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상태바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요한복음 5장 1절 ~ 9절] 이 시대 우리를 향한 살아 있는 음성 - 2020. 10. 25. 주일 오전 예배 설교 -  835호
  • 주간기쁜소식
  • 승인 2020.10.30 14: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성경 속 마음의 세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요한복음 5장 말씀을 읽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생각하는 세계 그 이상의 깊은 마음의 세계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세계를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글로 기록한 것이 성경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으면 인간이 생각하는 세계와 전혀 다른 어떤 세계를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상당히 중요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세상을 살아오는 동안 우리 방법이나 경험, 지식을 따랐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알고 있어도 그 말씀이 우리 마음과 맞지 않아 이해가 되지 않고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또 성경은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를 가르치기 위해 하나님이 역사할 때 일어나는 마음의 현상을 그려서 그 속에 있는 하나님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브라질 다큐 제작팀의 방문 

이번에 브라질 ‘헤지 브라지우’ 방송국의 다큐멘터리 제작팀이 우리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송구스럽지만 제가 그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입니다. 방송 촬영을 위해 감독이신 방송 편성국장님이 제게 “목사님, 이 부분에 대해서 얘기해 주세요” 하며 여러 가지 질문할 때마다 저는 그냥 마음에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제 얘기를 듣고 세상 어디에서도 보거나 느낄 수 없는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분야에서는 일을 잘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제가 분명히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나’라는 인간의 존재 영역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새로운 세계를 발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존재가 아닌 신적 존재가 있는데, 그런 신적 존재를 우리는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즉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어떻게 말씀하시느냐에 따라 우리에게 어떤 영향이 미치고 또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였을 때와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의 결과가 어떻게 다른지 정확하게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배 아팠다가 나은 간증

제가 설교에서 배 아팠다가 나은 간증을 여러 번 했습니다. 1987년에 저는 위궤양으로 음식을 먹을 수 없었는데 죽만 먹어도 설사를 하니까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배가 너무 아파서 한양대학병원 내과 전문의를 찾아갔습니다. 의사는 제게 “목사님, 조심해야 합니다. 목사님의 위벽은 물 묻힌 창호지처럼 매우 얇아져서 만일 위벽에 구멍이 나면 24시간 안에 죽습니다. 약을 제때 드시고, 식사도 조심하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위궤양으로 고생하면서 당시 체중이 70㎏였는데 3개월 만에
7㎏ 가까이 빠지면서 옷이 헐렁해지고,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어지러웠습니다. 
그해 6월 어느 날 이른 새벽에 일어나서 조용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배가 아픕니다. 이번 여름에 각종 행사와 여름 캠프 등 일이 많은데 이 몸으론 도저히 감당을 못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위장을 낫게 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그런데 기도를 마치고 나자 마치 예수님이 제게 이야기하시듯 마가복음 11장 24절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받은 것으로 믿으라

예전부터 이 말씀을 알았지만 그날 아침에 이 말씀의 내용을 생각해 보니 너무나 쉬웠습니다. 정말 족구를 하거나 길을 걷는 것보다 쉬웠습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한 것을 주님이 응답해 주신다고 믿는다면 기도한 그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배 아픈 것이 나았을 때 믿는 것이 아니라, 배가 아직 안 나아서 여전히 아프지만 나았다고 믿는 겁니다. 즉, 기도하고 구한 것을 아직 응답받지 못했지만 이미 받은 것으로 믿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혀 어렵지 않았습니다. ‘정말 쉽구나! 그럼, 내가 이 말씀을 받아들이면 그대로 되겠네! 배 아픈 것이 낫겠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야.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나한테 거짓말하겠어. 이게 사실이지.’ 그래서 또다시 “하나님 아버지, 배가 아픕니다. 낫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무엇을 해야 합니까? 산에 올라가 산기도를 하거나 40일 금식 기도를 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아,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으셨구나. 나는 다 나았구나!’ 하고 믿기만 하면 됩니다. 아주 단순합니다. 

