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다윗을 지켜 주신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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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다윗을 지켜 주신 것처럼
[사무엘하 2장 1절 ~ 7절] 2021. 6. 6. 주일 오전예배 설교 - 866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21.06.11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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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 여러 이야기

여러분, 성경에는 수많은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누가복음의 강도 만난 자 이야기는 한 사람이 강도를 만나서 거반 죽어가는 모습으로 시작됩니다. 그가 선한 사마리아, 즉 예수님을 만나 여호와 안에서 편히 쉬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이처럼 성경은 우리가 죄악 속에서 고통 하다가 예수님을 만나서 평안을 얻고 행복해지는 모습을 여러 가지 이야기를 통해 그리고 있습니다. 
창세기의 요셉 이야기에서는 형들이 동생 요셉을 시기하여 미디안 상인에게 팔았고, 요셉은 다시 애굽으로 내려가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 보디발의 종으로 팔렸습니다. 동생이 좀 밉긴 해도 종으로 파는 건 좀 심한 것 같은데 성경에서는 하나님 편에 있는 사람이 심하게 핍박당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서 종노릇 하며 어느 정도 살만했는데, 어느 날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하나님의 귀한 종으로 세우려 하는데, 사단은 그를 유혹에 빠뜨려 죄악된 인생으로 마무리하게 하려고 보디발의 아내를 접근하도록 했습니다. 

두 관원장의 꿈을 해석하니

요셉은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거절해서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는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하며 간곡하게 기도했을 것입니다. 얼마 후 감옥에 함께 있던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맡은 관원장이 꾼 꿈을 듣고 해석해 줍니다. 요셉은 술 맡은 관원장에게 “당신은 사흘 안에 전직을 회복해서 다시 술 맡은 관원장이 됩니다”라고 말했고, 떡 굽는 관원장에게는 “당신은 사흘 후에 목이 달릴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은 똑같이 죄를 범해서 감옥에 있었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은 구원받는 꿈을 꾸었고, 떡 굽는 관원장은 멸망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들이 감옥에서 특별히 무엇을 했다는 이야기는 전혀 없고 단지 꿈만 꾸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꿈대로 일하시는 게 너무나 신비합니다. 오늘날 전 세계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이 성도들에게 ‘무언가 열심히 노력하고, 선한 일 하고, 회개하고…’라며 인간이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 하는 부분에 대해 가르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어떤 행위로도 인간이 죄를 씻거나 축복을 받을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포도즙과 흰떡의 의미

여러분,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은 똑같이 죄를 지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들의 마음이 어느 위치에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술 맡은 관원장은 포도나무를 보았고 그 포도나무 그늘에서 쉬었습니다. 포도나무는 예수님을 가리키므로 그는 예수님이 주시는 복을 받으려 했습니다. 떡 굽는 관원장은 흰떡 세 광주리를 머리에 이었습니다. 흰떡은 우리 죄를 위해 찢기신 예수님의 몸을 의미합니다. 흰떡 세 광주리와 포도나무 세 가지에 열린 포도송이를 짠 즙은 예수님의 몸과 피를 의미하는데,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여 영원히 의롭고 거룩케 하는 것은 십자가에서 찢기신 예수님의 몸과 피로 충분합니다. 그런데 떡 굽는 관원장이 흰떡 세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제일 위 광주리에 각종 구운 식물을 얹었습니다. 그것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몸인 흰떡으로 부족해 보여서 자신의 노력이나 행위로 제일 위 광주리를 덮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똑같이 죄를 지었는데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은 똑같이 죄를 지었는데 한 사람은 구원받고, 다른 한 사람은 멸망당했습니다. 한 사람은 예수님의 능력을 바라보았고 다른 한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노력하고 일했는지 자신의 행위를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엡 2:8~9)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잘하거나 못하는 것, 또는 무슨 노력을 하는 것은 행위입니다.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 우리의 행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고 오직 예수님의 몸과 피만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떡 굽는 관원장은 흰떡 세 광주리, 즉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찢기신 예수님의 몸만 바라보면 되는데, 자기 행위로 그 위를 덮어버렸습니다. 우리가 잘한 것, 충성한 것, 십일조 낸 것을 예수님이 못 박히신 십자가와 바꿀 수 있습니까? 그런 것들을 예수님의 십자가와 비교할 수 있습니까? 우리의 어떤 행위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이 아닌 자기 행위를 바라보면서 떡 굽는 관원장처럼 멸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요셉을 향한 마음은

