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나야 한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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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나야 한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요한복음 3장 1절 ~ 21절] 2021. 1. 31. 주일 오전예배 설교 - 849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21.02.05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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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방역지침에 따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온 나라가 코로나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오늘 예배에도 많은 분들이 참석하지 못했지만 교회가 코로나와 관련한 국가 시책을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가 빨리 종식되어 다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군 생활 이야기를 자주 해 저보다 제 군 생활에 대해 더 잘 아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웃음) 군에 있을 때 저와 동기들은 비슷한 나이였고 같은 밥을 먹으며 생활했지만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예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무선전신병으로 주특기를 받아 16주 동안 원주 통신훈련소에서 모스부호로 통신하는 교육을 받았습니다. 훈련소는 하루라도 일찍 온 고참이 파워가 있는데 제가 입소했을 때는 훈련소가 막 원주로 이전을 했을 때라 1기생이 되어 가자마자 가장 고참이 되었습니다. 훈련소에는 매주 토요일마다 전국에서 수많은 교육생이 입소하는데 제가 매주 후배들의 내무반에 방문하여 주일 예배에 초청을 했습니다.

교육장교님과의 만남

당시 훈련소에는 예배당이 없어 사람들을 인솔해 산속 양지쪽에 자리를 잡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렇게 예배를 드린 지 3~4주쯤 지난 어느 날 교수본부에서 저를 불러 갔더니 한 중위님이 “박 이병, 거기 앉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분은 훈련소의 교육을 담당하는 교육장교님이셨습니다. 당시 군대는 말이 험했을 뿐만 아니라 장교가 병사에게 존대한다는 것은 드문 일인데 그분이 저에게 너무나 친절히 대해주셨습니다. 
 제가 자리에 앉자 “박 이병은 군에 오기 전에 무슨 일을 하셨나요?”라고 물어보셨습니다. “예, 교회 전도사였습니다!” “과연, 그러셨군요.” 교육장교님이 어제 당직근무를 하는데 제가 예배드린다고 보고하러 온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자신은 군대 와서 신앙과 멀어졌는데 저를 보고 많은 생각을 했다며 “내가 뭐 도울 일이 없나요?”라고 물었습니다. 

훈련소에 남기를 바라며

제가 “교육장교님,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교실 하나 빌려주시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하자 바로 옆에 있던 병장에게 “박 이병에게 교실 열쇠를 주고 일과가 끝나면 언제든지 쓸 수 있도록 해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날부터 그분이 제가 하는 모든 일을 전적으로 도와주셨습니다. 그 당시 12월 즈음이었는데 외부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실내로 들어오니 너무나 좋았습니다. 이렇게 훈련기간 동안 복음을 전할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어느덧 훈련소 퇴소 날짜가 다가와 저와 함께 복음을 전하던 동기생들과 함께 이곳에 누군가는 남아서 계속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당시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자대배치를 받으려면 반에서 5등 안에 들어야 했는데 우리 반에는 입대 전 모스부호를 치던 사람이 여섯 명이나 있어서 그것은 도저히 불가능했습니다. 

군 생활 3년을 마치면서

졸업식 날이 되어 그동안 저를 도와주셨던 교육장교님께 인사를 드리려고 찾아갔습니다. “교육장교님, 저 오늘 졸업합니다. 그동안 잘 돌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박 일병, 잠깐 의자에 앉아 봐요. 내가 박 일병을 수도경비사나 대구 502장통단에 보내려고 하다가 박 일병이 내 곁에 있으면 신앙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여기에 남도록 해놨으니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고 같이 일합시다.” 이런 일은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인데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이 너무나 놀라웠습니다.
이외에도 훈련소장님과 함께 예배당을 짓게 된 일, 전역을 앞두고 관물반납을 못해 기도할 때 물질을 주신 일 등 군대에서 하나님이 하신 일을 이야기하려면 밤을 새워도 다 못할 것 같습니다. 제가 군 생활 3년을 마치고 정문을 나오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하나님이 나와 같이 계신다면 내가 사하라 사막에 가도, 남극에 가도 얼마든지 살겠다.’ 저도 종종 어려울 때가 있는데 하나님이 나와 같이 계신다는 생각만 하면 힘이 나고 기뻤습니다. 이런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온 세상을 가진 것보다 훨씬 더 귀한 것입니다.

