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받아들인 사람 vs 자기 생각을 믿는 사람
상태바
말씀을 받아들인 사람 vs 자기 생각을 믿는 사람
[요한복음 5장 1절 ~ 9절]  2020. 11. 22. 주일 오전 예배 설교 - 839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20.11.28 06: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소설을 즐겨 읽던 시절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수도권을 중심으로 사회적 거리두기1.5단계가 시행 중이라 오늘 예배에 참석한 형제자매님들이 좀 줄었습니다. 요즘 제 주일설교를 중계하는 방송국 채널이 늘어나 오늘도 영어로 동시통역을 하고 있습니다. 좋은 점은 천천히 생각하면서 설교할 수 있지만 아쉬운 점은 이야기할 시간이 반으로 줄어든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 다 좋을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예전에 책을 많이 읽었는데 특히 소설을 좋아했습니다. 소설이 재미있을 때는 그 자리에서 두 번을 읽고 다시 한 번 더 읽으려고 하면 곧 재미가 없어져 특별히 흥미로웠던 부분만 골라서 읽곤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신기하게도 몇백 번을 읽어도 새롭고 전에 보이지 않던 부분이 보입니다.

혼인 잔칫집의 포도주

요한복음 2장을 보면 갈릴리 가나 혼인 잔칫집에 포도주가 모자랐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모자란다고 하자, 예수님이 그 집 하인들에게 여섯 개의 돌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라고 했습니다. 하인들이 항아리에 물을 한가득 채우자 예수님이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젠 떠서 연회장에게 가져다 줘라.” 하인들은 방금 물을 떠왔기 때문에 ‘이것은 물인데, 연회장에게 포도주를 갖다 줘야지 물을 갖다 주라고? 말도 안 돼’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여기서 문제는 예수님이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말씀하셨을 때 하인들은 그대로 연회장에게 갖다 주면 되는데 처음에는 예수님과 하인들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떠다 줘라”고 말씀하셨을 때 우리 생각이 예수님과 같아서 ‘떠다 줘야겠다’라고 생각하면 아무런 문제가 안됩니다. 그러나 이사야 성경에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사 55:8)라고 기록된 것처럼 신앙의 세계에서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 인간의 생각은 다릅니다. 

우리는 아담의 후손

저는 지금까지 요한복음을 5백 번가량 읽어서 거의 외우다시피 할 정도인데 읽을 때마다 새롭습니다. 그러나 신학자 가운데 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데 인간은 절대 이런 글을 쓸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2장의 갈릴리 가나 혼인 잔칫집에 포도주가 모자랐을 때 예수님께서 그 집 하인들에게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워라” 하시고 그 물을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 하인들의 생각과 예수님의 생각이 달랐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아담의 후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에덴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셨는데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사단의 음성을 따라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그 결과 아담에게 하나님의 마음과 다른 마음의 세계가 형성되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는 아담의 후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회 와서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며 성경을 읽어도 근본적으로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과 다르고 예수님의 마음과도 다릅니다. 

유대인 관원 니고데모

요한복음 3장에서 유대인 관원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만나서 이렇게 대화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그 당시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선생님, 거듭나야 합니까? 저도 거듭나고 싶습니다. 그럼 어떻게 거듭나야 하는지 가르쳐 주세요”라고 말했다면 은혜를 입었을 텐데 자기 생각을 믿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갈릴리 가나 혼인 잔칫집의 하인들은 자신들의 생각이 예수님의 생각과 달랐어도 예수님의 말씀을 따랐는데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자

요한복음 4장에는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자와 대화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그 여자에게 말했습니다.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사마리아 여자가 처음에는 ‘무슨 물이기에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수 있을까?’ 하며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여러분, 이혼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보통 이혼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너무 옳고 상대방이 그런 자신을 이해하지 못해서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혼하면서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남편을 믿고 사랑하며 한평생 같이 살고 싶었을 텐데 남들이 알 수 없는 고난을 겪으며 때론 배신감으로 슬퍼했을 것입니다. 여기 사마리아 여자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다섯 번이나 이혼했습니다. 그러니 마음의 상처를 정말 많이 입었을 것입니다. 아마 두 번째 결혼할 때만 해도 ‘웬만하면 그냥 살아야겠다. 이혼 진절머리 난다’라고 생각했을 텐데 왜 그런지 그 여자는 다섯 번씩이나 이혼했습니다. ‘나도 한 남자 만나서 사랑받으며 즐겁고 행복하게 살고 싶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지? 한두 번도 아니고 다섯 번이나’ 하며 사마리아 여자는 이제 자기 자신을 더 이상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여자는 ‘어떤 물이기에 한 번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아?’ 하며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여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라고 말했습니다. 이와 반대로 요한복음 3장에 나오는 니고데모는 자신이 옳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냥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베데스다 연못의 병자들

