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생각에서 벗어나 말씀으로 돌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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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생각에서 벗어나 말씀으로 돌아가야
[로마서 8장 11절 ~ 14절 ] 2020. 11. 15. 주일 오전 예배 설교 - 838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20.11.20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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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요한복음 1장 1절을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기록되어 있고 14절을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말씀이 곧 하나님이신데 그 말씀이 우리와 함께 거하기 위해 우리와 똑같은 몸을 입고 오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을 예수님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실제로 보진 못했지만, 예수님도 분명 우리처럼 손가락이 열 개고, 눈이 있고 코도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이신데 인간의 몸을 입으셨고 우리는 몸에 하나님의 말씀을 담았습니다. 순서는 다르지만, 육체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는 것은 동일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2장 11절의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라는 말씀처럼 성경에는 예수님과 우리가 하나님의 한 자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살면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통해 나타나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마음에 인간적인 경험, 생각들이 너무 많아서 정확한 믿음으로 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사로가 죽는 이야기

요한복음 11장을 보면 나사로가 죽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나사로가 죽기 전 그의 누이들인 마르다와 마리아가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 나사로가 병이 들었다고 알렸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나사로를 사랑하시니 빨리 와서 고쳐주길 바랐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시지 않고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요 11:4)라는 말씀만 주셨습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가 모두 베다니로 가서 마르다와 마리아가 돼봅시다. 예수님은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럼 오빠가 죽을까요, 안 죽을까요? 예수님을 믿는다면 오빠는 죽지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빠의 병이 점점 심해지더니 결국 몸이 싸늘하게 식으면서 죽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이때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예수님이 주신 말씀이 그들의 마음에 살아있다면 “오빠가 지금은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예수님이 죽을병이 아니라고 하셨기 때문에 우리 오빠는 죽지 않아. 예수님은 거짓말하시지 않아. 모든 것이 그분 말씀대로 돼. 오빠는 분명 살아날 거야!”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다면 “너 무슨 정신없는 소리를 하고 있어? 봐봐, 숨을 쉬지 않잖아, 맥이 끊어졌잖아. 이건 죽은 거야”라고 말할 것입니다.

눈앞에 형편을 믿는 사람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우리는 예수님 말씀보다 내가 보는 형편을 더 받아들이며 살아왔기 때문에 형편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도 그랬고 박옥수 목사도 그랬습니다. 모든 형편은 나사로가 죽었다고 말하고 있었고 예수님은 죽을병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성경 속의 모든 문제는 여기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이 살았다고 말씀하시면 결론적으로 산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런 하나님을 경험해 본 적이 적고 인간적인 관념에 익숙하기 때문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경험과 지식이 ‘나사로는 죽었어’라고 이야기하면 우리는 그것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불신하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있다면 어떤 문제를 만나도 예수님이 일해주시기 때문에 그 문제에서 벗어나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여러분은 작은 예수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행하셨던 역사가 여러분을 통해 나타나게 되고 믿음으로 어떤 문제든 해결할 수 있습니다.

전갈에 물린 대학생

몇 년 전 라이베리아 IYF지부장님이 엉엉 울면서 제게 전화했습니다. “목사님, 목사님. 최요한이가 전갈에 쏘여 죽어가고 있어요.” 라이베리아에서 봉사활동 중인 최요한 학생이 밤에 잠을 자다가 전갈에 쏘였는데 그것을 모르고 그냥 있다가 오후에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급히 병원으로 옮겼지만 의사가 이미 온몸에 독이 퍼져 살 가망이 없다며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여러 곳을 헤매다 한 병원에 겨우 입원하였는데 제가 통화를 했을 때는 심장이 멎어 심폐소생술로 겨우 맥박이 뛰도록 조치는 했지만, 혈압과 체온이 떨어지면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지부장님의 전화를 받고 제 마음에 요한이에게 믿음을 이야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요한이와 통화할 수 있어요?” “예.” 지부장님이 요한이를 바꿔주었습니다. “요한아, 너 내 목소리 들려?” “예, 목... 사... 님.” “너는 아프리카산 전갈에 쏘여 죽어가고 있대. 그런데 요한아, 나는 오늘 아침에 이사야 40장 31절에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라는 말씀을 읽었어. 하나님은 절대로 거짓말하지 않아. 네가 하나님을 앙망하면 하나님이 약속대로 새 힘을 주실 거야. 그럼 넌 전갈의 독을 이길 수 있어.”

