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은 내 생각을 내려놓고 말씀을 그대로 믿는 것
상태바
신앙은 내 생각을 내려놓고 말씀을 그대로 믿는 것
[열왕기하 7장 1절 ~ 10절] 2021. 1. 17. 주일 오전예배 설교 - 847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21.01.22 15: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온라인 겨울캠프를 마치고

저는 지난주에 있었던 온라인 겨울캠프 기간에 오늘 읽은 열왕기하 7장 말씀을 전하면서 내내 행복하고 기뻤습니다. 이 성경에 등장하는 네 명의 문둥이는 사마리아 성문 어귀에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문둥이는 일반사람이 사는 동네가 아니라 외딴곳 문둥이 계곡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예전에 「벤허」영화를 볼 때 벤허의 어머니와 여동생이 문둥병에 걸려서 주인공 벤허가 그들을 찾으러 문둥이 계곡으로 가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벤허는 그곳에서 문둥이가 된 어머니와 여동생을 만났습니다. 사람들이 때가 되면 문둥이 계곡에 있는 가족이나 친척에게 음식을 갖다 주는데 계곡 위쪽에서 음식을 담은 그릇을 도르래에 달아 내려주었습니다. 
열왕기하 7장에 나오는 네 명의 문둥이도 문둥이 계곡에서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람 군대가 이스라엘에 쳐들어와 사마리아 성을 포위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 밖으로 나갈 수 없어 양식이 부족해졌고 성은 크게 굶주렸습니다. 심지어 여자가 자기 아들을 삶아 먹는 아주 비참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사람들이 자기 먹을 것도 없는데 문둥이 계곡에 있는 가족들을 생각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문둥이들은 굶주리다 못해 한 발짝씩 걸어 나와서 성문 어귀까지 도달했지만 성안에는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네 명의 문둥이 이야기

이제 문둥이들은 틈만 나면 성문을 바라보고 ‘혹시 가족들이 음식을 갖다 주려나’ 하며 기다렸지만 어느 누구도 음식을 갖다 주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지나갈수록 문둥이들도 하나둘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네 명의 문둥이는 ‘사마리아 성에 기근이 찾아와 다 죽어 가는 상황에서 누가 음식을 갖다 줄까?’ 하며 좀 더 깊이 생각하게 되면서 지금까지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새로운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가 어찌하여 여기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랴 우리가 성에 들어갈지라도 성중은 주리니 우리가 거기서 죽을 것이요 여기 앉아 있어도 죽을 찌라 그런즉 우리가 가서 아람 군대에 항복하자 저희가 우리를 살려 두면 살려니와 우리를 죽이면 죽을 따름이라”(왕하 7:3~4) 지금까지 네 명의 문둥이는 성문 어귀에서 누군가 음식을 갖다 주길 기다렸는데 더 이상 기대할 수가 없고 이제 결국 굶어 죽을 일만 남았습니다. 그래서 양식이 있는 아람 진으로 가서 항복한다면 죽임을 당할 수도 있지만 그들이 살려 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마음의 세계

여러분, 네 명의 문둥이가 깊이 생각하지 않고 막연하게 성문 어귀에 있는 것이 지금 당장은 안전해보이지만 결국 굶어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살 수 있는 확률은 없습니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그들이 아람 군대에게 가서 항복했을 때 당장 죽임을 당할 위험성은 있지만 그곳에는 분명히 양식이 있어서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결정을 내리는 것은 마음의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범죄 한 사람들의 유사점

