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올림픽 金메달리스트의 태극전사들을 향한 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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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올림픽 金메달리스트의 태극전사들을 향한 응원
핫이슈 2020 도쿄올림픽 국가대표의 선전(善戰)을 위해 국민들의 관심 필요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21.07.30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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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서울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 김재엽 교수

2020 도쿄올림픽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1년 연기된 끝에 지난 7월 23일 개막했다. 코로나19와 폭염 그리고 무관심 속에서 투혼을 발휘하고 있는 국가대표 선수들을 힘있게 응원하는 88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 김재엽(58) 교수를 만나보았다. 

도쿄올림픽, 205개국에서 1만 1000여명 선수 참가 

제32회 도쿄올림픽이 지난 7월 23일 개막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무관중으로 진행되는 이번 올림픽엔 205개국, 1만 1000여명의 선수가 참가해 33개 종목에서 339개의 금메달을 놓고 열띤 경쟁을 펼친다. 그런데 일본 국민의 반대와 국내외 언론의 잇따른 비판에도 불구하고 강행된 올림픽은 ‘세계 축제의 장’이 아닌 거대한 ‘바이러스 배양장’이 될 거란 우려와 함께 여론의 반응은 아직도 싸늘하다. 이렇듯 비난과 무관심 속에 진행되는 올림픽에 참가하는 우리 국가대표 선수들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필요한 때다. 
지난주 기자는 열악한 상황 속에서 경기를 펼치는 국가대표 선수들의 안전과 선전(善戰) 그리고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88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 김재엽 교수(동서울대 경호스포츠학과)를 만났다. 그는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총칼 없는 전쟁터에 나가 메달을 향한 집념과 투혼을 발휘하고 있는 선수들이 충분히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국민들의 응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선수들이 승전보를 울려줄 때마다 코로나로 힘든 우리 국민들에게 큰 위로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기도 성남시 소재 동서울대학교에서 18년째 후학을 양성하고 있는 김재엽 교수는 여전히 탄탄한 몸을 유지하고 있었고, 연구실은 수많은 상패와 영광의 순간을 기록한 사진이 가득했다. 김 교수는 “선수시절 사점을 넘나들며 하루 종일 운동한 후, 도복을 짜면 땀이 뚝뚝 떨어졌다. 옷에 밴 땀 냄새가 너무 고약해 죽음의 냄새라고 불렀는데 지금도 여름만 되면 그 냄새가 떠오른다”고 말했다.

(상)한복차림으로 시상대에 올라 금메달을 목에 걸어 감동을 주었다 | 사진/ MBC뉴스 캡처
(하)동서울대학교 교정에서 학생들과 함께 한 김재엽 교수(파란색 도복)

금메달리스트에서 노숙자, 교수…파노라마 같은 인생사

18세에 국가대표 타이틀을 딴 김재엽 교수는 유도 그랜드 슬램(올림픽, 세계 선수권대회, 아시안 게임, 아시아 선수권대회)을 달성하고 각종 국제대회에서 19개의 금메달을 석권했다. 그의 기록은 유도 종주국 일본마저도 깨지 못했다. 그는 1984년 LA올림픽 때 일본 ‘호소가와’ 선수와의 결승전에서 패한 후 절치부심 끝에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고 한복차림으로 시상대에 올라 전 국민에게 감동을 주었다. 
고교 3학년 때 대학팀, 실업팀 선수들을 제치고 국가대표 선발전을 통과하는 등 수많은 승리의 비결을 묻자 김 교수는 “상대선수의 주요기술 유형을 먼저 파악해 그 기술을 갖춘 동료선수와 끊임없이 대결했다. 경기 때마다 상대선수를 연구했던 노트가 아직도 시골집 창고에 쌓여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인생살이는 연구로 되지 않더라’고 말하는 김재엽 교수는 26세에 시작한 지도자 생활을 10여년만에 접고 유도계를 떠난 후 연이은 사업실패, 이혼, 노숙자, 자살시도까지...끝없이 추락했다. 이제는 교수가 되었는데도 다양한 매체를 통해 힘겨웠던 과거를 자주 얘기하는 이유에 대해 그는 “끝이 안보이던 터널에서 벗어나 마침내 이 자리에 선 나를 보고 힘든 과정을 겪는 사람들이 꿈과 희망을 잃지 않았으면 해서”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현 국내 상황이 IMF 외환위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렵고 위험하다며 얼마 전 접한 지인의 자살 소식에 몹시 가슴 아파했다. 

학생들 인성교육 하며 꿈과 희망 전해

복싱을 즐기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초등학생 때부터 운동만 했던 김재엽 선수가 교수가 된 이유는 뭘까? 그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37세에 책을 든 그는 낮에는 운전기사로 일하며 어머니와 자녀들을 부양했다. 마침내 박사학위를 따고 교수가 되기까지 피눈물을 흘리면서 달려온 김 교수는 “우리 세대와 달리 꿈과 희망이 없어 핸드폰만 가지고 노는 요즘 대학생들을 보면 가슴이 미어진다. 그래서 그들에게 비전을 심어주고자 인성교육에 중점을 두면서 미래지향적 역량을 키워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 교수는 트롯 오디션 프로는 물론 다양한 예능프로에 출연하며 방송인으로도 활발한 활동을 하면서 제자들에게 도전과 열정의 아이콘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한편 최근 임오경(전 핸드볼 감독) 국회의원, 유승민(전 탁구코치) IOC 선수위원의 활동으로 체육계의 정책적 개선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하는 김 교수는 은퇴한 국가대표들이 모여 후배들에게 자신들보다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해주고자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양한 국제무대에서 메달을 따 국위를 선양하는 국가대표들이 막상 은퇴하면 제대로 된 직장 하나 구하지 못하는 체육계의 안타까운 현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터뷰 말미에 김재엽 교수는 “미래지향적 차원에서 정책 개선은 선배들의 몫이니 현직 선수들은 오로지 자기 몫을 다하면서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받을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송미아 기자 miasong@igood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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