인간은 연약하기 때문에

오늘 아침에는 요한복음 3장에 나오는 니고데모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그가 어느 날 밤 예수님을 찾아가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요 3:2)라고 했습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병자를 고치신 일, 바다 위를 걸으신 일, 죽은 자를 살리신 일 등 그리고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저분은 하나님의 사람이야, 인간은 저런 일을 할 수 없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예수님이 하신 거듭난다는 말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먼저 부모님으로부터 인생을 시작하게 됩니다. 부모님을 통해 눈·코·입 등 완벽한 인간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에겐 하나님이 가진 지혜와 능력, 하나님의 마음은 없습니다. 인간은 약하기 때문에 악한 영에 이끌리면 악을 행하거나 어둠에 빠지게 됩니다. 음란에 빠진 사람, 술이나 마약 또는 도박에 빠진 사람, 자폐증에 걸린 사람…,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거듭난다는 것의 의미

그런 우리가 하나님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그분의 영역에 도달하는 것을 거듭난다고 말합니다. 율법과 죄 아래서 악한 영에게 사로잡혀 있었던 우리 마음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거듭난다는 것은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을 우리 마음에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하늘로부터 온 선생인줄로 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의 마음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도 ‘아 예수님이 이런 마음을 가지셨구나’ 하며 예수님의 마음을 알고, 마음에 받아들이면 예수님 안에 역사하던 영이 동일하게 우리에게도 역사해서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오래전 우리 조상 아담은 하나님의 영이 아닌 사단의 영을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만드시고 난 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담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눈이 밝아 하나님처럼 된다”는 뱀의 유혹에 빠져 그 실과를 먹게 되었습니다. 이제 아담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가 아닌 사단이 주는 생각에 이끌림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로부터 수천 년 동안 사단은 우리 인간의 삶을 지배해 왔습니다.

복된 길로 인도하시고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 예수님을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보냈습니다. 우리는 사단의 이끌림을 받아 마음이 욕망과 쾌락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우리 안에 있는 악한 영을 예수님의 영이 이기도록 해야 합니다.
저는 1962년 10월 7일 처음으로 제 생각과 다른 예수님의 생각을 받아들이면서 예수님의 영이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저를 이끄시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제 마음에 욕망이나 정욕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예수님의 마음이 제 욕망과 생각들을 이기고 당신의 선하신 일로 이끌었습니다. 똑같은 몸이지만 이전에 사단의 지배를 받을 때와 예수님이 이끄실 때의 삶은 전혀 달랐습니다. ‘난 전에는 이렇게 밝은 삶을 살지 못했어. 그런데 예수님의 마음 하나 받아들이니 예수님이 내 안에 살아 역사하시는구나.’ 그것이 너무나 놀라웠습니다.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계신 후 변하여 새사람 되고~”라는 찬송이 바로 그것입니다. 말씀을 받아들이면 예수님의 마음이 우리 안에 들어와 전에 우리가 살 수 없었던 복된 길로 인도하십니다. 

니고데모 이야기

요한복음 3장에서 제가 안타까운 것은 유대의 관원인 니고데모가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서 오신 분인 줄 안다고 했는데 예수님의 말씀이 자기 생각에 이해가 안 될지라도 ‘저분의 말이 옳아. 내가 옳은 게 아니야’ 하며 받아들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러면 예수님께서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을 때 “사람이 한 번 태어났는데 어떻게 다시 날 수가 있어?”라며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니고데모가 “선생님, 전 거듭난다는 게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자세히 이야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도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거듭나고 싶습니다” 하며 은혜를 구하는 마음의 자세였다면 예수님은 이렇게 설명했을 것입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육체가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네 속에 너를 이끄는 영이 있는데 그 영은 하나님의 영이 아닌 사단의 악한 영이야. 지금까지 너는 그 영의 이끌림을 받아 자신이 옳다고 여기고 교만해졌어. 그러니까 거듭난다는 것은 지금까지 너를 이끌던 그 악한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받아들이면서 새롭게 하나님의 이끌림을 받는 삶을 사는 사람이 된다는 거야.”