요한복음 5장을 보면 예루살렘의 양문 곁 베데스다라는 연못가에 많은 병자가 있었는데 거기에는 38년 된 병자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그곳에 누워 있는 38년 된 병자의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그에게 다가가셨습니다. 이 연못에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가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된다는 전설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천사를 하나님의 천사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복을 주실 때 인간의 어떤 행위가 아닌 은혜로 대가 없이 주시기 때문에 물을 소용돌이치게 하는 천사는 하나님의 천사가 아니라 악한 영입니다. 예수님이 베데스다 연못가로 병자들의 병을 고치러 가셨을 때 그 천사는 병자들의 모든 시선을 사로잡아서 예수님을 못 보고 연못만 쳐다보도록 만들었습니다. 거기서 38년 된 병자 한 사람만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다른 병자들은 천사가 내려올 때 물이 동하길 기다리며 못을 쳐다보느라 38년 된 병자가 병이 낫고 일어나 걸어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38년 된 병자가 걷게 되다

여러분, 38년 동안 누워만 있었던 병자는 자신이 절대 혼자 걸을 수 없으니까, 만약 연못의 물이 동해도 자기를 넣어 줄 사람이 없으면 연못에 들어갈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예?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요? 저는 누워 있은 지 38년이 됐습니다. 그동안 일어나보려고 무지 애를 썼습니다. 일어나다가 넘어지고 쓰러져 다치기도 했습니다. 이젠 안 돼요’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38년 된 병자는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을 때 ‘나에게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말이 안 돼. 걸을 수 있다면 왜 내가 자리에 누워 있어요!’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내가 걷지 못하는데 저분이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시네. 지금까지 내가 걸어보려고 여러 번 해 봤지만 안 됐어. 하지만 지금까지 내 생각대로 해서 잘된 것이 하나도 없는데 저분의 말씀을 한번 들어보자’ 하며 예수님과 한마음이 되었습니다.
38년 된 병자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려면 ‘난 못 걸어가. 안 돼’라는 자기 생각을 버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38년 된 병자는 분명히 자기가 못 걸어간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그가 걷는 것은 자기 힘으로 걷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이 그의 마음에 들어와 그를 걷게 한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말씀이 그 병자를 걷게 했습니까? 그가 말씀을 믿었을 때 말씀이 그의 마음속에 살아서 그를 이끌어준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아무리 좋은 예수님의 말씀이 있어도 그 말씀을 믿지 않는 사람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믿지 않는 사람은 자기 생각을 따라 인간 방법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빌립과 안드레

요한복음 6장에는 빌립과 안드레가 나옵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바다 곧 디베랴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니 큰 무리가 따랐습니다. 예수님은 산에 올라가 제자들과 함께 앉았다가 큰 무리가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물었습니다.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찌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그런데 그곳에 있던 제자 안드레는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라고 대답했습니다. 
여러분, 빌립은 ‘아니,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라면 혼자 먹어도 모자랄 텐데 이 많은 사람을 보고 왜 저런 생각을 해?’ 하며 예수님의 능력을 계산하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안드레는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예수님이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고 38년 된 병자를 고치시는 많은 역사를 보면서 ‘저런 예수님이라면 보리떡 다섯 개로 이 무리의 사람들을 먹일 수 있다’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말씀을 받아들인 사람은

여러분,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자기 생각을 버린 사람과 자기 생각을 믿고 예수님의 말씀을 버린 사람, 이렇게 두 부류로 나뉩니다. 우리 가운데 누구든지 자기 생각을 버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면 우리 마음속에 예수님의 말씀이 살아 일하면서 하나님과 우리가 한마음이 됩니다. 그런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지혜와 성령, 능력이 들어와서 우리가 하나님과 똑같은 역사를 나타낼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외형적으로는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가 되지 않으면 점점 세상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죄 사함 받았을 때는 기쁘고 행복했지만 점점 교회와 말씀이 시들해지고 자기 생각을 따라가 죄악 속에 빠지는 것은 하나님이 살아 계시지만 하나님과 교류가 없고 자기 생각대로 흘러갔기 때문입니다. 

악한 영의 지배하에서 

요한복음 1장의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12)라는 말씀대로 갈릴리 가나 혼인 잔칫집의 하인들이나 사마리아 여자, 38년 된 병자, 안드레, 눈먼 소경이야기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기 생각을 전혀 보태지 않고 말씀을 귀하게 받아들이면 예수님이 살아 역사하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랫동안 악한 영의 지배 아래 있었고 그 이끌림을 받아서 범죄했던 우리는 하나님과 다른 어두운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근본적인 생각은 말씀을 거부하도록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먼저 우리의 생각이 어떠하든지 그 생각을 부인하고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저 말씀은 지금까지 내가 가졌던 생각과 달라. 이것은 하나님의 음성이고 하나님의 말씀이야.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내 생각과 다르다고 내 생각대로 판단해서는 안 돼. 내 생각은 틀렸어. 하나님의 말씀이 옳아. 내 생각과 달라도 말씀에 순종해야 해. 난 말씀을 믿어야 해’라고 생각하면 예수님의 마음과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암을 이기기 위해 해야 할 일

