끗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율법을 어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새로운 방법이 필요한 것입니다.

암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레위기 4장 28절에 “그 범한 죄에 깨우침을 받거든 그는 흠 없는 암염소를 끌고 와서 그 범한 죄를 인하여 그것을 예물로 삼아”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성경에서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에 흠 없는 암염소가 죽임을 당해야 죄가 사해집니다. 그리고 29절을 봅시다. “그 속죄제 희생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 희생을 번제소에서 잡을 것이요.” 여기서 속죄제 희생은 암염소를 말하는데 그 머리에 왜 안수를 해야 하는지 알기 위해 오랫동안 성경을 읽고 찾았습니다. 어느 날 레위기 16장 21절을 읽으면서 안수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아론은 두 손으로 산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죄를 지은 내가 죄 사함을 받기 위해 염소가 대신 죽어야 합니다. 그래서 제사장이 염소의 머리에 안수함으로 저의 죄가 염소에게로 건너가고 염소가 죽으면 저의 죄가 사해지는 것입니다. 다음 30절에는 “제사장은 손가락으로 그 피를 찍어 번제단 뿔에 바르고 그 피 전부를 단 밑에 쏟고”라고 되었습니다. 번제단 네 모서리에는 뿔이 있는데 속죄제를 드릴 때 그곳에 염소의 피를 바르라고 하신 것입니다. 

마음판과 단뿔에 죄를 기록

여러분, 왜 피를 번제단 뿔에 바르라고 하셨을까요? 그 이유가 예레미야 17장 1절에 정확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다의 죄는 금강석 끝 철필로 기록되되 그들의 마음 판과 그들의 단 뿔에 새겨졌거늘.” 이 말씀을 보면 우리의 죄는 번제단의 뿔과 우리 마음판 두 곳에 기록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염소의 피를 단 뿔에 바른다는 것은 우리 죄의 기록을 그 피로 지우는 것이고 그것을 바로 ‘도말(塗抹)’이라고 합니다. 죄의 값을 어린양(염소)이 다 받았기 때문에 죄의 기록을 지워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가장 놀라운 일은 어린양 되신 예수님이 우리 죄의 값을 대신 받으시고 우리 죄를 사하신 것입니다. 기도하거나 회개하거나 눈물을 흘려서 우리 죄가 사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피가 우리 죄를 사하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 마음에 기록된 죄의 기록은 무엇으로 지워야 할까요? 그것은 믿음으로 지우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가 내 죄를 사했다는 것을 믿을 때 내 마음 판에 기록된 죄가 씻어집니다.

문설주와 인방의 피를 보고

출애굽기 12장의 유월절 이야기를 보면 그날 밤 여호와의 사자가 애굽을 두루 다니며 집마다 장자를 다 죽이는데 그것을 피하는 방법은 단 하나였습니다. 바로 양을 잡아 문설주와 인방에 그 피를 칠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그 피를 보고 ‘이 집은 이미 심판이 이루어졌구나. 죄의 값이 치러졌구나’ 하며 멸망이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나는 다른 사람처럼 죄를 많이 짓지 않았어. 선하게 살았어. 하나님이 나는 심판하지 않으실 거야’ 하며 피를 칠하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그날 밤 죽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성경 말씀의 분명한 뜻을 알고 그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누구든지 쉽게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인간적인 관념으로 성경을 보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인 관념으로 보면 자기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이제 죄를 용서해달라고 해야겠구나. 착하게 살면 되겠구나’라는 쪽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마음에 피가 칠해져 있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날 그 집의 장자가 살기 위해선 다른 것을 봐야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문설주와 인방에 피가 칠해져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그날 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런 대화를 했을 것 같습니다. “엄마, 우리 집 문에 분명히 피가 칠해져 있지?” “그래, 네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냐? 한 번만 칠한 게 아니라 몇 번을 칠하시더라.” 장자가 밖에 나가보니 문설주와 인방에 정말 피가 가득 칠해져 있었습니다. 장자가 그것을 보며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문에 피가 칠해져 있네. 안심이다’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에는 예수님의 피가 있습니까? 당시에는 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칠하면 되었는데 우리 마음에는 어떻게 피를 칠해야 합니까?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보시는데 ‘나는 죄를 지었어. 그런데 예수님이 내 죄를 위해 피를 흘리셔서 내 죄가 사해졌어’라고 믿는 사람은 마음에 피가 칠해져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내 죄의 값을 대신 담당하셨다는 증거입니다. 그 마음을 가진 사람은 저주가 와도 ‘난 마음에 예수님의 피가 있어. 이것은 나를 멸망시키지 못해’라며 믿음으로 넘어갑니다. 성경에는 피를 볼 때 넘어간다고 했습니다. 피가 있으면 절대로 멸망하지 않습니다. 

