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습은 달라도 저는 한국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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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습은 달라도 저는 한국인입니다” 
특집 가정의 달 특집-⑤ 오랜세월 혼혈인을 향한 차별과 편견 견뎌온 가수 박일준의 인생이야기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21.05.22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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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KBS1TV 가요무대 캡처

최근 우리나라는 다문화 사회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지만 다문화 가정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여전히 편견이 존재한다. 이렇게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받았던 오해와 편견을 딛고 많은 국민들에게 사랑받기까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가수 박일준씨의 인생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외국인 근로자·국제결혼 등 다문화 사회로 진입

국내 체류 외국인 250만명, 그 외 결혼 이민자 자녀, 귀화자 등을 포함하면 한국은 이미 다문화 사회로 진입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9 다문화 인구동태’에 따르면 2018년에 결혼한 부부 중 다문화 혼인 건수는 2만 4700건으로 전체 혼인의 10.3%를 차지했다. 이렇게 다문화 가정이 빠르게 증가하는 원인은 세계화에 따른 활발한 국제 교류도 있지만, 외국인 근로자 급증과 국제결혼의 증가에서도 찾을 수 있다. 
요즘에는 외국인에 대한 혐오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일부에서는 아직도 생김새나 피부색깔에 대해 낯선 시선으로 바라본다. 특히 한국전쟁 후에는 주한미군과 한국인 여성 사이에 태어난 자녀들이 많았고 그 당시 국제결혼에 대한 인식이 지금보다 낮아서 다문화 가정에서 태어난 자녀를 따돌리거나 비하하는 일이 일상이었다.
지난주 기자는 혼혈인으로 누구보다 따가운 시선을 느끼며 살아온 가수 박일준(67)씨를 성동구 자택 인근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윤수일, 인순이와 함께 1세대 혼혈가수로 불린 박일준씨는 1977년 ‘오, 진아’란 곡으로 데뷔했으며 노래뿐만 아니라 영화와 TV방송을 오가며 만능 엔터테이너로 활약해왔다. 

(상)사진/ 채널A뉴스 캡처 (하)사진/ KBS2TV 안녕하세요 캡처

차별과 따돌림으로 살아온 고통의 삶

박일준씨는 이국적 외모와 매력적인 목소리로 대중을 사로잡았지만 가수로 데뷔하기 전 그의 유년시절은 상처가 많았다. 그는 “미군이었던 아버지가 고국으로 돌아갔고 친어머니는 세 살인 나를 고아원에 맡겼다. 이후 양부모 밑에서 자랐지만 까만 피부 탓에 동네에서 놀림을 많이 받았다. 양어머니는 혼혈인 티가 나지 않게 곱슬머리를 항상 깎아주셔서 내가 혼혈인 것도 학창시절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때는 늘 남들에게 비난 받는 소리만 듣게 되니까 점점 비뚤어졌고 열다섯 살부터 술, 담배를 하게 됐다”며 힘들었던 학창시절을 떠올렸다. 그래서 당시에는 자신을 낳아준 친부모에 대한 원망, 혼혈인을 차별하는 이 나라에 대한 원망이 마음에 가득 차 있었다고 했다. 
그런 그에게 위로가 된 것은 음악이었다. 박일준씨는 독학으로 기타를 공부해 美8군에서 그룹 활동을 하다가 원로가수 故 김상범씨의 눈에 띄어 가수로 데뷔할 수 있었다. “당시 우여곡절 끝에 내 노래가 담긴 앨범이 나오긴 했지만 외모 때문에 6개월 동안 방송활동을 할 수 없었다. 얼굴을 바꿔오면 음악을 틀어주겠다는 등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며 가수활동에도 어려움이 많았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이후 노래가 대중에게 알려지고 인기를 얻게 되면서 8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고 지금까지도 꾸준히 음악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대중에게 가수로 인정받고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고통 속에서 힘들었던 마음이 감사함으로 바뀐 것 같다”고 전했다. 

편견 아닌 포용으로 다문화 가정 대해주길

이제는 다문화 가정에서 자란 자녀 중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스타가 많아지면서 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이 줄어드는 추세다. 박일준씨는 “연예인뿐만 아니라 앞으로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이 여러 분야에서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이들을 우리 사회가 포용해야 하고 그에 맞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자신처럼 편견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그는 “편견과 차별에 부딪혀 꿈을 포기하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많은 혼혈인 1세대가 한국에서 도저히 살지 못해 미군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다. ‘나는 왜 태어났을까’ 하며 신세를 한탄하기보다 어떤 일이든 포기하지 않고 자신감을 갖고 해나가면 좋겠다. 나 또한 가수로 인정받기 위해 그동안 부단히 노력을 해왔다”며 무슨 일이든 자신감을 갖고 노력하면 그만큼 사회에서 당당히 자신의 역할을 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1년 넘게 코로나로 인해 무대에 서지 못했지만 그는 가수로서 계속해서 음악활동을 할 예정이다. 한편 앞으로는 베트남의 혼혈인들을 위한 사업을 펼치고 싶다고 한다. 그는 “베트남 전쟁으로 나처럼 비슷한 처지의 혼혈인들이 베트남에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인 아버지를 찾는 일부터 이들을 위한 교육 등 차별과 편견의 굴레 속에 살아가는 많은 라이따이한들을 위해 일하고 싶다”고 밝혔다.
김인나 기자 innakim@igood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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