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이 악한 죄를 범했지만 복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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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이 악한 죄를 범했지만 복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
[사무엘하 12장 1절 ~ 15절] 2021. 3. 28. 주일 오전예배 설교 - 856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21.04.02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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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우리 마음과 하나님의 마음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생에서 악하고 추한 우리 마음을 발견하면 ‘이 마음으로 살면 안되겠네’라고 생각하게 되고 성경에서 예수님의 마음을 발견하면 정말 귀하고 아름다워서 ‘나도 예수님의 마음으로 살고 싶다’ 하며 우리 마음의 변화가 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에 자기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갈등합니다. 인간의 마음에서 나오는 생각은 악하고 더러운데 그 생각을 따라가면 결국 망한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언제 예수님을 알았느냐보다 정확하게 자기 생각을 떠나 예수님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저는 1962년에 죄 사함을 받고 예수님을 만난 뒤 내 마음과 예수님의 마음을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었습니다. 죄 사함을 받기 전까지 ‘왜 나는 이렇게 악하고 더러울까?’ 하며 참 많이 고민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교회를 열심히 다니며 모든 행사에 참여했는데 제 속에서 불끈불끈 솟아나는 악하고 거짓된 생각들이 저를 지배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주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제 삶속에 일하시면서 ‘이런 내 생각을 따라가면 망하겠구나’라는 사실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따라서 살다 보면 정말 개나 돼지처럼 살게 될 것 같아서 ‘내 생각을 따라 살지 말아야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가나 혼인 잔칫집의 하인

요한복음 1장 14절을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하며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분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12절에 기록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는 것은 내 생각을 버리고 말씀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아들여 주님의 마음으로 사는 것을 뜻합니다. 
요한복음 2장의 갈릴리 가나 혼인 잔칫집에서 포도주가 모자랐습니다. 마리아가 하인들을 불러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하인들에게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시고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주라”고 하셨습니다. 하인들은 ‘연회장에게 포도주를 갖다줘야 하는데 물을 갖다줬다가 화내면 어떡해? 그런데 마리아가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했으니까 연회장에게 이 물을 떠다 줘야 하나?’ 하며 갈등했을 것입니다. 하인들은 이제 자기 생각을 따라갈 것인지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를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하자’ 하며 물을 떠다 주었고,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역사를 경험했습니다.

니고데모 이야기

요한복음 3장에는 니고데모와 예수님의 대화가 나옵니다. 어느 날 밤에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가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요 3:2)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는 예수님에 대해 많이 알았지만 거듭난다는 것을 인간의 육체로만 보았기 때문에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하며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그에게 다시 진지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인간은 처음에 육체로 났기 때문에 성령이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시 나야 한다고 이야기하신 것입니다. 

거듭난 삶의 뜻

우리가 거듭남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 봅시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태어나시기 전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신(神)이십니다. 그런데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즉 예수님이 영으로는 하나님이고 이 땅에 오시느라 다시 육체로 거듭나셨습니다. 반대로 인간은 먼저 육체로 났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을 자기 마음에 받아들여 영으로 다시 나야 합니다. 즉 거듭난다는 것은 우리 마음과 전혀 다른 예수님의 마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듭나기 전까지 육에서 나오는 생각에 이끌려 살았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우리 마음에 들어온 후에는 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으로 사는 것을 거듭난 삶이라고 합니다.

자기 생각을 버려야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더 자세히 설명하셨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4~15)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불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았습니다. 성경에서 금은 하나님의 영광을 의미하고 놋은 심판을 말합니다. 그래서 놋으로 제단을 만드는데 놋뱀을 달았다는 것은 예수님이 심판받은 것을 의미합니다. 즉 죄에 대한 심판이 끝났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라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 대신 심판을 받는다는 것이고,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는 말씀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달려서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인 된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 ‘저기에서 내 모든 죄가 씻어져 심판이 끝났구나’ 하며 죄에서 해방을 받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마음의 주인이 되어서 우리를 이끌어가는 삶이 거듭난 삶입니다. 예수님의 영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십계명을 잘 지켜도 육체뿐이기 때문에 언젠가 하나님을 대적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기 생각을 버리고 예수님의 마음을 받아들여서 거듭나야 합니다. 유대의 관원 니고데모는 자기 생각을 버리지 못해서 거듭나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장갑을 잃어버렸을 때