걱정은 어디에서 오는가

여러분, 한국 사람은 김치를 좋아합니다. 외국 사람이 한국의 맛을 알려면 김치 맛을 알아야 합니다. 김치는 라면이나 스테이크 등 어떤 음식과도 잘 어울립니다. 그런데 맛이 아주 강해서 위장병 환자가 먹으면 위를 자극해 설사를 하게 됩니다. 그날 아침에 식사하려는데 제 마음에서 ‘지난 석 달 동안 김치를 안 먹었는데 배가 나았다고 믿는다면 김치도 먹어야 하는 것 아니야? 하지만 물만 먹어도 설사가 나오는데, 그 배에 김치를 먹으면 위장이 견뎌낼까? 그러다 진짜 위장에 구멍이 나면 어떻게 하지?’ 하며 오만가지 걱정이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이런 걱정은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는 데서 나옵니다.
성경의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는 말씀은 우리가 받은 줄로 믿기만 하면 그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안 되면 하나님은 거짓말쟁이가 됩니다. 제가 믿는 하나님은 거짓말쟁이가 아니시기 때문에 기도하고 구한 것을 받은 줄로 믿으면 분명히 배가 낫는 것입니다. 아주 쉽습니다. 

그럼 이제 배가 다 나았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른 무엇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그대로 되리라” 하는 말씀을 믿는 우리의 믿음을 보십니다. 솔직히 저는 죽고 싶지 않은데 의사의 말대로 위장에 구멍이 나거나 배가 더 아프다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만일 김치를 먹었다가 위에 구멍이 나면 어떻게 하지? 배가 계속 아프면 어떻게 하지?’ 하며 걱정을 했지만 말씀에서는 배가 터지거나 더 아파지는 게 아니라, 믿으면 구한 것을 그대로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알고 있었구나. 믿으면 그대로 되는구나. 만일 이 말씀을 안 믿는다면 나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네’ 하며 다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다시 시작합니다. 배가 아픕니다. 낫게 해주십시오. 하나님, 이제 배가 나은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저는 “다 나았다” 하고 식탁 앞에 앉았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

그날 아침, 집에 손님이 많이 오셔서 아내는 음식을 가득 차리고 식탁 한쪽에는 제가 먹을 부드러운 음식과 흰죽을 갖다 놓았습니다. 제가 그 음식을 밀어내고 밥 한 그릇을 가져다가 김치와 함께 먹었습니다. 음식을 나르던 아내가 그런 저를 보더니 깜짝 놀라며 “당신, 어쩌려고 그래요?”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걱정하지 마. 나, 배 다 나았어”라고 대답하자 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손님들은 아직 식사 중이고 저는 식사를 일찍 마쳤는데 갑자기 배가 ‘싸~아’ 하며 아파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자리에서 슬쩍 일어나 화장실로 갔습니다. ‘아이고, 배야. 왜 배가 아프지? 다 나았다고 믿었으면 믿은 대로 나아야지. 왜 설사를 하지? 이게 나은 거야?’ 저는 배를 낫게 해달라고 기도했고 성경 말씀대로 나았다고 믿었습니다. 그렇다면 제 배가 아프지 않아야 하는데 배가 여전히 아팠습니다. 
여러분, 그때 제게 성경 말씀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병들어 죽어갈 때 회당장이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려 자기 집에 오시기를 간구하여 예수님이 그 집으로 가시게 되었습니다. 먼저 온 많은 사람이 야이로의 딸을 보더니 죽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그 집은 슬픔의 울음소리로 가득 찼는데 예수님이 들어오시더니 그들에게 “울지 말라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눅 8:5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비웃었습니다. ‘아이고, 우리가 죽은 것과 잠자는 것을 구분하지 못할까 봐? 잠자는 사람은 누워 있어도 숨을 쉬는데 이 아이는 숨도 쉬지 않고 몸은 싸늘하게 식었잖아.’ 
분명히 우리 눈에는 야이로의 딸이 죽었는데 예수님의 눈에는 살아서 잠자고 있었습니다. ‘아, 예수님의 눈으로 보는 것과 우리의 눈으로 보는 것이 다르구나.’ 이와 마찬가지로 저는 여전히 배가 아파서 안 나았다고 생각했는데 예수님이 저를 보실 때는 나았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 배가 아픈 것이 전혀 문제 되지 않고 배가 좀 아파도 참았습니다. 