착한 일을 해서 천국 가나?

여러분, 착한 일을 해서 천국 갈 수 있다고 믿습니까? 오늘날 많은 한국 교회의 장로나 집사 직분을 가진 분들이 열심히 예수님을 섬겼지만 죽음 앞에서 안타깝게도 그들의 마음에 죄가 남아 있어 고통하는 것을 봅니다. 그들은 자신의 죄가 씻어진 사실을 믿지 못하니까 매일 죄를 용서해달라고 합니다. 만일 죄가 씻어진 사람이라면 죄를 용서해달라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죄는 우리가 뭘 해서 씻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을 때 예수님의 피로 완벽하게, 깨끗하게, 정확하게 씻어졌습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의 피로 우리 죄를 사했다는 말씀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렇지만 많은 기독교인이 자신이 십일조를 내거나 열심히 기도하고 봉사해서 착한 일을 하면 죄가 사해져서 천국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자기 피를 가지고 변치 않는 하늘나라 성전에 들어가서 제단 뿔에 칠하여 영원한 속죄가 이루어졌습니다. 

시간계와 영원계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를 지으면 양을 잡고 피를 뿌려서 제사를 지냈습니다. 이 땅은 시간계라서 시간이 흘러갑니다. 그래서 제사를 지내 씻은 죄는 과거가 되기 때문에 또 죄를 지으면 다시 양을 잡아서 죄를 씻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늘나라는 시간이 흐르지 않아 과거 현재 미래가 항상 동일한 영원계입니다. 그곳에는 영원한 하나님이 계시고 모든 것이 영원하기 때문에 우리 죄도 영원히 씻어집니다. 하늘나라는 우리의 육체를 벗고 영원한 새 몸으로 갈아입어야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오늘 읽은 출애굽기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의 삶과 죽음은 그들이 무엇을 잘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문 설주와 인방에 어린양의 피를 칠했느냐 안 칠했느냐로 결정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린 피로 우리의 모든 죄가 영원히 사해진 사실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따라 천국과 지옥이 결정됩니다.

행위로 천국 갈 수 없어 

여러분, 장차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 ‘난 죄를 지었어. 그렇지만 예수님의 피가 내 죄를 사했어. 이제 다시 내게 저주가 없어’라고 믿는 사람은 예수님의 피가 그의 마음에 있다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사단은 아주 간교해서 우리를 속입니다. 예전에 제가 동남아에 갔을 때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14년 동안 감옥에 있었던 목사님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제가 그분에게 물었습니다. “죄 사함을 받았습니까?” “받았습니다.” “죄 사함을 어떻게 받았습니까?” “목사님, 제가 감옥에 14년 동안 있었는데 죄가 안 사해졌겠습니까?” 제가 성경을 펴서 이야기했습니다. “구원은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분이 제게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목사님, 감옥에 가본 적 있습니까?” “저는 교도소에 성경 공부하러 간 적은 많습니다.” “목사님, 14년 감옥에 있는 동안 저만 고생한 게 아닙니다. 아내도 핍박을 받고, 아이들은 먹을 게 없어서 참외 껍질을 주워 먹고 살았는데 제가 천국을 못 간다는 말입니까?” “정말 훌륭한 일을 하셨지만 성경에 우리의 행위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선한 행위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죄를 범한 사람이 자신의 선한 행위로 죄를 사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흘리신 피만으로 우리 죄를 씻을 수 있습니다.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 조건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주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서 예수님의 피 외에 아무것도 필요치 않습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드리고 십계명을 잘 지켜서 하늘나라를 가는 게 아니라 예수님의 피로 죄가 사해졌을 때 갈 수 있습니다. 그 예수님의 피로 부족하다고 생각할 때 금식, 철야기도, 착한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피를 무시하는 행위입니다. 출애굽기 12장에서 하나님은 예수님의 피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하나님이 애굽 땅을 칠 때에 문설주와 인방에 피가 칠해져 있으면 그 피를 보고 재앙을 내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 어린양 되신 예수님이 흘린 피는 우리 죄를 사했다는 증거입니다. 그 사실을 믿고 ‘주님이 나와 함께하신다. 나를 지키신다. 나를 이끄신다’라고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길 바랍니다.
- 2021. 8. 29. 주일 오전예배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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