저는 10년 넘게 교도소 교화위원으로 지내며 재소자들을 만나서 성경공부를 했습니다. 그들이 범죄 한 후 교도소에 들어온 과정을 들으면서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도박이나 마약 같은 범죄를 할 때 도박이나 마약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하지만 범죄하면 잡혀서 교도소에 가게 되는 것도 생각합니다. 그러나 ‘난 안 잡힐 거야’라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결국 범죄를 저지르게 됩니다. 
예전에 제가 막 군에 입대하고 추운 겨울인데 어느 날 관물대에 두었던 장갑을 잃어버렸습니다. 당시 군대에서는 구타가 심해 장갑을 잃어버려 손 시린 것보다 “어디다 팔아먹었어?” 하며 내무반장에게 매 맞을까봐 두려웠습니다. 처음엔 저도 밤에 화장실 다녀오면서 몰래 장갑을 훔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장갑을 훔치다 들키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만일 장갑을 훔치다가 들키면 앞으로 내무반에서 전도할 수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순간 아찔했습니다. 

도둑질을 하지 않은 이유

제가 군 생활하면서 배고픔이나 다른 어려움도 많았지만, 그 모든 것을 이길 수 있었던 힘은 복음을 전하는 일인데 도둑질하다 걸리면 복음 전할 힘을 잃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까 제 마음에서 도둑질하려던 생각이 멈춰졌습니다. 그리고 저는 ‘하나님, 도둑질 안 하겠습니다. 장갑 한 켤레만 주세요. 장갑이 없어서 매를 맞게 되더라도 장갑을 훔치지 않겠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뒤 하나님께서 제가 기도를 들으시고 장갑을 얻게 하셔서 참 감사했습니다. 
저는 훈련소에서 교육을 마친 후 다시 그 부대에서 복무했는데 사실상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저를 도와준 교육 장교님이 계셨는데 제가 교육을 마치는 날 교육 장교님의 출근 시간에 맞춰 사무실 앞에서 장교님을 기다렸습니다. 장교님께 “충성!” 하며 경례를 했습니다. “오늘 졸업합니다. 그동안 감사해서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박 일병, 잠깐 앉아요. 내가 박 일병을 수경사나 군수사로 보내려다가 박 일병이 내 곁에 있으면 신앙에 도움이 될 것 같아 교무과에서 근무하도록 했으니 너무 섭섭하게 생각지 말아요.” “예, 교육 장교님. 감사합니다.” 저는 그날 하나님이 제 곁에 살아계신 것을 경험했습니다.

참된 회개란

여러분, 저는 제 성격이나 생김새도 싫을 정도로 저 자신이 너무나 싫었습니다. 어렸을 때는 저를 좋아하는 친구도 없었습니다. 한번은 친구가 제 물건을 망가트려서 막 화를 냈습니다. “옥수야, 미안해” “야, 미안하면 다야? 이거 부숴 놓고?” 옆에 있던 친구가 제게 다가와서 “옥수야, 친구끼리 뭘 그래. 내 것 줄게.” 그 이야기를 듣고 전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난 왜 이렇지?’ 하며 저 자신이 싫었습니다. 그런 제가 예수님의 마음을 받아들인 후에는 내 마음과 예수님의 마음이 분명히 구별되었습니다. 저는 육신에 갇혀 세상 쾌락과 돈을 따라가는 사람인데 예수님이 제 안에 계셔서 저를 하나님께 굴복하도록 이끄셨습니다. ‘내 생각을 따라가면 망한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게 되고 주님이 저를 이끄시는 것을 경험하게 되면서 저는 제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 편으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이런 신앙의 과정을 참된 회개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려면 가장 먼저 ‘나 자신’을 부인해야 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

저는 열아홉 살에 구원받고 제가 얼마나 추하고 더러운 인간이라는 것과 제 모든 생각이 정말 악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제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으로 채워지면서 성경을 보는 눈이 달라졌고 제 삶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 압곡동과 장팔리에서 제가 어떻게 사역했는지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인데 그 당시 예수님이 모든 어려움을 이길 힘을 주셨고 삶에서 생기는 미움과 분노, 악이나 욕망을 이기도록 하시면서 제 마음에 예수님으로 가득 채우셨습니다. 종종 제가 육체의 욕구를 따르기도 했지만 주님은 어김없이 그 올무에서 풀어주시고 저를 이끄셨습니다.
여러분, 자신을 믿으면서 예수님을 믿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 5:17)는 말씀처럼 우리 육체의 욕구는 예수님의 마음과 정반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 8:6)는 말씀을 우리가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다윗이 범죄하게 되고