여름수양회에서

그날 저녁, 어떤 분의 초대를 받아 호텔 뷔페식당에 갔습니다. 저는 식당으로 들어가면서 ‘배가 아프니까 죽이나 좀 먹고 말아야겠다’라고 생각하다가 ‘아니지. 내 배가 다 나았지!’ 하며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그날 정말 많이 먹고 집으로 돌아와서 잠들었습니다.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신기하게도 그동안 아팠던 배가 깨끗이 나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여름수양회가 시작됐는데, 첫날 저녁 설교 시간에 제가 이 간증을 했습니다. 그날 제 간증을 듣고 저처럼 병에서 나은 사람이 참 많았습니다. 수양회를 마치고 남은 쌀 네 가마니를 선교 학생에게 준다고 해서 버스에 싣고 교회로 가져왔습니다. 그 당시 서울대 입구 근처 4층 빌딩에 예배당이 있었는데,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한 형제님이 쌀가마니를 등에 지고 계단으로 4층까지 날랐습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형제님이 가방을 들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분은 그동안 허리가 아파서 가방도 제대로 들지 못했는데 쌀가마니를 지고 4층까지 네 번이나 오르내린 것입니다. 이런 간증이 너무나 많이 들려왔습니다.

내 생각과 방법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히 4:12)라는 말씀은 문자로 기록된 성경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서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어려운 일을 겪었을 때, 우리 방법으로 안될 때, 하나님의 손길이 필요할 때,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싶을 때, 비로소 우리의 생각과 방법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가게 됩니다. 
첫 사람 아담이 사단의 음성을 듣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었기 때문에 사단은 우리 인간의 마음을 장악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세계와 완전히 다른 세계를 만들어 하나님 없이 인생을 살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에게는 고통과 슬픔, 괴로움과 양심의 가책 같은 죄악이 그들의 마음을 감싸게 되었습니다.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이제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가려면 사단이 우리 마음속에 넣어준 생각을 따라간 결과가 죄악이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므로 그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익숙한 자기 방법을 따라 살려고 합니다.
사단의 이끌림을 받는 삶이 좋아 보이지만 그것은 하나님과 정반대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인간의 방법에서 떠나 하나님 말씀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둡고 추한 삶을 살게 하는 인간의 생각에서 벗어나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히 4:12)라는 말씀은 인간이 하나님 말씀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서 말씀을 믿을 때 일어나는 우리 마음의 현상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38년 된 병자 이야기