아주 오래전 일인데 하루는 수원교도소 교무과장님이 제게 전화하셨습니다. “박옥수 목사님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저는 수원교도소의 교무과장입니다. 극동방송을 통해 목사님 방송 설교를 듣고 말씀이 너무나 은혜로워서 한번 뵙고 싶었습니다. 그러다가 오늘 교도소에 들어온「월간 기쁜소식」잡지에 실린 목사님 설교를 읽고 출판사에 전화해서 목사님 연락처를 알게 되었습니다. 목사님, 우리 교도소에 한번 와 주세요.” 그래서 그분과 약속을 하고 제가 수원교도소로 가서 교무과장님을 만났습니다. 이런저런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분의 부탁을 받고 수원교도소 교화위원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재소자들과 성경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대전교도소 교화위원으로도 지낸 적 있는데 10여 년 이상 재소자들을 만나 성경공부를 했습니다. 그들이 범죄 한 후 교도소에 들어오게 된 수많은 과정을 들으면서 범죄 하는 사람이 일반사람과 다른 생각의 구조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재소자들이 범죄 했던 이유는 아주 단순했습니다. 처음에 도둑질이나 도박, 마약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마찬가지로 도둑질, 도박, 마약을 해서 잡히면 교도소에 들어갈 위험성도 생각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마음은 그런 위험성을 1단, 2단, 3단, 4단 등 이렇게 측정할 정확한 단위가 없습니다. 즉 어떤 사람에게 도둑질하려는 생각이 강하게 들면 동시에 ‘나는 도둑질해도 안 잡혀’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에 ‘내가 도둑질하다 잡히면 감옥에 가는데 안 되지’ 하던 사람도 어떤 물건을 훔치고 싶은 생각이 커지면, ‘내가 도둑질해도 안 잡혀’라는 생각이 그를 강하게 사로잡아 가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을 믿는 사람
 
도박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도박을 왜 하는 줄 아십니까? 일단 돈을 따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도박을 해서 돈을 잃을 것 같으면 도박을 하지 않는데, 돈을 딸 수 있다고 생각하면 도박을 하는 것입니다. 도박해서 돈을 따거나 도둑질을 해도 자신이 잡히지 않는다는 생각은 그렇게 되길 원하는 것이지 정확한 판단은 아닙니다. 그런 것들을 마음에서 정확하게 분별할 수 있다면 도박을 하거나 도둑질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 자기 생각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어떤 사실을 정확하게 보고 판단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우리 마음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어느 날 아내가 아주 예쁘게 보이다가도 밉게 보이기도 하고, 똑같은 음식이 맛있다가 맛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똑같은 사람인데 만나서 반가울 때가 있고 오히려 귀찮을 때가 있듯이 이렇게 우리 마음에는 어떤 힘이 작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물건을 아주 탐내면 도둑질하려는 생각이 강해지면서 ‘괜찮아. 나는 잡히지 않을 거야’라는 생각에 이끌리게 되어 도둑질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물건이 자신에게 별 필요치 않다면 ‘내가 괜히 그 물건을 훔쳤다가 잡히면 어떡해’ 하며 도둑질하고 싶었던 생각을 버릴 수 있습니다. 

마음에 작용하는 어떤 힘

여러분, 네 명의 문둥이가 사마리아 성문 어귀에 있으면서 가족들이 양식을 갖다 주길 기대하지만 결국 그것은 죽음을 기다리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아람 진으로 갔을 때 생존할 확률을 따져보면 훨씬 더 생존율이 높습니다. 그렇지만 네 명의 문둥이는 적군 아람 진으로 가서 항복하면 당장 죽임을 당할 위험성이 있다는 생각을 하니까 두렵고 부담스러워 성문 어귀에서 그냥 머물길 원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의 마음에 작용하는 어떤 힘을 영(靈)이라고 하는데 악한 영이 작용하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네 명의 문둥이들은 처음에는 아람 진에 갈 생각을 못했다가 하나님의 성령이 그들의 마음에 작용해서 ‘성문 어귀에서 양식을 갖다 주길 기다리다가 결국 죽게 되는데 아람 군대에 항복해서 만일 그들이 우리를 죽이면 죽겠지만 살려 줄 수도 있을 거야’라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악한 영(靈)에 이끌리면