하나님은 요셉의 일생을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시려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요셉을 감옥에서 건져내고 복된 사람으로 이끄시려는 목적을 가지셨습니다. 당시 이집트 북쪽에 고센 땅이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고센 땅은 나일강이 지중해로 들어가는 하구에 삼각주로 이루어진 아주 기름진 땅입니다. 요셉은 절망적인 시간을 보내다가 애굽의 총리가 되어 기근의 때에 가나안 땅에서 나온 아버지와 형들을 고센 땅에 머물도록 인도했고 애굽 사람들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에게 양식을 나눠주는 일을 통해 그들을 살릴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를 애굽의 치리자가 된 요셉이나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처럼 만들기 위해 일을 하고 계십니다. 

다윗이 겪은 고난

다윗은 이스라엘 왕이 되기까지 요셉과 똑같이 고난을 겪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무찌른 뒤에 사단은 어떻게 하든지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다윗이 죽음의 위협과 비방, 어려움을 당하다가 블레셋으로 도망쳐서 시글락으로 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말렉 사람들이 쳐들어와서 다윗이 있었던 시글락을 침략하고 불살랐습니다. 다윗의 두 아내를 포함한 여인들과 아이들을 다 사로잡아가서 다윗과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 와서 보고 울 기력이 없도록 울었습니다. 다윗과 함께한 사람 중에서 “우리가 다윗을 따랐는데 이제 우리는 처자도 다 잃고 다윗이 왕이 되면 뭐하나? 차라리 다윗을 죽이고 이곳을 떠나가자” 하며 사람들이 손에 돌을 들고 다윗에게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다윗은 이제 아주 긴박한 상황에 놓였습니다.
다윗이 아주 조급해서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살아온 결과가 이것입니까? 제가 피할 길이 있습니까?” 그리고 다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군대를 쫓아가면 미치겠습니까?” 하나님이 다윗에게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미치고 정녕 도로 찾으리라”(삼상 30:8)고 대답해주셨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힘입어 용기를 얻고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돌로 치고 싶으면 쳐라. 그런데 나를 돌로 친다고 해서 너희들의 처자식을 찾는데 유익인가 손해인가 생각해봐라. 나는 그동안 무수한 전쟁에서 이겼다. 우리는 이번 전쟁에서도 이긴다. 쫓아가자!”

이스라엘 왕이 된 다윗

그들은 다윗을 돌로 쳐 죽이면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으니까 그냥 다윗과 함께 길을 떠났습니다. 들에서 쓰러져 있는 애굽 소년을 만나 다윗에게 데려다가 떡을 주고 물을 마시게 했습니다. 그가 밤낮 사흘을 굶었다가 음식을 먹고 정신을 차렸습니다. 자신은 애굽 사람으로 아말렉 사람의 종인데 사흘 전에 병이 들자 주인이 버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시글락을 불태웠다고 말했습니다. 다윗이 그에게 “네가 나를 그 군대로 인도하겠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 애굽 소년이 “나를 죽이지 않고 내 주인에게 돌려보내지 않으면 아말렉 군대로 인도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다윗이 새벽부터 이튿날 저물 때까지 아말렉 군대와 싸워서 이기고 모든 것을 도로 찾고 두 아내도 구했습니다. 그리고 다윗이 시글락에 이르러 탈취물을 그 친구 유다 장로들에게 선물했습니다. 
한편 블레셋 사람과 이스라엘의 전쟁이 있었는데 사울과 그의 아들이 전쟁터에서 죽었습니다. 다윗은 시글락에서 지낼 수 없어서 하나님께 유다 한 성으로 올라갈지를 물었을 때 헤브론으로 가라고 하셔서 두 아내와 그동안 자기와 함께했던 사람들을 데려와 헤브론 각 성에서 지내게 했습니다. 그 후 유다 사람들은 다윗을 유다 족속의 왕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형편을 바라보지 말아야