자신의 생각을 버려야

그런데 니고데모는 거듭난다는 것을 인간의 육체로만 보았기 때문에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하며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말로는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라고 했지만 정작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와 자리를 잡느냐 아니냐는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으로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5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에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씀대로 병자가 자리를 들고 일어났습니다. 요한복음 9장에서는 소경에게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소경에게는 실로암 못에 가는 것보다 더 많이 구걸해서 돈을 버는 게 중요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생각을 버리고 예수님의 말씀에 이끌려 실로암 못으로 가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2장에 갈릴리 가나 혼인잔칫집에 포도주가 모자랄 때 예수님이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하시더니 그것을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하셨습니다. 하인들의 마음으로는 그렇게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포도주가 아닌 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기 생각을 버리고 예수님의 마음을 받아 그대로 행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내 생각, 즉 사단이 주는 생각에 이끌림을 받아 악하고 거짓되며 영원한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그 사단의 세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 생각으로 산 결과는

우리의 외형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지만 마음은 사단의 세계에서 예수님의 세계로 옮겨졌기 때문에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우리 마음을 두드릴 때 ‘하나님이 왜 내게 이 말씀을 듣게 하시지?’ 하며 생각을 해야 합니다. ‘난 안 돼. 난 믿음이 없어’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왜 이 말씀을 하셨는지 생각하십시오. ‘예수님이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셨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셨네. 이 물을 먹으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고 하셨네. 그래 지금까지 내 생각으로 산 결과는 너무나 추하고 더러웠어. 그리고 내가 한 모든 것은 다 실패했어. 이제 저 말씀을 믿어보자.’ 
성경에 나온 그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예수님의 마음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38년 된 병자는 걷게 되었고 사마리아 우물가의 여인은 새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성경과 다른 길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르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저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게 가능할까? 정말 될까? 안될 것 같은데. 안되면 어떡하지?’ 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바로 받아들이지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한 번씩 제 속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을 때 말씀대로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렘 31:34)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뭐라고 합니까?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성경과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내 생각인가, 말씀인가

여러분, 38년 된 병자가 “일어나 걸어가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지금까지 내 생각을 따라 살았는데 그 결과는 너무 비참해. 이제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살 거야’ 하며 일어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나를 멸망으로 이끈 내 생각과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가는 천국의 길은 확실히 다릅니다. 우리가 깊게 생각하지 않고 불투명한 자신의 생각을 따르기 때문에 저주의 길로 걷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시간 이후부터 여러분이 어떤 사람인지를 불문하고 “더 이상 내 생각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겠다”라고 말하십시오. 그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니고데모는 나름대로 똑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보다 지혜롭지는 않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고개를 숙이고 참된 지혜를 구했어야 했지만 불행하게도 ‘거듭나라고? 말도 안 돼. 이렇게 큰 사람이 어떻게 엄마 뱃속에 다시 들어가’ 하며 자기 판단으로 끝내버렸습니다.

혼돈된 삶을 사는 이유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내 생각을 자주 혼동합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 믿음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생각을 안 해서 그렇습니다. 좀 더 생각해 보세요. 믿음의 길이 아닌 것은 다 망하는 길입니다. 우리는 내 생각을 따라가도 괜찮다고 여기는데 그것은 결국 멸망이고 저주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만이 생명과 평안이고 영원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중심을 두지 않기 때문에 자기 생각과 뒤섞여 혼돈된 삶을 살게 됩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입니다. 이 부분에 정확하게 선을 지으면 우리가 예수님 편에 서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금까지 어둠 속에 살면서 얼마나 자신의 생각을 받아들였습니까? 그로 인해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배척해 왔습니까. 우리는 너무나 어리석게도 그동안 사단이 주는 생각을 따라가도 괜찮을 줄 알고 인간의 방법으로 흘러갔습니다. 이제 오늘부터 시작해 보십시오. 우리 마음에 안 맞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역사하시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더 이상 사단이 우리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다스리도록 해서 우리가 복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말씀을 받아들이면

사람들이 성경을 정확히 알지 못하고 인간의 방법으로 흘러가는 것은 예수님을 거스르고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은 사람들이 언제까지 그렇게 살겠습니까? 이제 우리 생각을 끝냅시다. 예수님으로 말미암는 삶을 삽시다. 그러면 우리에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고 우리 모두가 달라질 겁니다. 저는 예수님의 마음을 받아들인 사람이 변하지 않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1987년도 여름 수양회 때 제가 배가 아팠다 나은 간증을 했습니다. 그때 약 250명의 형제자매가 그 말씀을 듣고 저와 동일하게 믿게 되면서 여러 가지 병에서 나음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정말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길 원하십니다. 
성경을 읽으십시오. 말씀 한마디 한마디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그 말씀이 놀랍게 일할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이 시대의 베드로가 되고 바울이 됩니다. 사단의 음성을 받아들이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 살면 여러분이 바로 작은 예수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생명을 전하시기를 바랍니다.
- 2021. 1. 31. 주일 오전예배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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