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 속에 숨겨진 두사충 관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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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 속에 숨겨진 두사충 관련 이야기
Goodnews DAEGU 838 - ‘두사충’과 함께하는 역사 속 명소 산책 - ②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20.11.20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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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명재 전경

고국을 향한 그리움이 담긴 대명동

계산동, 경상감영공원, 대명동, 모명재, 담티고개…. 대구에 위치한 이 지명들은 모두 ‘두사충’과 깊은 관련이 있다. 두사충은 청나라의 신하로 살기를 거부하여 조선으로 귀화했지만, 조선에서 살면서도 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했다. 그때마다 대덕산에 올라 고향이 있는 북쪽을 바라보면서 그 마음을 추슬렀고, 그리움이 한없이 메아리치자 아예 대덕산 밑으로 집을 옮겨왔다고 한다. 
그는 대덕산 일대를 명나라를 생각하는 뜻에서 동네 이름을 ‘대명(大明)동’이라 지었고, 제단을 쌓아 매달 초하루 관복을 입고 명나라 황제가 살던 북쪽을 향하여 배례를 올렸다. 또한 그의 호를 ‘명을 그리워한다’라는 뜻에서 ‘모명(慕明)’으로 바꾸었다. 두사충이 배례를 올렸던 대덕산 일대는 현재까지 ‘대명동’이라 불리고 있다. 대명동은 총 11동이 있는 대구에서 가장 면적이 큰 행정구역이 되었고, 평생 풍수를 연구한 두사충의 안목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이순신과 두사충 동상

두사충과 이순신 장군의 우정 엿볼 수 있는 곳

어느덧 죽음을 예감한 두사충은 오래전부터 자신의 묘 터를 스스로 점지해 두었다. 아들에게 묘 자리를 알려주려 고개에 이르렀지만 기침가래로 고개를 넘지 못했던 이곳이 현재의 ‘담티고개’다. 두사충이 본래 묻히고자 했던 자리는 알 수 없지만 현재 그의 묘는 모명재 뒤쪽에 위치하고 있다. 모명재(대구시 수성구 만촌동 716)는 두사충을 기리기 위해 그의 후손들이 1912년에 세운 재실이다. 재실 이름은 그의 호를 따서 ‘모명재’라고 지었다. 
두사충은 생전에 이순신 장군과 깊은 친분이 있었다고 한다. 특히 이순신은 두사충이 수만리 길을 달려와 전쟁에서 두 번씩이나 도와준 사실에 감격하여 ‘봉정두복야(奉呈杜僕射)’ 라는 한시를 지어 고마움을 표현했으며 그의 시는 모명재 대청 기둥 주련에도 걸려 있다. 또 후손들은 이순신과 두사충의 우정을 기리기 위해 모명재 앞마당에 동상을 세웠다. 김옥자(54, 만촌동) 씨는 “이곳은 산길이 좋아 자주 산책하러 오는데 무엇보다 두사충을 자세히 소개해주는 문화해설사가 있어 역사 공부하기에 제격이다”라고 말했다. 늦은 가을, 산새가 아름다운 이 곳에서 역사 속 두사충과 조우하며 산책을 즐겨보는 건 어떨까.
대구/ 백송이 기자 daegu@igood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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