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정재환은 한글 사랑에 푹~ 빠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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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정재환은 한글 사랑에 푹~ 빠졌어요
[만나고 싶었습니다] 국민 MC에서 한글지킴이와 역사학자로 변신한 영원한 오빠 정재환 씨를 만나다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21.07.02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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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인기 있었던 유명 연예인들은 현재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TV 등을 통해 종종 그들의 현재 모습을 만날 때면 시청자들은 반가운 마음과 함께 추억에 잠긴다. 80~90년대 인기 개그맨이자 국민 MC로 활약했던 방송인 정재환 씨를 만나보았다.

방송인 정재환 씨가 한글운동을?

1979년 19세의 나이에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로 데뷔한 정재환(60) 씨. 1983년 MBC ‘영11’, KBS2 ‘젊음의 행진’에 출연하다 SBS ‘웃으면 좋아요’, ‘코미디전망대’ 등으로 오랜 시간 개그맨 시절을 보냈다. 1989년 MBC ‘청춘행진곡’에서 스타덤에 오른 그는 수려한 외모와 부드러운 목소리로 스타급 MC로 등극하며 TV와 라디오 사이를 종횡무진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TV에서 그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다. 
지난주 기자는 정재환 씨가 운영하는 수원화성 인근 북카페 봄뫼에서 그를 만났다. 편안한 옷차림으로 손님들에게 커피를 내려주고 있는 그의 모습은 세월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활기찬 젊은 오빠의 모습이었다. 
근황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북카페에서 다양한 책모임을 진행할 계획이었으나 코로나로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사학과 교수로, 한글문화연대에서 외국인들을 대상 한글교육 강사로, 최근에는 수원 와이즈아카데미의 인재양성프로그램에서 강의하며 젊은 후학 양성과 한글을 홍보하는 한글지킴이로 활동하고 있다. 좋아하는 일을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삶의 변화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개그맨과 교수, 그리고 한글지킴이. 다소 어색한 이 조합의 시작이 궁금했다. 그는 방송활동을 할 당시부터 한글에 관심이 많았다. “한번은 음악방송을 마친 뒤 시청자 제보가 들어왔다. 솔리드의 노래 ‘이 밤의 끝을 잡고’에서 ‘끄틀’을 ‘끄츨’로 발음했다는 것이다. 그런 지적을 받으면서 우리말을 정확하게 말하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며 이후 국어 관련 책을 열심히 읽기 시작했고 한글사랑에 빠지면서 한글운동까지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1,3. 2008년 인사동 쌈지길에서 열린 ‘한글옷이 날개’ 행사 장면(사진제공/ 봄뫼) 2. 동사무소 명칭 개정 반대 1인 시위

잘못된 한국어 사용, 국가 발전을 위협

한글문화연대 공동대표이자 칠곡할매서체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정 교수는 “아주 쉬운 예를 들면 ‘다르다’와 ‘틀리다’는 동일하지 않다. 그런데 사람들은 다를 때 ‘틀리다’고 얘기하고 틀린 경우 ‘다르다’고 표현을 한다. 주변 외국인들을 보면 한글을 정확하게 배우기 위해서 무척 고생하는데 정작 우리는 그런 부분에 대한 의식이 없다”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정부기관, 언론, 기업에서 무분별한 외래어 사용으로 사회적 소통이 어려워 국민들이 손해를 입는 경우라고 했다. 또한 ‘올만, 맛점, 갬성’ 등의 단어 사용과 같은 한국어 파괴를 가져오는 이러한 행태는 우선은 편리할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한국어 교육뿐 아니라 의사소통의 어려움으로 인해 국가 발전을 위협하는 어려운 현실을 만나게 된다며 올바른 한글 사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의 한글사랑은 『자장면이 맞아요 잠봉은』, 『대한민국은 받아쓰기 중』 등 많은 저서에도 잘 나타나있다. 
정재환 교수는 2003년 만학도 부문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방송활동으로 한창 바쁜 시간을 보내던 2000년, 그는 돌연 성균관대 사학과에 입학했다. 3년 만에 수석으로 졸업하고 석사, 박사 학위까지 취득했다. 그는 “주변에서 내게 현실 감각이 없다고 한다(웃음). 그러나 한글에 대한 관심은 역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고 한글 문제를 역사로 풀고 싶었다”며 만학도의 길을 걷게 된 배경을 들려주었다. 

인생에서 가장 좋아한 세 가지: 방송·역사·한글

올바른 한글 사용은 국가발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최근 베트남에서 한국어를 제1외국어로 지정했다는 뉴스는 이를 나타내주고 있다. 정 교수는 “한국어가 있었기 때문에 경제발전이 있고 한류문화도 있는 것”이라며 소통이 안 되는 사회가 어찌 발전할 수 있겠냐고 강조했다. 
만학도의 배움에 대한 열정은 그칠 줄 몰랐다. 한글을 배우는 외국인들과의 소통을 위해 50세가 넘은 나이에 필리핀 어학연수를 다녀온 후 『나는 오십에 영어를 시작했다』라는 책을 집필했다. 그는 또 인터뷰 말미에 “배우는 일은 자신을 위한 것이고, 가르치는 것은 타인을 사랑하는 일”이라며 앞으로 동네 할아버지 교사가 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정재환 교수가 수원에 터를 잡은 것도 성균관대에서 한국사 강의를 하며 학생들과 함께 수원화성을 답사한 것이 계기가 됐다. 그의 인생에는 그가 가장 좋아했다는 세 가지가 모두 들어 있다. 바로 방송, 역사, 한글이다. 여기에 그가 살아온 길을 많은 사람들이 응원하는 이유가 있다. 그건 단지 그가 좋아하는 일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국민들 중에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을 그가 해 나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고정연 차장대우 jyko@igood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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