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 상륙작전, 우리가 기억해야 할 772명의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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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 상륙작전, 우리가 기억해야 할 772명의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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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21.06.04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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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 상륙작전 전승기념관 외관 전경

인천상륙작전 성공의 밑바탕이 된 양동작전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대한민국은 불과 1달 만에 낙동강 지역을 제외한 전 지역을 빼앗겼다. 이후 전쟁의 판도를 뒤집기 위해 실행된 인천상륙작전은 5000:1이라는 희박한 확률을 뚫고 성공했다. 이처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했던 밑바탕에는 772명의 학도병이 참전했던 ‘장사 상륙작전’이 있었다. 이에 지난주 기자는 ‘장사 상륙작전 전승기념관’을 찾아 그들의 희생과 우리의 아픈 역사를 되짚어 보았다. 
작년 6월에 개관한 ‘장사 상륙작전 전승기념관(경북 영덕군 남정면 동해대로 3560)’은 장사 상륙작전에 참여한 학도병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곳이다. 기념관 1,2층에는 장사 상륙작전에 대한 내용이 전시되어 있고, 전승기념관 앞 기념공원에는 전승 기념탑, 위패봉안소 등이 있다. 전시내용을 살펴보면 장사 상륙작전은 문산호를 타고 동해안 영덕지구 장사해안에 상륙하여 적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후방을 교란, 적을 퇴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1950년 9월 14일, 학도병을 싣고 부산항에서 출발했던 ‘문산호’는 태풍으로 좌초되는 바람에 많은 인원이 죽었으며 3일로 예상했던 전투가 6일로 늘어나며 학도병들은 탈진을 겪고 고통을 받았다고 한다.

장사 상륙작전 비석

1997년 문산호가 발견되며 세상에 알려져

이와 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장사 상륙작전은 성공했다. 129명이 전사하고 110명의 부상자라는 인명 손실을 겪었으나 적 270명을 사살하고 학살 직전의 애국청년 10여명을 구출하는 성과를 올렸다. 학도병들은 200고지를 6시간 만에 탈환했으며 적군의 보급로를 차단해 인천상륙작전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일종의 양동작전인 셈이다. 하지만 장사 상륙작전은 군사기밀이었기에 공식문서조차 없어 역사에 기록되지 못할 뻔하다 1997년 3월 6일, 좌초된 문산호가 발견된 후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다. 
관람객 박순덕(49) 씨는 “어린 학도병들이 나라를 위해 싸워야만 했던 상황들에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나라를 위해 끝까지 싸웠던 영웅들을 잊지 않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호국보훈의 달 6월. ‘장사 상륙작전 전승기념관’을 찾아 조국을 위해 희생했던 호국영웅들을 기리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면 어떨까.       
대구/ 김인영 기자 daegu@igood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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