다윗이 그랬듯이,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들도 어려울 때 어느 쪽에 마음을 두느냐가 중요합니다. 형편에 마음을 두면 ‘난 전도해도 안 돼. 지금도 이렇게 안 되는데 앞으로 잘 되겠나?’ 하는 생각에 이끌리게 됩니다. 저 역시 아무리 전도해도 전도가 안 될 때가 있었습니다. 예전에 선교학교에서 교육받을 때 다른 동료들은 전도한 사람이 구원받은 간증을 하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데 저는 전도해도 구원받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하루는 제가 아는 얌전한 청년이 있어 오후 내내 복음을 전했는데 역시 구원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주일 예배 때 그 청년이 간증하러 나왔습니다. 저는 ‘아, 저 청년이 어제 내 이야기를 듣고 가다가 구원받았구나. 드디어 내가 전도해서 구원받는 사람이 생겼네’ 하며 가슴이 떨렸습니다. 드디어 그 형제가 간증을 하는데 “어제 박옥수 형제가 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는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몰랐는데 돌아가는 길에 다른 형제님을 만나서 복음을 듣고 바로 구원을 받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너무나 속이 상했고 ‘내가 복음 전하면 왜 구원받지 않을까? 나를 통해 한 명이라도 구원받았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압곡동에서 지내던 시절

선교학교를 마치고 다른 사람들은 불러주는 교회가 있어 다들 사역지로 나갔는데 저는 오라는 곳이 없어 예전에 한 번 전도하러 간 적이 있는 압곡동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지내면서 윗집에 사시는 한 부인에게 시간이 될 때마다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부인은 참 착한 분이라 제가 복음 전하는 것을 한 번도 거절하진 않으셨지만 도무지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제가 지쳐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압곡동에서 지내던 어느 날 제가 아침에 방에서 성경을 읽고 있는데 주인아주머니 친구분이 놀러 오셨습니다. 방문 너머로 두 분의 대화 소리가 들렸는데 그분이 교회 전도사가 왔다는 주인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저에 대해 자세히 물으셨습니다. 제가 그분이 교회를 다니셨던 분임을 직감하고 성경을 들고 나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주인아주머니 친구분이 제가 전하는 말씀을 듣더니 구원을 받았습니다. 제가 복음을 전해 처음으로 구원받는 사람이 생긴 것입니다. 저는 그날을 한평생 잊을 수 없습니다. 제가 복음 전도자가 되어서 저같이 못난 사람이 한 사람의 생명을 천국으로 인도했다는 것이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둘 저를 통해 구원받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하나님이 저를 이끌고 계신 것을 정확히 볼 수 있었습니다.

어느 쪽을 보고 사는가

우리 삶 속에 하나님도 일하고 계시지만 사단도 쉬지 않고 일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을 보지 못하고 사단이 일하는 것만 보면서 좌절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삶이 좀 어렵고 힘들지라도 내 죄를 사해주신 주님이 나와 같이 계신 것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작년에 코로나가 확산되면서 뉴욕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던 기독교지도자연합(CLF) 모임이 취소되는 등 우리 교회도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온라인 부활절 연합예배 등 각종 모임이나 집회를 비대면으로 이어갔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제 설교가 전 세계 수백 개의 방송국에서 중계되면서 10억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고 전 세계 기독교인들이 우리 선교회에 대해 마음을 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이렇게 일하실 계획을 갖고 계셨는데 사단은 우리에게 절망적인 형편, 안될 것 같은 상황만 계속 보여주며 ‘넌 안 돼’라고 말합니다. 그럴 때 저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사단아, 너 아무리 그래 봐라. 난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았어. 나 같이 부족한 사람도 구원해주셨는데 안 되긴 뭐가 안 돼!’ 저도 복음의 일을 중단하고 싶을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이 일이 너무나 귀했습니다. 우리가 주님에게 받은 사랑이 얼마나 큽니까? 종종 형편이 어려워 그런 사랑을 외면하고 교회를 떠나가는 사역자들이 있는데 얼마나 안타까운지 모릅니다.

