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했던 횡성전투, 그날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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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했던 횡성전투, 그날을 기억하며
특집 호국보훈의 달 특집-① 6.25전쟁 발발 71주년 맞아 들어본 92세 노병들의 생생한 참전 이야기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21.06.11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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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위철(좌)과 김원한(우) 횡성출신 참전용사 사진/ 오병욱 기자

올해로 6.25전쟁 발발 71주년을 맞았다. 이에 6.25전쟁의 치열한 격전지 중 하나이며 수많은 전사자가 발생한 횡성에서 나라를 위해 희생한 참전용사들을 만나 당시 전쟁의 참상에 대해 들어보았다.

학살의 계곡으로 불린 횡성전투의 참상

1950년 6월 25일에 발발한 6.25전쟁은 1953년 7월 27일 휴전하기까지 3년가량 지속됐다. 한반도 전역은 초토화됐고 수십만명이 넘는 군인과 민간인이 희생됐으며 10만명의 전쟁고아와 1000만명의 이산가족이 발생했다. 
전쟁 당시 한국군은 압록강 유역까지 진군했지만 중공군의 개입으로 1.4후퇴를 겪어야만 했다. 1.4후퇴 직후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지역은 강원도 남서부, 원주를 비롯한 횡성지방이었다. 중공군은 1951년 2월 11일 횡성공격을 시작했다. 횡성 북방 삼마치고개로 진출한 국군 제8사단은 중공군의 기습공격을 받고 사력을 다했으나 수적인 열세를 극복하지 못한 채 상황은 급속히 악화되었다. 중공군에게 고립된 제8사단은 포위망을 탈출하기 위해 분산되었고 사단을 지원하던 미군지원부대도 많은 중장비를 버리고 철수하였다. 
횡성전투 결과 대부분 군장비가 손실되었고 1만여명이 넘는 전사자가 발생했다. 이 지역에서는 계곡마다 층층이 아군과 적군의 시체가 쌓여 ‘학살의 계곡’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후 국군 제8사단은 원주 주천리로 물러나 부대를 수습한 후 대구로 이동해 후방의 공비토벌작전에 임하게 되었다. 중공군은 횡성 남쪽의 원주와 지평리로 진출하여 공세를 계속하였으나 지평리에서 저지되었다.

(좌)횡성 네덜란드참전기념비 | (우)사진/ KBS뉴스 캡처

후퇴 과정에서 본 참혹한 전쟁의 모습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기자는 횡성출신 정위철(92), 김원한(92) 6.25참전용사들을 만났다. 6.25전쟁이 발발한지 70여년이 흘러간 지금, 20대 초반이었던 참전용사들은 현재 90세가 넘는 고령자가 되었고 횡성지역에 남아있는 참전용사들도 이제는 많지 않다. 19세에 입대해 통신병으로 복무하던 중 전쟁을 겪게 된 정위철 용사는 “소속되된 8사단 사령부는 전쟁 발발 후 압록강이 얼마 남지 않은 평북 희천까지 진격했지만 중공군의 참전으로 눈물을 삼키며 후퇴를 하게 되었다. 후퇴하다가 고향 횡성으로 오게 되었는데 이미 마을은 다 타버렸고 중공군의 기습을 받아 많은 병력이 손실을 입었다”고 말했다. 그는 6.25전쟁을 겪으며 여러 번 죽을 고비도 겪었다고 한다. “후퇴 도중 패잔병의 기습으로 포위된 적이 있었다. 타고 가던 차량으로 적탄이 날아오기도 했고 통신무선 차량에 실린 휘발유에 박격포 파편이 관통해 화재가 나서 위기를 겪기도 했다”며 치열했던 전투를 회상했다. 
김원한 용사는 제8사단 의무대대 위생병으로 참전했다. 그는 “횡성 옥동리의 성동국민학교에 교사로 발령받은 다음 해에 전쟁이 일어났다. 향토방위를 위해 조직된 청년 방위군에 자원해 위생병으로 뽑혀 원주에 주둔하고 있었다. 당시 횡성전투가 치열해 많은 군인들이 적에게 포로로 잡히고 사상자도 생겼다. 부상자가 병원으로 실려 오면 환자들을 들것에 실어 치료실로 옮기는 일을 했다. 그때 병원에 와서 사망한 군인들도 많았는데 겨울이라 눈이 많이 왔고 땅도 얼어 파지 못해 눈 속에 묻기도 했다”며 참혹했던 모습을 증언했다.

육군 통신학교 간부 후보생들의 모습(우측에서 첫번째가 정위철 용사)

중공군의 공세에 맞선 네덜란드군의 용맹

한편 6.25전쟁 참전국 중 하나인 네덜란드군(보병 1개 대대, 함정 6척 파견)은 횡성전투에서 중공군의 대공세로 후퇴하는 국군과 미군을 엄호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이에 그들은 횡성의 교량을 확보하며 부대들의 철수를 도왔다. 이 과정에서 네덜란드군은 대대장인 덴 오우덴 중령 등 17명이 전사하고 37명이 부상당하는 피해를 입었다. 이들의 노력과 희생정신은 6.25전쟁에서도 눈부신 업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현재 강원도 횡성군에는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한 오우덴 중령과 부대의 용사들을 기리기 위한 참전비가 건립되어 있으며 매년 네덜란드 대사관, 횡성군민 등과 함께 추모행사를 열고 있다. 
우리나라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경제 성장을 통해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을 이룩한 것은 이처럼 목숨을 바쳐 조국을 지켜낸 우리나라를 비롯 UN군 등 각국의 참전용사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만나본 횡성의 노병들은 “다시는 전쟁의 비극은 없어야 한다. 비록 세월이 흘러 전쟁의 기억은 점점 희미해가고 있지만 호국 영웅들의 숭고한 희생 위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다는 것을 후손들이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김인나 기자 innakim@igood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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