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용사에게 듣는 ‘잊어선 안되는 6.25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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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용사에게 듣는 ‘잊어선 안되는 6.25전쟁’
Goodnews DAEGU 867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21.06.18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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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6.25 참전용사 권영동씨 (우) 6.25 참전용사 배수용씨

참혹한 6.25전쟁의 기억들

올해로 6.25전쟁 발발 71주년을 맞았다. 지금도 수많은 참전용사가 전쟁으로 인해 받은 육체적·정신적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기자는 경산보훈회관에서 두 명의 6.25 참전용사를 만나 당시의 처참했던 상황과 전쟁을 겪은 그들이 후손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들어보았다. 권영동(92) 씨는 1950년 21세 나이로 제5유격대대에 입대해 만 5년 동안 영주, 양양, 영월 등의 지역에서 전투에 참여했다. 그는 전쟁 중 가장 처참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아군에게 폭격을 당했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아군이라고 소리쳐도 전달이 되지 않으니 폭격이 마구 쏟아지는데 이것이 전쟁이구나 싶었다”며 당시 상황을 말했다. 
휴전 이후에도 2년 동안 공비토벌작전에 투입되어 지리산 일대와 경남·부산·경주까지 공비토벌 전투에 임하면서 군수보급이 원활하지 않아 방한복 한 벌로 추위에 동상과 배고픔을 견뎌야 했다고 한다. 권영동 씨는 “우리가 겪은 전쟁의 처참함과 어려움을 후손들이 겪지 않길 바라고 이러한 아픈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해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권영동 참전용사가 받은 표창장들

국가를 위해 유격대에 자원 입대

한편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의 양동작전으로 ‘적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후방을 교란, 적을 퇴치하라’는 명을 받고 전투가 벌어진 영덕의 ‘장사상륙작전’이 있었다. 이 전투에 참전해 파편상을 입은 배수용(98) 씨는 고령임에도 허리가 꼿꼿하고 건강한 모습이었다. 국가가 위태로운데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유격대로 자원입대한 것은 27세였다. 며칠간의 유격훈련 후 바로 부산항에서 문산호에 승선하지만 당시 케지아 태풍 여파로 천신만고 끝에 장사동에 도착했으나 배는 좌초되고 말았다. 이때 문산호를 향해 적의 집중포화가 쏟아지고 전사자들이 늘어났다. 
그는 “삼면에서 공격하니 총알이 배낭을 뚫고 허리에 찬 탄띠로 스쳐 갔는데 1㎝만 총알이 안으로 들어왔어도 전사했을 것”이라고 긴박했던 당시를 회상했다. 작년 6월 개관한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관은 이 작전에 참전한 노병들의 오랜 노고로 설립되었다. 배수용 씨는 “젊은 세대들이 편한 것만 생각하지 말고 확고한 국가관으로 나라가 힘들 때 힘을 보탤 수 있는 정신자세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대구/ 김영옥 기자 daegu@igood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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