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생존자, 의혹과 냉대에 시달린 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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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생존자, 의혹과 냉대에 시달린 11년
특집 기획특집/ 제6회 서해수호의 날 - PTSD 극복하고 생존장병들의 권익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전준영 회장을 만나다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21.03.26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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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생존자들과 함께 한 최원일 함장(좌에서 세번째) 및 전준영 회장(좌에서 두번째)

3월 26일 서해수호의 날을 맞아 천안함 생존장병들의 처우개선과 명예회복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천안함생존자예비역전우회 전준영 회장을 인터뷰했다.

천안함 피격 11주년, 생존자 58명 중 유공자는 12명

2010년 3월 26일 밤 9시 22분, 1200t급 초계함 천안함이 북한 어뢰의 피격으로 두동강 났다. 이날 46명이 전사하고 58명만이 생존했다. 일촉즉발의 순간에 살아 돌아온 생존자들은 천안함 피격 사건이 정치적으로 이용됨으로써 11년동안 온갖 의혹과 냉대를 견디며 살아야 했다. 
서해수호의 날을 일주일 앞두고 기자는 대전에서 천안함전우회 전준영(34) 회장을 만났다. 그는 11년간 천안함 생존장병의 처우개선과 명예회복은 물론 국가를 위해 희생한 청년들의 권익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현재 천안함 생존자 58명(전역 34명, 군복무 24명) 중 유공자는 12명이다. 그 중 9명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가 인정되어 유공자로 등록되었는데 여기에는 2년간의 외래기록과 1년간의 입원기록 등 수많은 서류와 기록으로 자신이 국가유공자임을 개인적으로 입증해야하는 지난(至難)한 과정이 필요하다. 9년 만에 PTSD로 유공자가 된 전 회장은 “2011년 부모님께서 우울감과 폭력성이 극에 달한 나를 끌고 병원에 갔다. PTSD 판정을 받고 그해 보훈처에 유공자 신청을 했으나 탈락되었다. 
사비로 의료비를 부담하면서 수없이 민원을 넣고 세미나, 컨퍼런스, 간담회 등을 가졌다. 마침내 2019년 유공자증을 받은 후, 차안에서 아내와 펑펑 울었다. 이거 하나 받자고 그 오랜 시간을 싸워왔나 싶었다”라고 말했다.

대전현충원에서 서해수호 전사자 묘역을 참배하는 보훈처장(앞줄 가운데)

유공자 입증, 개인이 아닌 국가가 책임져야

최근 여러 언론에서 24명이 유공자 신청을 했다고 했으나 전우회 측에 따르면 ‘중복신청을 포함해 24명’이라며 실상 몇 명이 신청을 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고 했다. 생존자들은 유공자임을 입증하는 과정이 고통스러워 포기하거나 트라우마가 심각해 숨어지내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故 문영욱 중사는 신청하는 직계가족이 없어 전사 8년 만에 국가유공자가 되기도 했다. △이제는 ‘개인입증제’ 보다는 국가가 나서서 나라를 위해 희생한 유공자 입증을 책임지는 ‘국가입증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전 회장은 △보훈에 관한 절차 안내의 필요성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작년에서야 상이연금제도와 장애보상금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소멸시효가 각각 5년과 6개월이었다. 또한 국가유공자로 등록되면 보훈급여금, 취업·주택·의료지원 등을 받을 수 있는 법이 있는데 아무도 안내해주지 않았다”라며 아쉬워했다.  
한편, 전 회장은 의혹과 음모론 속에 외면받았던 천안함 승조원 58명의 생환 과정이 재평가되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는 “여기저기 다친 동료들을 위해 구급함과 옷가지를 챙겨다주고 장병들을 구조하기 위해 다시 침실로 향했던 상병들, 구명정 확보를 위해 바다에 뛰어든 상사, 그리고 천안함 이탈 전 물속에서 탈출할 수도 있는 승조원들을 위해 구명정과 구명볼을 현장에 남기는 과정까지 모두가 훈련한 대로 움직였다”고 말했다. 그는 절체절명의 긴박한 상황에서 침착하고 일사불란하게 대한민국 해군의 의무를 다한 천안함 승조원과 정확한 판단력으로 이들을 이끈 최원일 함장(2.28 전역)에 대한 재조명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에 헌신한 장병에 보상과 예우는 필수

전준영 회장은 피격 당시 최고참 병장이었다. 그가 PTSD를 극복하고 10여년간 전우회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이유는 “너희들 모두 유공자로 만들테니 기다려달라”고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전우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고 천안함 뱃지를 무료로 배포하다가 재정적 한계에 부딪혔던 전 회장은 많은 고민을 거듭한 끝에 천안함에 대한 자연스런 인식전환을 위해 3년 전부터 고품질의 모자와 티셔츠 등 기념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는 천안함 모자와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을 보거나 스티커가 붙은 차를 보면 뒤따라가서 인사하고 몸에 지닌 천안함 관련 물품을 다 내어줄 정도로 기쁘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10주기를 맞아서는 전국으로 흩어진 생존 전우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이 지나온 삶의 궤적이 담긴 책 ‘살아남은 자의 눈물(사진)’을 출간했다.
그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작년 2월 ‘국군의 권익과 보훈 혁신’을 주제로 연 국회 컨퍼런스(이명수·김선동 국회의원 주최)를 계기로 전투 중 다친 군인에게 지급되는 전상수당(23000원)이 올해 4배 가까이 인상되었다. 또한 보훈처에 생존자들의 지속적인 취업지원을 요청한 결과 34명 중 4명이 취업지원을 받았고 금년 3월 9일에는 천안함 생존자들이 보훈처장(황기철)과 대전현충원에서 서해수호 전사자 묘역을 참배하고 최초로 간담회도 가졌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평화는 외세의 침략에 맞선 호국영령들과 장병들의 숭고하고 값진 희생으로 지켜졌다. 이 평화가 후손에게 계승되기 위해서는 국가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 특히 국군장병들의 희생과 헌신에 대해 합당한 보상과 예우가 수반되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송미아 기자 miasong@igoodnews.or.kr  대전=김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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