미국 캔자스시티에 살던 김 자매님이 항암치료를 하면서 점점 죽음에 가까워질 때 제게 전화를 했습니다. 선교회에 암환자가 많아서 암에 대해 연구한 서적을 여러 권 읽었기 때문에 그 자매님에게 우리 몸이 암을 이길 수 있도록 하는 면역체계가 있고 NK(Natural Killer) 세포가 그런 일을 한다고 설명하고 몇 가지 해야 할 일을 다음과 같이 말씀드렸습니다. 첫째, 잠을 잘 주무세요. 둘째, 하나님이 낫게 해주실 것을 믿으세요. 셋째, 면역력을 키우도록 식사를 잘 하세요. 그 뒤로 김 자매님의 몸이 많이 좋아졌는데 어느 날 식욕이 떨어져 전혀 음식을 먹을 수 없게 되자 다시 제게 전화했습니다. “목사님, 이젠 안될 것 같아요.” “자매님, 왜 그러세요?” “밥을 거의 못 먹었어요. 항암치료 받느라 몸이 많이 약해졌고, 입맛이 없어서 밥을 먹을 수가 없어요.” 환자가 병을 이기려고 약도 먹는데, 김 자매님은 입맛이 없으니까 밥을 못 먹는 걸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제가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자매님, 입맛 없어도 그냥 드셔 보세요. 그래야 힘이 나요.” 김 자매님이 제 말대로 그날부터 음식을 탁자 위에도 놓고, 책상 위에도 놓고, 방에도 놓은 후 보이는 대로 먹고 억지로 씹어 삼켰다고 합니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 지나니까 밥맛이 돌아오고 몸도 좋아졌습니다. 어느 날 위경련이 심하다고 전화를 했습니다. “목사님, 위경련이 심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 “지금도 위경련이 일어나요?” “지금은 아닙니다.” “그럼, 나은 건데 왜 걱정해요?” “그러네요.” 김 자매님은 항상 제가 이야기하면 ‘그러네요’ 하며 자기 생각을 버렸습니다. 그 뒤 그 자매님은 암에서 나은 후 사각모자를 쓰고 항암치료 졸업 사진을 찍었습니다. 제 말을 그대로 듣는 그 자매님이 참 귀해 보였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이란

여러분,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이 나중에 무슨 이야기를 했을지 상상해 보셨습니까? 이것을 비하인드 스토리라고 합니다. 가나 혼인 잔칫집에서 물 떠온 하인들이 “야, 오늘 큰일 날 뻔했어. 만일 우리가 안 떠다 주었다면 어쩔 뻔했을까?” 이런 이야기하는 게 들리십니까?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 생각을 무시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존경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게 되지만 ‘주님, 왜 제게 이런 일을 당하게 했습니까? 주님이 저를 사랑하시는 줄 압니다. 제가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까?’ 하며 예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말씀에 이끌림을 받아야

38년 된 병자가 그렇게 오랫동안 걸으려고 해도 못 걸었는데 예수님께서 “네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으라”고 했을 때 바로 일어나 걸을 수 있겠습니까? 한번 대답해보십시오.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복을 받는 사람들은 자기 생각을 부인합니다. 우리는 ‘내 생각과 맞지 않아도 주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을 믿겠습니다. 말씀과 다른 내 생각을 버리겠습니다’ 하며 예수님의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속에 예수님의 말씀이 살아서 자기 생각이 아닌 예수님의 말씀에 이끌림을 받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찾습니다. 오늘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의 마음을 읽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 가운데 예수님의 말씀보다 자기 생각이 옳은 사람은 자기 길을 갔습니다. 그러나 38년 된 병자는 예수님이 걸어가라 하신 말씀을 따라 지금까지 자기가 걸을 수 없다고 믿었던 생각을 버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가는 복을 받았습니다. 바로 그 사람이 예수님이 원하는 성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그렇게 이끄시길 원하십니다. 

이제 복음의 문을 여시고

우리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받아들입시다. 요즘 예레미야 31장을 읽는데 이스라엘을 위하여 사방에서 사람들이 모여 올 거라며 하나님이 많은 약속을 주셔서 참 감격스러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교회에 복음의 문을 여셨습니다. 지난주에도 많은 방송국과 인터뷰를 했고 주일 오전 예배 설교를 중계해주는 방송국도 아주 많아졌습니다. 다음 주부터는 전 세계 기독교 지도자 모임(CLF)을 합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의 주인은 여러분이나 제가 아니라 예수님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 앞에 겸비하고 예수님과 마음을 같이합시다.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마음껏 일하시고 우리의 장래 일이나 가정을 축복해주실 줄 믿습니다. 
- 2020. 11. 22. 주일 오전 예배 설교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