저는 교도소 교화위원으로 지내며 재소자들이 어떻게 범죄 하하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람의 마음속에 악한 영(靈)이 작용해서 불행을 겪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를 다니는 김 자매님을 제가 처음 만났을 때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에게 악한 영이 자살하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 자매님은 그런 사실을 모르니까 제가 “아주머니, 예수님 믿어야 합니다”라고 말했을 때 “다음에 믿을 게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악한 영이 그 자매님을 죽음으로 끌고 가는 것을 알 수 있어서 큰소리로 “아주머니, 큰일 납니다. 지금 당장 믿어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자매님이 깜짝 놀라며 그 생각을 돌이켜 복음을 듣고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김 자매님이 예수님의 영역 안으로 들어온 후에는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을 버릴 수 있었고 다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것

우리의 신앙생활을 가장 방해하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우리가 똑같은 성경을 읽어도 자기 생각을 버린 상태에서 말씀을 볼 때와 자기 생각이 들어간 상태에서 말씀을 볼 때 전혀 다르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1962년 5월, 저는 기술하사관 시험을 보았는데 신체검사에서 불합격 처리되었습니다. 그 당시 저희 집은 아주 가난해서 늘 배고픔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과 자주 남의 집 과수원에 들어가 과일을 따 먹고 다음날 새벽이면 교회 가서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곤 했습니다. 제 마지막 소망이었던 기술하사관 시험에 탈락하고 나니 그동안 제가 계획한 모든 일이 실패한 것을 알았습니다. 그해 10월까지 5개월 동안 저는 ‘내 생각을 따라가면 망해’라는 사실을 정확히 알게 되면서 성경을 읽을 때 ‘내 생각’의 영향력이 급격히 줄어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후 로마서 3장 23절과 24절을 읽으면서 모든 죄가 확실히 씻어졌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읽을수록 예수님의 피로 우리 죄가 사해졌다는 믿음이 분명해졌습니다. 

혼인 잔칫집의 하인들

요한복음 2장의 갈릴리 가나 혼인 잔칫집에서 예수님이 하인들에게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그리고 이제 연회장에게 떠다 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하인들은 지금까지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던 말씀을 들었고 그 말씀은 그들의 생각과도 맞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 물을 떠다 준다면 주인에게 혼날 거야. 연회장에게 포도주를 갖다 줘야 하는데 물을 떠다 줘선 안 돼’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그 하인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너희들 생각대로 하지 말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하라”는 것인데 성경이 요구하는 바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 생각과 다르다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 55:8~9)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내 생각이란 관점으로 성경을 읽기 때문에 하나님이 요구하는 그 영역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데 사단이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내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생각을 만나기 위해서 제일 중요한 과정이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우리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생각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가나 혼인 잔칫집에서 하인들이 ‘포도주를 갖다 줘야 하는데 이 물을 떠다 주면 안 돼’라는 그들의 생각을 부인하고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는 마리아의 말을 받아들였듯이 자기 생각과 다르더라도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왕이 의지하는 장관은

여러분, 많은 사람이 성경을 읽지만 자기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런 사실을 알려주시려고 열왕기하 7장에서 왕이 의지하는 장관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 하였을 때 그 장관은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오”라고 대답하며 그는 자기 생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했습니다. 여기 왕이 의지하는 장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도 그렇습니다. 첫사람 아담이 사단의 음성을 듣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후 인간은 말씀이 아닌 자기 지혜와 방법으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배, 기도, 헌금, 율법을 지키는 형식을 갖추지만 말씀이 아니라 우리 생각에 자주 이끌리는 것입니다.