다음날 기적처럼 살아나

성경에서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 새 힘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앙망하면 반드시 새 힘을 주십니다. 많은 사람이 성경을 이렇게 믿지 않습니다. 여러분, 저는 설교하는 사람입니다. 설교를 통해 여러분의 마음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역사하도록 하는 일을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목사님이 우리에게 어떤 행동을 일으키기 위해 설교를 합니다. “착하게 살아야 합니다. 이웃을 사랑하십시오. 충성하십시오. 율법을 지키십시오. 주일을 지키십시오. 십일조를 내십시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한다는 것에 마음이 다 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내가 뭘 해야 하는 게 아니라 예수님이 일하셔야 합니다. 최요한 학생은 말씀을 믿어 다음 날 기적처럼 살아났고 지금은 미국에서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복음을 위해 살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 2:8~9)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따라해 보십시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예,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 우리의 행위는 전혀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교회가 우리가 무엇을 해야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처럼 가르칩니다. 그래서 많은 기독교인이 한평생 헌금하고 봉사하고 예배를 드려도 하나님을 믿는 마음 없이 ‘내가 이렇게 열심히 했으니 천국에 갈 수 있겠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14년 동안 감옥에서

동남아에 갔을 때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14년 동안 감옥에 있었던 목사님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분이 제게 “저는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떻게 갈 수 있습니까?”라고 묻자 그분이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감옥에
14년 동안 있었습니다.” 제가 “목사님, 성경에는 천국은 그런 행위로 가는 것이 아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라고 말하자 그분이 갑자기 화를 내셨습니다. “목사님, 감옥에 가 본 적이 있습니까? 감옥에 있는 동안 저만 고생한 줄 아십니까? 제 아내와 아이들은 길거리에서 과일 껍질을 주워 먹으며 거지처럼 살았습니다. 제가 이런 고생을 했는데 천국에 못 간다는 겁니까?” “정말 훌륭한 일을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성경에 우리의 행위로는 천국에 못 간다고 되어있습니다.”

믿음인가 행위인가

오늘날 많은 교회가 신앙을 거꾸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저 장로님은 신령해. 저 집사님은 충만해. 저분은 은혜가 넘쳐” 하며 행위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천국은 예수님의 십자가 피를 믿는 믿음으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최요한 학생이 전갈에 쏘여 죽어가고 있는데 무슨 착한 일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많은 교회가 선한 행위를 해야 복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데 마음에 믿음이 없이 선한 행위를 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감옥에서 14년 동안 고생한 것으로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말하는 그 목사님에게 제가 성경을 이야기했지만 화를 내시면서 가버렸습니다.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예수님을 위해 감옥에 간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지만 그것 자체는 행위일 뿐입니다. 믿음과 행위는 다릅니다. 믿어도 당장은 행위가 없을 수 있고 믿지 않아도 선한 행위는 할 수 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마음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려고 오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베다니에 오셨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마리아는 마중 나오지 않았습니다. 마리아는 ‘우리 오빠가 병들었을 때 예수님이 오셨으면 살았을 텐데, 그때는 오시지 않고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나 오셨어’ 하며 예수님께 너무나 속상하고 섭섭했습니다. 
그렇지만 마르다는 속상함을 참고 예수님을 맞이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다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마르다도 예수님이 죽어가는 오빠는 고칠 수 있지만 이미 죽은 오빠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은 믿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마음이 섭섭함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고 말씀하셔도 죽은 지 나흘이나 됐고 썩어 냄새가 나니까 마르다는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라며 다시 산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습니다.

요즘 신학교에서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성경을 통해 읽습니다. 그런데 어떤 말씀은 ‘아, 그럴 수 있겠구나’ 하며 믿고, 어떤 말씀은 ‘진짜 그렇게 됐을까?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일 수 있을까?’ 하며 의문을 갖습니다. 요즘 많은 신학교에서 예수님의 말씀 중에 인간적으로, 과학적으로 가능하다고 여기는 것은 가르치지만 불가능해 보이는 것은 가르치지 않습니다. 즉 성경 말씀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이 미국에서 신학 박사 과정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그분이 예수님께서 처녀의 몸에서 태어났다는 성경 말씀을 믿는다고 하자 학교 측에서 박사 학위를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처럼 현대의 신학은 인간적으로 가능한 것만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인간적으로 가능한 것만 행하실 수 있다면 그런 하나님을 왜 믿습니까? 저는 제 삶 속에 놀랍게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수없이 경험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신데 죽은 나사로를 왜 살리지 못하겠습니까? 죽은 나사로가 있는 곳에는 마르다, 마리아가 있었고 예수님의 제자들과 유대인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사로가 산다고 믿는 사람은 예수님 한 분뿐이었습니다.

