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를 조율하듯 서로 양보하고 타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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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를 조율하듯 서로 양보하고 타협해야”
줌인 대한민국 조율명장 1호 이종열 씨의 65년 조율 인생을 통해 바라본 요즘 세상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20.11.28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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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피아노 조율명장 제1호 이종열 씨

서울 예술의전당과 롯데콘서트홀의 수석조율사 이종열 명장은 서로 타협하는 민주주의식 기술인 조율을 통해 65년간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왔다. 그는 어느 때보다 요즘은 피아노처럼 양보와 타협이 필요한 때라고 말한다. 

2007년, 대한민국 조율명장 1호가 되다

지난 11월 23일 서울 송파구 롯데 콘서트홀에서는 두 차례 공연이 열렸다. 11시 30분 무관중 온라인 공연과 7시 30분 백건우(74) 콘서트다. 피아노 조율명장 이종열(82) 씨는 첫 공연을 위해 2시간 가량의 조율을 마치고 기자와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현재 서울 예술의전당과 롯데콘서트홀 수석조율사로서 재직 중이며 65년간 피아노 조율을 해온 국내 클래식 공연 역사의 산증인이다.
이 명장은 “초등학교 6학년 때 6.25전쟁이 났다. 전쟁이 끝난 후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는 6년 내내 전쟁에 대비해 목총으로 군사훈련을 받느라 음악시간은 한 달에 한 시간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도 대나무에 구멍을 뚫어 리코더를 만들었는데 구멍 뚫는 위치와 크기를 정해 음정을 맞췄던 것이 최초의 조율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에서 4부 합창곡을 연주할 수 있는 풍금소리에 너무나 놀랐다. 각각의 소리가 조화롭게 화음을 이루는 모습이 황홀했다. 아름다운 풍금소리에 어쩌다가 와글와글하는 잡음이 생길 때 풍금 뚜껑을 열어 이것저것을 빼고 만진 것이 조율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일본어 조율 관련 서적을 주문했고 일본어를 독학하여 조율 책을 완벽하게 번역하는 등 남다른 집념과 열정으로 조율을 터득했다. 이러한 과정을 겪으며 이종열 씨는 2007년 대한민국 피아노 조율명장 제1호가 되었다.

독학으로 피아노 클래식과 조율 터득해

1990년대는 피아노가 부의 상징이었던 때였다. 부모들이 자식에게 피아노 교육을 시키며 자신의 경제적 능력을 증명했던 그 시절, 수많은 피아노 학원이 호황을 누렸고 조율사도 2000명이 넘었다. 목수 세 명만 모이면 피아노 공장을 차린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 이종열 명장에 따르면 석유파동, IMF가 터지고 주거환경 변화와 입시 위주의 교육 등으로 인해 조율사의 수가 급격히 줄어 현재 협회에 등록된 사람은 겨우 300여명이라고 한다. 그중에서도 대다수가 투잡을 하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이 명장은 “20여명의 제자들과 모임을 가질 때마다 유비무환을 언급하며 언제 어디서 중요한 부탁을 받을지 모르니 그때를 대비해 실력을 충분히 갈고닦아 항상 준비된 자로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오르간 교본으로 독학을 하고 찬송가 반주를 맡았던 이 명장은 1963년 상경해 성수동 수도피아노 공장에 다닐 때도 남들보다 2시간 일찍 출근해 클래식 명곡을 연습했다. 지금까지도 그는 연주 기법과 피아노 음색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공연장 음향 상태까지 치밀하게 파악해 조율을 한다. 이에 최정상급 피아니스트 
존 릴(영국인)과 게릭 올슨(미국인)으로부터 각각 ‘경이로운 피아노 조율’, ‘동양 최고의 조율사’라는 극찬을 받았고 크리스찬 짐메르만(폴란드인)은 커튼콜 무대에서 이 명장에게 공식적으로 감사 인사를 전해 한국 클래식음악 사상 놀라운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인터뷰 중에도 그는 동요, 트로트, 클래식 명곡을 연주하며 장르별 조율 방법의 차이점을 섬세하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었다.

조율은 타협, 어느 때보다 조율 정신 필요

 이종열 명장은 조율사가 반드시 갖춰야할 세 가지 요소로 ▲건강과 ▲음악적 소질▲기계조작 능력을 꼽았다. 그는 가장 높은 88번 건반의 4186Hz 음높이까지 구별할 정도로 뛰어난 음감을 타고났다. 그러나 여기에 조율 핀을 돌려 감고 풀어내는 오른손의 테크닉이 동반되어야 비틀어진 소리가 정확하게 제자리를 찾는다고 덧붙였다.
 “한마디로 조율은 타협이다”라고 말하는 이 명장은 조율은 서로 타협하는 민주주의식 기술을 바탕으로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88개의 건반이 모두 고른 소리를 내야 하는 피아노는 묘하게도 우리네 세상을 닮았다. 서로 타협하고 똑같이 양보해서 정성껏 음을 결정함으로써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한음 한음 정성껏 피아노를 조율해서 화음이 이루어져 아름다운 소리가 완성되면 먼저 조율사가 감동을 하고, 연주하는 동안 피아니스트가, 마지막으로 청중이 감동한다”고 설명했다. 인터뷰 말미에 
이 명장은 “지긋지긋한 전쟁과 독재시대를 거쳐 왔지만 요즘처럼 나라 전체가 분열되고 혼란스러우며 자기소리만 내던 때가 있었나 싶다. 이제는 국가의 발전과 미래의 후손을 위해 서로 양보하고 타협하는 조율 정신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일침을 놓았다. 
송미아 기자 miasong@igood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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