문둥이들은 아람진을 향해
 
열왕기하 7장에 나오는 왕이 의지하는 장관은 자신이 장관이니까 자기 생각을 옳게 여기고 강력하게 주장하다 보니 하나님의 사람에게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오”라고 대답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네 명의 문둥이는 엘리사의 말씀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었습니다. “우리가 어찌하여 여기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랴 우리가 성에 들어가자고 할찌라도 성중은 주리니 우리가 거기서 죽을 것이요 여기 앉아 있어도 죽을찌라 그런즉 우리가 가서 아람 군대에게 항복하자 저희가 우리를 살려두면 살려니와 우리를 죽이면 죽을 따름이라” 하며 그들은 아람 진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한 문둥이가 말했습니다. “여보게, 미안해. 난 도저히 못 가겠어. 내가 생명을 걸고 같이 가려고 했는데 더 이상 갈 수가 없네.” “이 사람아, 무슨 말이야.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 우리가 도와줄게. 가서 밥 구경이라도 하고 죽자. 그곳에 가면 밥 먹을 수 있어.” “안될 것 같아.” “고집도 세네. 내가 자네를 놔두고 가면 인간이 아니네. 여기 그냥 둘 수 있나? 빨리 따라와! 힘내.” 그들은 이렇게 아람 진으로 갔는데 하나님이 일을 하셨습니다. 그들의 발걸음 소리를 아람 군인에게 말발굽과 병거 바퀴 소리, 군인들 함성으로 들리게 했습니다. 아람 군인들이 “이게 무슨 소리야?” 하며 깜짝 놀라서 보니 캄캄한 곳에서 말발굽과 말울음소리, 큰 부대의 군인들 함성이 들렸습니다. ‘틀림없이 이스라엘 왕이 헷 사람과 애굽 군인을 불러서 오는 거야’ 하고 생각해 말도 타지 않고 도망갔습니다.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

네 명의 문둥이가 아람 진으로 들어서며 손을 든 채 “항복합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에서 왔습니다”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 조용해서 주위를 살피며 천막 안으로 들어가 보니 부글부글 찌개가 끓고 있습니다. “이게 웬 음식이야? 먹어도 될까?” “일단 먹고 보자. 죽을 때 죽더라도.” 그들은 먹고 마시고 장막에 그대로 있는 금은보석을 감추며 너무나 놀라워했습니다. 그러다 “우리의 소위가 선치 못하도다 오늘날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어늘 우리가 잠잠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찌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고하자”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 하리라”고 말씀했던 대로 양식이 풍성했습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 신앙의 세계를 의미합니다.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우리가 가진 모든 생각을 내려놓고 말씀을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4절에는

여러분, 로마서 3장 23절과 24절 말씀을 살펴봅시다. 23절을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며 우리가 죄인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24절에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하며 우리 죄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씻었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23절에서 우리의 신분은 죄인이고 24절에서 우리의 신분은 의인입니다. 
여러분, 이상하게도 수많은 기독교인 가운데 로마서 3장 23절은 믿지만 24절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실제 우리에게 필요하고 기쁨과 희망을 주는 말씀은 24절인데 로마서 3장 23절과 24절을 똑같이 읽고서 23절 말씀만 가지고 ‘우리는 죄인이야’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24절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 하셨어”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심지어 기독교 지도자, 신학자, 그리고 로마서 강해를 쓴 사람도 24절대로 말하지 않고 ‘우리는 죄인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성경을 그대로 보는 마음의 눈이 가려졌다는 것입니다.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오늘날 교회를 다니는 많은 기독교인이 로마서 3장 24절을 정확히 읽는다면 ‘나는 죄인이다’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24절의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기록된 말씀 앞에서 왜 사람들이 ‘나는 죄인이다’라고 합니까? 바로 사단이 말씀을 정확히 볼 수 없게 우리 마음의 눈을 가리기 때문입니다. 
제가 여러 번 故 가나 前 대통령께서 구원받은 간증을 했었는데, 그분을 만난 날 대통령께서는 ‘내가 대통령까지 해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죄가 있어서 두렵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대통령께 어느 나라든지 죄인이 자기 죄를 정하지 않고 재판장이 판결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판결한 로마서 3장 23절과 24절 말씀을 읽어드렸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아무 한 일 없이 예수님이 우리 죄를 사한 사실을 믿기만 하면 죄 사함을 받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 2021. 1. 17. 주일 오전예배 설교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