여러분, 요한복음 5장의 38년 된 병자에게도 부모가 있었을 것입니다. 어떻게 그가 혼자됐는지 잘 모르겠지만 병든 지 38년이 됐습니다. 아마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아들의 병을 고치려고 여기저기 병원에 다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병이 낫질 않았고 세월이 흘러 어느 날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동생과 함께 남았다고 상상해봤습니다. 동생도 처음에는 ‘내가 형을 돌봐야지’라고 생각했을 텐데 형편이 어려워지면 그런 마음도 사라지게 됩니다. 그가 왜 형을 떠났는지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동생이 형에게 말합니다. “형, 나를 용서해 줘. 이런 말 안 하려고 했는데 오늘은 해야 할 것 같아.” “뭘?” “우리 집은 형 때문에 모두 불행해졌어. 부모님도 형의 병을 고치려다 돌아가셨잖아. 형이 먼저 죽었으면 우리 집에 이런 슬픔이 없었을 텐데. 나도 이제 지쳤어. 형, 미안해. 난 오늘 형을 떠나기로 했어. 이제 나도 행복해지고 싶어. 나를 욕해도 좋아. 쌀독에 쌀 가득 사다 놨어. 얼마 동안은 살 수 있을 거야. 이게 남은 돈 전부야. 형, 놓고 갈게.” 형이 말했습니다. “동생아, 그래. 우리가 다 망하는 것보다 너 혼자만이라도 행복해야 해. 뒤돌아보지 말고 가라! 나를 잊어. 그리고 행복하게 살아야 해!” 이렇게 38년 된 병자는 홀로 남았을지 모릅니다.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어느새 양식도 다 떨어지고 그 병자는 기다시피 해서 길가로 나왔습니다. 베데스다 연못가에 천사가 내려와 물이 동할 때 제일 먼저 못에 들어가면 무슨 병이든 낫는다는 말이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그날부터 길을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부탁 하나만 들어주세요. 저를 베데스다 연못가로 데려다주세요.” 누군가 그를 불쌍히 여기고 수레에 실어 연못가로 데려다줬습니다. 그러나 연못가에는 병자들로 가득해 그들보다 먼저 못에 들어간다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는 먹고살아야 하니까 길가에 앉아 구걸하며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날도 있고, 화장실도 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배설해서 냄새나고 더러우니까 아무도 그를 가까이하지 않았습니다. 
놀랍게도 예수님이 그런 38년 된 병자를 찾아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말했습니다. “주여, 물이 동할 때 나를 못에 넣어줄 사람이 없어서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갑니다.” 예수님이 그를 바라보고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병자는 자기 귀를 의심했습니다. ‘내가 잘못 들었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말이 안 돼. 나는 38년 된 병자야. 난 못 걸어. 그동안 걸어보려고 해도 안 됐어’ 하던 그의 마음속에 점차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는 예수님의 말씀이 자리 잡으면서 그의 생각과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이제 새로운 인생이

만일 우리가 우리 생각을 고집하면 예수님의 말씀은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38년 된 병자는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야. 내가 병들어 못 걷는 것은 사실이지만 저분이 걸어가라면 나는 걸어갈 수 있어. 지금까지 내 생각을 따라 살아서 잘된 것이 없었어. 그것이 얼마나 바보스러운 짓인지 미처 몰랐어. 이제 예수님 그분의 말씀을 따라 일어날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처음으로 자기 생각을 버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일어나겠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이제 38년 된 병자의 마음에서 작은 변화가 일어나면서 지금까지 갖고 있던 수많은 자기 생각을 내쫓고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는 예수님의 말씀만 그의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 그는 절망과 고통, 슬픔뿐이었는데 예수님의 마음이 그 병자의 마음속에 흐르게 되면서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예, 예수님. 제가 일어나겠습니다. 당신이 말씀하시면 그 말씀대로 됩니다”라는 믿음이 오면서 그는 두 손으로 땅을 짚고 허리를 일으켜 꿇었던 무릎을 폈습니다. ‘내가 일어나고 있네. 이게 꿈 아냐? 꿈이 아니길 바란다. 내가 정말 일어났어.’ 38년 된 병자가 말씀대로 일어나 걸어가는 놀라운 역사를 보았습니다. 이제 그는 건강해졌고 아마 좋은 직장도 얻고 예쁜 아가씨도 만나 결혼해서 새로운 인생을 살았을 겁니다.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에 자리를 잡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이 됩니다. 우리의 눈, 코, 귀, 입, 손발, 생각 등 모든 것이 하나님에 의해서 움직이는 하나님의 사람이 됩니다. 그전에는 안타깝게도 세상의 욕망과 정욕이 우리를 끌고 어두움과 방탕한 길로 데려갔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한평생 죄를 짓고 살 수밖에 없었는데, 예수님이 우리 마음의 주인이 된 뒤로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복을 받고 살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38년 된 병자처럼 우리의 생각을 내려놓고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예수님이 우리 마음속에서 일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걷거나 뛸 수 있고 행복하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사랑해서 지금 그분을 위해 살고 있습니다. 저를 이끌어주신 예수님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립니다. 
- 2020. 10. 25. 주일 오전 예배 설교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