사무엘하 11장에 다윗이 범죄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왕들의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 신복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저희가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으니라. 저녁때에 다윗이 그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지붕 위에서 거닐다가 그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와 보이는지라…다윗이 사자를 보내어 저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고 동침하매 여인이 잉태하여 다윗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잉태하였나이다 하니라.”(삼하 11:1~5) 
하나님을 잘 섬기던 다윗이 자신의 육체를 위하면서부터 예전처럼 전장에 나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왕궁 지붕 위에서 거닐다가 한 여인이 목욕하는 모습을 보게 되고 그 여인을 불러 동침하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과 멀어지면서 육체의 정욕에 이끌렸습니다. 그는 동침한 여인이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여인의 남편을 전장에 보내서 죽이는 죄도 범했습니다. 우리 육체 안에는 이렇게 추하고 더러운 악이 존재하는데 우리가 육체 속에 살면서 육체가 원하는 것을 하다 보면 결국 망하게 됩니다.

말씀에 이끌리는 삶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의 신비한 영적 세계를 모르기 때문에 주님의 뜻을 다 이해할 수 없지만 예수님의 뜻은 항상 옳으니까 예수님을 믿고 따라야 합니다. 요한복음 9장의 소경이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이해할 수 있었을까요? 요한복음 11장에서 오빠 나사로가 죽었는데 마리아와 마르다에게 “네 오라비가 다시 산다”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그들이 이해할 수 있었을까요? 그들은 이해할 수 없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따랐을 때 예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처럼 연약한 육체 안에 있으면서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는 것은 정말 한없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 가운데 육체의 욕망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그 육체에서 벗어나야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 즉 성령이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하나님과 우리 마음이 하나가 되었을 때, 하나님의 거룩함과 신령함,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에 참예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가 우리 마음에 들어와서 우리를 이끌어 가는 삶은 온 천하를 준다고 해도 바꿀 수 없습니다.

선지자의 책망을 받은 다윗

우리가 주님 안에 살면서 어리석게도 사단의 음성을 듣습니다. 다윗이 전장에 나가지 않고 육체가 원하는 대로 하는 순간 육체에 이끌려 죄를 범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곁에는 하나님의 종 나단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어려서는 사무엘 선지자가 있었고, 나이 들어서는 갓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믿지 못하니까 한평생 선지자를 옆에 두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나단 선지자가 범죄 한 다윗 왕에게 “당신이 그 악한 사람이다”라며 악을 지적하고 책망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나이다” 하며 자신을 범죄하게 한 생각이 사단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깨닫고 회개하여 하나님과 다시 새로운 관계가 형성됐습니다. 

육을 따르면 결국은 망해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똑똑해도 자신을 믿지 않고 오직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열왕기하 7장을 보면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 하리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한 장관이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그런 일이 있으리오”라며 자기 생각을 따랐고 결국 그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우리 눈에 좋아 보이는 육을 따라가면 결국 망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를 다니는 많은 사람이 성경에서 하나님이 분명히 우리를 ‘의롭다’ 하신 말씀을 믿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가 육신으로는 죄를 지으니까 죄인이라 하겠지만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향해 ‘의롭다’ 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의롭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거룩하다’ 하셨기 때문에 ‘나는 거룩하다’고 믿을 때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자기 자신에서 벗어나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면 인간적인 생각은 다 죽고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에 자리 잡아서 우리는 작은 예수가 됩니다. 우리가 육신의 생각을 버리지 않고 ‘충성해야지, 착하게 살아야지’라고 아무리 결심해도 그것은 무익합니다.

다윗이 복을 얻은 것처럼

예수님은 히브리서 10장에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히 10:16)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생각이 아무리 옳아 보여도 그 생각을 버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죄를 짓지만 예수님이 ‘의롭다’ 하시면 의롭다고 믿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 2:20) 하며 그의 마음에 자기 자신이 죽고 예수님이 살아계셨습니다. 그는 육체의 욕망이 일어날 때마다 ‘나는 이미 죽었어. 내 안에 예수님이 살아계셔’ 하며 말씀으로 사단의 생각을 이겼던 것입니다.
다윗 왕이 정말 악한 죄를 범했지만 하나님의 종, 나단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서 다시 새롭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했습니다. 그 뒤 그가 이스라엘 백성을 계수하는 죄를 범하였을 때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죄에서 벗어났습니다. 여러분, 우리 마음속에 우리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 주인이 되면 하나님이 우리를 거룩하고 복되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끄시면 평안을 누리고 영광된 삶을 살 것입니다.
- 2021. 3. 28. 주일 오전예배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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