아이티 무장강도의 총격

현재 아이티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 이한솔 선교사님이 최근 헌당 예배를 드리고 돌아오는 길에 무장강도들로부터 총격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강도들이 차에 총을 쏘자 이 선교사님이 고개를 숙이라고 했는데 총알이 사모님 바로 위로 지나갔다고 합니다. 차에 다섯 명이 타고 있었는데 총알이 빗발치는 가운데 한 명씩 문을 열고 뛰쳐나와 경찰서를 향해 달렸습니다. 차는 총알 15발 정도를 맞고 퍼져서 멈춰버렸는데, 감사하고 신기한 것은 그렇게 쏟아지는 총알 속에서 일행 중 한 명도 총을 맞지 않았고, 한 형제만 유리창이 깨지면서 유리 파편에 상처를 조금 입었을 뿐입니다.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눈으로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분이지만 이 선교사님을 지키고 계신 것이 분명히 보였습니다. 우리가 그 하나님을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세상의 돈이나 정욕과 쾌락에 끌려다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정확하게 알고 그분을 바라보면 아무리 형편이 어려워도 새 힘이 생깁니다.

인생의 마지막에 남는 것

우리는 현실 속에 빠져서 형편이 좋으면 좋아하고 형편이 나쁘면 좌절하고 그럴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인생 전체를 바라보면 고난도 시련도 행복도 아무것도 아니고 남는 것이 하나 있다면 바로 예수님이 우리를 죄에서 건져주신 일입니다. 그리고 평생 복음을 위해 살게 해주신 일입니다. 저는 잘하든 못하든 복음 전도자가 되어서 주님을 섬기고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고 주님이 우리 앞에 복음의 길을 여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다윗의 삶을 보면 그가 이스라엘 왕이 되기까지 정말 많은 시련이 있었습니다. 요셉도 감옥에 들어갔을 때 ‘하나님 당신이 살아계십니까? 제가 보디발의 집에서 보디발 아내의 유혹도 물리치고 비참하게 종살이도 했는데 또 감옥에 가야 합니까?’라고 원망했다는 말을 성경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요셉의 마음 중심에는 하나님이 있었습니다. 그런 그의 삶은 너무나 귀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전 세계에 복음이 전해져

여러분, 하나님께서 기쁜소식선교회를 통해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이번 아프리카 CLF 모임에서 2억 7천만 명이 제 설교를 들었습니다. 방송국들이 코로나19로 인해 스포츠 등 기존에 해오던 프로그램을 방송하지 못해서인지 제 설교를 방송했습니다. 정말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올해 전 세계 655개 방송국에서 제 설교를 계속해서 중계해 주었습니다. 만약 우리나라 KBS나 MBC 같은 방송국을 찾아가서 박옥수 목사 설교 중계방송을 요청하면 그곳 관계자들이 모두 웃을 일입니다. 이처럼 많은 방송국에서 제 설교를 방송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고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은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모두에게도 일하시길 원하십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어려움 당하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아신다면 모든 방도를 세우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실망하게 하시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의 중심에 주님이 계시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귀히 여기고 일하십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계획

 에스더 성경에서 모르드개가 죽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계획이 놀라웠던 것처럼 어려움 속에 있는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계획이 너무나 놀랍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안타깝게도 여러 가지 이유로 하나님을 멀리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보다 육신의 욕구를 채우는 일을 더 좋아하게 됩니다. 그것은 아주 어리석은 일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합시다. 나를 위해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을 따릅시다. 이제 우리의 눈을 세상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향합시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어떤 어두움이든지 육에 속한 것을 제해서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서 자유롭게 일할 수 있도록 한다면, 우리 삶은 너무 복되고 귀하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의 인도자 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믿게 되길 바랍니다. 
- 2021. 6. 6. 주일 오전예배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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