자기 생각과 판단을 버려야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기 위해서는 먼저 마르다와 마리아가 예수님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들 마음 안에 죽어 있는 나사로를 살려놓아야 무덤 안에 있는 나사로가 살아날 수 있는 것입니다. 마르다와 마리아가 예수님의 말씀을 믿기 위해서는 자기 판단과 생각이 버려져야 합니다. 이처럼 여러분과 예수님이 한마음이 되어야 예수님이 여러분에게 역사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을 통해 우리의 병을 고친다고 하실 때 ‘아, 내 병을 고치시겠구나’ 하며 말씀을 믿으면 예수님과 한마음이 되면서 역사가 일어납니다.
여러분, 우리는 인간인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르다와 마리아의 마음속에 죽어 있는 나사로를 살리려고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요 11:40)라고 말씀하셨고 그들이 자기 생각, 판단을 버리고 돌을 옮겨 놓았을 때 말씀대로 나사로가 살아났습니다.

믿음을 위해 넘어야 할 장벽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생기려면 꼭 넘어야 하는 장벽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생각입니다. 자기 생각을 버리지 못하면 예수님과 한마음이 될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9장 1절부터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참람하도다.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가라사대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마 9:1~5) 여러분은 어느 말이 더 쉽다고 생각하십니까?
여기서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는 말씀을 하시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우리 죄를 다 씻으셔야만 할 수 있는 말이고, “일어나 걸어가라”는 말은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고도 예수님의 능력으로 이룰 수 있는 일입니다. 어느 게 쉽습니까? 예수님은 “일어나 걸어가라”는 말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그 말씀을 믿으면 우리는 죄 사함과 함께 놀라운 역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생각에서 벗어나 말씀으로

예수님께서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시면 ‘그래, 내 죄가 사해졌구나!’ 하며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나는 어제도 거짓말했고, 오늘도 미워하는 마음이 생겼어. 그런데 어떻게 죄가 없어’라며 자기 자신을 바라봅니다. 
예수님은 분명하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그 말씀을 믿지 않으니까 죄인이라고 하는 겁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 중에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은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다 사하셨는데 “주여, 죄인입니다.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면 예수님이 하신 일을 믿어야 하고 예수님이 죄를 사해 놓았다고 하면 의인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성경의 수없이 많은 곳에 이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 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 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사 44:22),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히 10:17~18) 이제 우리는 인간의 생각에서 벗어나 예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내게 역사하심을 믿을 때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저는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우리 성도들이 이제는 죄 사함을 받은 것에 머물지 말고 하나님이 우리 삶 속에 역사한 일들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랐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예수님이 우리 죄를 사하셨다는 것을 알고 믿어 의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다음에 하나님이 우리 속에 살아 역사하신다는 것 또한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삶을 살다 보면 이런저런 어려움을 만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암에 걸리기도 하고 사업이 망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에게는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는 말씀도 이루어지기가 너무나 쉽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말씀을 믿지 않습니다.

이 시대의 작은 예수

여러분, 예수님을 사람의 계산기 속에 넣고 판단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믿으세요. 우리 죄를 사하신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인간의 머리를 믿지 말고 ‘내가 볼 때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은 불가능하신 것이 없어’ 하며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제가 위장이 안 좋았을 때, 심장이 아파서 죽음 앞에까지 섰을 때 말씀을 그대로 믿으니 다 나았습니다. 우리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예수님에게는 하나도 어렵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이기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받아들여 믿기만 하면 되는데 내가 보기에 안될 것 같아 걱정하고 염려하면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가정에서, 직장에서, 이웃들 사이에서 작은 예수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제 우리 교회가 예수님의 말씀으로 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이론으로 알았던 것은 다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를 자세히 알고 믿어서 우리 형제자매님들이 복음을 위해 살고 예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이 시대의 작은 예수가 되길 바랍니다. 
- 2020. 11. 15. 주일 오전 예배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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